책명- 나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
저- 엄혜숙
출- 창비
독정- 2018.3.23. 금
ㆍ<리디아의 정원> 집으로 보내는 편지글에는 이 동네 집집마다 창밖에 있는 화분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이 지내며 일할 이 골목에 빛이 내리비친다고 적혀 있다. 리디아가 엠마 아줌마에게 꽃 이름을 라틴어로 가르쳐주고, 엠마 아줌마는 리디아게게 빵 반죽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 비밀장소를 발견해서 굉장한 계획을 짜고 있다는 것, 꽃씨를 열심히 심고 있다는 것 등을 적었다. 화면에 온갖 꽃이 가득 차 이전의 황량했던 옥상과 대비 된다. 이 옥상이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바뀌기까지가 리디아의 일이었다. 일하는 사람의 참모습
ㆍ레오리오니의 <프레드릭>
들쥐들은 부지런히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은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고
프레드릭의 반쯤 감은 눈은 또다른 인식방법을 가리킨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이전에 느끼고 본다. 본 것을 표현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본 것이 말로 인간의 지각능력을 찿지한다고 한다. 자기 내면을 지각하는 능력, 상상력을 가리킨다.
프레드릭은 몸을 움직이는 것만 일이 아니고 상상력을 움직이는 것도 일이라는 관점을 보여준다.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도 일이고 상상력으로 현실이 옹색하고 궁핍할 때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ㆍ쑤전 제퍼스의 <시애틀 추장>
백인과 협상테이블에서 시애틀 추장이 연설했다는데 화면에는 울창한 숲에서 시애틀 추장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나무 뒤에서 늑대들이 서서 물끄러미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나뭇가지의 새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화면의 그림은 글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니라 글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시애틀 추장은 혼자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백인을 상대하고 있음을 화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애틀 추장의 몸에는 뒤편에 있는 나무며 나뭇가지들이 얼른어른 비친다. 현실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주제의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ㆍ우리는 이 땅의 일부이고 이 땅은 우리의 일부라고 대지 위에 피어나는 꽃들은 우리의 누이들이라고
시냇물은 네 조상의 조상들, 그들의 피가 살아 흐르는 것이고 강들은 너의 형제들, 강은 목 마를 때 너의 목을 적셔주고 우리가 탄 카누를 옮겨주고 우리 자식들을 먹여 키우니, 너는 형제에게 대하듯 똑같은 사람으로 강들을 대해야 한다고 조상들은 말한다.
ㆍ어린이문학이 문학인 이상 작품의 진실성을 통해 독자를 감동시켜 깨달음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 이 점에서는 일반문학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어린이문학은 일차 독자를 어린이로 상정함으로써 이에 따른 조건과 제약을 지닌다. 어린이문학의 가장 큰 제약은 어린이의 제한된 생활 경험과 인식 수준일 것이다. 어린이는 성장 과정에 있어 어른에 비해 생활 경험의 폭이나 인식 수준이 낮다. 이런 조건과 한계 속에서 어린이문학은 독자인 어린이의 정신, 사회성 성숙을 도운다. 그림책이 어른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단순한 형식에 풍부한 내용. 즉 다의성이 있어서다. 몇장 안 되는 그림과 몇 줄 안 되는 글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기본 욕구들이 표현되고 삶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을 본다. 어린이는 덜 자란 어른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형이다. 어린이의 세계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어린이 책은 어른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어린이는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 그림책 속에는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등장한다. 마치 짧은 시 한편이 삶의 진면목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그림책 또한 삶의 한 단면을 압축해서 잘 보여준다. 존 버닝햄의 <알도>는 부모의 부부싸움, 친구의 따돌림속에 친구랑 어울리고 싶은 내가 처음은 현실에서 그네타기-두 번은 상상으로 그네타기하며 친구들과놀고 싶은 나의 마음을 부각. 외로운 아이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ㆍ아이는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성장해간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물활론적 세계에 살고 상상놀이를 곧잘 한사. 상상은 결핍된 것 채워주고 현실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현실을 완성하며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열어간다. 장독도 깨뜨리고, 빨래도 더럽히고,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도 엉망진창으로 흐트려 놓고 말썽 부리는 자체가 현실의 불만을 해소하는 기제다. 잘못해서 다락방에 숨는 설정이 아이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자신과 비슷한 아이를 책으로 만나 자기 욕구를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한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만남으로써 더 큰 문제를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이 즐겁기 때문.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에 몇 번이고 되풀이해도 아이는 지루하지 않다. 이 놀이에 어른도 아이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 문학은 ‘문학’이다 전문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에서 체계적인 어린이문학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어린이 책 전문 도서관이 생겨나야 하고, 여기에 어른과 아이를 위한 다양한 어린이 문학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현재는 어린이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자발적인 공부나 창작 모임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열기를 모아 어른을 위한 어린이문학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문학이 더욱 튼실하게 성장할 것이다. 아는 만큼 즐벅다고 한다. 아는 만큼 깨달을 수 있다. 어린이 문학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어른용 문고 중에 어린이 문학 고전이 제법 실려 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기해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부터 읽고 즐기는 문학이지, 어린이만 읽고 즐기는 문학이 아니다. <문학과 교육> 2002 겨울호에서 엄혜숙
책 읽기야말로 내가 해본 놀이 중에 가장 재미있는 놀이다. 글자릉 알게 된 순간부터 책은 내게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고 글자들은 그 문을 여는 비밀열쇠였다. 현실의 나는 느리고 굼ㄸ덧지만 책 속 나는 주인공들과 돌아다니며 모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