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무, 숲에 관한 시모음 3)
가을 숲 /김현주
낙엽
바스락바스락
화려한 추억이 밟힙니다
만추의 향기를 끌어안고
깊은 잠을 재촉하는 숲에는
어둠이 재잘거리며 다가오고
따닥 딱 딱딱
분주한 딱따구리 부리 소리에
겨울이 곧 오려나 보다
나목 가지들은
바람의 음률 따라 쉬엄쉬엄 흔들어
구름을 배웅하는 계곡에는
오색 비단을 걸친 물빛의 잔치
그리움만큼 경사진 비탈에는
가물가물 안개가 일어서고
마른 몸을 누이려 떨어지는 낙엽에
임에 얼굴이 어리어
물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가을 숲 /鞍山백원기
수채화 가을 숲 벤치에 앉아
화려한 작품 감상의 한 낮
수런거리는 나무 마을은 분주한데
이따금씩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온갖 사연을 안고 떨어지는 나뭇잎
봄과 더불어 하나씩 쌓아 올리던 블록
한 여름에는 맘껏 절정에 올랐었지만
자전공전의 수레바퀴에 휘말려
힘없이 추락하는 말 못할 사연
울긋불긋 땅위에 떨어질 때면
밟는 이의 귀만 즐겁게 할뿐
애환의 세월은 알리지도 못한 채
쓸쓸한, 나목의 겨울을 맞으려한다
가을 나무 아래서 /장은수
샛노란 새색시들이 그네를 타다가
바람이 줄을 자르면
아스팔트 위에 곤두박질친다.
어젯밤 소리 없이 뿌리고 간
가을비의 뜻을 알 수가 없고,
바람의 사연도 알 수가 없어
세상을 체념하고
그저 몸부림으로 나뒹굴며
처참히 아픔을 삼킨다.
여름으로 달려가는 은행잎이
찬바람 불어올 것은
미처 예비하지 못하는 저 나무들
가을 숲의 평화 /세영 박광호
뻐꾸기 울음을 추억하며
산 그림자 끌어안고
서녘노을 바라보는 가을 숲엔
안식의 평화가 깃든다.
산곡을 굽이돌던 개천의 목쉰 소리도
삶의 애환을 토하든 풀숲의 벌레소리도
다 흘러간
가을 산 능선엔 노을빛 애처롭지만
빛으로 낮을 살고
어둠으로 밤을 쉬며
한 세월 제 몫을 다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 잎들의 속삭임
가뭄 장마 모진 바람 의연히 이겨내며
불만 없이 살았더라!
떠날 때를 제 스스로 알아
오색찬가로 이별을 환호하는
가을 나뭇잎들
가을 나무 마음 /己貞 옥윤정
기쁨에 불태우던 마음
즐거워 바람에 날리며
춤추던 그 시간들
흐르는 시간 잡지못하는 아쉬움
하나 둘 너의 향기를
내려 놓기 시작 하였구나
즐거움 하나
행복 둘
보내고 난 후
허전함 외로움은 어찌할고
빈가지 늘어뜨리고
오롯이 너이기를 바라는것은
너와의 추억이 있기에
기약없는 만남을 기다린다
가을 숲을 보며 /김시탁
고여있는 숲을 바람이 흔듭니다.
산새에 파 먹힌 붉은 시간들이 피를 흘립니다.
붉은 피를 본 소나무 하나가 시퍼렇게 질려 온몸을 떨고 서 있습니다.
제 살을 파 먹는 딱따구리를 고목은 나무라지 않습니다.
숲은 아무도 자기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어깨를 걸고 가슴을 비빕니다.
시린 햇살 한 조각도 나누어 먹으며 한 목소리로 소리를 만듭니다.
한번씩 계절의 불심검문에 숲 속의 나무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입니다.
파란 하늘을 쓱쓱 쓸어 이마가 벌겋게 달아 올라도 한번도 온몸을 눕혀 잠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 몫의 바람을 가지에 걸고 숲의 대열을 이탈하지 않습니다.
함께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탈하지 않습니다.
가을 나무 /이옥순
그 여리고 예쁜 새싹을 틔워
비바람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밤낮으로 감싸며 품어안고
한 잎 한 잎 돌보며 지켜온
사랑으로 키워낸 그 많은 나뭇잎
이별의 아쉬움 꽃단장시켜
오색빛 가을 단풍 잔치
깊은 산중 나무들 우리를 부르고
곱게 꽃핀 얼굴 기쁜 만남
청아한 새들 노래 맑은 물소리
곳곳에 다람쥐 두 손 모아 인사하네
생기 넘치는 우리 땅 산천
자연의 오색빛 찬란한 가을 나무
뜨거운 사랑 붉게 태운다
너도나도 함께 가는 나그네
아름답게 펼쳐놓은 단풍 꽃 잔치
손잡고 너울너울 이 기쁨 만끽해 보자.
가을 숲 /박인걸
시월 숲 길 위로
알알이 여문 산열매들
산 짐승이 거둬갔는가
흔들어도 인색하다.
아침 햇살이 드리울 때
늙은 숲이 기지개 켜면
솔가지 작은 새들
조율 音도 무겁기만 하다.
늦깎이 꽃잎마저
모두 떠난 빈 자리
베옷으로 갈아입는 숲
예배 시간처럼 敬虔하다.
지난여름 지날 적에
싱그러움에 감탄했더니
윤기 마른 피부처럼
늙는 데는 별 수 없구나!
가을 나무 /노정혜
가을이 좋아 참 좋아
가을 나무 아파
가을 나무 아파하며 곱게 물들어
이산 저산
단풍잎 좋아 좋아 함성소리
가을 나무 아파 너무 아파
어차피 지워야 한다면
예쁘게 아름답게 물들어
단풍잎에 환호하는 소리에
고통도 잊는다
지는 모습도 아름다워
땅에 떨어져 뒹굴어도
낙엽 밟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노래노래 하련다.
가을 숲에서 /김문희
가을 숲에 서면
나무들의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한시절 살아온 말없던 삶이
빛바랜 세월을 털고
이 가을, 나무는 정직한 맨몸으로
찬바람 속에 선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것이던가
추수의 마차들이 숲을 지날 때
지난 여름의 셈은 끝나고
돌아오라, 고독한 자유여
나무는 저마다 혼자서
가을 햇살에 몸을 씻노니
바람이 올 때마다 아픈 손을 흔들어도
가을 하늘 높이에서 아득한
그리운 이름
슬픔으로 수액을 말리고
메마른 육체를 쓰다듬어
겨울 문턱에 서서
나무는
그 싱싱한 내일을 위하여
이 가을, 말 없이 옷을 벗는다
가을 숲에 서면
나무들의 아픈 숨소리 들린다
가을 나무 /鞍山백원기
나뭇잎들이
점점 물들어 가지만
또 한 편에선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이
소리 내 울지 않아
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측은하고 슬퍼 보인다
열심히 부지런하게
지내왔었고
어렵고 힘든 과정 넘어서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나무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고이 간직해야 할 우울한 계절
재롱에다 재주 부리던 나뭇잎은
매정하게도 떨어뜨려야 하니
가을 숲에선 /황우 목사 백낙은(원)
가을 숲에선
과일 익는 냄새가 난다.
쑥부쟁이 억새꽃
금빛물결 파도치고
머루다래가 낯을 붉히는 다솜.
가을 숲에선
사랑 익는 냄새가 난다.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속삭이든 옛 임의 목소리
그 체향까지 실어다주는 그미.
가을 숲에선
울 엄마 젖 내음이 난다.
무턱대고 파고들어도
더없이 넉넉한 품으로
오롯이 감싸 주는 아람치.
* 다솜 : 애틋한 사랑
* 그미 : 그 여자.
* 아람치 : 자기의 차지가 된 것
가을 숲을 탐닉한다 /이민숙
가슴 시린 서늘한 가을
차갑게 식어 가는 심장처럼
칼날 같은 외로움 삭이며 숲길을 걷는다
한때 가슴에서 자살한
독소처럼 퍼졌던 악에 받친 그리움
붉은 낙엽처럼 골 깊게도 깔렸다
나는 무소유 숲으로 은닉해
아픔을 자근자근 밟듯
붉은 물 흐를듯한
단풍 밟으며 가을 숲을 탐닉한다
가을 숲 소묘(素描) /강한익
고운 햇살
가을 숲 기웃거리며
어미 품 떠나는 수목(樹木)의 잎새에
이별의 손을 흔든다.
한여름
목청 높여 노래 부르던
산새들 어디로 가고
둥지 속에 몸 감춘
까마귀 합창소리
익어가는 가을 숲에 메아리치며
산자락
이름 모를 들꽃은
멀리 떠나버린
벌 나비 불러 보지만
소슬바람만 가슴에 안겨준다.
가을 나무 /안재동
습기로 누글누글하던 여름 달이
봉평 메밀밭에서 이지러지고
우아하고 성글성글한 가을 달이
어전마을 대나무밭에서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가을이 걷는 마을의 길목마다
감나무면 감, 대추나무면 대추,
다양한 열매들이 저마다
조금의 수줍음도 없이
탱실탱실 부푼 몸매를 자랑한다.
가을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풍성하게 과실을 여물게 하고
보는 이가 즐겁도록
자신의 몸을 형형색색으로 가꾼다.
가을 나무는 그렇게
여느 때보다 동작이 부산하지만
길 떠날 채비하는 집시처럼
속마음 오지게 쓸쓸해짐을 아는가.
위로하듯, 풀벌레들 곱게 노래하고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땐
나무는 수의조차 걸치지 못한 채
모질게 찬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조용히 잠들 준비를 해야 하지.
가을 숲 /장진순
가을 숲 속에
곤충들이 모여든다.
넓이 뛰기를 하는 메뚜기
뛰어오르며
날개를 펴고 날아가 착지하자
반측을 선언하는 심판
높이 오르기에 출전한
개미가, 갈대 꼭대기까지 올라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다 추락한다.
보물찾기에 나선
벌, 나비들 냄새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
쓰레기 더미 속에 감춰진 지폐를
당장 찾아내는 파리
경기 끝나갈 무렵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우왕좌왕하는 곤충들, 그때
우산을 펼쳐든 숲이 손짓한다.
나뭇잎 아래로 모여드는 곤충들
평온해진 숲 속에
여인의 샤워하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