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장 23절~27절.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우리 삶의 환경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진정으로 체험하며 사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70대 목사인 나는 나의 삶의 환경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많이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찬송가에는 이런 찬송이 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믿으면서 받은 증거가 많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없는 사람인가?
성경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증거가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도 받은 증거가 많은 사람이다.
그들의 삶의 현장에 받은 증거가 많은 사람들이었고,
또한 그들의 사역의 현장에도 받은 증거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의 현장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일하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만약 나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가 넘친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을 생동감이 넘치는 신앙생활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일하시는 증거가 차고 넘치지만 이전 나의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증거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참으로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다.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지만 15년 동안이나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교회만 다니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때가 있었다.
내 나이 20살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
나는 그 때부터 참 된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 뒤로 내 인생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수많은 증거들이 나타났다.
20살에 내 인생에 나타난 그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첫 째는 바로 무지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는 수많은 증거들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다.
두 번 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일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대해서 좀 안다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도덕 윤리적으로 조금 깨끗하게 살려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은 사람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일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일하지 않으니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서 일하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일관되게 강조하는 중요한 진리가 있다.
하나님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내 인생에서 일하기 시작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그 진리를 무시하거나, 그 진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진리란 무엇인가?
우선 그 진리를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제주도라는 섬에는 제주도만이 갖고 있는 참으로 매력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도 우도에 있는 쪽빛 바다를 좋아한다.
산호초들이 죽어서 떠 밀려와 하얀 백사장을 만들고 그 백사장 위로 바닷물이 밀려 올 때 그 바다는 환상적인 색을 나타낸다.
나는 그 바다를 좋아한다.
나는 그 바다에 다시 가 보고 싶다.
이제 그 바다에 갈 때는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장 노출 사진을 촬영해 오고 싶다.
언젠가 그 바닷가에 갈 날이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개인 취향에 따라 제주도에는 볼 거리 즐길 거리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제주도가 좋아도 그 섬에 가야만 그 섬에 아름다운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제주도 섬에 어떻게 갈 수 있는가?
마음만 있으면 되는가?
아니다.
그 섬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든지 아니면 배를 타야만 한다.
그래야 그 섬에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이 있다.
그 축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들에게 주시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다.
거기에는 영적인 축복이 있고, 정신적인 축복이 있고, 육체적인 축복이 있고, 경제적인 축복이 있고, 사역의 축복도 있고, 만남의 축복도 있고, 무엇보다 영생의 축복도 있다.
그 축복의 나라로 가려면 그 나라로 가기 위한 어떤 수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무엇일까?
성경이 한 결 같이 주장하는 중요한 그 진리.
마가복음 1장에는 그 진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셨다.
복음을 갖고 오셨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는 놀라운 축복이다.
그 놀라운 복음을 갖고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이 땅에서 실현되기 시작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누가 받아 누리는가?
하나님은 주 예수님이 가지고 오는 복음의 축복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기에 그 축복을 모든 사람들이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람을 보내셨다.
복음을 가지고 오신 주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을 보내신 것이다.
바로 그 사람이 세례요한이다.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씀을 전한다.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복음을 가지고 오신 주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회개하라!” 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주 예수님이 가지고 온 복음의 놀라운 축복!
그 축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회개하라 고 외친 것이다.
세례 요한의 그 선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했다.
그 결과로 복음이신 주 예수님은 복음의 위대한 사역을 시작하신다.
복음의 위대한 축복이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첫 번 째 관문은 바로 회개인 것이다.
세례요한이 선포한대로 이제 복음 그 자체가 되신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드디어 복음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을까?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가지고 오신 복음이신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맨 처음으로 전한 메시지는 바로 “회개하라!” 였다.
회개하고 복음이신 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러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그 앞에 회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가 없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짜다.
회개가 없이 주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도 가짜다.
회개가 없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회개가 없이 어찌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나의 삶의 주권을 넘겨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권을 예수님께 넘겨주고 싶겠는가?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회개가 없이 어찌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회개 없이 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도행전에는 그 회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은 복음이신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그 복음의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되어 진 일을 기록한 성경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부어 주셨다.
성령을 받은 교회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어떤 복음이었을까?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초대 교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 메시지도 바로 “회개하라!” 였다.
그 시대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예수님을 믿고 우리들처럼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회개하라고 전파한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그 첫 번 째 관문이 바로 회개 인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일관되게 회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말씀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예루살렘 교회 이후에 시간이 흐르고 이제 그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바울은 어떤 복음을 전했을까?
[행13: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선교의 현장, 이방인들의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사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있었다는 것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가 없이는 복음이신 주 예수님을 만날 수 없고 영접할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오늘 나는 제자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복음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지 200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 복음은 어떤 복음인가?
회개의 복음이다.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라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고 천국의 축복도 누리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라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라!
주 예수님을 믿으라!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라!
회개하라! 고 선포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좋아 한다.
그런데 회개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회개하라는 것은 내가 가고 있는 그 길에 돌아서서 반대의 길로 가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가고 싶은 길이 있다.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 길을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 길에서 돌아서라고 한다.
그것이 회개다.
나의 본성은 이 길로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그 길에서 돌아서서 반대의 길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선입관이 좋지 않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 시비를 거는 잔소리꾼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앙생활이 되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도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회개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복음이 완성된 시기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지금은 성령 시대이기 때문이다.
회개란 무엇인가?
우선 회개는 두 가지 회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 번 째 회개는 일생에 단 한번만 하는 근본적인 회개요, 둘 째 회개는 자신이 죄를 범했을 때마다 하는 회개가 있다.
둘 째 회개도 중요하지만 당연하게 첫 번 째 회개가 중요하다.
첫 번 째 회개란 어떤 회개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다 부모님으로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 본성을 갖고 자라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이성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본성이 있는데 그 본성은 바로 “내 인생은 내 것이다.” 라는 본성이다.
내 인생이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살아간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지도 않는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내 인생이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살아간다.
이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죄다.
이런 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어지지도 않고 깨달아지지도 않는다.
당연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나님이란 존재는 내 인생을 귀찮게 하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백 번 천 번 영접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회개란 무엇인가?
우선 사람이 확증해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정말 계시는가에 대한 확증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증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 사셨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죽으셨고,
사람으로 부활하신 주 예수님.
그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객관적이요, 사실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확증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증이 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에 나는 하나님의 것인데,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살았구나.
여기에서 진정한 회개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 내가 잘못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살아계시는데 나는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가 내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사실적이요, 전인격적인 회개가 일어나는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그 사람만 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주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주 예수님이 들어오시니 죄 용서를 받은 것이요,
주 예수님이 들어오시니 주 예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요,
주 예수님이 들어오시니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달고 오묘한 말씀이 되는 것이다.
나는 20살 그 나이에 15년 동안 종교생활만 했던 그 한심한 종교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게 되었다.
이 확증은 어떤 신령한 일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로 확증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가 확증되니 회개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그 때 전인격적으로 내가 주인 되어 내 마음대로 살았던 그 죄를 회개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들였다.
이것은 어떤 신령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전인격적인 반응이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니 주 예수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때 부터는 내 인생에서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그래서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물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실수하여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내 마음의 중심은 늘 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더니 주님이 진실로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내 삶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다.
여기 까지 인도해 주셨다.
내가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 한 선택은 바로 내가 주인 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 일이다.
그냥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한 일이다.
그 때 나보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고, 믿고, 영접한 그 사람들이 나에게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을 정확하게 전해 주었다.
회개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전해 주었다.
물론 이 일에 성령님이 역사해 주셨다.
내가 주인 된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 온 지난 50년의 세월,
그리고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제자교회 목사로서 살아 온 지난 36년의 세월.
감사가 넘친다.
모든 삶의 영역에 감사가 넘친다.
주 예수님은 신실하게 내 인생에서 일 하신다.
주 예수님은 내 인생의 수많은 영역에서 신실하게 역사해 오셨다.
당연하게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내 인생의 미래에는 더 귀하게 역사하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찬송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늘 부를 수 있다.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네.~~~♬”
내가 내 인생에서 한 수많은 선택 중 최고의 선택은 내가 주인 된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