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북조선의 청년 대장 동지 김정은은 최후의 곡과 마곡 전쟁이 조선 반도에 가까웠음을 선언하였다. 로씨아는 곡물가 앙등으로 괴로워 하고 유라파는 로씨아의 천연 자원을 필요로 했으며, 미국은 국제 위기에 무력하였다. 김정은의 정부인(正婦人)인 리설주는 인터넷으로 남조선의 혼란상을 확실하게 보았다. 민중은 ‘잘 살자’ 외엔 다른 것을 믿는 자가 드물어, 망해 버린 북조선으로 조선 남 반도의 살 찐 돼지들을 열화와 같은 기습으로 들이쳐 한 방에 통일하여 루대의 원쑤 일본에게 짓바순 자존감을 세우고 6-25 때 미 제국주의에 원수갚을 론의와 특히나 수도권과 경기 이북의 군 사령부를 향한 땅굴 막바지 완료 계획이 서 있었다. 남조선의 불만 분자가 그리 많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맞디 맞디. 사람은 빵 만으로 살지 않디. 권력 의지와 초인 의지로 살디.”하며 청년 대장 김정은은 스스로 되뇌이는 것이었다. 북조선 사람들은 패배든 승리든 좋으니 제발 전쟁이 나길 바랐다. 미군만 없으면 산악 보병 각개 전투에서 반드시 우리 북조선이 이길 거라 다들 생각했다. 민로총과 기타 ‘남조선 종교 연합 평화 회의’는 예수나 미륵 부처를 김정은으로 바꾸기만 하면 그대로 자신들을 따를 종류의 가르침을 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정은은 인터넷 편집본 ‘유럽 풍운아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관람한 후, 남조선에 좌익 대통령일 때 기습을 해야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 둔 후, 야소를 위해 순교할 멍청이들을 위해 나찌 가스 수용소 모델이 효과적인지 굶겨 죽이는 북조선 식이 더 좋은지 지략가들에게 논의하게 하였다. 한편 남한의 수도 방위 사령부 장군 육사 장교 최준경은 아내의 꿈 얘기를 듣고 웃어 넘겼다. “여보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나팔 소리가 나는데, 북에서 남으로 시뻘건 용암 대접이 쏟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이 걱정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 꿈 얘기라면 목사님을 찾아가서 해. 하지만 나도 요즘 여러 친구들 만나느라 바빠서 당신 혼자 꿈꾸게 해서 미안해.“ 뒤에서 안아 주는 崔駿京과 그 아내 金美海 슬프고 비참한 3차 대전의 주역이 될 거라곤 아무도 그 때까진 몰랐다. 제주엔 봄이 왔다. 삼다도의 바람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데, 특히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 건 새로 등장한 진보 대통령 桂原善이 내놓은 증세 복지 프로 그램이 자영업자를 내리 누르기 때문이었다. 중국자본이 직접 투자 하는 것도 마땅 찮았고 실속 없이 왔다 똥 만 싸고 간다며 중국 관광객을 보는 눈도 차가워 졌다. 제주 해군기지는 2018년 공약에 따라 새 대통령 계원선에 의해 취소 되었고, 수도권의 해군은 인천과 인천 하단 영흥도에 주로 머물렀다. 징병 용사 (2018년 鮮韓 戰爭에서 징병에 응하여 산화한 용사. 주로 재미 교포인 자원 용사 및 북조선 출신이던 북군 여단과 구별하여 징병 용사라 하였다.)들은 그 때까지도 평안했다. 그랬다. 제주엔 봄이 왔고 개성엔 겨울이 끝났다. 북조선 태양 궁전의 지배자 김정은은 개성 공단의 확장과 경제 개방을 선언하였다. 계원선이 평양 공항에 김정은을 만나러 갔을 때 김정은은 활짝 웃었다. ‘몇년간 도발 안 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디?’ 그리고는 겉으로 말했다. “계원선 대통령 동지와 함께 우의를 나눌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쁩네다.” 3일 후 땅굴 기습과 해군 기습과 공군 기습이 시작되었다. “휴전선을 마지노를 뚫은 독일보다 더 빨리 뚫어 내라우.” 수방사 최준경 장군은 귀대 하라는 보고를 받고 자신이 짚차를 몰아 귀대하였다. 국방부 장관도 참모 총장도 술에 곯아 있었다. 그 둘이 탈북자 위장 간첩 룸싸롱 여자들에게 암살 되었다. 지휘 체계가 엉망인데다, 대통령은 적의 인질이었다. 북조선 방송에서 고개 숙인 계원선을 보며 남한 사람들은 울화통에 앞서 기가 막혔다. 한편 최준경은 수도 방위 사령부 령으로 수도권의 사람들에게 방송을 했다. 솔직하게 숨김 없이.. “조국이 누란의 위기 입니다! 수방사의 권한으로 예비군은 각동 사무소에서 징병을 기다린 후 나이 대로 군번을 발 하여 임시로 국가를 위해 싸울 것을 권유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이 위기를 헤쳐 갑시다. 시민들은 담대하십시오. 충분히 헤쳐 갈 수 있습니다.“
2. 전방의 영웅적 희생 2차 한선 전쟁, 제 2차 북괴군의 대량 남침은 절망에 의한 것이었다고 후대 역사가들은 분 석한다. 어차피 절망 뿐이니 무조건 죽고 죽이고 보자는 것. 우린 이렇게 피죽도 못 먹어 가난한 데 너희는 세 끼 밥을 다 먹고 사느냐는 데 대한 원한. 장성택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북조선 사람들은 스위스에 류학 까지 갖다온 청년 동지 김정은이가 은혜를 베풀어 전임군주 김정일 보다 나은 정치를 할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한 오판이었다. 시민 생활에 필요한 것은 하나도 구입하지 아니하고 개인의 호사와 국가와 국가 껍데기의 영광을 위해서만 돈을 들이는 김정은에게 북조선 주민들은 기대를 금새 접었다. 개방파 내각 책임자 그것도 외숙부 장성택이 김정남 파라는 명목으로 종파 분자 력적 패당이라 뒤집어 쓰고 처형 되어 그간 북조선을 먹여 살리던 중국과 관계가 단절되자, 절망 뿐인 땅에 더한 절망이 더 내려 앉았다. 러시아는 별 생각 없이 북조선의 군사 동맹을 덥석 받아 들였다. 러시아는 곡물가가 앙등한지 여러해 인데, EU와 미국은 경제 제재를 더 심하게 몰아 붙였다. 러시아 민족주의 노선을 걷는 푸틴 대통령도 실은 곡물 때문에 민족주의 노선을 걸은 데 지나지 않았다. 그레서 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가 자기 편이란 확신 속에 절망에 대한 타개책을 전쟁으로잡은 것이다. 김정은은 게다가 남한의 군대가 기동력이 적고 훈련이 부주의 하며 애국심이 적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 사태와 천안함 도발에는 무관심하다가 세월호 침몰 사건에는 진상 규명을 해 내라며 유족들이 8억 씩 챙기며 전사자 유족의 다섯배 씩 보상금 타먹고 꼴값 떠는 모습이 같 잖았다. 주한 미군 부대 앞에 한국 군복을 입은 땅굴 침투부대가 교란 작전을 실시했다. 미군은 한국군이 아님을 간파하고 응사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적극 대응이 곤란했다. 어떻게 까딱 잘 못하면 진짜 한국군과 총격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 진 곳은 전방이었다. 경기 3군단과 강원 1군단이 기습을 받아 타격을 받았다. 강원도 1군단은 산악이라 그나마 잘 수습 되었지만 경기 3군단의 피해는 막심했다. 적의 예봉을 직접 받은 탓이다. 수도 방위 사령부에서는 최준경 대장을 비롯 수습된 중앙 사령탑이 국군과 예비군 병력을 모아 9사단과 13사단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 계획을 수립 중이었다. “1사단과 9 사단이 적의 기습으로 위태하다. 기타 5,6군단은 선전 중이다. 3사단과 8사단도 격전중이라 한다. 그 때 북괴군은 서초 강남 송파 등지에 장사정포 수천문을 발사했다. 수도 서울의 영화가 덧 없이 박살났다. 김정은은 남한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어 다음과 같이 연설 했다 “친애하는 남조선의 쁘롤레타리아 동지 여러분, 5-18 광주 의거 처럼 일어날 때입네다. 북조선의 무력과 남조선의 기술 과학력이면 지상 락원을 건설할 수 있습네다. 부자 놈들과 양아치들을 때려 죽이고 새 세상을 만듭세다!“ 러시아는 중립을 선언했다. 중국은 김정은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가 통일 되면 북한 지역에 미군 주둔 만큼은 안 된다는 확약을 미국과 한국에서 받아냈다. 일본도 중립에 태도가 가까웠다. 일본 보호를 구실로 주일 미군의 한국행을 발목 잡았으며, 군수 물자에 대해서도, “미군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한 다면 전혀 지원해 주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과의 전쟁을 어렵게 질질 끌어가게 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아울러 일본도 국민 총동원령을 내려 징병제로 국가 군대 제도를 개편했다. 최준경은 예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을 물리칠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전직 통합 진보당 당수 이석기와 Revolutional Organazation RO 조직원을 긴급 체포하여 광화문 광장에서 공개 총살했다. “사랑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 이제 나라에 어려움이 닥친 때에, 여러분의 가족과 여러분의 일신을 지킬 가장 좋은 방법은 군대에 자원 입대 하는 것입니다. 저 빨갱이 양아치들이 죽창 들고 설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조국을 지킵시다!!“ 군가가 울려 퍼졌다. “아침은 부산에서, 점심은 서울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서 적들의 더러운 피로 땅을 적시리. 나서자 전우여. 우리는 용맹한 대한의 전사.“ 한편 6-25 만큼은 아니더라도 차라리 죽어 버리기 위해 남하하는 북조선 군대와 기습으로 황망해진 남한 군대 사이에 처참한 살육전이 전개 되었다. 강원 북서부 화천 15 사단의 여자 중위 朴素命은 육사 출신이면서도 삼사 출신이나 ROTC출신 들에게 겸손하기로 유명했다. 종교가 가톨릭인 그녀는 ‘조선말 103위 순교 성인’ 이라는 책을 읽으며 ‘6-25 순교 성인들’이라는 책이 쓰고 싶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 하고 있을 일이라고만 여길 뿐 그날 그날의 업무에만 충실했다. 그런데 2018년 4-18일 화천 15 사단, 양양 83사단, 양구 2-3 군단에 주적 기습 남침이라는 경보를 들었다. 묵주알을 손에 쥐고 박소명 루치아는 짧게 기도 드렸다. “주님 이 환난을 되돌리실 수 없다면 민초의 고통 없이 빨리 지나가게 해 주소서.“ 그녀는 야전 군인 답게, 가슴에 짓누르는 열기를 안고 침착하게 소위 중위 대위들과 사병들, 그리고 상급자들과 적의 예봉을 꺾을 논의를 했다. 강원도 1군 사령부 에서는 홍천의 기계화 사단에 연락하여 양구에 병력을 집결 시켰다. 영동은 속초 보다는 일단 양양을 기점으로 집결 시켰다. 그 동안 15 사단 11사단 7사단은 화천에서 내장이 터지고 산채로 돌격전을 받아내며 백병전 까지도 벌어졌다. 여자 중위 박소명도 때 아닌 농담을 했다. “날 갖고 딸딸이 친 거 봐 줄 테니까, 지금은 북괴들이나 때려 잡어.” 15사단 사병들은 정훈 장교 박소명을 중심으로 사기가 올랐다. 북한 정예 특수 부대와 15일을 버틴 것이다. 그러다, 박소명 중위는 북한 여군 저격수에 의해 왼쪽 두개부위가 박살난채 전사했다. 그 나이는 31세. 아까운 인재의 희생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수많은 다른 희생들로 조국은 한달을 버텨냈다. 전쟁 일주일 째부터 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이 보다 적극적 공세로 나서자 북한군은 사기가 급속도로 저하 되었다. 자기들이 이겨 보아야 희망없는 김정은 체제요, 진다면 지는 대로 희망 없지만 차라리 지는 것이 낫겠다 여겨 북조선 군대에 탈영병이 속출했다. 부대 단위의 항복도 만만 찮았다. 밴 플리트 미국 국방 장관은 황해도 까지 진군한채 북한에게 무조건 항복을 종용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국제 전범이 될까 두려워, 전범이 되지 않고 항복하게 해 준다면 항복 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평안 남도 까지 진군해 올라간 미군과 한국군에 절망적인 급보가 날아든다. 김정은이 암살되고 그 뒤를 이어 ‘도시 혐오자’인 鄭成追 차수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 그는 권력을 잡자 마자, 남한 대도시 모든 곳에 핵 미사일을 투하 했다. 그리고 자결한 후, 남 북한이 통일 되었다. 남한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울산 광주 목포 포항 진해 마산 세종 등지가 모두 핵을 맞았다. 그리고 북한은 군인이 죽은 것 외엔 큰 피해 없이 전쟁 통일이 되었다. 최준경 장군의 아내 김미해 여사는 야속한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 이상한 꿈의 용암 대접이 다니엘이 보았던 것 과 너무나 흡사한 꿈이라며 목사님들을 찾아갔을 때 왜 진작에 이 같은 미래를 보여 주시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고쳐 생각했다. 우리 민족의 음란 교만 위선 때문에 탈북 난민을 돕지 않고 그들의 북조선 식 사회주의와 적대적으로 공생했기에 천벌이 한꺼번에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울며 지냈다. 며느리인 박소명이 죽은 데 대해 아들인 최윤선과 함께 부둥켜 안고 다시 울었다.
3.뚣 뚜 뚜두두 "미군이 루아르로 진격 중이다. 영국군 기갑 사단도 같이 관측되었다. 폭격 요청 바란다." 뚣 뚜 뚜두두. "영국 전투기 출격중 규모는 약 40기 정도로 보인다. 우리는 신호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사령부 나오라! 위급 상황이다!" 사지가 갈라진 젊은 군인이 쓰러 졌다. 포탄이 얼굴에 직격한 것이다. 사령부에 떨어진 폭탄중 하나가 하인츠만이라는 신체 건장하고 민족을 사랑하던 젊은 군인의 머리를 박살 냈다. 2차 준 사령부, 루아르 로부터 30Km 떨어진 소도시 키쟁 마을엔 벌써 압도적인 군세의 미군과 영국군이 진격 중이었다. 너무나 숱한 죽음을 보았고 고통에 짓눌린 하루하루에 차라리 폭탄이 내 목에 떨어져 무전 신호 하나하나에 긴장해야만 했던 목을 부숴 주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이 고통스런 전쟁. 하지만 용서할 수 없었다. 내 조국 독일을 압살하려는 저들. 루르에 군대를 주둔하여 노동자의 월급을 빼앗아 가고 내 이모를 강간한 프랑스 병사와 그 나라를 용서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나라에서 생산 되어도 영국 보다 싸게 팔수 없었다. 그 뒤에는 미국과 유대인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미국은 세계의 자유를 위해 영국은 독일과 같은 이유, 다시말해 자국의 생존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다. 죽고 싶지만 울수도 없다. 이 비참한 전쟁 없이 모두가 평화로운 그날은 정녕 오지 않는가. 망해가는 조국을 위해 독일 공군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적기는 40기인데 우리가 낼 수 있는 전력은 15기. 그러나 이겨야 한다. 민족을 사랑하는 총통의 말씀대로 우리의 레벤스라움(영토. 생존 공간)을 지켜 내야 한다. 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휴지로 닦아 내는데, 알고 보니 피눈물 이었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신호를 들어야 한다. 통신병의 의무이다. 잠시의 휴식을 제외하곤 졸아서도 안된다. 15기의 공군 전력중 새로 투입된 전력은 없다. 이미 산화했던 수많은 동지들과 달리 그들은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다. 적은 항시 충원된다. 하지만 하지만 싸워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 죽고 있다. 누구나 지고 있음을 안다. 전우가 줄어든다. 하지만 최후 까지 최후까지 조국을 지켜야 한다. 부자 유대인 놈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 하지만 내 친구였던 유대계 독일인 로이할트가 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나는 그를 도울 수 없었다. 나는 주님을 열심히 믿지는 않지만 그래서 항시 의심하지만 그 때 만큼은 주님께 빌었다. "가난하고 성실하고 항시 나와 함께 웃던 로이할트의 영혼만은 구해 주소서."라고. 하루 종일 눈물이 흘러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아 차라리 죽고 싶다. 하지만 조국은 나를 필요로 하기에 난 죽을 수 없다. 최후까지 최후까지 우리 독일 천년 제국을 지켜 내리라. 미군은 정말 강하다. 그러나 목숨을 사리는 측면이 있다. 영국군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할 줄 안다. 우리편의 약점이 보이면 금새 파고든다. 아아 그러나 우리 독일. 한 사람 한사람 기꺼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싸우는 우리. 그러나 이 전쟁이 길어질 수록 우리에겐 파멸과 절망 뿐임을 알고 있다.
4김정은의 딸. 북한의 개혁 개방. 2032년경. 김정은이 운동부족과 과잉 영양으로 사십대에 당뇨가 발생하고 마흔 다섯 무렵엔 오래 태운 담배 때문에 버거씨 질환이 생겼다. 건강 상실이 너무 이르자 독살설이 나돌았다. 어쨋든 마흔 다섯에 이미 거의 죽게 되었다. 북한은 후계 구도가 문제 되었다.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선 딸만 둘 있었고, 나머지 여인들에게서도 왕자는 생산되지 않았다. 리설주와의 사이에서 난 딸은 첫 째인 김주애, 둘째인 김정혜 이렇게 둘이 있었다. 후계 구도상 김정은 직계가 아닌 다른 백두산 혈통에게 승계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군부는 다른 혈통의 왕자보다, 지금의 직계 공주들이 더 다루기 쉬울 것이라 판단하였고, 내각도 그에 뚜렷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국방위원장 임시 대리를 맡은 리설주에게 실권이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더이상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후계자를 정하지도 않은채 조용히 폐인이 되어 유폐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후계 첫 순위인 첫째 딸 김주애는 어려서부터 26세가 되기까지도 북한 내에서 지냈다. 김주애는 아무 야심이 없었고 해외 유학 같은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스물 다섯 되던 해에 결혼했다. 둘째 딸인 김정혜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사회학과 1학년에 입학하여 1학년을 보내 스물 한살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김정혜는 포부가 컸다고 한다. 김정은과 리설주가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했다. "너희는 어떤 남자를 맞이하고 싶네?" 김주애는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을 만나겠다고 했다. 김정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화국을 위해 렬렬히 헌신할 사람을 만나고 싶습네다. 조국을 반석위에 올려 놓을 그런 인물을 곁에 두게 해 주시라요." 그 때 김정혜의 나이는 불과 아홉살. 열살을 앞둔 아홉살 공주의 나름 기특한 생각 이었다. 김정혜는 12세가 되던 무렵 우연히 노르웨이 영사관에 들를 일이 있었다. 그 곳 북조선 직원에게 물었다. "놀웨이는 어떤 나랍네까?" "사회주의를 하는 나랍네다." "잘 삽니까?" "뭐 그럭저럭 산다고 합네다." "우리보다 잘 삽네까?" "그건 잘 모르겠습네다." "저 사람이 놀웨이 영삽네까?" "영사는 하루 전에 자리를 비웠고 저 사람은 일반 직원 입네다." "저 사람과 이야길 나누게 해 주시라요." 영어를 할 줄 아는 공화국 직원을 불러 노르웨이 영사관 직원의 말을 통역하게 되었다. "놀웨이는 아름답습니까?" "이 곳 만큼이나 아름답고,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놀웨이 사람들은 다 아저씨처럼 잘 생겼나요?" "저보다 얼굴 잘난 사람은 이 땅에도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겸양을 내는 군요." 김정혜는 12세가 되자 부모에게 졸라 노르웨이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9년간을 노르웨이에서 학생 신분으로 살게 된다. 노르웨이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김정혜는 사람들의 밝고 따뜻한 표정에 너무나 놀랐다. "조국의 사람들은 삶에 찌들어 살아가는 데, 이 곳의 사람들은 어찌 이리 강녕할수 있단 말인가?" 조선어와 영어 정도만 할 줄 아는 정혜는 노르웨이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렇게까지 재미 있을 줄은 몰랐다. [조국보다 잘 산다. 너무나도 잘산다. 강녕하고 행복한 동네다. 그런데 이곳도 사회주의를 한다. 우리처럼 주체 사상이 정립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노르웨이에 첫 발을 내딛은 김정혜는 이런 일기를 남겼다. 김정혜는 순탄하지만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열세살이 되었을 때, 너무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뼈에 사무치고, 이 어린 나이에 부모님 품과 조국의 품을 벗어나 이역만리 타향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맹세했던 굳은 결심 만큼은 바꾸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었다. 정혜가 인터넷을 접하고 한글 자판으로 남조선 인터넷에 접속하고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남조선 인민들은 북조선을 경멸하는구나. 같은 민족이랄수 있는가?" 김정혜는 불타는 지식욕을 가졌고 북조선의 책으론 그것을 만족할 수 없어 노르웨이의 직원들을 이용하여 남한의 책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어나 영어로 책을 완독하기에는 미숙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한 해 두해 지나갔다. 그런데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더니 죽음에 가깝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귀국 짐을 꾸리는 정혜의 눈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김정혜는 오슬로를 떠나 베이징을 경유하여 평양 공항으로 도착했다. 맞이한 사람은 어머니 리설주와 언니 김주애. 반가우면서도 슬픔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고, 아직 후계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혜가 놀란 것은 그 후계로 언니와 자신중 한명을 고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는 것. 정혜는 언감생심 자신이 정치 일선에 나선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언니와는 대조적인 성품이었기에, 놀웨이 해외 유학까지 다녀 온 것이 아니겠는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못한 채 아무 생각 없이 돌아왔는데, 운명의 방향은 이렇게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두 딸을 앉혀 놓고 리설주는 말했다. "내 생각을 말하마. 정치에 관심도 소질도 정혜 쪽이 낫다고 본다." 정혜는 순간 심장이 두근 두근 거렸으나 무슨 생각에선지 이렇게 말했다. "어마니. 만부당한 말씀입네다. 사물에 질서가 없고 위 아래가 없으면 혼돈이 옵네다." "아니야, 정혜야, 이 언니는 정치같은 것은 아예 관심이 없어. 일족이 뿔뿔히 흩어지고 숙청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아. 난 그런 것은 싫어." "주애. 정혜. 오랜 동안 서로 못 보고 지냈지만 과연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리설주가 말했다. "그럼 지금처럼 내가 섭정을 할 테니, 너희 들이 날 보좌하라우. 때가 되면 정치에 대해 일러 주갔으니." 김정혜는 부푼 가슴을 안고 그 말을 받아 들였다. 김정혜는 내각 부위원장이 되었고 김주애는 국방위 정책 위원장이 되었다. 그것은 공식직함이고, 섭정은 리설주였으며 어디까지나 와병중인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은채 정치를 수행하는 것으로 공공연하게 선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김정혜는 내각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뭔가 의욕에 불탔지만 자신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내각의 조직은 비효율적이고 자기 생존에 급급했으며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인민을 괴롭히는 상태였다. 오년간 수 많은 구상이 계획단계에서 묻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산품의 질은 항상 저질 이었고, 원료는 항시 부족했으며, 돌아가는 것은 장마당 뿐이었다. 정혜는 어머니와 언니에게 말씀 드렸다. "다시 유학을 가겠시요. 하지만 나 혼자서가 아니라, 나와 뜻을 같이할 내 나이 또래의 혁명 당원들을 데리고 같이 배워 오갔시요." 정혜에게 어머니와 언니가 말했다. "놀웨이 보담 중국을 가려무나." 정혜의 눈이 번쩍 트였다. 그렇다. 중국. 중국에서 십년만 제대로 배워 오면 지난 오년간 헛고생한 것보다 나을 것이다. 국방위및 내각위 위원장으로 김주애가 앉고, 그 남편이며 국방위 차수로 있는 조명식이 큰 역할을 맡았고 리설주는 한 발 물러나 조언자 역할을 하기로 되었다. 그러나 남한의 방송에서는 둘째딸 김정혜의 실각과 언니의 반격이라는 제목으로 보도가 나가고 있었다. 김정혜는 인터넷으로 남한 종편의 보도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족을 잇다라 숙청한 결과로 아버지가 인망을 잃었던 거다. 우리가 그런 실수를 또할까 보냐?"라면서. 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수석 졸업자이자 출신 성분 최우수자인 서상경이 특히나 김정혜와 뜻이 잘 맞았다. 정혜는 서른 다섯이 되면 둘이 결혼하기로 굳게 약속 하였다. 정혜는 베이징 대학에서 서상경을 위시한 북한 최고 경제 엘리트들과 열띤 토론과 밀도 있는 공부를 했다.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대목이 많아 포기한 부분도 있지만, 중국의 사회주의 이외의 측면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것을 정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 고대로부터의 사상과 사회 습속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부르조아 도덕이라 경멸해 마지 않았던 유가나 도피주의 도가 등에 대해서도 실은 주체 국가 건설에 실질적 토대가 되는 사상들이 아닌가 하고 놀란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일 체계의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는 활성화 될 수 있는가? 시장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면 못 사는 사람은 어떻게 구제하는가? 그리고 놀웨이는 뭘 했길래 그리 잘살면서도 공산주의의 이상을 구현했는가? 처음 정혜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감히 그 어떤 북조선 학생도 그 앞에서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차츰 벽을 허문 것은 정혜였고, 이 어려운 조국을 되살려 내리라는 희망 속에 북한의 중국 유학파 일 세대라 불리우는 경제 엘리트 층들이 결속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약속대로 서른 다섯에 정혜와 상경은 결혼을 하였고 중국으로 유학왔던 모든 1세대 엘리트들과 함께 북한으로 되돌아 갔다. 언니이자 국방위 부위원장 김주애는 어머니와 함께, 동생을 반겼다. 정혜와 상경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혼자만이 아니었다. 북한의 체제를 개혁하고 인민을 보다 잘 살게 하고, 평등을 구현하리라 마음 먹었던 혁명 1세대의 주체 정신을 지펴 내리라 마음먹은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마음엔 거리낌이 없었다. 때마침 남한에는 좌파진보 정부가 들어섰고, 남한 지식 경제부 총리 김근용과 북조선 국무 내각 총리부 제1부장 서상경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이 때 북조선이 제의했던 내용이 매우 파격적이었다. 1. 공산 주체 사상의 근본 정신은 세계 평화에 있다. 고로 북남 조선 간에 더 이상의 적대 행위를 어떤 형태로든 종식하고 동북아 중심 축의 국가로서 동측의 미국과 서측의 중국의 가교가 되는 것이 옳다. 2. 북조선의 발전과 남조선의 공영을 위해 우선은 경제 물류의 통행을 단계적으로 허가하고, 남조선 사람이 북조선으로 오거나 북조선 사람이 남조선으로 이동하는 것을 자유로이 허할 때까지 양측의 경제적 협화를 증진한다. 3. 단일 국어 사전을 편찬하여 유의어 다의어를 모두 포괄한다. 북남 조선의 달라진 어휘 모두를 아우르는 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한다. 4. 화폐 발권의 주체를 북남간에 협의하여 화폐를 통일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예컨대 북조선의 만원권이 남조선의 만원권과 항상 동일한 가치가 되도록 고정 환율을 제시한다. 통화량에 대해선 북남 조선 은행간에 항시 협의하여 화폐 가치가 함부로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게 한다. 이렇게 쭉 이어지는 5-14 공동 선언에 대해 내 외신이 모두 파격적이라며 놀라워하고 찬사를 보냈다. 경제 월간지 타임지에도 "May Spring comes with the May.(오월과 함께 봄이 온다.)"고 쓰고 있었다. 중국 러시아와 함께 개발한 나진 선봉 외에도 남한과 합작한 개성공단, 미국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투자를 들어간 남포 공업 지구등 북한은 분명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사적 소유가 허용되고 자본가가 등장하고 외래 자본이 유입되자 두가지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민주화 요구. 다른 하나는 평등하게 잘 살게 해달라는 요구. 북한 주민들이 도리어 자기들 사이에 생겨난 빈부차에 분노를 느끼는가하면, 반 세기 가량을 눈막음해온 북한 정권에 대해 공공연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탈북하는 사람도 오히려 늘었다. 탈북하다 잡혀도 죽지 않으니 탈북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기득권 세력의 비판은 김정혜를 향했다. 실각 시키려 해도 꼬투리 하나 없고 뇌물하나 먹은 것 없는 이 부지도자에게 공산당 연석 회의에서 거센 반발과 질문이 나온다. "마구잡이 개방으로 조선 공화국의 정신을 망하게 하고 이 땅에서 도망가는 말종들을 죽이지도 가두지도 않겠다니 제 정신이요?" "이 땅에서 살지 않겠다는 사람은 오히려 떠나게 해야 하지 않갔습네까?" 회의장은 순간 벌집이 되었다.. 석달 후.. 김정혜가 공식 석상에 연설하러 섰을 때 흉탄 다섯 발이 발사 되었다. 그렇게 용기있던 지도자 하나가 세상을 등졌다. 북한에 봄을 부르고 자신은 봄꽃 같은 피를 흘리며 허무하게 끝을 맞이했다. 북한 당국은 그녀를 위해 우는 것을 공식적으론 금지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김정혜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통곡하며 우는 북한 주민의 모습은 너무나도 흔한 것이었다. 한국의 에바 페론. 타임지의 기사 일면엔 슬픈 북한의 두 얼굴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
첫댓글 소설에는 글쓴이의 가치관을 드러내는데 분명하고 명백한 베이스가 읽혀야 합니다. 그것은 호불호를 떠나 작품으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게 됩니다.
각 소설의 주인공은 그 자신의 세계 속에서 그 자신이 가질 만한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제 소설에 제 세계관이 드러나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글의 경우, 김정은의 오판으로 인해 벌어진 2차 한국 전쟁의 가상 시나리오를 축약한 것입니다. 두번째 글의 경우, 그 상황에서 가장 평균적인 독일 군인의 모습을 그려 보려 한 것입니다. 세번째 글의 경우,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그나마 마인드가 괜찮을 경우를 가정한 것입니다. 군국주의나 나찌즘 혹은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찬성 의도나 동의 의도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타임지가 시사주간 TIME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타임지는 일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커버스토리라고 해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 부분 '기사가 떴다' 라는 표현은 쪼끔 거시기 합니다. 타임지에는 '슬픈 북한의 두 얼굴'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정도가 어울릴것 같아요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