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그냥교회 출첵합니다.
전능하신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루라는 좋은 날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주시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12월 28일 ~ 즐거운 목요일입니다.
1923년 12월 28일 오늘은
프랑스 건축가 에펠이 사망 했답니다.
'철(鐵)의 마술사' 구스타프 에펠이 1923년 12월 28일 뇌일혈로 숨졌다.
프랑스 파리의 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반평생을 유럽횡단철도 교량건설에 매달린 기술자였다.
그가 활동한 19세기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꿈이 도처에서 꿈틀거리던 시기.
마침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한 파리국제박람회가 1889년 개막 예정이었다.
박람회를 빛낼 건축물 설계전이 열려 700여개 작품이 응모했고, 에펠의 설계안이 최종 채택됐다.
당시로선 파격적이던 설계안이 공개되자 구노·모파상·졸라 등 프랑스 유력 문화계 인사 300여명이
반대 탄원서를 냈다.
기술자들은 ‘과학과 산업의 승리’라고 옹호한 반면 예술가들은 ‘추악한 철덩어리’
‘철골 괴물’이라고 헐뜯었다.
1889년 3월 31일, 25개월간의 공사 끝에 완성된 에펠탑은 당시 최고 건물보다 2배나 높았고,
1930년 뉴욕 크라이슬러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250만개 나사못으로 1만5000여 금속조각을 연결시킨 에펠의 공법은
근대 산업문명의 상징이었다.
계단 1652개, 높이 320.75m(안테나 포함), 무게 7000톤이나 됐다.
‘파리의 귀부인’이란 애칭을 얻은 에펠탑이 완성되자 모파상도
“흉측한 에펠탑을 안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란 핑계로 자주 찾았다.
1909년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통신안테나 설치라는 새로운 용도 덕에 요절을 면했다.
그러나 라디오(1918년)와 TV(1957년) 안테나 설치로 몸무게가 1만1000톤으로 늘자
‘귀부인’도 비만에 시달렸고, 1981년 2월 대대적인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콘크리트 전망대를 강철로 바꾸고 엘리베이터를 전기식으로 교체해 1000톤의 군살을 뺐다.
파리의 랜드마크인 에펠탑은 파리 시민과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이다.
관광수입도 엄청나다. 2007년 한 해에만 689만여명이 다녀가
5천100만 유로(한화 약 706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에 즈음해 개관됐다.
7만3천톤의 철이 사용됐으며 1만3천38개의 큰 들보와 철판, 105만846개의 리벳이 들어갔다.
설계자인 구스타브 에펠의 장래 희망은 원래 화학자였다.
그러나 철도회사에 취업한 뒤 보르도의 갈론강에 22m짜리 철교를 성공적으로 설계하면서
건축기술자로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그는 에펠탑의 건설로 ‘철의 마술사’라는 격찬을 받았지만 정작 에펠탑은
건설 전부터 예술성과 공업성, 추함과 아름다움의 사이에서 시비가 많았다.
특히 모파상, 에밀 졸라, 뒤마 등의 예술가들은 이 탑을 ‘파리의 수치’로 낙인찍기도 했다.
에펠탑의 완공 후 ‘모파상’은 에펠탑의 내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하였는데,
한 기자가 “왜 이곳에서 식사를 하느냐”라고 묻자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의 내부 철골구조물도 설계한 그는 1923년 오늘 사망했다.
🍓
강한 한기가 남하해
영하 8도의 한파주의보라네요.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강건과 풍성을 ~
그냥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귀한 날을 감사하며
영광의 시간들을 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감사합니다.^^
감사와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강건과 풍성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