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일백스물여덟 번째
잉여 인간
남아도는 것을 ‘잉여’라고 하듯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닌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잉여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잉여 인간의 일기>가 출간되면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조 철종 때에 조선을 방문해 일본인, 유구인, 중국인보다 간교하지 않고 솔직한 조선인이 좋다고 한 러시아 소설가 이반 곤차로프는 〈오블로모프 Oblomov〉에서 잉여 인간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젊은 귀족 일리야 일리치 오블로모프는 게으른 몽상가 귀족으로, 한 번도 직접 방문한 적이 없는 영지領地의 수입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언제 일어날까, 그리고 일어난다면 무엇을 할까 궁리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오블로모프의 모습이 혹시 은퇴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됩니다. 어떤 정치인이 노인들을 폄훼하는 말을 해 치도곤을 맞았는데, 그도 혹시 노인들을 잉여 인간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잉여 인간의 대표적 모습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할 일은 다 끝났다, 쉴 일만 남았다며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을 달고 삽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도 쉽게 감동하지 않고 감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호르몬 분비에도 변화가 일어난답니다.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가 준다는 겁니다. 나이가 들면 ‘감탄’ ‘감동’ 따위의 감정이 줄어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와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그랬어? 참 잘했구나!” 작은 일에도 감탄하며 아이의 행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이도 기쁨을 느끼고 엄마도 즐겁습니다. 잉여 인간처럼 살지 않으려면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얼쑤!’ 장단이라도 맞출 줄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