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文化紀行> 4부.
도심 속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을 가다.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어제 일정이 많아서 피곤했던지 조금 늦게 일어났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짐을 챙겨 버스에 탄다. 오늘이 드디어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쉬움과 집으로 간다는 기쁨이 교차한다. 오늘 답사하는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로 인구 800만의 대도시다. 혼슈지방을 두 지역으로 나뉘었을 때 보통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 그리고 도쿄 일대로 나뉜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도권과 부산, 경남이라고나 할까. 오래전부터 백제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으로 그 증거로 예전 오사카의 이름이 '백제주'임을 들 수 있다. 현재도 오사카에는 남백제역, 남백제초등학교 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인 사천왕사가 있으며 일본 3대 성이자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인 오사카성이 있는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 도톤보리, 신사이바시역시 오사카의 자랑이다.
(창밖으로 바라본 오사카 풍경. 왼쪽에 어제 갔던 우메다스카이빌딩이 보인다.)
제일 먼저 오사카성으로 향한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유명하다.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신처럼 추앙받는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래 천민 출신이었으나 특유의 비상한 머리와 잔꾀로 일본 최고 통치자 자리까지 오른 일본 역사상 가장 출세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에 얽힌 일화로는 신발을 품은 얘기, 오다의 말 등 셀 수 없이 많아 다 열거하기 힘들다. 그중 하나는 인사인데 상당수가 그가 천민출신이라고 무시하고 그를 따르려 하지 않자 도요토미는 자신을 굽히는 의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현재 식당이나 가게에서 깍듯이 인사하는 일본의 인사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사학계에서도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 사학자는 도요토미가 말년에 노망이 들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고 하기도 했다. 실제 도요토미는 조선을 정벌한 후 왕을 볼모로 잡아오고 명을 점령해 베이징을 새 수도로 삼고 인도정벌에 착수한다는 거의 망상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병으로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고 죽은 후 그의 아들 히데요리가 지위를 물려받지만, 도쿠가와에 의해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마지막에 좀 잘했다면 좋았을 텐데.
오사카성 안으로 들어가자 깊은 해자와 높은 성벽이 보인다. 도쿠가와가 군사력이 약한 히데요리를 쉽사리 이기지 못한 이유는 바로 난공불락의 요새, 오사카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해자를 따라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오사카성 해자. 상당히 깊고 넓다. 괜히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다.)
(오사카성 입구.)
오사카성 입구를 지나면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저걸 가져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본격적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공원처럼 조성해놓은 성 안이 보이고 옆에는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오사카시립박물관이 보인다. 그리고 중간에 거대한 천수각이 보인다. 우리나라 성에서는 보기 힘든 천수각은 독일 노바인슈타인성에 있는 첨탑과 비슷한 용도다. 성에서도 가장 중앙, 위에 자리 잡은 천수각의 적군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며 동시에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래 천수각이 있던 이조성은 이 천수각을 중심으로 해자를 한 번 더 두를 정도로 일본성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건물이 바로 천수각이다. 우리는 표를 끊고 물분사기로 안개를 만들어 시원하게 만드는 계단을 지나 천수각 안으로 들어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위를 상징하는 거대한 바위.)
(오사카시립박물관. 예전에 다른 용도였다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사카성 친수각. 웅장한 5층 누각이 당당하게 위용을 드러낸다.)
(오사카성 입구. 요새답게 오른쪽에 대포가 보인다.)
내부는 상상한 것과는 달리 굉장히 현대적인 시설이었다. 솔직히 무슨 빌딩 안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제 오사카서의 역사와 유례는 깊지만, 현재의 천수각은 콘크리트로 복원해 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웅장함에 놀랐지만, 결국 영혼이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것에 많은 실망감을 느꼈다. 안에 있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금으로 만든 천수각 장식이 나타나고 8층까지 층마다 여러 가지 전시물이 나온다. 시간상 생략하고 천수각 제일 꼭대기로 올라간다. 꼭대기에 들어서자 오사카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성과 도심이 어우러져서 빽빽한 도시 속에서 여유가 느껴지게 한다. 멀리 다음에 갈 오사카역사박물관과 NHK 방송국도 보인다. 바람이 꽤 많이 불어서 시원하기도 했다. 꼭대기에는 학장식이 벽에 있었다. 아마 장수를 기원하는 거겠니 하고 본다. 꽤 오랫동안 위에 있다가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현대적인 오사카성 내부. 복원의 올바른 예는 아니라고 본다.)
(오사카성 천수각 장식. 이것이 천수각이 단순한 전망시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천수각 꼭대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천수각에서 바라본 오사카. 오사카성 영역이 꼭 도심 속 공원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천수각 물고기와 함께.)
(다음에 갈 오사카역사박물관과 NHK 방송국. (오른쪽))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따로 있는 성 내부.)
성 밖에서 잠시 쉰다. 성 지대 자체가 좀 높아서 그런지 밑에서도 어느 정도 경치가 보인다. 쉼터 옆에는 해자와 천수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함께 보인다. 장애우를 배려한 건 좋았지만, 볼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성과 이미지가 전혀 맞지 않아 계속 거슬린다. 차라리 안으로 넣었으면 좋겠건만. 쉬다가 인원파악을 하고 박물관으로 향한다.
(해자와 오사카성 천수각 파노라마. 견고한 요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사카성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높은 빌딩 두 채가 나온다. 낮은 쪽은 우리가 방문할 오사카역사박물관이고 오른쪽은 일본의 KBS라 할 수 있는 NHK 방송국이다. 경주박물관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현대적인 빌딩이 박물관이라는 게 잘 실감 나지 않는다. 방송국과 박물관 사이에 있는 구 형태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박물관 10층으로 올라간다.
(오사카역사박물관과 NHK 방송국. 왼쪽이 박물관이며 중간의 둥근 구형 건물로 이어져 있다.)
(상상과 많이 다른 현대적인 빌딩에 있는 오사카역사박물관.)
(박물관 안으로.)
10층으로 올라가면 10층부터 시대순으로 오사카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10층은 나니와노미야(난파궁) 시대로 아마 나라시대 쯤 되는 것 같다. 안에는 난파궁이라는 궁궐 모형과 오사카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영상관,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 등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백제사지라는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가 있어서 놀라웠다. 세계지도도 있었는데 세계지도에는 일본이 처음으로 외국과 전투를 치른 백강전투에 관한 것도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백제사지 출토기와.)
(박물관에서 바라본 오사카성.)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물의 도시라는 테마를 걸고 중세에서 근세의 오사카를 묘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여러 인형들과 상세한 모형이 있어서 굳이 일본말을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도록 하였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어린이박물관같이 여러 가지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거기서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장훈이는 퍼즐을 맞췄다고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물의 도시라는 테마를 건 전시실. 그림과 모형이 너무나 잘 되어 있다.)
(8층의 여러 체험공간.)
마지막으로 간 7층은 근대 오사카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진짜 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간판들은 정말 근대 오사카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에서 안내하시는 분과 함께 주사위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근대 오사카를 재현해 놓은 7층. 정말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다.)
(막간을 이용한 주사위게임. 어디 걸리면 오사카에 관한 퀴즈를 풀어야한다.)
박물관을 나와 면세점으로 이동한다. 가는 길에 드디어 일본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보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국민 대부분이 자국 종교인 신토, 그리고 불교를 믿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에 대한 비율은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나라 동네마다 있는 꼴사나운 붉은 십자가를 보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교회도 그냥 평범한 건물 외벽에 십자가 하나만 박아 놓았다. 우리나라 교회도 이렇게 수수한 건물로 있었으면 좋겠다.
면세점을 잠시 들렀다가 점심을 먹으러 간다. 계속 아껴온 돈을 면세점에서 너무 많이 써버렸다. 아무튼, 점심을 먹을 곳은 WTC 코스모타워 48층 건물에 있는 뷔페라고 한다. 높이가 어제 갔던 우메다스카이빌딩보다 훨씬 높은 252m(참고로 우메다스카이빌딩은 173m)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식당에 도착한 창가에 자리를 잡는데 창 밖으로 오사카 항만이 전부 보인다. 어제 갔던 우메다스카이빌딩은 멀어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전망을 바라보며 맛있게 식사를 나온다. 식당 안에 우리나라에는 판매하지 않는 멜론 맛 환타가 있었는데 집에 가져올 걸 그랬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WTC 코스모타워.)
(48층에 위치한 뷔페.)
(위에서 바라본 오사카 항만.)
(항구 일대. 반듯한 섬들은 인공섬인가?)
점심을 먹고 사천왕사(시텐노지)로 향한다. 사천왕사는 6세기 말 쇼토쿠 태자가 세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다. 가장 전형적인 사찰 형식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삼국시대 사찰 양식을 공부할 때 여기를 참고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로 가고 싶어 해서 짧게 둘러보고 나가기로 했다.
(사천왕사 남대문.)
(남대문을 지나면 보이는 가람. 오층탑이 가장 눈에 띈다.)
(사천왕사 중문.)
가람 안은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한 편이다. 상당한 높이의 오층탑과 금당이 일단 먼저 보인다. 우리는 회랑을 따라 금당까지만 둘러본다. 사찰을 눈여겨보면 상당히 깔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 역시 오사카성과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복원작품이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일본이 패망한 직후에는 이러한 콘크리트 복원이 잦았다. 원래 태풍으로 무너진 사천왕사는 곤고구미(일본 문화재 복원 전문회사)가 복원했다가 다시 전쟁 후 무너진 것을 곤고구미가 이렇게 복원했는데 그 당시에는 현대적 재료에 문화를 담았다며 주목받았다. 물론 콘크리트지만, 상당한 고증으로 콘크리트 복원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내 생각에는 과연 이게 문화재 복원에서 옳은 방법일까 하고 의문이 든다. 탑 안에 엘리베이터까지 있는데 후세에 사람들이 봤을 때 이걸 보고 편하다 할지 아니면 옛날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나 하고 의문을 가질지는.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페인트 냄새난다고 안 간다며 농담을 할 정도이다. 사실 일본도 현재 크게 후회하고 있는 복원품 중 하나이며 요즘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요시노가리 구석기 유적, 평성궁 등을 잘 복원하고 있어 다행이다. 우리나라 역시 석굴암, 미륵사지 석탑 등이 일본의 콘크리트에 피해를 당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문화재는 그 문화재 교유의 재료로 지어야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다.
(사천왕사 가람 영역. 개인적으로 사천왕사 할 때마다 경주 사천왕사지가 떠오른다.)
(사천왕사 금당.)
(사천왕사 오층탑. 콘크리트 복원품. 안에 콘크리트 계단과 엘리베이터도 있다 하니... ..)
(강당 쪽에서 바라본 사천왕사.)
앞서 사천왕사를 복원한 곤고구미(금강조)는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업의 주인이 바로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여기 사천왕사를 건립할 때 쇼토쿠 태자는 장인 3명을 일본으로 초청했고 그중 한 명인 신중광은 일본으로부터 '금강'이란 성을 하사받고 이러한 사찰 건물을 건립하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 후 문화재 복원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최근에 여러 재정난을 겪으며 파산을 했다고도 하고 아직 명맥을 유지했다고도 한나 확실한 건 잘 모르겠다. 그 콘크리트 복원기술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겠지만, 백제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게 해준다.
드디어 모두가 가장 가고싶어 했던 오사카에서, 일본에서 마지막 일정인 도톰보리, 신사이바시로 향했다. 도톰보리(도돈굴), 신사이바시(심재교)는 오사카 최대 번화가로 독특하고 화려한 간판과 먹을거리, 의류 등 없는 게 없는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과 같은 곳이다.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네온사인 간판이 있다 하여 꼭 보고 싶다.
오늘은 평일이라 거리가 좀 한산한 편이다. 하지만 계속 걸어가니 수천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양옆으로는 독특한 간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간판에서 용이 튀어나온 라멘 체인점, 손으로 초밥을 잡고 있는 초밥집, 게 체인점 등. 특히 다리가 움직이는 게 체인점 간판은 오사카의 상징 중 하나이다. 예전에 여기 게 간판의 다리가 하나 없어져서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혔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이목을 끌려고 한 자작극이었던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다들 이리저리 흩어진다.
(오사카 운하. 가다 보면 '고려교'라는 다리가 있다던데 보지는 못했다.)
(도톰보리, 신사이바시 거리. 화려하고 독특한 간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라멘 체인점. 용이 간판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이 거리의 명물, 게 체인점. 운영하고 있으면 게 다리가 움직인다.)
장훈이는 에니 관련 상품을 파는 상점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먼저 도톰보리를 갔다. 신사이바시는 비교적 나중에 생긴 거리고 도톰보리는 조금 예스러운 맛이 있는 거리다. 워낙에 거리가 길어서 반 정도만 둘러보고 나왔다. 방금 거리보다 한산한 편이었는데 안에 익숙한 설렁탕 집이 있었다. 다음으로 신사이바시로 가본다. 가다가 그 유명한 네온사인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보통 많은게 아니었다. 여기는 대체로 음식보다는 의류를 파는 곳이라 여기 역시 빙 둘러보고 나온다. 시간이 남아서 다코야끼를 하나 사 먹고 약속장소로 돌아온다. 우리나라 것보다 더 쫄깃하고 맛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가격이...)
(도톰보리. 생각보다 거리가 한산하다.)
(낯익은 설렁탕집.)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 중간에 있는 간판. 이 거리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신사이바시.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다.)
(맛있는 다코야끼집.)
드디어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린다. 난 그다지 산 게 없는데 다들 손에 한 보따리씩 들고 있다. 여기 일대는 물가가 비싸서 너무 막사지 말고 조절해가며 사야 한다. 버스 기다리는데 욱일기를 흔들며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차가 한 대 지나갔다. 일본이 지금 극우파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실감이 난다.
이제 버스를 타고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창문으로 해가 비쳐 들어온다. 이게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해라고 생각하니 이런 것마저 아쉬워진다. 공항에 도착하고 짐 정리를 하고 출국수속을 밟는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김해공항을 향해 간다. 이번에는 창가에 앉지 못해서 영화나 보며 시간을 보낸다.
(간사이 국제공항. 이제 우리나라로.)
(비행기 안에서 본 마지막 일본 풍경.)
1시간을 날아서 우리나라에 도착한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해졌다. 밑으로는 부산의 야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김해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밟고 다시 버스에 탄다. 나흘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경주로 이동하는 동안 모두 여행 소감을 간략하게 말한다. 대부분 피곤해서 잠이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부산의 밤. (좀 흔들렸다.) - 신라중학교 교류단 학생 사진제공.)
(드디어 도착한 김해공항.)
(인원파악을 위해 잠깐 모인 교류단.)
(보고팠던 땅, 경주.)
1시간 반을 달려 그리운 고향, 경주에 도착한다. 어머니께서 반겨주신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갔다 온 얘기를 하며 잠이 든다.
1학년 때 대마도 간 이후로 2년 만에 가는 외국여행이라 모든 점에서 많이 설랬던 여행이었다. 가기 전에 사전조사도 이처럼 많이 한 적이 없었고 600장 가까이 되는 사진을 찍었다. 솔직히 세 번의 외국여행(나미나라 공화국을 제외하고.) 중 가장 값지고 가장 많은 경험을 한 가장 소중한 여행이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토미오중학교와의 교류는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문화, 그 속에서 백제인이 이룩한 일본문화에 대한 긍지, 임진왜란의 아픔을 동시에 느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이제 더없이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가 되었다. 만약 이러한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참여할 것이다. 시간이 되면 일본 역사에 관해서도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평소에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꼭 생기는 반일감정. 일본이 잘못한 것도 많고 반성할 점도 많은 건 여전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교류를 통해 차갑게 느껴지던 양국 관계가 언제든 회복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라는 게 느껴졌다.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와 보상을 통해 앞으로의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가 이번 토미오중학교 교류시간만큼이나 가깝고 친밀해졌으면 좋겠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비록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좋지 못한 역사를 나누고 있지만, 백제와의 교류, 조선 통신사같이 우리나라 역사에도 일본 역사에도 서로 빼놓을 수 없는 가까운 이웃 나라. 얼어있는 관계도 이러한 교류를 계속해 나가면 분명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잊지 못할 추억을 부족하지만, 이렇게나마 글로 옮기며.
-여정- (203. 8. 9. 金)
숙소→→ 오사카성→ 오사카역사박물관→→ 면세점→→ WTC 코스모타워(점심)→→ 사천왕사(시텐노지)(남대문→ 중문→ 오층탑→ 금당→ 강당)→ 도톰보리, 신사이바시(도톰보리→ 신사이바시→ 다코야끼집)→→ 간사이 국제공항→→ (비행기) →→ 김해공항→→ 경주 서천둔치
(단체사진을 찍는데 도움을주신 가이드 선생님, 3박 4일간 저희를 인솔해 주신 경북국제이해연구회 선생님들, 그리고 교류단 갈 수 있도록 해준 권종훈 선생님, 김홍열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데로 가도 같이 따라가 준 장훈아, 고맙다.)
(<日本文化紀行> 1부: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08)
(<日本文化紀行> 2부: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13)
(<日本文化紀行> 3부: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14)
(<日本文化紀行> 남은 이야기: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16)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민욱아!
3박 4일동안 알차게 구경했네.
코스도 작년에 우리가 갔던 코스와 좀 다른것 같고 기간은 짧아도 우리보다 훨씬 알찬 여행을 한 것 같구나.
가장 값지고 가장 많은 경험을 한 가장 소중한 여행이었다니 다행이네.
그동안의 일정을 사진과 글을 통해 잘 보고 읽었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여행기다.
정말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