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네티즌 공분에 ‘BMW 봐주기’재조사 나서 ‘쑨즈강 사건’서는 수용제도 폐지 이끌어내 ‘조폭감형 논란’으로 불투명한 사법부 ‘도마’ 지난해 10월16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다이이취안이란 농민이 대파를 가득 실은 트랙터를 후진시키다 뒤에 있던 값비싼 베엠베 (BMW) 승용차의 백미러를 긁었다. 승용차 주인 쑤슈원(44)이란 여성은 즉각 차에서 내려 다이에게 욕을 퍼부었다. 다이의 아내 류중샤가 싸움을 말리려고 내리자 승용차 안에서 쑤의 사촌인 쑤슈친이 류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만류로 말다툼이 잦아들고 다이 부부가 흐트러진 대파를 수습할 때, 갑자기 베엠베가 전속력으로 덥쳐 아내 류중샤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구경꾼 12명이 다쳤다.
지난해 12월20일 열린 1심에서 경찰이 이를 ‘교통사고’로 처리했음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중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검찰은 쑤가 “차를 몰 때 부주의로” 사고가 났다며 <도로교통관리조례>를 적용했다. 법원에선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관대한’ 판결이 나왔고, 쑤는 “감옥에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이유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소후>, <신랑망>, <왕이>, <치엔룽>, <중국 야후> 등 중국의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은 분노한 네티즌들의 목소리로 뒤덮였다.
리즈용이란 이름의 네티즌은 블로그 사이트인 ‘보커중국’( www.blogchina.com)에 올린 글을 통해 “명백한 고의 살인임에도 살인 공구가 차량이라는 이유로 교통사고로 처리됐다”며 “권력이 법률에 영향을 끼친 명백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사망한 류의 남편 다이는 보상금 9만위안(약 1350만원)을 받고 “일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발언했지만, 이 사건은 이미 다이 부부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이슈로 옮겨갔다. <신랑망>은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하자 인터넷 설문조사를 벌였다. 16일 현재 이 사건에 대한 법률 처리의 공정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10만405명이 참가해 절대다수인 91.48%가 “불공정하다”, 3.03%가 “공정하다”, 5.49%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네티즌의 분노가 들끓자 하얼빈시 당국은 10일 이 사건에 대한 엄정한 재조사를 선언했다. 앞으로 2심과 최종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두고 네티즌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 진행형이긴 하지만 이 사건은 중국에서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적절한 ‘민의’의 창구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중국인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여론의 광장을 얻었음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장 법학자인 왕이(30) 청두대학 강사는 중국 사회에서 지난해 가장 괄목할만한 변화가 바로 “인터넷에 등장한 민중의 목소리”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하얼빈 베엠베 사건’ 이전에 이미 △류융 사건과 △쑨즈강 사건이 네티즌 파워의 폭발을 예고했다.
랴오닝성 선양에서 활동하며 살인·폭력 등 모두 31건의 범죄행위에 간여해온 마피아 두목 류융은 2002년 4월17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8월15일 2심에서 ‘사형 2년 유예’ 선고를 받았다. 중국 형법에서 ‘사형 유예’란, 집행을 보류한다는 뜻이며, 대체로 유예기간 내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류융에 대한 2심 판결 이후 인터넷은 의혹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월간 <법률과 생활> 12월호 ‘회고: 법치 2003’ 기사에 따르면 류융의 2심 판결 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는 100만여건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류융은 지난달 22일 지금까지 조폭 사건이 2심에서 확정판결이 내려지던 관행을 깨고 최종심까지 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했다. 사법부가 그를 사형에 처했음에도 네티즌의 논의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샤오한 텐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네티즌이 류융이라는 범죄자의 처형 여부보다 “왜 사법부가 사형에서 ‘사형 유예’로 갔다가 다시 서둘러 처형하기에 이르렀느냐, 사법부의 ‘부패’ 때문에 생긴 우여곡절이 아니냐”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법부의 사건 처리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스스로 ‘정치화’하는 부담을 사고 있다”고 지적한 뒤, 사법부가 좀더 투명해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민의’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베이성 출신으로 우한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한 쑨즈강은 광저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난해 3월17일 임시거류증이 없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혔다. 그는 간수들에게 심장병이 있음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다른 수용자들과 합세한 간수들의 구타로 사흘만에 27살의 나이로 숨졌다. 4월25일자 <남방도시보>는 ‘피수용자 쑨즈강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사건의 전모를 보도했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간 이 기사는 삽시간에 네티즌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소후에 올린 어느 네티즌의 글은 “쑨즈강의 죽음은 광저우의 어느 수용소에서 벌어진 폭행의 결과가 아니라 ‘수용제도’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라며, “수용제도를 폐지하지 않으면 앞으로 천명 만명의 쑨즈강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해 5월14일엔 텅빈 중국정법대학 법학원 박사 등 세 명이 쑨즈강을 수용한 근거법인 <도시유랑인원 수용송치법>의 개정을 정식 건의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법은 결국 8월에 폐지됐다. 한줌의 재로 변해 지난달 18일에야 고향 후베이성 황강시 싱푸촌에 돌아간 쑨즈강의 묘비명엔 친지들이 “죽음으로써 중국의 법치를 한걸음 나아가게 하였기에 그를 기린다-쑨즈강”이라고 써넣었다.
법학자 왕이는 “지금까지 있다는 소문은 있어왔지만 그 ‘소재’가 어딘지 몰랐던 ‘민의’가 이제야 사이버 공간에서 거처를 찾았다”며, 네티즌 파워의 등장으로 2004년은 중국 사회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