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김용택 시인 생가와 남원 혼불문학관을 다녀와서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2021년 11월 6일 코로나 광풍에 모두 익숙해져 가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단체여행은 쉽지 않은 계절이다. 아침 9시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겨우 5명이 신청해 승용차 한 대로 출발하게 되었다.
오늘 문학기행 여정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암리 진메마을에 사는 김용택 시인의 생가와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의 혼불문학관이다. 순천을 벗어나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주변 산은 울긋불긋 화려한 옷으로 바꿔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전휴게소에 내려 커피로 목을 달래고 다시 달려 10시 30분에 진메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마을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고목인 ‘시 쓰는 느티나무’였다. 그곳 팻말에 쓰여있는 싯구는 셰익스피어의 <4막3장>에 나오는 것이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김용택 시인의 생가로 들어가자, 마침 집으로 들어오는 사모님을 만났다. 시인은 출타 중이었다. 생가 회문재(回文齋)는 지난 2019년 임실군이 지원하여 낡은 생가를 해체하고 다시 복원했다. 공식 명칭은 <김용택의 작은학교>로 회문재와 김용택 시인의 작업실인 서재, 안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회문재를 둘러보고 마을 앞 섬진강 강가로 나섰다. 억새가 울창한 강가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강바람이 억새를 스치고 가는 풀소리가 그동안 코로나로 웅크리고 쌓였던 우리 가슴 속을 활짝 열어주는 것 같았다. 우리도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섬진강 물소리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몇 가구 안되는 작은 진메마을과 폭이 좁은 섬진강 상류의 강가는 시가 절로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시인은 없었지만, 우리는 김용택 시인이 세상에 내놓은 시 한 편을 떠올렸다.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주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시집 [21인 신작 시집], 1982)
김용택(金龍澤) 시인은 1948년 전라북도 임실군 진메마을에서 출생해 순창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듬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섬진강 연작으로 유명하여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고, 2008년 8월 교직에서 정년으로 퇴임했다.
1982년 [21인 신작 시집]에 <꺼지지 않은 횃불>, <섬진강․1> 등을 발표하여 등단했고, 1986년 제6회 김수영 문학상을, 1997년에는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래서 당신』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작은 마을』,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인생』, 『나는 참 늦복 터졌다』 등이 있다. 이밖에도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성장소설 『정님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동시엮음집 『학교야, 공 차자』,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시엮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등 많은 저작물이 있다.
점심은 가까운 곳에 있던 두부전문식당으로 옮겨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섯 명의 조촐한 인원이다 보니 식사시간도 짧게 끝나 우리는 조금은 여유롭게 출발했다. 김용택 시인이 재직했던 면소재지의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임실호국원을 거쳐 남원으로 달렸다.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들어선 최명희(崔明姬)의 혼불문학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소설 ‘혼불’의 배경지로 최명희 작가의 부친 고향이다. 최명희 작가는 삭녕 최씨로 이 마을은 이 집안의 500년 세거지(世居地)이다. 작가는 부친이 전주로 이사한 후 전주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작가의 본적지인 셈이다.
그래서 전주에는 최명희문학관과 혼불문학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작가는 평생 이 한 작품만 세상에 남겼고, 1998년 향년 51세에 지병(난소암)으로 타계했다. 이 대하소설은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제1부가 당선되어 처음 세상에 선을 보였다.
1988년 9월부터 제2부가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기 시작해 19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 동안 계속 실렸다. 이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고, 1990년 12월에 제1부와 제2부가 한길사에서 4권 분량으로 출간되었다. 다시 대폭 수정 보완되어, 1996년 12월에 5부 10권으로 최종본이 출간되었다.
소설 혼불은 1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종부 3대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남원의 매안 마을과 거멍굴을 중심으로, 매안 이씨 가문의 3대를 이루는 청암부인과 그 아들 이기채 부부, 손자 이강모·허효원 부부, 그리고 거멍굴 천민인 춘복이 등이 주요 인물이 되어 펼쳐진다.
이 소설은 작가의 타계로 미완성인 채 끝났다. 작가는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투병하던 중에도 제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집필하지 못했다.
그러나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작가의 문학정신은, 진정한 '혼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혼불의 문학적 가치는 그동안 많은 학자가 혼불문학총서로 발간될 정도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혼불은 서사적 전통과 민속지로서 의 성격, 소설에 나타난 민중 생활상과 역사, 사회의식, 전통문화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가부장 문화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아 온 '안채 문화'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했다는 등 다양한 문학적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이 미완성 소설에 대한 연구 가치가 높고 다양하다는 방증이리라.
우리는 혼불문학관에 도착해 해설사의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최명희 작가의 문학정신과 혼불의 깊은 서사적 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 마을 주변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종가, 청호저수지, 세암바위 등이 남아 있다. 우리는 혼불문학관 앞 저수지에서 잠시 쉬다가 서도역으로 향했다.
이 서도역은 지금은 역사 등 건물 8동과 일부 철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들어선 이 역은 지난 2002년 전라선 철도가 전철화사업으로 이설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 것을 남원시가 사들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도역 한 컷
박병용
숨 끊긴 사도역은 살아 있었다
한 컷의 시간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사람 대신 찾아오는 바람이며
잔뜩 손때 묻은 대합실 문잡이이며
사랑한다는 낙서며 덜렁거리는 나무조각이며
조금은 쓸쓸할 것 같은 들꽃 몇 송이이며
잡풀에 갇힌 녹슨 철길이며
덩그러니 선 기다림의 신호대며 모두가
사람의 혼불을 피우고 있었다
서도역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이날 마침 서도역에서 혼불문학 신행길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 신행길 축제는 소설 속에서 종부 ‘효원’이 서도역을 통해 마을로 시집오는 신행길을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재현하는 남원의 대표적인 농촌축제이다. 신행길은 서도역에서 혼불문학관까지 이어지는데 오전에 끝나 우리 일행은 사진 전시와 교복 체험 등을 즐기며 혼불문학의 정신을 되새겼다.
마을 사람들이 보관하고 있는 앨범 속의 옛 사진과 최근의 마을 풍경 사진을 전시하는데도 눈길이 끌렸다. 혼불문학의 정신을 계승하며 옛것을 지켜나가려는 이 노봉마을 사람들의 의지가 돋보였다.
우리 여행은 짧았지만, 김용택 시인의 시작 배경인 진메마을과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노봉마을, 서도역까지 시와 소설의 힘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