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막장 담그기
심정희
친정어머니의 막장 맛이 늘 그리웠다.
강릉 가서 살면 가장 먼저 배우고 싶은 것이 막장 담그는 일이었다. 강릉식 막장은 주재료가 보리밥과 메주였다. 안인 바닷바람과 겨우 4킬로 떨어진 산촌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막장 담그는 법을 올케한테서 배워 보았다. 가을이면 노란 토종 콩을 동네의 친척 집에서 몇 말이고 사들였다. 메주콩은 큰오빠댁 가마솥에서 장작불을 때어 가며 달큼하게 쑤었다. 동네에 아직도 옛날 디딜방아에서 메주콩을 콩닥콩닥 찧어 올 수 있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또 메주 밟기는 큰오빠댁 아랫목에서 네모난 나무통에 꼭꼭 디뎌 달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방식 그대로 배우고 있으니 세월이 한참을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절기상으로 입동이 되면 강릉에선 김장을 얼른 해 넣고 추울 때 메주를 쑨다고 한다. 너무 일찍 메주를 쑤면 날이 더워서 날 파리가 꼬여 메주 속을 파먹으며 알을 슨다고 한다. 입동이 막 지나고 소설이 오기 전에 그리 춥지 않은 맵싸한 공기가 메주를 말리는데 아주 좋을 때이다. 그 풍요로웠던 들녘에 가을 갈무리로 김장이 마지막이었나, 고달팠던 들이나 사람들은 느긋이 휴식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몇 해 직접 메주를 쑤어 보고는 깊은 겨울이 오기 전에 또 한 시절이 있구나, 알게 되었다.
처마 밑에 달아놓은 메주가 군선강 줄기를 넘나드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달여 동안 돌 뗑 이처럼 바싹 말랐다. 메주를 바로 떼서 따끈한 온돌방에서 쿰쿰한 냄새가 지독하게 나도록 띄워야 한다. 역시 오빠 댁 온돌방이 제격이고 두 분만 살고 계시니 뜨끈뜨끈한 방바닥이 항시 널찍하였다.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 편하게 수고비를 드리고 해마다 메주 행사를 치렀다. 깨끗이 빨아놓은 안 쓰는 이불을 다 꺼내놓고 아랫목에 한 닢 깔고는 볏짚 한켜 메주 한 켜 차곡차곡 쌓아놓고 나머지 이불을 두툼하게 덮어서 푹 띄운다. 시골살이를 해보면 도시에서 허접한 물건들도 챙겨두면 짐은 되지만 요긴하게 쓸 때가 많았다.
설을 지나고 음력으로 정월 달엔 장을 담그는 날을 하루 잡는다.
방앗간에 가서 잘 띄워 놓은 메주를 막장꺼리로 거칠게 빻아오고, 잘 말려놓은 고추도 고추장꺼리 보다는 거칠게 갈아온다. 이때 곱슬하게 지은 보리밥은 함지박에 퍼 담아서 엿 길금 가루를 켜켜로 뿌려서 하룻밤 재운다. 다음날 큰 고무통에 메줏가루, 보리밥, 고춧가루, 생수를 붓고 머리채를 흔들만치 소금간을 짜게 맞추면 끝이다. 구수한 막장 맛은 첫째는 좋은 물이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샘물, 빨간 지장 수가 달고 맛있으므로 옛적부터 좋은 장맛이었나 생각되었다. 그 동네 흙은 마사가 아니고 진흙땅이라서 곡식들이 모래땅보다는 월등히 맛있다고 한다.
한해 언제는 호박 농사가 누렇게 넝쿨째 잘 되었다. 올케한테서 몇 해 동안 그렇게 막장을 손수 배웠더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전문가처럼 되었다. 누렇게 잘 익은 호박을 다 깎아서 큰 무쇠솥에 장작불을 지펴서 몇 시간 푹 곤다. 보리밥에 늘 하던 엿 길금은 뿌리지 않고 빨갛게 고은 호박으로 막장을 담가 보았다. 숨 쉬는 무공해 장독에서 천천히 2년간 숙성시킨 호박 막장을 쌈장으로 맛을 보았다. 막장 맛이 그 어느 해 보다도 달고 맛있게 되었다. 늙은 호박 막장도 천연 감미료가 되어서 맛좋게 잘 익는구나, 경험하였다. 또 누렇게 익은 호박 막장은 몸에는 얼마나 좋을까, 집 둘레로 호박도 널널하게 심어서 한 덩이라도 푹 고아서 넣곤 하였다.
올케랑 조카들한테 호박 장이 너무나 맛있다고 자랑하면서 퍼 주고 장국이든 쌈장이든 아주 맛있게 두고두고 먹었다. 공기 좋은 시골살이하면서 원하던 강릉식 막장을 손수 해 보았지만 역시나 좋은 재료에 물맛이 좋고 남어지는 하는 사람의 정성이 반이었다. 또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급해도 2, 3년은 햇빛을 깊숙이 품고 천천히 숙성시켜야 감칠맛 나는 막장이 되는 것을 배웠다. 겨우 일 년 묵은 막장으로 시금칫국을 끓여 보면 국물맛이 떨떠름하고 구수한 맛이 없다.
그래서 옛날에 친정어머니도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고생스러운 큰 살림을 하시면서 뒤뜰 장독대를 넉넉히 꾸미고 사셨나 싶다. 항시 막장을 곰 삭혀서 여름이면 감자 호박 찌개를, 겨울이면 구수한 건 추(시래기)국을 잘 먹으면 키가 큰다고 한 대접씩 퍼 주시곤 하셨다.
옛날 기왓장을 어렵게 한 차 구했다. 작은 오빠가 일꾼들을 데리고 뒤 뜰에 장독대를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 주셨다. 진흙 반죽에 볏짚을 썰어 넣어 밟고 툭툭 이겨서 한 층씩, 기와를 넣어가며 황토 담장을 예스럽게 만들었다. 처음 구상을 할 때는 별거 아닌 줄 알고 시작했는데 날 일을 잘못하는 일꾼들 때문에 고생스럽게 완성했다. 그리고 아낙은 이웃 마을까지 돌아다니며 골동품으로 모셔 놓은 옛날 무공해 항아리를 수집하였다. 평소에 연습해 온 보리 막장을 배 불뚝 나온 옛날옹기에 가득히 담아 놓고 야금야금 햇쌀이 놀러 오는 소리를 들었다. 옛 정취의 담장 모퉁이엔 화사한 능금 꽃이 벌들을 초대하고 대실 산수유가 빨갛게 익어가는 풍경이 그림이었다. 어느새 촌 아낙은 정겨운 장독대에서 반들반들 옹기를 매만지며 그리운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햇쌀이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는 뒤뜰에서 막장이 구수하게 곰삭으면 작은 오빠 집에도 아이들한테도 날라다 주고 취향이 맞는 일거리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동네에서 농사한 해콩을 사고,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서 메주콩을 삶고, 옛날 디딜방아에서 메주콩을 찧어오고, 온돌방 아랫목에서 킁킁거리며 메주를 띄우고, 사라져 가는 옛 풍습, 잊혀가는 먹거리를 제대로 실감해보았다. 이제 우리 세대가 이 땅에서 마지막 전통 전수가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서 몇백 년 전통방식의 장 담그는 법은 깊이 수장되어 멀어져가는 음식 문화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쉽고 편안함만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상품이 그럴 듯하게 나와 있으니 옛날 고유의 막장 없이도 잘 해먹고 편하게 살게 마련인 세월이 되었다.
아주 먼 훗날에 딸애가 이글을 참고하기를 바라고 썼다. 아낙처럼 친정엄마의 장맛이 그리우면 조금씩 손수 해 보라는 가르침이다.
첫댓글 심정희쌤 장독담 넘~예뻐요, 결례가 아니면 막장담그는 방법 배우고 싶어요. 저도 해마다 장은 담구지만 막장은 담굴지 몰라 아몌 담굴생각도 못했거든요. 강릉 막장이 맛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잘 읽고 갑니다.
임인수씨, 물 좋으면 어디든 잘 할수 있습니다. 매번 방문 감사하고요. 잘 할때 까지 얼마든지 배워 보세요.!!
언제 재료를 준비하고 자리를 만들어 보십시요~~^^
쌤 고맙습니다. 그리고 솜씨와 열정 존경스럽습니다. 언제 뵙고싶습니다. 아름다운오월 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