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통장' 별도로 만들어 열흘마다 수입 10% 저축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50대 사내가 귀퉁이가 닳은 검은색 가죽지갑에서 1000원짜리와 1만원짜리가 뒤섞인 돈다발을 꺼내 정성스레 세어본 다음 은행 창구에 내밀었다. 창구 직원이 "20만원 받았습니다" 하더니 이내 '잔액 136만원'이 찍힌 통장을 내밀었다. 사내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 돈이면 교복을 여덟 벌쯤 살 수 있어요. 열심히 모아서, 내년 3월엔 없는 집 애들 서른 명한테 교복을 사주는 게 올해 제 목표입니다."
택시기사 안승규(58·安承奎)씨는 15년째 형편이 어려운 중고생들에게 한해 10~20명씩 교복을 사주고 있다. 그는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경기도 안성시 일대에서 개인택시를 몰아서 하루 7만~8만원을 번다. 그는 매일 밤 하루 일을 마치기 전에 그날 번 돈 10%를 떼서 바지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검은색 가죽지갑에 넣는다.
1년 내내 그렇게 모은 돈 330만원으로 그는 지난 1월 죽산중·고등학교 신입생 20명에게 교복을 사 입혔다. 부모 없이 할머니랑 사는 학생, 기초생활 수급자 자녀 등이 혜택을 입었다. 그는 안성 토박이다. 부모는 죽산면에서 농사를 지었다. 5남매 중 장남인 안씨는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자랐고, 죽산중 2학년 1학기를 끝으로 더는 배우지 못했다.
자퇴 인사를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던 14살의 8월 오후를 안씨는 어제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어떻게든 중학교만은 다니고 싶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혼자서 도토리, 은행, 밤을 주워다 팔아서 마련한 교복이었다.
그는 서울 아현동의 한 수퍼마켓에서 먹고 자면서 사환으로 일했다. 그는 일찌감치 '구두쇠'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 종로의 술 도매상에 근무하던 시절, 수금하러 갔다 가게로 돌아올 때 버스비 20원을 아끼려고 영등포·신림동에서 종로까지 걸었다.
그는 1986년 고향 안성에 돌아와 택시 기사가 됐다. 택시를 몬 지 10년이 다 돼 가던 1995년, 친구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아버지를 잃은 3남매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던 안씨는 갓 중학교에 입학한 친구의 큰아들에게 교복을 사줬다. 며칠 뒤 손님을 태우고 인근을 지나던 안씨는 친구 아들이 교복 차림으로 급우들과 어울려 귀가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교복을 입은 친구 아들을 본 순간 얼마나 뿌듯하던지…. 내가 입은 것 같았어요. '이거다' 싶습디다."
그해 안씨는 동네를 수소문해 없는 집 아이 4명에게 교복을 사줬다. 교복 사주는 데 재미가 붙어 해가 갈수록 차츰 숫자를 늘려나갔다.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안씨의 살림도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9살 때부터 살던 66㎡(20평) 남짓한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두 딸과 아들을 키웠다. 안씨는 "날 보고 '자기도 못살면서 주책"이라는 사람도 있고 '시의원 나가려고 그러냐'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안씨는 묵묵히 검은 지갑에 돈을 모았다. 그는 노래방에도, 다방에도 가지 않는다. 점심은 집에 가서 먹는다. '구두쇠'의 선행과 진심이 차츰 주위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안성에서 교복 가게를 하는 김기수(51)씨가 "좋은 일 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며 2001년부터 안씨에겐 원가만 받고 시가보다 10만원쯤 싼값에 교복을 대고 있다.
안씨는 매년 1월 초 교복 구입권이 든 봉투를 학교 측에 건네고, "필요한 아이들에게 알아서 나눠주라"고 한다. 죽산중·고 재학생 가운데 안씨가 사준 교복을 입은 학생은 모두 60명이다. 죽산중 안익철(53)교감은 "조용히 와서 봉투만 놓고 갈 뿐, 감사패를 드리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싫다고 사양한다"고 했다.
2006년, 안씨의 둘째 딸이 결혼할 때 이름이 적히지 않은 축의금 봉투가 들어왔다. 빳빳한 만원짜리 지폐 5장과 함께 조그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아저씨 도움으로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꼭 돕겠습니다."
1996년 죽산중에 입학하면서 안씨에게 교복을 선물받은 주모(26)씨가 미국 UC버클리에 유학간 뒤, 고향에 사는 어머니를 통해 보낸 축의금이었다. 안씨는 "내가 헛일을 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했다.
부인 한씨는 "처음에는 그 돈이면 우리 애들 더 먹이고 입힐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안성 죽산면에서 보습학원을 하는 큰딸 영미(31)씨와 둘째 딸 병욱(30)씨도 올해부터 매달 30만원씩 모으고 있다. "아버지 하시는 일에 보태고 싶어서"라고 했다.
http://news.nate.com/view/20090422n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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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 아저씨는 선행상 받아야겠습니다. 정말 감동적입니다. ^^*
실천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성인이 따로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