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에서 청량버섯농원을 운영하는 김민수 대표(38)는 15년째 농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 농부다. 김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고향인 홍천으로 귀농했다. 그는 버섯 농장에 스마트팜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연 매출 30억원 가량을 올리며 청년 농부의 대표 성공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전북 전주에서 농업회사법인 디자인농부를 이끌고 있는 김요섬 대표(38)는 평범하게 농사를 짓다가 디자인과 농업 상품을 접목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포장 커피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미숫가루, 팥 등을 1회용 낱개로 포장했다.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특허(2건), 우수상품 인증(8건)을 획득했고,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연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 TV와 신문 등 미디어에 소개된 청년 농부들의 성공 사례다. 이렇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패기, 열정으로 농촌 현장을 바꿔놓은 젊은 농업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 젊은 농업인의 성공은 고령화로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고, 농업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인부터, 농부의 꿈을 품고 농대에 진학해 ‘프로 농군’에 도전한 경우, 도시에서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귀농한 젊은이까지… 지금 농촌 현장에서 바쁘게 뛰고 있는 청년 농부들의 색은 하나의 분류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이들은 농촌에 머물면서 이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꿈을 꾸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2016년)에서 30대 이하 귀농자들은 귀농의 이유로 '가업을 승계하기 위해서(23.3%)'와 '농업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을 보고 선택(23.0%)'을 꼽았다. 귀농인 전 연령층 조사에서 ‘자연 환경이 좋아서(29.4%)’를 선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것과 다른 양상이다. 농업이라는 산업에서 비전을 보고 도전하고자 귀농을 택한 청년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의 노하우에 젊은 세대의 감각을 더해 농업을 새롭게 해석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농업과 IT를 접목하거나 농업 관련 상품에 기획력을 더하고, 새로운 마케팅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기도 한다. 청년 농부 중 일부는 수 십 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대박'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엔 언제나 성공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성공한 청년 농부보다 훨씬 많은 농부들이 지역 사회 적응에 실패하거나, 예상치 못한 자금난에 빚을 진 채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있다.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장은 "농업은 충분히 뛰어들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라면서도 "미디어가 보여주는 성공 사례만 보고 오면 큰일난다"고 했다. <이에 대한 사례는 1편 참조>
지금은 성공한 농업인으로 꼽히며 미디어에 소개되고 있는 청년 농부들도 마찬가지다. 연 3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김민수 청량버섯농원 대표는 귀농 초 "육체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충남 아산에서 화훼농원을 하는 남슬기 LIAF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요구하는 게 많아 때론 족쇄가 된다"고 토로했다.
물려받을 부모님의 농장이 없거나, 농촌에 연고가 없을 경우 어려움은 곱절이 된다. 산청에서 부모님과 함께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후계농 권두현 씨는 "나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계셔 행운이었던 것"이라며 "농사를 짓고는 싶는데, 연고가 없어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집이나 땅을 구하는 것부터 문제"라며 "빈집 수리비를 지원하는 정부 제도가 있긴 하지만 막상 받으려고 하면 까다롭고 안 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농촌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코부기의 대표 유지황 씨는 "땅과 집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기 어렵다. 나도 농사지을 땅을 빌리려다 사기도 당했고, 한 때 빚도 많이 졌다"고 고백했다.현재 40세 미만 농가 경영주는 약 1만1000명 가량으로 전체 농가의 1.1%에 불과하다. 지금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2025년엔 3700명, 0.4%까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귀농귀촌 지역 멘토들과 이미 귀농귀촌 청년들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토지와 주거 문제, 그리고 기본 생계비를 꼽는다. 중앙 정부는 청년을 위한 기본 생계비를 지원하고, 지자체와 시민사회는 농촌을 경험할 기회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 그렇지 않으면 농촌에서 청년의 공간은 더 이상 커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년이 귀농귀촌 했을 때 지역 활동비를 일정 부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내려왔을 때 그곳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비 지원이라든가, 아니면 시골의 헌집이나 공간을 리모델링할 수 있는 비용 같은 것 말입니다. 생활과 주거에 관련된 부분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그 안에서 만들어가야한다고 보고요." (임완준, 31세, 충북 괴산)
농식품부 조사(2016년)에서 30대 이하 귀농귀촌 청년들은 소득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당장 농촌에서 생계를 유지할 소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삼선재단 조사(2015년)에서 역시 귀농귀촌 멘토들이 중앙정부가 할 일로 가장 많이 언급한 게 청년을 위한 기본 생계비와 활동비 지원(30%)과 청년을 위한 숙소 지원(24%) 순이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농업 선진국에선 청년 농부들을 위한 정착보조금 개념의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1973년 이후 40세 미만 청년 농부에게 정착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매년 1만 여명이 평균 2만유로(약 2700만원)를 받고 있다. 일본은 2012년부터 청년취농급부금제도를 도입해 45세 미만 청년 농업인에게 연 최대 150만엔(약 1500만원)을 최대 5년 간 지급한다.
한국에서 농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도 희망이 생길 수 있을까. 정부가 도입하는 ‘청년 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제’는 생계 걱정 때문에 농업에 주력할 수 없는 청년을 위한 제도다. 영농 초기에 생활안정자금을 준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고 올해부터 지원을 시작한다.(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