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전 세계 약 6만여기의 고인돌 중 남북한을 합쳐서 약 4만여 기 정도가 한반도에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동네에서는 집을 지으려고 보니까 무지막지한 돌덩이가 막고 있고 치우기도 너무 크고 해서 그냥 안에 두고 지은 뒤 알고 보니 고인돌이더라하는 집도 더러 있다(순간포착 등에 더러 소개되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한의 고인돌은 대부분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고대에는 한반도니 하는 경계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보는게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있다).
지역별로 보자면 강원도에 338기, 경기도 502기, 충북 189기, 충남 478기, 전북 1597기, 전남 1만 9068기, 경북 2800기, 경남 1238기, 제주 140기로 거의 대부분의 고인돌은 전남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 북한이 주장하는 1만기 ~ 1만 5000기의 고인돌 수를 합하여 4만여기라고 하는 것.
참고로 서울에도 고인돌이 꽤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도시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인돌이 거의 멸실된 것으로 보여진다. 정릉동, 개포동(4기), 개포동 대모산, 우면동, 양재동(6기), 원지동(16기), 고척동 등에서 존재하였으며 그중 원지동 고인돌은 1984년에 16기가 관련유물과 함께 발견되었으나 보호시설물과 안내판의 설치, 문화재지정등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대부분 멸실된 것으로 보여진다.
과거에는 석붕(石棚)이라 불렀으며 많은 관심을 끌고 있었으나 실증주의적 고고학이 대두하기 전까지는 흥미의 대상이었을 뿐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연대 자체가 오래된 점, 탁자식 고인돌의 경우 매장부가 지상으로 드러나 있어 도굴이나 유실의 위험이 큰 점 등 여러 이유로 유물 등이 잔류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연구하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 다만 무덤의 수효 자체가 많아 자잘한 발굴은 계속되는 중.
고인돌이 동네사람들이 취미생활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고고학적으로 한반도 남해안에 있었던 세력이 진나라(秦) ~ 전한 초기의 중국과 교류한 흔적이 나오므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밖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전남(특히 영산강 인근) 지역의 경우 고인돌 → 독무덤 → 장고형 무덤(전방후원분)으로 이어지는, 묘제마다 떡밥인 양식으로 이어지는 지라 의미가 더 깊다.
물론, 이스터 섬의 모아이 사례에서도 보듯이 큰 돌로 뭐 좀 만들어놨다는 것 하나만으로 엄청난 고대문명이 발전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남에서 모헨조다로유적처럼 목욕탕이나 하수도시설이 나오면 모를까
첫댓글 감사합니다.^^
늘 좋은 정보 주시는 님..^^
오늘도 좋은 정보 주셨내요^^
늘 건강 지키시고..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