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 성공과 회복 원칙(6) 희망이 오는 곳을 아는가? [왕하7:3-8]24.2.11 주일 2부-3부설교
다같이 찬양 - 찬송가 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설날 주간 예배를 드리러 나온 성도님들을 환영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께 인사를 합시다 “올해는 하나님의 큰 복을 받으세요!”
제가 어렸을 때는 설날이 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설빔이라고 해서 새 옷도 하나 얻어 입지! 평소에 안 먹던 음식도 먹지요, 세배 돈도 받지요~ 그날만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오늘 설 명절을 맞는 마음은 전혀 설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 성도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치 짚신 장수 아들과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처럼 비올 때는 짚신 장수 아들이 걱정이 되고, 날이
개어서 맑으면 나막신 장수 아들로 인하여 근심하는 부모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저미어 오는 것을 느낍니다.
희망은 참 좋은 단어입니다.
희망(希望) 즉 ‘바랄 희’ + ‘바랄 망’을 써서 그 뜻은 ‘앞일이 생각하는 또는 뜻하는 대로 되기를 바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뛰게 하지를 않습니다.
각종 물가인생과 각 나라의 전쟁의 소식들과 정치인들의 분탕질 소식을 들을 때에 절망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희망을 분명하게 말해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예수안에 있기에 내일에 다가올 희망을 줄기차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희망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1. 희망은 하늘에서부터 나온다.
여러분, 희망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큰 위기를 당했는데 갑자기 이방 나라의 침공을 받은 것입니다.
아람 왕이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을 첩첩이 둘러쌌습니다.
성이 포위를 당한 채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가자 성안에는 비축한 양식이 다 떨어지고 백성들의 굶주림이 극에 달했습니다. 얼마나 굶주림이 심했던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나귀 머리가 비싼 값에 팔리고 심지어 비둘기 똥도 비싼 값에 팔렸습니다.
하루는 왕이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여인이 뛰어와서 말하기를 “너무 배가 고파서 ‘우리 이웃과 함께 오늘은 너희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우리 아들을 잡아먹자.’ 그렇게 약조를 해서 어제는 제 아들을 내어놓아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웃의 아들을 먹을 차례인데 이웃이 자기 아들을 감추어 놓고 내어놓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하는데 왕은 그 말을 듣고 처절하게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그 마음에 꽉 들어찼습니다.
그래서 신하를 불러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으니 그러니 선지자 따위는 필요 없다. 엘리사를 찾아가서 그 목을 베어라.” 그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사자들이 엘리사를 죽이려고 엘리사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때 엘리사는 이미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해서 그 왕이 사자를 보내어서 자기를 죽이려고 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의 사자들이 도착했을 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열왕기하 7장 1절에 보면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꿈꿀 수 없는 환경입니다.
나귀의 머리나 비둘기 똥이 거금으로 거래되는 상황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으로 팔릴 것이니 그것도 한 달 후나 일 년 후가 아니라 바로 내일 양식이 차고 넘칠 것이라는 희망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고 말합니다. 이런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는 어떤 절망의 강도 건널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희망을 붙잡고 전진하라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다음 날 양식이 차고 넘치게 되었는데 그것을 가장 먼저 먹고 누린 사람이 네 명의 나병 환자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붙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네 명의 나병 환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안에서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었는데 성에 양식이 떨어지자 이들도 같이 굶어 죽게 된 것입니다. 나병 환자는 손가락도 다 문드러지고 얼굴도 보기 흉하게 되고 인생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좌절과 절망의 사람입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나병에 걸리면 성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남에게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아무런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그야말로 희망이라고는 실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는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 내리기를 “성안에 들어가도 굶어 죽을 것이요, 이 자리에 그냥 앉아도 있어도 죽을 것이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적진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적진으로 간다고 해도 살길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람 군인들이 그들을 살려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양식이 있고 옷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든 죽든 희망을 향해서 걸어가자. 죽더라도 희망 속에서 죽자.” 그렇게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들은 작은 희망이라도 희망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선택한 사람과 함께 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네 사람의 나병 환자가 실 날 같은 희망이지만 희망을 향해서 전진하고 작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출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붙잡기로 작정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성의 위대한 학자들을 통해서 혹은 권력자를 통해서 그렇지 않으면 은이나 금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작은 희망이라도 희망을 부여잡고 전진해 나가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네 사람의 나병 환자가 벌떡 일어나서 담대하게 적진을 향해 걸어갑니다.
물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갔으니 잘 걸을 수가 없습니다. 몸에 균형도 잡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네 사람이 팔짱을 끼고 적진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네 사람이 팔을 잡고 가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한 분이 거기에 같이 팔을 잡고 갑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네 사람이 행진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함께 걸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걸어가니 나병 환자들이 넘어질 때, 그 넘어지는 소리를 하나님이 증폭시키시매 거대한 전차 바퀴의 굴러가는 소리로 들리게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병 환자들이 서로 격려하는 소리를 천지를 진동하는 군인들의 함성으로 들리게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아람 군대가 그 소리를 듣고 기겁을 했습니다.
저녁을 지어 놓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차 바퀴 소리가 들리고 군대가 행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그만 간담이 서늘해져서 밥상을 그대로 버려두고 도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네 사람이 적진에 도착하니까 적군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가 지어 놓은 밥을 배부르게 먹고 옷도 갈아입고 금과 은을 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위대한 승리와 축복은 희망에 의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희망의 선포와 나병 환자들의 희망을 향한 행진이 상상을 초월한 구원과 축복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한 성도 분은 나이가 20대 청춘일 때, 악성 임파종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무릎에 심한 통증이 생겨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악성 임파종 4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치료를 받는 동안에 백혈구 수치가 거의 0에 가까이 떨어지고, 혈소판 수치도 크게 미달되어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항암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서 혈관이 나타나지 않아서 가슴을 찢고 3센티미터가 넘는 주사바늘로 항암치료를 받았던 것입니다. 병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라 믿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체온이 40도를 오르내리면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사경을 헤맸지만 바라봄의 법칙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을 믿고 희망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기도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오산리 기도원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과거의 눈물로 회개하고 3일 금식을 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21일 째 되는 날 기도를 마치고 잠이 들었는데 목사님에게 안수받는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응답 받았구나!’ 그러면서 기뻐하다가 잠에서 깬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기도원에서 내려와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정상에 가깝게 나오고 암세포도 깨끗이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절망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희망을 붙잡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야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젊었을 때, 하루는 무거운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레를 세우고 누군가가 수레를 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레를 밀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와서 함께 수레를 밀어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당했을 때,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을지라도 희망의 밧줄을 붙잡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디면 하나님께서 함께 행진하시는 것입니다.
[예화]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팡이를 들어야 바닷길이 열린다. 여리고 성을 돌아야 성이 무너진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신다. 사람들의 시끄럽다 하는 소리보다 더 크게 예수님을 불러야 네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 우리가 희망을 붙잡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바닷길도 열리고 성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희망을 붙잡고 기도하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나님께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을 때, 엘리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은 너무나 절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실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꿈을 가지고 기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이 주신 희망이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왕을 모시는 장관은 그 말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의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7장2절을 읽겠습니다.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장관의 말을 들으시고, 엘리사를 통해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백성들이 아람 진으로 양식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성문으로 우르르 몰려나올 때, 그 장관은 백성들에게 밟혀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어찌하든지 희망을 가지기로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에 처해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희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청산하시고 나의 추악을 청산하시고 나의 질병을 청산하시고 나의 저주와 가난을 청산하시고 나의 죽음을 청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희망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희망을 통해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어떤 바람이나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그 일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론다 번(Rhonda Byrne)의 저서이자 베스트셀러인 『시크릿(The Secret)』의 핵심 메시지로 세일즈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긍정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역설한 주장입니다.
『시크릿』은 4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900만 부 이상 팔려나감으로써 전 세계에 걸쳐 '시크릿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2007년 기준)
내용을 말씀해 드리면, 끌어당김의 법칙은 "Like attracts like", 즉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즉, 뭔가에 대해 생각하면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플라세보 효과'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드러내는 한 가지 사례로 간주 된다.
이 기본적인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고 나면 다음 세 단계를 거쳐 원하는 건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되, 부정적인 부분이 아닌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원하는 바를 믿고 그게 곧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셋째, 원하는 바를 얻은 상태와 그때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도 비록 나병환자와 같이 힘이 없고, 보잘 것 없어도, 희망을 품으면 희망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행진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지난 목회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희망의 전도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절망으로 시작했지만 희망으로 끝나도록 하나님은 제게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슬픔으로 시작했지만, 기쁨으로 끝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비록 문제로 시작했지만,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전도하고 나가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어떤 형편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좌절과 절망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적인 생각을 늘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적인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잘살 수 있는 꿈도 꿀 수 있고, 건강해지는 꿈도 꿀 수 있고, 시집 장가가는 꿈도 꿀 수 있고, 직장을 얻는 꿈도 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크고 작은 꿈을 꾸는데 꿈을 꿀 수 있는 재료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병환자도 사랑해서 동행하셨습니다.
비록 나는 못나고 버림받은 사람이라도 나병환자 같은 사람이라도 주님께서 나와 같이 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찬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살 수 있고 예수 때문에 노래할 수 있고 예수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자리에서도 살 수 있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는 희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희망은 환경이나 사람의 도움에 있지 않습니다. 희망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희망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엘리사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소망의 말씀을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 희망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기도함으로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찬양 -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실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