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형에게. -졸업 50년, 인생 70년
P형.
내가 자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졸업하고 50년 만에 처음이던가? 아니면, 입학 50주년 기념 봄 소풍을 다녀왔던 6년 전 이맘때도 한번 보냈었던가? 오래된 세월이라 자네 얼굴만큼이나 내 기억에서 희미함을 어찌할 도리가 없네.
어느덧 유월이네.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마다 해마다 추억을 안고 피는 꽃’, 노랫말과도 같이 유월은 그렇게 추억을 안고 핀다는 모란의 계절이라네. 부귀‧ 영화를 상징한다는 꽃말보다도 나는 추억을 안고 핀다는 그 노랫말로 모란을 더 좋아한다네. 며칠 전 친구들과 고등학교 졸업 50년 기념 여행도 바로 그 추억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네. 반가운 얼굴들 사이사이로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의 옛 모습이 언뜻언뜻 떠올랐었다네. 그러니 긴 세월을 건너뛴 생뚱맞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고 기대하였던 자네를 보지 못한 섭섭함과 추억을 그날의 이야기에 함께 담아 보내려 하니, 같이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보시게.
자네, 그간 별 탈 없이 건강하신가? 나는 그간 다니던 직장을 얼마 전에 그만두고 지금은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네만, 자네는 지금도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짐작해보네. 평일에 다녀온 우리의 소풍에 자네가 함께하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서 해보는 내 짐작이 맞았는가? 비록 그렇더라도, 내가 지금 누리는 몸과 마음의 호사를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게. 내가 직장생활을 마친 이유라는 것이, 직장이 나를 내쳐서도, 내 건강이 나빠져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해서도 아니라, 단지 지금 누리고 있는 이러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한 가지 욕심에서였다지만, 나는 그것이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 라거나, 나이 든 철부지의 환상이라고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라고 변명한다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자네도 내 계획을 미리 알았다면 적극 만류하였을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어찌 되었거나 그 덕에 이렇게 작은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에 자족하며 지내고 있다네.
잠실역 교통회관 앞은 늘 그렇듯이 인파들로 북적이고, 그 북적임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가벼운 흥분으로 언제나 왁자지껄함도 함께하는 곳이지. 모처럼의 해방감에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이번 우리의 여행처럼 중고등학교를 함께했던 친구들, 그것도 졸업한 지 한두 해도 아닌 50년이나 지난 늙은이들의 만남임에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목에 걸고 있는 명찰을 볼 필요도 없이 손이 먼저 나가는 낯익은 얼굴들과, 시험시간에 커닝하듯 힐끗 명찰을 훔쳐보고서야 악수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얼굴을 보아도 명찰을 보아도 도무지 옛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친구에게도 시치미를 떼고 아는 척 손을 내밀어 인사 나누어도 아무 탈 되거나 나무랄 것 없는 만남이 오가는 길바닥은, 마치 흥정이 무르익고 있는 난장판과 흡사했네. 몇 년 전 속초를 다녀오던 날도 그러했었지.
반가움과 흥분과 기대에다 아주 조금이라지만 어색함까지도 함께 태운 두 대의 버스는 경춘가도를 달려갔지. ‘경춘가도’- 누구나 한두 번쯤은, 한둘 정도는, 말 못 할 사연과 가슴 아린 그리움과 찾아가고 싶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법한 길이 아니던가? 봄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는 그 시절처럼 푸른 잎들이 싱그럽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하는 북한강의 물길도 그날의 이야기만큼이나 반짝이고 있었다네. 차 안의 세월은 눈 깜박할 사이에 50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또 한순간에 되돌아서 오늘로 달려오기를 거침없이 반복했었다네. 호랑이 같았던 선생님에게 호되게 벌 받았던 이야기, 친구들과 선생님 골탕 먹였던 이야기, 짝사랑하던 여학생 쫓아다니던 이야기, 미국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 이야기, 먼 곳에 살다가 먼저 떠나 가버린 친구의 애달픈 이야기,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자신의 건강 이야기..... 친구의 숫자만큼이나 가지고 온 사연도 많아서 흐르는 물길처럼 쏟아지는 이야기도 그침이 없었다네. 세월은 흘렀어도 친구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나누어준 떡처럼 따끈따끈하였고 그 이야기를 듣는 옆자리 친구의 맞장구는 물처럼 시원시원하였지.
‘신남역’을 기억하시는가? 역 이름을 ‘김유정역’으로 바꾸었다네.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서 네 명씩 짝을 이룬 우리 줄 옆으로는, 수학여행 왔다는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의 줄이 나란했지. 그래, 바로 50여 년 전 이 친구들처럼 우리도 함께 소풍을 다니고 수학여행을 다녔었지. 바로 요만한 여학생을 앞에 두고 가슴을 쿵덕거렸고, 눈 마주치면 얼굴을 붉혔었고, 혹시나 뒤를 쫓아도 보고, 남몰래 짝사랑으로 속을 태우기도 하고, 그리움에 밤잠을 설치며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써보기도 했었지. 그랬던 여학생이란 것이 바로 저렇게 어린 아이였었다니..... 레일바이크는 이삭 팬 보리밭을 지나고, 모 심어진 논을 지나며 유월의 싱그럽고 풍요로운 들과 산을 누비며 달려갔다네. 밭둑에는 애기똥풀과 붓꽃이, 들판에는 이름 모를 들꽃과 그 위를 불어가는 바람과 팔랑이며 춤추는 나비들..... 살아온 날들을 그랬었던 것처럼 다들 페달을 힘차게 밟으리라 다짐했건만, 바이크는 내리막 레일을 따라 저절로 잘도 굴러가더구만. 나도 자네도, 지난날들이 이같이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되도록 절로 절로 환하게 펼쳐졌었더라면, 적지 않은 날들을 그리 속 태우며 보내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하지만 굳이 옛 시절을 돌이켜 가지는 못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바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름하여 낭만열차라는 차로 바꿔타고 강촌역에 도착했지. 강촌역- 혹시 기타를 둘러메고 찾아온 적은 없었던가? 아니면 어설픈 텐트를 펼쳐놓고 하룻밤을 지새우지는 않았었던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그 아련한 사람과 손잡고 왔었던 바로 그곳이 아닌가? 경춘선은 기차역마다 온갖 사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로 강을 하나씩 이루고도 남을 곳이지. 점심식사를 위하여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아직도 미처 짜 맞추지 못한 퍼즐들을 맞추느라 이야기는 끝도 없었다네. “너는 중학교 1학년 때 몇 반이었냐?” “ 담임은 누구랬냐?” “야~ 제는 기억력이 대단하네. 별것을 다 기억하고 있네” 떠드는 사이사이 가슴 아린 이야기들도 간혹 섞여서 들려오기도 했지만, 떠들썩함 속에 하나씩 하나씩 그림은 완성되어갔다네. 강원도 땅 춘천까지 왔으면 뭐니 뭐니해도 막국수가 제일이지. 막국수에 메밀부침으로 배 불리고, 이곳이 자신의 ‘나와바리’라는 친구의 덕에 동동주와 막걸리와 소주는 공짜로 마셨다네.
흰 종탑이 멋진 구봉산중턱 카페의 노천 테이블에서, 마치 지중해의 어느 도시를 머릿속으로 그려 상상하듯이 춘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해바라기를 즐기고는 춘천의 상징인 소양강댐으로 향했다네. 댐 위에 다다르니 50주년 기념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어서, ‘설마 우리의 졸업을.....’ 했더니 올해가 소양강댐 준공 50주년이라네. 우리가 졸업하던 해에 소양강댐을 준공하였다니, 그랬었던가? 소양강댐의 수위는 저 아래로 내려가 있었지만, 우리 누구라도 그 소양강댐의 가득한 물을 모르는 이는 없지 않겠나? 그 젊었던 날 우리들의 꿈처럼 넘실거렸던 푸른 물을 말일세. 그리고 지금도 가슴 가득 출렁였던 물을 잊지 않고 만수위(滿水位)를 새겨놓은 댐과도 같이, 우리들의 가슴속에도 푸르렀던 날들이 선명히들 남아있지 않겠는가? 그때 이곳 어디선가 배를 타고 청평사를 다녀오기도 했었지. 때가 되면 푸른 물이 댐에 가득 출렁이듯이, 우리 가슴에도 젊음이 다시 출렁이지 못하리란 법 또한 없지 않겠는가?
국내 최장으로 그 길이가 무려 3.61km에 이른다는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로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에 올랐네. 스카이워크 산책길은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으며, 너른 호수와 멀리 산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호쾌함을 맛볼 수가 있었다네. 의암호 위에는 수상스키가 흰 물결을 일으키며 달려가고, 푸른 호수‧ 푸른 하늘‧ 푸른 바람‧ 푸른 산이 펼쳐진 이곳에서 우리들의 마음만 푸르지 못했을 이유가 그 무엇 있었겠는가?
세종호텔의 넉넉한 홀을 통째 차지하고 진수성찬과 함께한 기념행사는, 영상으로 보는 즐겁고 기뻤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가슴 아픔이 뒤섞이며 우리를 다시 한번 끈끈히 엮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네. 장기 자랑하는 친구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우리가 즐겨 불렀었던 만남의 반가움과 또 다가오는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했었지. ‘..... 우리는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연인.....’ 그래,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연인일지도 모르지. ‘.....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아무려면, 모란이 아무리 피고 지기로서니 어찌 자네를 잊으리오? 하루가 짧아 못다 한 아쉬움을 담아 나누어주는 기념품 자루에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준비했다는 그 친구의 마음처럼 폭신한 타월도 함께 담겨 있었다네. 뿌듯하고도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하늘에는 부러움 가득한 열사흘 둥근달이 중천에 떠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네.
친구.
이제 두서없는 글을 마치며 쓸까 말까 망설이던 이야기 하나를 마저 적어야겠네. 그날 호텔 저녁 뷔페의 그 푸짐한 음식이, 그 가득 채워둔 냉장고의 술병이 반의반도 줄어들지 않음에, 내 가슴이 아릿해 옴을 어찌할 수 없었네.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어찌하겠나? 그러니 친구, 부디 건강하시게. 그래서 졸업 60년‧ 70년‧ 100년..... 그 자리에는 자네와 나, 그 누구도 빠지지 않고 함께하여 웃을 수 있기를 같이 기원하세.
2023년 6월 4일
문래동에서 승태 보내네.
첫댓글 서울에서 춘천까지 하루여정을 담담한 필체로 풀어나가는 것을 보니 승태친구는 역시 필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기행문 작성을 부탁했을 때 마음의 부담감이 컸을 텐데도 이렇게 멋진글로 화답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무려면 총무님의 부담에 비하겠는가?
행사 준비하고 치르느라 고생많으셨네.
항상 고맙네.
승태 자네는 보성63회의 보물이지. 마음 속에 맴돌는 이야기를 멋진 글로 대신해 줄줄 아는 작가라네. 누구는 사진으로, 누구는 노래로, 누구는 그림으로, 누구는 우정으로, 누구는 말로, 누구는 술로 ... 요지경같은 친구들 덕분에 흥겹고 즐겁고 신나네.
과찬 과찬
과찬은 비례라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구만.ㅅㅅ
고맙네. 친구
아주 멋진 한 편의 수필이네
덕분에 함께했던 시간들 절대 잊지 못하겠지?
모든 친구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마웠네.
항상 건강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