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목포를 읽으셨나요
김양숙
올 3월부터 수강하게 된 경남대학교 수필 교실에서 문학기행을 간단다. 지도교수님의 수필 다섯 권을 내리 통독한 덕분에 ‘교수님께서 수필로 인연 지은 분들과 한 번씩 여행을 가시나 보네’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수필 교실 3개 강좌 수강생이 함께 가는 문학기행이란다. 낯선 분이 많은데 괜찮으려나? 하지만 목포다.
목포 여행은 2013년 통영중앙중학교에 근무했을 때가 처음이다. 친목회장 선생님이 1박 2일을 원 없이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며 호언장담하고 선택한 여행지가 목포였다. 선생님 말씀대로 1년간의 애씀을 한꺼번에 위로받은 듯한 꽤 괜찮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목포라는 말에 남도의 맛난 음식, 해상케이블카, 불빛에 일렁이던 밤바다의 기억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
연분홍 꽃잎과 연둣빛 나뭇잎, 연푸른 하늘이 잘 어우러지는 5월, 어디로 나선들 소풍이 아니랴. 드디어 약속한 5월 14일. 집결지는 마산의 합포고다. 운영진에서 멀리서 오는 나를 걱정하실까 봐, 길을 일찍 나섰다. 회장님께서 벌써 나와계셨다. 늑장 부리는 분이 한 분도 없다. 버스가 마산을 벗어날 즈음 앉은 채 자기소개가 시작된다. 목소리로 안면을 트는 셈이지만, 백남오 교수님의 제자라는 정서적 유대감에 금방 전염된다. 슬쩍슬쩍 돌아보니 한 분, 한 분 수학여행 길에 오른 중2생 얼굴빛이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유달산 기슭의 노적봉 근처에 내렸다. 맞은 편 산세를 따라 이룬 원도심이 9년 전 그대로다. 반갑다. 노적봉도 유달산도 나를 아는 체하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교수님과 상당수의 글 벗은 산 정상을 향해 오르신다. (...)
목포행 문학기행
김필근 (kimpg21@hanmail.net)
문학기행이란 게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그 단어가 주는 어감에 약간은 마음이 설레며 은연중 기다려졌다. 작가의 고향이나 연고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을 탐방하여 문학세계나 작품을 이해하자는 게 아닌가. 이런 주제의 여행이 처음이었다.
코로나 방역 조치가 일부 해제되자 기다렸다는 듯 목포로 문학기행을 간다는 톡이 떴다. 목포는 몇 년 전엔가 노적봉을 둘러보는 정도로 잠깐 스쳐 간 적이 있었다. 문학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때였는데, 이제 문학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된 이 몇 년 동안의 변화가 스스로에게도 조금은 대견스럽다.
목포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하나둘 알아보았다. 문학 관련 내용이 있으면 따로 모아두었다. 지명의 유래는 마치 목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형이라 목개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써서 목포라고 하는 설이 유력하단다.
검색 중 김양호의『목포 문학기행』이라는 책이 있었다. 소개 글에서 언급한 목포는 어렴풋이 내가 알던 그 이상이었다. 한국문화예술의 본거지이며 한국문학의 여명과 부흥을 이끈 곳,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압축된 고난과 역경의 역사 공간, 그곳이 목포였다. 언급된 문인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얼마 전 타계한 시인 김지하의 고향 또한 목포였다.
‘한국 수필계의 대부 김진섭’이라는 한 줄 글은 어느 문인들보다도 눈에 띄었다. 수필이라는 동질감이 주는 반가움이었을까. 그를 두고 수필계의 대부라고 했거니와, 이는 수필의 명칭은 물론 개념조차 확실하지 않았던 시기에 한국 수필 문학의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황혼의 품격
배종화
한동안 봄 가뭄이 이어지더니, 지난밤에는 비가 내렸다. 애타게 기다리던 비라고 하나 하필이면 문학기행 전날 밤인가 싶어 마음이 쓰였다. 새벽 일찍 창문을 열고 날씨를 살폈더니 상쾌한 바람이 감미로웠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정확히 7시에 목포를 향해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익숙하다. 바둑판 같은 논마다 물이 가득 채워진 걸 보니 곧 모내기가 시작될 모양이다. 지난밤 단비가 고맙게 느껴진다. 날씨를 원망했던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심경이 얄궂다.
문득, 막냇동생을 업고 논둑길 걸어 모심기 나간 어머니를 찾아갔던 유년의 하루가 그려진다. 점심때를 기다려 받아든 주먹밥 한 덩이와 햇감자 넣어 조린 비릿한 갈치 한 토막은 얼마나 맛있었던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막내에게 젖을 물리던 젊은 어머니는 참 곱기도 하였지. 추억은 이토록 생생한데 세월은 잠시도 멈춰 서질 않는다.
녹색 옷으로 단장한 산과 들은 비에 씻겨 한층 푸르다. 녹음 사이로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은 가는 봄을 아쉬워하고, 길가에 늘어선 이팝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쌀밥을 사방으로 날려 보낸다. 누가 내걸었을까. 오동나무 가지마다 화사한 보랏빛 꽃등이 정겹다. 오월이 제아무리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나 때맞춰 피는 꽃이 없다면 그 이름은 무의미하리라.(...)
유달산에 꿈이 있었다
이지은
설렘으로 꼬박 지샌 오월 십사 일, 아침은 맑음이었다.
두 번째 진등제 문학기행을 가게 되었다. 장소는 목포 유달산과 목포문학관이다. 십 대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목포 유달산으로 가는 기행은 육십 대의 나에게 첫사랑과 같은 그리움을 불러왔다.
약속장소인 합포고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니 벌써 다른 문우들은 버스에 타서 저마다 짝을 지어 앉아있었다. 문우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낯가림 탓에 조금 망설이다 세 번째 자리에 혼자 앉았다. 시선을 어디 둘까 하다 밖을 바라보니 아카시아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오전 7시, 버스는 중리 방향으로 출발하여 다음 장소의 문우들을 태우고 남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함안 휴게소에 도착하여 문학회에서 준비한 김밥을 가지고 문우들과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앉아 아침을 먹었다.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 계절 중에 가장 상큼한 오월에 문학기행을 가는 문학인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들의 본격적인 문학기행이 시작되었다. 회장님의 사회로 문학회 임원진 소개와 문우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진행되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따라 왼쪽을 바라보니 길가의 꽃과 나무들이 연둣빛에서 연초록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초여름의 은은함을 준다. 논에 물을 가두어놓고 모내기를 한 곳도 가끔 보인다.
십 대 시절, 수학여행을 다녀온 오빠의 사진 한 장을 보고 나도 목포 유달산에 가고 싶다고 기차를 타고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가지 못했다. 처음엔 하동까지 갔다가 돌아왔어야 했고 두 번째에는 여수까지 갔다가 엄청나게 고생하고 돌아왔다. 그때 그 시절 나에게 목포 하면 아주 먼 곳의 도시이자 다른 나라 같은 곳이었다. (...)
오월에 누리는 행복
조윤래
오월은 나에게 기다림과 만남의 달이다. 칠십육 년 전 이 아름다운 세상 구경 온 날도 오월이었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은 날도 5월이었다. 지혜롭고 예쁜 며느리도 오월의 신부가 되어 우리 곁으로 왔고, 애타게 기다리던 외손자도 기적처럼 오월에 왔다.
온 정성을 다해 작은 동산에 온갖 나무들을 심고 가꾸어 아름답고 아늑하게 꾸며 놓은 부모님과 큰오빠가 잠든 가족 묘원에 가족이 모두 모여 소풍하는 큰오빠 기일도 오월이다. 가족의 기념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석가탄신일 모두가 오월에 있는 축제다.
내 삶도 오월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때로는 비 오는 날도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날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나날이 신나는 여행이었고 즐거움이었다. 6남매의 막내인 나는 부모님과 오빠 언니들의 사랑 속에서 응석받이로 자랐고, 젊은 날은 맹자가 말한 인생삼락을 다 누리고 살았다. 부모 형제가 무사했고, 어린 영재들을 만나서 가르치고 사랑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려고도 노력했다.
언젠가 서산이 붉게 물들어 갈 때쯤 아카시아꽃 향기에 취해 이화령고개를 지나면서 행복했던 날도 오월이었다.
이 아름다운 오월에 수필교실에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목포로 문학기행을 간다는 말을 듣고 오래간만의 기행이라 온갖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다. 푸른 하늘, 산들바람, 신록의 산하, 존경하는 교수님과 다정한 문우들, 어느 것 한 가지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문학기행의 날이다.
거리에는 싱그러운 연녹색 잎을 단 하얀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들이 줄을 서서 환한 미소로 손 흔들며 반겨주고, 길섶에는 노란 여름 코스모스가 살랑살랑 머리 흔들고 안녕, 안녕 인사한다. 나날이 푸르러가는 신록 속에서 연보라 오동나무꽃과 하얀 아카시아꽃들이 향기를 바람에 실려 보내며 문우들의 소개말을 듣고 가만히 따라 웃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