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내내 아무말이 없던 나와 그 놈.
내가 그렇게 세게 때린 것인가?
발끝에 힘을 꽤 준 듯 하지만 설마 여자한테 맞고선 저렇게 삐져있겠어?
아냐. 저 자식의 성격이라면 분명히 삐져있구도 남을 것이야.
혹시 오늘밤 저 놈의 일기장에 빨간색의 내 이름과 온갖 저주글들로 쓰어지는 거 아냐?
아님 나를 꼭 닮은 인형에 저주를 퍼부으며 바늘로 인형을 콕콕 쑤셔대는 거 아냐?
" 무슨 생각을 하냐? 안 내려? "
그 놈의 집에 도착하였는지, 어느새 내려 택시문을 열고선
빼꼼히 나를 쳐다보는 그 놈.
그 놈의 눈치에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기사아저씨는 내가 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우리가 있는 곳을 빠져나갔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건물이 보인다.
어라? 여기가 집이라고? 여긴 오피스텔인데?
" 여기서 기다릴래. 아님 같이 올라갈래? "
" 미쳤냐? 같이 올라가게. 여기서 기다릴테니 얼른 옷 갖고 내려와라. "
내 말에 그 놈은 픽하니 웃으며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무진장 좋다. 이런 데는 비쌀텐데. 그 자식은 여기 혼자사는 건가?
1층 로비에서 서성거리다 날 이상하게 쳐다보시는
경비아저씨의 묘한 눈길에 주머니에 조용히 넣어져있던 핸드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하는 척을 하였다.
설마 날 이상한 잡상인 취급하시는건 아니겠지...?
아니, 근데 이 놈은 꼭대기층에 사는거야?
엘레베이터가 고장나서 계단으로 올라가나?
벌써 20분이 지났는데 왜 내 옷을 가지고 나타나질 않는 거냐.
이 자식이 일부러 날 골탕먹이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10분을 더 기다렸다. total 30분을 기다린 것이다.
난 안되겠다 싶어서 조금전까지만 하더라도 날 묘한눈길로
쳐다보시던 경비 아저씨께 다가갔다.
" 저기... 말씀 좀 물을께요. 혹시 이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 중에 남잔데요
키는 180정도 되구요. 갈색머리에 약간 길구요. 얼굴은 하얗게 생긴 사람.
몇 호에 사는 줄 아세요? "
" 그런 남자가 어디 한 둘인가? "
헛기침을 하시며 경비아저씨는 그 자리를 훌훌 떠나버리시려 한다.
안되지. 이렇게 되면 안되는데. 맞다! 이름.. 이름이 있었지?
" 혹시 박유천이라고 아세요? "
" 뭐? 유천학생? 알지. 당연히 알지. "
아저씨는 아시겠다 말씀하시며 다시 내 앞으로 다가오셨다.
무언가 말씀 하시려는 듯 입술을 달싹 거리시다가
다시 날 묘한 눈길로 살펴보시는데...
" 무슨 사인데? "
" 네? 친, 친구요. 잠깐 올라갔다 내려온다고 하는데 깜깜 무소식이라서... "
" 그래? 그 말 믿어도 되지? "
" 당연하죠. 몇 층이에요? "
" 7층. 703호. "
아저씨의 말에 꾸벅 인사를 한 후 엘레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이 자식. 아까는 오른쪽 정강이 맞았으니 이번에는 왼쪽이다!
띵동 소리와 함께 엘레테이터 문이 열렸고,
난 터벅터벅 703호 앞으로 걸어갔다.
문 옆에 놓인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어라? 이 자식이 빨리 안 튀어 나와!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다다다!!
잠시 후 또르륵 기계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 놈의 얼굴이 보인다.
" 야! 넌 옷 가지고 내려온다는 놈이 어떻게 아무 소....식....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놈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근데, 이 놈 표정이 왜 저러지?
지금 내가 저 놈 표정 신경쓸 때야. 내 옷이나 챙겨가야지.
이런 생각에 나 역시 신발을 벗고선 안으로 들어갔다.
" 너 내 말 무시하냐? 어? 이 나쁜..... "
그 놈의 집에는 그 놈만이 있을꺼라는 내 생각과 달리
거실 쇼파에 어떤 여자가 앉아있었다.
근데... 저 여자... 낯이 익다.
빤히 그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
" 얼른 나가. "
내 앞, 가까이에 서 있는 박유천 그 놈.
내가 잠시나마 알던 박유천과는 다른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빨리 나가라는 듯 내 팔을 잡아끄는 그 놈 때문에 내 옷이 떨어졌다.
그래서 주우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 가는 그 사람.
그....그 불여우다. 쇼파에 앉아있는 저 여자가 그 불여우다.
내가 있을 자리인 준수의 옆에 떡하니 붙어있던 그 불여우다.
난 떨어진 옷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은 채 그 불여우를 쳐다봤다.
" 안 나가고 뭐하냐? "
난 그 놈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지. 준수가 내 남자친구였던 것 처럼,
박유천 너에게도 저 불여우가 여자친구였으니깐.
그걸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박유천 그 놈은 현관문을 열고선 내가 빨리 나가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내가 밖으로 나가자 쾅 하며 뒤에서 들리는 문 닫히는 소리.
내 귓가에 마지막으로 들렸던 쾅- 소리가 울리는 듯 하다.
왜 저 불여우가 박유천 그 놈을 다시 만나는 걸까?
그럼 준수는...? 준수랑 헤어진 걸까?
아님, 저 불여우가 여전히 양다리를...?
궁금하다. 속터지게 궁금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내 머릿속에선 준수와 박유천, 그리고 불여우
이 세명의 얼굴이 팽팽한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그 세명의 틈새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는거겠지?
" 야! 이정민! 무슨 생각하는 거냐? 너 참 한심하다. "
방금 한 쓸때없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머리를 때렸다.
삼각형이 사각형으로 될 수는 없어.
한 번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할 수 없듯이.
내 뇌 속에 고스란히 박힌 너의 이름 석자를 지울 수 없듯이.
홀로 끌어안고만 있는 아무 힘도 없는 추억을 놔줄수 없듯이.
모두 불가능한거야. 그러니 그런 생각따윈 집어치우자.
그건 나 다운 생각이 아니야. 이정민 스러운게 아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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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편만 올렸던게 내심 마음에 걸려
늦은 밤 컴퓨터를 켜고선, 비몽사몽으로 몇 자 더 끄적이다 올렸습니다....;;
이 소설이란게 쓸 때는 뭐에 홀린 듯(?), 미친 듯이 막 쓰게 되다가
한 번 손을 놓게 되면 영영 놓게 되는 것 같아요.... 귀차니즘이 발병되려는 듯ㅠ.ㅠ
부지런한 작가가 되야죠. 그래서 이 늦은 밤에 컴퓨터를 켰다는 것 아닙니까..움하하하~
나름대로 열심히 써서 올리고 있으니, 처음의 선택 끝까지 해주셨으면....^.^;;
글구 마지막으로 감상 남겨줬던 헤이필박유천님, 점핑스타유천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