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용필을 시인이라 부르자.
국민 가수와 반체제 시인이 노래 시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적’의 시인 김지하가 감옥에서 풀려나 강원도 원주에서 칩거하던 198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창 밖의 여자’를 필두로 연달아 히트곡을 몰아쳐 한국대중음악계를 평정한 가수 조용필이 시인을 찾아왔습니다. 호형호제하던 시인과 가수는 한 술집에서 노래시합을 벌였습니다. 여러 곡을 주고받은 끝에 노래 ‘촛불’ 가사를 묘하게 비튼 시인 앞에서 가수가 항복했다고 전해집니다. ‘흐대는 훼 홋불을 히셔나요? 흐대는 훼 홋불을 히셨나요? 연약한 이 마음을 후가 후가 히히려나~!’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는 조용필은 흔히 ‘가왕’으로 불립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요즘 ‘국민가수’라는 호칭을 본인이 “소름 끼친다”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가객’으로 불리는 이 땅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라는 점에서 조용필은 ‘가왕’으로 불릴 만합니다. 계간 시인세계가 시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기가요 10곡 리스트에서 조용필만 유일하게 2곡(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을 올렸지 않습니까. 시 전문 비평가로 꼽히는 유성호(한양대) 교수는 노래방에서 조용필 메들리로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30대 시인들이 노래방에서 젊음을 과시하기 위해 (길이가 6분이나 되어 그만큼 힘듭니다.)경쟁적으로 부르는 명곡입니다.
문학과 사회의 접점을 짚어내는 사회학자 송호근(서울대)교수는 ‘바람과 문학’이란 글을 통해 “바람은 노래와 문학의 중요한 모티브”라며 “조용필은 끊임없이 바람 속을 헤매고 새로운 바람을 충동질 한다”고 썼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는 “내 이름은 바람”이고 “바람이 잠드는 내 가슴에” 외로움을 달래며 기대는 그는 “바람속의 여자”다. 라는 겁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처럼 조용필도 ‘바람의 시학’을 노래한 시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음악(록과 발라드, 댄스뮤직)과 전통음악(민요와 판소리)을 폭넓게 아우른 조용필의 음악세계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한국 현대시 100년사와 닮았습니다. 근대화. 산업화 이후 한국인의 노래인 조용필의 음악은 김소월의 민요시나 김지하의 담시에 바탕을 두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생략 2008.3.10조선일보 박해현 기자의 글
첫댓글 어설픈 시인의 시보다 용필이 형 가사가 훨 낫지요. 만인의 주제인 사랑에 대해 가수는 이렇게 정의를 내렸지요. 모든 걸 다 잃어도 후회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조용필의 노래에는 한이 베여 그 노래를 부르면 한이 해소되는 느낌이어서 좋았는데, 이젠 좀 덤덤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