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소방차에서 뿜어내는 물이 닿는 최고 높이는 15층 정도다. 고가사다리차엔 최고 18층까지 도달하는 장비가 있다. 그 이상 되는 고층건물의 화재엔 특별한 대응책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에만 31층 이상 주상복합 건축물이 120곳, 31층 이상 아파트는 76동 있다. 이런 고층건물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은 1일 부산 해운대 38층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를 보고 아찔했을 것이다.
오피스텔 4층 쓰레기집하장에서 시작된 불이 38층 꼭대기까지 닿는 데엔 20분밖에 안 걸렸다. 건물을 치장하느라 콘크리트 외벽에 알루미늄 패널을 달았는데 패널의 속을 채운 유리섬유 단열재와 패널 표면의 인화성 페인트가 불을 위층으로 번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화재경보기는 먹통이었고 대피 안내방송도 없었다. 화재 신고 3분 만에 도착한 소방관은 외벽 유리를 깨고 물을 뿌리라는 주민 요구에 "상부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며 꾸물댔고, 아파트 관리소 직원은 "회장님께 허락받아야 한다"며 지체시켰다고 한다.
앞으로도 제2롯데월드·상암DMC랜드마크·용산국제업무지구·인천타워·부산월드비즈니스센터 등 100층 넘는 초고층 건물이 속속 들어선다. 무엇보다 고층건물 중간중간에 화재에 대비한 피난층을 두는 일이 시급하다. 한 층을 통째로 비워놓은 피난층을 만들고 거기에 비상전원으로 움직이는 내연성(耐燃性) 피난 엘리베이터와 가압(加壓) 소화전을 설치하고 1층과 옥상으로 연결되는 직통 계단을 만들게 해야 한다.
두바이의 160층짜리 부르즈 칼리파는 25층마다, 타이베이 101빌딩은 8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을 뒀다. 우리는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한 '초고층 재난관리특별법안'에 피난층 설치규정을 뒀으나 50층 이상에만 적용했다. 정부는 건축법 시행령에 30개 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도록 해놓고도 설치기준 시행규칙은 만들지 않아 유명무실 상태다.
해운대 화재는 화재 방지와 진압 대책이 없이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은 불기둥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경고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