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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 상태로는 저녁 내내 그렇게 춤을 춘다는 건 무분별 한 짓이야. 레드."
그가 비누로 손을 씻으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애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어. 거들을 입지 못하게 해.
그리고 특히 꽉 조이는 건 절대로 안 돼.
저애 임신한 지 얼마나 됐지? 삼 개월, 사 개월?"
바로 그 순간 킨테로스 박사의 머릿속으로 끔찍한 진실의 첫 번째 암시가 방울방울 독이 퍼지듯 신속하고도 결정적으로 스쳐 갔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욕실 안에서의 침묵이 전기 불꽃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레드가 얼어붙은 듯 꼼짝도 않고 서서 믿을 수도 없을 만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그의 얼굴이 입술까지 뒤틀려 있어서 기괴해 보였다.
"삼 개월, 사 개월이라니요?" 그는 조카사위의 더듬거리는 목멘 소리를 들었다.
"유산이라니요?"
킨테로스 박사는 발밑에서 땅이 꺼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멍청하고 주변머리 없는 바보 같으니!
그는 자신을 저주했다.
그제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분명하게, 그 모든 일 - 엘리아니타의 약혼과 결혼 -이 불과 몇 주 동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는 안투네스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천천히 손을 말리면서 마음속으로 적당한 거짓말, 이제 막 뛰어든 지옥으로부터 조카사위를 구해낼 적당한 변명을 절망적으로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껏 자기 귀에도 똑같이 어리석게 들리는 말밖에는 꺼낼 수가 없었다.
"엘리아니타는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분명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하지 말게. 그앤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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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머릿속으로 이번 일은 그가 젊었을 적부터 지키려고 노력해온 도덕 규범과, 사람을 판단하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편이 낫다는 원칙을 시험해보기에 알맞은 기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아연실색했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심하게 놀랐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어째서 그토록 예쁜 처녀가 갑자기 멍청한 녀석에게 시집을 가기로 작정했는지, 또 어째서 파도타기의 명수이자 부근에서 가장 잘생긴 젊은이에게 이제껏 홀딱 반했거나 심각한 사이가 됐던 여자친구가 하나도 없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리카르도가 기특하게도 제 여동생의 보호자로서 맡은 역할을 아무 불평 없이 열성적으로 이행했는지가 이제는 불을 보듯 명확해졌다는 생각을 떠올렸고, 그러는 사이 가슴속에서, 아니 그보다는 숨겨진 감정 속에서 애정과 뒤섞인 억누를 수 없는 연민과 자비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향기로운 담배 연기 냄새를 맡고 기분 좋게 속이 화끈해지는 위스키를 홀짝이면서 그는 리카르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로베르토를 설득하면 리카르도를 외국으로, 그가 과거를 잊고서 새롭고 흥미있는 일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예를 들면 런던 같은 도시로 유학 보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신랑 신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걱정이 되었고 궁금해서 애가 달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던 해답을 얻지 못한 의문의 소용돌이는 음악이 조금씩 조금씩 그를 도취시켜감에 따라 점점 희미해지면서 멀어져갔다.
레드 안투네스는 그날 밤 당장 그의 무분별하고 생각없는 배우자를 버리게 될까?
어쩌면 벌써 그렇게 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저 입 꾹 다물고, 그토록 끈질기게 쫓아다녔던 믿을 수 없는 여자와 함께 지냄으로써 자기가 보기 드물게 고매하거나 보기 드물게 멍청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일까?
그 엄청난 추문이 공공연하게 퍼져나갔을까?
아니면 정숙한 척하는 위선의 베일과 짓밟힌 자존심이 산이시드로에서 벌어진 이 비극을 언제까 지고 숨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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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하나 떠올랐는데요. 경사님."
아레발로의 이빨이 추워서 떨듯 딱딱 부딪쳤다.
"이 친구를 도망치게 하는 겁니다.
우린 이 친구를 죽였다고 하면 될 거고, 또, 왜 시체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적당히 꾸며댈 수 있을 테니까…”
리투마가 권총을 뽑아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자네 나더러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라는 건가?"
경사가 호통을 쳤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총구로 검둥이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그러나 이 초, 삼 초, 사 초가 지났어도 그는 총을 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명령에 복종할까? 총성은 울리게 될까?
그 수수께끼 같은 밀입국자의 시신이 썩어가는 쓰레기 더미 위로 구르게 될까?
아니면 그는 목숨을 건지고서, 리투마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롭고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망연히 서 있는 사이, 지독한 악취가 풍기고 파도 소리 요란한 바닷가를 따라 그 도시 밖으로 갈팡질팡 미친 듯이 도망치게 될까?
엘카야오의 이 비극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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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우리가 아주머니와 조카 사이인 것은 다만 그녀의 언니가 우리 삼촌에게 시집을 와서 그렇게 된 것뿐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그녀는 세시 라디오 연속극에서 산이시드로 출신의 어떤 기가 막히게 잘생긴 파도타기선수 청년이 자기 동생과 관계를 가진 데다 끔찍하게도 임신까지 시켰다는 얘기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언제부터 라디오 연속극 같은 걸 다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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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는 걸 모르시오?" 판사가 밀고 나갔다.
"그 편지따개를 돌려주시오."
"저는 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이걸 빌렸습니다."
구메르신도 테요가 조용히 설명했다.
판사와 비서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피고인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나사렛 예수 같은 표정이 서려 있었다.
오른손에 든 칼이 끔찍하게 불길한 빛을 발했다.
그의 왼손이 천천히 바지 앞춤으로 내려가 지퍼를 열었고, 그러는 사이 그의 입에서 고뇌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동정입니다. 판사님. 저는 이제껏 단 한 명의 여자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죄를 짓는 데 쓰는 걸로 오직 소변만을 보았…”
"멈추시오!" 살디바르 박사가 무시무시한 예감이 떠올라 그의 말을 잘랐다.
"당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이게 저한테는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증명하려고요. 이걸 잘라서 쓰레기통에 던질 겁니다."
피고소인이 턱으로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괜한 자만심이 아닌 조용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판사와 서기는 놀라 입을 쩍 벌린 채, 말문이 막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구메르신도 테요는 이제 왼손으로 그 범죄의 주체를 붙잡고, 마음속으로 사형수의 목을 향해 내리칠 궤적을 그리며 도끼를 휘두르려는 사형 집행인처럼 칼을 치켜든 채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진실을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그 일을 실행에 옮길까?
그래서 단번에 자신의 완전성을 해치게 될까?
그는 윤리적이고도 절대적인 증명의 방법으로 자기의 몸과 젊음과 명예를 훼손시킬까?
구메르신도 테요는 리마에서 가장 존경받는 판사의 집무실을 희생의 제단으로 바꾸어버릴까? 이 법정 드라마는 어떻게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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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아래쪽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바닥에 쓰러진 채, 자기의 상속자들이 난폭한 발길질로 공격을 가하고 아내와 딸들이 그를 해치우기 위해 빗자루, 먼지떨이, 난로 불쏘시개로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온 세상이 다 미쳤다는 것 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미처 떠오르기도 전에, 자기를 미치광이, 노랭이, 더러운 짐승. 쥐잡이꾼이라고 욕하는 두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한마디 한마디 욕을 할 때마다 박자에 맞춰 발길질을 해댔다.
그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을 때 거실 한 모퉁이의 눈에 띄지 않는 구멍에서 느닷없이 조그만 회색 훼방꾼이 튀어나왔다.
하얀 송곳니가 튀어나온 쥐새끼였다.
그 쥐가 밝은색 눈에 고소하다는 듯한 빛을 띠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내를 빤히 쳐다보았다.
페루의 굽힐 줄 모르는 쥐 사냥꾼 페데리코 테스 운사테기는 죽었을까?
존속 살해나 남편 살해가 벌어졌을까?
아니면 그는 단지 기절했을 뿐이고 이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가 앞서 벌어진 난장판 통에 식당 테이블 밑에 쓰러져 있는 사이 식구들은 잽싸게 소지품을 챙겨가지고 희희낙락하여 집과 가정을 버렸을까?
바란코에서 일어난 이 불행한 사건은 어떻게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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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익명의 편지에 호소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한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당장에 내 말을 뭉개버렸다.
즉 신사와 상대할 때는 신사처럼 행동해야 되지만 후레자식을 상대할 때는 후레자식처럼 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올바르게 이해된 명예심이고 그 나머지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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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많이 해보셨습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많이 해보다마다."
그가 입술까지 들어올린 버베나 박하차 잔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단언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여자를 사랑한 적은 없어."
그가 연극조로, 마치 내가 얼마나 순진한지, 아니면 멍청한지를 가늠하려는 듯 말을 끊었다.
"자네는 여자들이 내 정력을 뽑아간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그가 혐오감 섞인 목소리로 꾸짖듯이 말했다.
"자네는 자식과 이야기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매독에 걸릴 위협 속에 살면서 고안을 하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건가?
여자와 예술은 서로 배타적이야.
여자에게 빠지면 예술가는 매장당하는 거니까.
새끼를 치는 데 무슨 즐거움이 있지?
그건 개나 거미나 고양이도 하는 짓 아닌가?
우리는 독창적이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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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 사교계에 자주 드나든 숙녀다운 태도와 말투로, 그녀는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진실에 대한 두려움과 반박을 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는, 그 사건, 소위 ‘사고'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자기들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감추기 위해 사람들이 꾸며낸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설명으로 그를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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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신과는 싸울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전쟁에는 패배자만 있기 때문이죠."
여성 선구자가 말을 이었다.
“당신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그리고 사람들이란 모두 하이에나이며, 훌륭한 사람이란 단지 시치미를 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찾으세요.
당신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이렇게 말 해봐요.
나는 유아 살해범이고 겁쟁이 스피드광이다라고 말에요.
이제 완곡한 말은 더이상 쓰지 말기로 합시다.
내게 그 사고나 바퀴 공포증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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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구엘에서 하마터면 어떤 계집아이를 전차 바퀴 밑으로 밀어넣을 뻔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경찰이 눈에 띄어 그만두긴 했지만요."
그리고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면서 외쳤다.
"저는 이제 범죄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박사님!"
"당신은 벌써 범죄자예요, 젊은이. 그걸 잊었어요?"
여성 심리학자가 한 음절 한 음절에 강세를 두면서 그를 일깨웠다.
그리고 아래위로 그를 훑어본 뒤 흡족한 목소리로 통고했다.
"당신은 치료됐어요."
그제야 루초 아브릴 마로킨은 갑자기 (깜깜한 밤하늘에서 눈이 멀 듯 번뜩이는 번개, 바다로 쏟아져 내리는 유성의 소나기처럼) 자기가 그곳까지 택시로 달려왔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가 막 무릎을 꿇으려는 참에 여성 석학이 그를 말렸다.
"우리 강아지만 빼놓고는 아무도 내 손을 핥지 않아요.
고마운 표시는 그만하면 됐어요.
자. 이제 그만 가보세요.
새로운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며칠 뒤에 내 청구서를 받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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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 부부는 도덕적, 과학적 조언을 얻기 위해 발뒤꿈 치에 프로펠러를 달고 아세밀라 박사에게로 날아갔다.
박사는 조금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들의 말을 끝까지 다 들었다.
"당신은 유치증을 앓고 있는 동시에 잠재적인 유아 살해 상습범이군요."
그것이 그녀의 능숙하고도 간결한 처방이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하찮은 증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그걸 치료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쉬우니까 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태아에게 눈이 생기기 전에 괜찮아질 거예요."
그녀는 그를 치료할 수 있을까?
그녀는 루초 아브릴 마로킨을 그 망령 같은 증세에서 해방시켜줄까?
아이들에 대한 혐오증과 잠재적 유아 살해의 치료법은, 어쩌면 그를 바퀴 콤플렉스와 죄를 지었다는 강박관념에서 구해주었던 치료법처럼 위험한 것이 아닐까?
산미구엘에서 벌어진 이 사이코 드라마는 어떻게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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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새벽 마그달레나델마르에 있는 빅토르 라르코 에레로 정신병원의 어느 복작거리는 병실에서, 연금을 받고 살게 될 때까지 오랜 세월을 그곳에 갇혀 보낸 어떤 환자가 해부용 메스로 남자 간호사의 목을 베고 옆자리 침대에서 자고 있던 긴장증에 걸린 노인을 목 졸라 죽인 뒤, 운동선수처럼 정신병원의 담을 뛰어넘어 시내로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그의 탈출은 그가 언제나 남다르게 조용했고 화를 내는 기색 한 번 보인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언성을 높인 적도 없었으므로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삼십 년 동안 그가 보였던 단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행동은 림피아스의 신부에 대한 경의로 있지도 않은 미사를 집전하면서 실제로는 없는 성체 배령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성체의 빵을 나누어준 것이었다.
정신병원에서 도망치기에 앞서 루초아 브릴 마로킨 - 이제 막 인간이 지상에서의 삶을 즐기도록 주어진 가장 탁월한 나이에 이르러 쉰번째 생일을 맞은 - 은 지극히 공손한 작별의 편지를 한 장 남겼다.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만 저는 이곳을 벗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리마의 어느 낡은 집에서 불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열정이 횃불처럼 타오르는 절름발이 여인과 그녀의 가족이 하느님을 몹시 언짢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불을 끄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할까?
그 불꽃을 끄게 될까?
세월의 밑바닥에서 다시 떠오른 이 남자는 지금 베르과 가족을 두려움에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그들을 또다시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위해 나타날 것인가?
아야쿠초에서 온 이 공포에 사로잡힌 가족에게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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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안 베르과는 굳히 잠든 채 조카 - 자기 동생을 강간함으로써 근천상간의 죄를 저지른 데 대한 후회로 마침내는 리마의 빈민가(멘도시타였던가?)에서 가톨릭 성직자가 된 - 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전직 산파였던 안젤리카가 세페리노의 명령에 따라 강한 마취제를 놓은 탓에 개신교의 궁전을 불붙은 쥐덫으로 바꾸어버리려는 리투마의 망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목사관이 밀봉되자 엘치리모요 출신 남자는 자기 손으로 휘발유를 끼얹었다.
그러고는 가슴에 성호를 긋고 나서 성냥불을 켜들고 집어던 질 참이었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그는 멈칫했다. 전직 경사인 리 투마, 사회사업가. 전직 낙태 시술자, 그리고 멘도시타의 개들은 그가 별빛 아래서 훌쭉하고 수척한 모습으로, 눈에는 고통스러 운 빛을 담은 채 손가락 사이에 불붙은 성냥을 쥐고 그의 적을 태워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떻게 할까? 불붙은 성냥을 던질까? 세페리노 우안카 레이바는 그 멘도시타의 밤을 불타는 지옥으로 바꾸어버릴까?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와 공공의 선에 바친 그의 일생을 망치게 될까? 아니면 그의 손끝을 뜨겁게 하고 있는 그 조그만 불꽃을 혹 불어 꺼버리고 벽돌집 문을 연 다음, 개신교 목사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까? 이 빈민가의 우화는 어떻게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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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에는, 흠잡을 데 없는 근무 기록을 가진 치안 관리가 자신의 경험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안녕과 질서가 깨졌을 뿐 아니라, 아초 광장과 그 주변이 매장되지 않은 시체들의 묘지로 변했다
는 사실을 비참한 심경으로 헤아리면서, 마지막 남은 총알 로 자신의 머리를 박살내어 (배와 함께
해저로 가라앉는 늙은 해적처럼) 생을 (남자답지만 훌륭하지는 못하게) 마감했다.
자기네의 우두머리가 목숨을 끊는 광경을 본 순간 경찰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규정과 단결심과 기관에 대한 충성을 잊은 채, 제복을 벗어 던지고 시체에게서 벗긴 사복으로 신분을 감춘 뒤 도망칠 궁리를 하기에만 바빴다.
그들 중 많은 수가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하이메 콘차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해서, 생존자들이 먼저 그의 불알을 까버린 뒤 그가 가슴에 차고 있던 가죽 벨트로 그를 투우장 문의 가로대에 목 매달았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도널드 덕』을 읽던 점잖고 근면한 백인 대장은 성난 구름이 잔뜩 몰려들어 언제나처럼 겨울 가랑비를 뿌리기 시작한(마치 그간에 일어난 사건과 조화를 이루려는 듯) 리마의 하늘 아래서 앞뒤로 흔들리며 매달려 있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장엄한 살육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불사조(암탉?)처럼 새로운 에피소드와 근절할 수 없는 등장인물을 통해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날까?
이 황소자리의 비극은 어떻게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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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사는 십 분 넘게(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가 있었지만 마침내 양손에 술병을 하나씩 움켜쥐고 돌아왔다.
이제 의식이 계속될 수가 있었다.
증인이 서명하고 나자 읍장은 훌리아와 내게도 서명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민법전을 펼쳐 들고 촛불 가까이 바짝 갖다 대더니 기록부에 글자를 적어넣었을 때처럼 천천히 남편과 아내의 권리와 의무에 관련된 조항을 읽어주었다.
드디어 그가 우리에게 결혼증명서를 내주면서 우리가 남편과 아내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키스했고 다음에는 증인들과 읍장이 우리를 얼싸안았다.
운전사가 이빨로 술병 마개를 땄다.
잔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병에다 입을 대고 한 모금씩 마시고 옆사람에게 건넸다.
그런데 택시로 친차까지 돌아오는 길에 - 우리 두 사람은 행복 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 하비에르가 재수없게도 휘파람으로 웨딩마치를 불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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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수녀와 리카르도의 죽음(피도 베일도 남아 있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수난의 도래)은 훨씬 더 비극적이었다.
불길이 꺼질 줄 모르고 계속 타오르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은 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 반면, 그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질식되거나 짓밟히거나 불에 타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불길이 가라앉았을 때 잿더미와 빽빽한 연기구름 속에서 두 연인은 시체 더미에 둘러싸인 채 여전히 포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리로 빠져나갈 시간이었다.
리카르도는 헐떡이는 파티마 수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사나운 불길에 벽이 갈라진 틈 중 한 곳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그녀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연인들이 채 몇 발짝을 떼어놓기도 전에 (육식을 즐기는 땅의 비행일까, 하늘의 정의일
까?) 그들의 발 아래에서 땅이 아가리를 벌리며 하품을 했다.
카르멜리테스 수녀원의 수녀들이 죽은 자매들의 뼈를 보관해두고 있던, 식민지 시대 양식의 납골당을 덮는 뚜껑 문이 불길에 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구멍을 통해 (사탄의?) 오누이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뼈를 담아둔 단지에 부딪혀 박살나버렸다.
그들을 데려간 것은 사탄이었을까?
지옥이 그들 사랑의 종차역이었을까?
아니면 주님이 그들의 끔찍한 고통을 가엾게 여기시고 천국으로 불러들인 것이었을까?
피와 노래와 신비와 화재가 어우러진 이 이야기는 끝났을까, 아니면 외계에서 벌어지는 후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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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일어섰고 나도 일어섰다. 불안한 침묵이 이어지다 가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타자기 소리에 끝이 났다. 말을 더듬으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대학 졸업장을 따겠다고 약속했고, 아버지는 훌리아와의 결혼을 승낙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잠시 망설인 끝에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아버지의 사무실을 나서자 나는 한달음에 중앙우체국으로 달려가서 홀리아에게 전보를 쳤다.
‘아버지께서 사면 내렸음. 곧 비행기표를 보낼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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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습니다. 페드로 카마초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몹시 심란한 기분이 되었다.
"제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입니까?"
"당신 또 괜히 기억상실증인 척하지 말라고."
파스쿠알이 방송작가의 등을 철썩 때렸다. 비틀거릴 정도로 세게.
"당신 브란사에서 이 사람한테 늘 커피를 얻어 마셨던 것도 기억 못 해?"
"아니, 그게 아니라 버베나 박하차였죠.”
나는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나를 알아보는 듯한 어떤 조짐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해서 주의 깊게 페드로 카마초의 얼굴을 살피며 농담처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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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입안이 화끈거리게 매운 갖가지 페루 음식이 나왔고 얼얼해진 입안을 차가운 맥주로 씻어내렸다.
그리고 외설스러운 이야기며 지나간 시절의 일화, 이런저런 사람들에 대한 온갖 뒷얘기, 정치를 꼬집는 풍자 따위가 빠지지 않고 조금씩 오간 뒤에, 나는 다시 한번 편집장의 유럽 여자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어야 했다.
한번은 술에 취한 레바글리아티 박사가, 마흔 언저리 나이에도 아직 굉장히 매력적인 빅 파블리토의 아내를 너무 심하게 집적거리기 시작해 하마터면 주먹다짐이 벌어질 뻔했지만, 내가 있는 재간 없는 재간 다 짜내 페드로 카마초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돌림으로써 그 셋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내가 올가 아주머니와 루초 삼촌(그들은 내 아내의 언니와 형부에서 내 장인, 장모로 바뀌어 있었다) 댁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이슥할 무렵이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고 절망감을 느꼈다.
사촌 파트리시아가 잔뜩 못마땅한 기색을 띠고 나를 맞았다.
그러더니 내가 소설 쓸 자료를 모은다는 핑계로 자기를 감쪽같이 속이고서 훌리아를 만나고도, 집안 식구들이 홀리아가 파렴치한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입을 봉했을 가망성도 얼마든지 있는 거 아니냐며 나를 윽박질렀다.
그러나 파트리시아는 훌리아가 파렴치한 죄를 저지르는지 아닌지 조바심이 나서 조금이라도 마음 놓고 있지 못하고, 만일 다음번에 내가 마누엘 아폴리나리오 오드리아 장군의 연설문을 읽으러 국립도서관으로 간다면서 아침 여덟시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 여덟시에 핏발 선 눈으로 술냄새를 풍기면서, 더군다나 손수건에 립스틱 자국이라도 묻혀가지고 돌아온다면 내 눈을 후벼파거나 쟁반으로 머리통을 깨버릴 것이었다.
내 사촌 파트리시아는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일이면 무슨 짓이건 다 할 수 있는 당찬 여자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