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로시즈 / 마리 오스몬드
I realize the way your eyes deceived me
with tender looks that I mistook for love
사랑으로 착각하게 만든
당신의 부드러운 눈길..속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So take away the flowers that you gave me
And send the kindness that you remind me of
그러니 당신이 나에게 준 꽃들 가져가세요.
내게 기억 될수 있는 당신의 다정함을 돌려보냅니다.
Paper Roses, Paper Roses
Oh, how real those roses seem to
be But they're only imitation
like your imitation love for me
종이로 만든 장미는..
보기에 진짜처럼 보이지만..진짜가 아니듯
나를 위한 당신 사랑도 진실이라기 보다는
그저 모조품일 뿐입니다
70년대..
학교 인근에 장미라는 다방이 있었다.
꽤 큰 다방이었는데..항상 사람들로 바글바글~~
그때는 내수도 그랬고,해외시장도 그랬고..아마 경기가 좋지않았나 싶다.
한마디로 취업도 쉬웠고..돈벌기도 좋았던 시절~~당시 나는 이 장미다방 단골이었는데..
그곳에가면 가끔 마리 오스몬드의 "Paper Roses" 이곡을 들을 수 있었다.
----------------------------------------------------------------------------------------------------------------------
1년 묵어 진학한 대학
유신정권때라 그런지 그리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다.
입학하면서 다른 애들처럼 다방에 드나들고
이른바 미팅에도 나가보고..하지만 그런식의 놀이에는 별 흥미가 없었나보다.
이때는 ABC라고..술과 당구,담배가 교양필수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그런거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별종이었을까?
봄바람이 세차던 4월..
바람직하게 사느냐~바람나게 사느냐~기로에 선 나!
그런데..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미팅과 축제가 나를 유혹해도
중간고사가 날 불러세워도
나는 골방으로 들어갔다.
흩어지려는 마음을 고시공부로 바로 잡는다고..
1년 안에 끝내고 전공에 매진..공부란게 뭔지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고시공부 겨우 1달하고 덮어버렸다.
그건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거다.
아니~그런 이유보다는 어느 묘한 분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인데..
권법..
기말고사를 보는둥 마는둥 입문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성룡도 당시
한국에 머물며 스턴트맨 일을 할때라니
같은 무술인(?)으로 서울이란 곳에서 함께 숨을 쉰셈..
아무튼
얍~~얍!
하지만 그것도 1달이 전부였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남미 혁명사에 코를 박고 1달을 보냇다.
아마 이때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해방신학이니 뭐니로 열공할 때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일도 내겐 1달이상 코박고 말고할 가치있는 일이 아니었다.
창밖으로 빛나는 가을이 다가와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가을은 사람 마음을 춤추게 하는 계절..
강의실이나 도서관은 계절의 적일뿐!
이무렵 내 주변에 "ㄱ"이라는 날라리가 맴돌고 있었다.
"ㄱ"군의 여성 편력은 무협지처럼 끝없이 길고 무궁무진..
나는 그녀석과 장미다방에 출근하기 시작한다.
장미다방..
웬 아새끼들이 그리 많은지
공부는 않고 언제나 북새통..
그곳에서 나는 음악을 듣고
"ㄱ"군이 데리고 온..수시로 멤버 교체되는 이쁜 여자애들 조잘대는거 듣고..
그 생활 4개월하니 한해가 가고..1학년이 마무리 되었다.
1학년 평점 2.0...출석일수 약 50 일...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장미다방에서의 놈팽이 생활 4개월..
회고해보건대 그때가 성년이되어 유일하게 놀아본 세월..
그리보면 일평생 일만 한것은 아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다.
*
혈기왕성하던 시절..
그때는 목표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성(異性)을 향한 감성의 격한 흐름이
언제나 목표를 표류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나 봅니다.
장미다방에서의 인내시험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후 40여년 세월이 흘렀군요.
그런데 묘한 것은 4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감성의 흐름에는 별 변화가 없다는 겁니다.
이성(理性)적으로 크게 성장하지도 못하는 인생..
그런 인생의 감성은 가을에 특별히 취약해 보입니다.
**
정규교육과정과 어찌보면 담쌓고 살아왔던 세월..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함에.. 행운이란 생각을 합니다.
알게 모르게 좌충우돌하며 살아왔던 세월..
부모님이 주신 생명이 대체로 고통 수반되는 삶이었지만
그래도 의미 있었다는 생각에 이 또한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첫댓글 70년대 대학가 풍경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많이 봤지만,
실지로 듣기는 처음이네요.
저의 70년대는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팝송이나 포크송이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해 다시 듣고 별밤에 관제엽서를 보내 팝송을 청해 듣던 시절이었어요.
80년대 초에 잠시 캠퍼스를 밟았던 시기가 있고,
남포동 무아다방에서 해양대학교 학생과 미팅을 하던 날,
그 남학생이 청한 팝송이 뭐였던가? 기억이 아련한데,
부산에 그렇게 큰 음악다방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남학생의 애프터 신청에 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미팅 대타였고, 상대는 2살 연하여서 죄책감에 약속날에
펑크를 냈어요.)
고시에 매진해서 애초의 목표대로 이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젊은 날의 방황의 한때도 현재의 가을이오면 님의 건강한 인생항로의
한 축이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의미있는 과정이 아니었나합니다.
마리 오스몬드의 페이퍼로즈가 귓전에 울리는 듯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정성 가득 담긴
첫댓글 감사합니다.
우린님 말씀처럼
우리들과 같은 또래인 마리 오스몬드의 그 노래..
생각만해도 귓전 울리고..추억 속으로 잠기게 됩니다.
말미에 할말 다했습니다만..
자신의 인생에 의미 부여하며
부모님 사랑을 생각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군요...
감사합니다!
장미 다방 가자 장미 여관으로~ 마광수 즐거운 사라~ ㅎㅎ 그 시절엔 고뇌와 갈등 허무와 방황으로 어지러이 보냈어도 그런 몸부림이 있었기에 오늘의 가을님이 .. 젊음은 뭐든 용서가 되고 뭐든 참아 줄만합니다 아름답잖아요
ㅎㅎ.예 그렇습니다.
마광수 교수..그시대 가장 유명한 분중 한분이었죠.
그분을 생각하면 ..사람은 멘탈이 강해지도록 자신을 단련할 필요 있다~~이런 생각도 하고요.
글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저는 사실 학교 정규과정을 밟았지만..마음과 행동은 늘 학교 밖에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아웃사이더이고 ..검정고시 출신과 유사한 부분도 많고요..ㅎ
운선님..저녁 맛있게 드십시오~~~
저는 70년대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디제이가 있는 음악다방이나 레지들이 옆에 앉아 유혹하는
다방에도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
신청하신 음악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rk9EOafsLVo?si=_8fifmxDUK5sbF4b
PLAY
ㅎㅎㅎ
저도 누구보다 여자에 관심 많고 좋아하지만
자학이라 할 정도로 여자를 멀리해 여자를 잘 모릅니다.
일찌기 이른바 꽃밭에서
즐거움 만땅이셔서 그랬는지 그산님 결혼시기가 늦었어요..
35에 하셨다는 말을 듣고..하기사 저도 32에 결혼했습니다만..
그나저나 그산님이
매번 음악으로 제 글을 많이 살려주시는거 같습니다..감사합니다.
페이퍼 로우제스, 저 이 노래 곧잘 불러요^^
멜로디가 어렵지 않고 가사도 음률과 잘 맞아 떨어져서
여고 때 영어 선생님께 배운 뒤로 지금껏 안 잊고 부를 수 있습니다.
디제이가 신청곡을 틀어주던 그 시절 다방들,
교회 청년회원들과 주일 오후에 꼭 가던 서대문로터리 예전 다방,
우리 동네 한복 입은 마담이 서빙하던 청자 다방..
갑자기 그 시절 그 다방들이 그리워 뭉클합니다.. ^^
아..그러세요?
제가 얼핏 듣기로 윤슬하여님이 노래 잘 부르신다는데..
달항아리님도 왠지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가창실력 같습니다.
지금도 안 잊고 부를 수 있다는
마리 오스몬드 그녀의 그 노래..멋진 달항아리님의 노래로 한번 듣고 싶습니다만..
그 염원 이뤄질런지..ㅎ
저녁 맛있게 드시고
오늘 하루 행복으로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옛 추억속으로ᆢㅎ
예..
산사나이님의 청춘은
화려하고 낭만 가득했을거라 믿습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바람직하게 사느냐
바람나게 사느냐
그 기로에서 장미다방을 열심히 드나드셨다는 정도만
알고 있겠습니다.ㅎ
ㅎㅎㅎ
그때 바람소리나게 살았더라면
이 추운 겨울
전후좌우 여복 속에..아주 따뜻하고 포근했을텐디~~
아쉽구려~~~
음 글을 읽으면서 난 그때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 보게되는
하긴 고등학교 졸업후 사관학교 마지막에 떨어지며 참 많이 방황하다 군대 끌려갔지요
육사 진학햇으면 최소 군단장은 했을 분인데..
통신가설병.. 그거 힘 많이 든다던데.. 수고 많이 하셨소.
이 사람도 중학교까지는 한번 엎는다고..ㅎ.. 육사를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