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육신은 세상에서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교만하여 집니다. 이것이 육신의 죄악 된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아짐에 대하여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힘으로 겸손해지는 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겸손함이 또다시 교만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육신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롬 8:5-8]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하는 모든 것,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이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롬 5:12-14]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육신의 근원이 되는 아담이 범죄자가 됨으로 인하여 아담으로부터 낳음을 받게 된, 모든 사람이 죄의 유전 받아 죄인 되어서 사망이 육신의 왕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모형인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육신의 몸으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람을 다시 영원한 생명으로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아주 큰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같이 증언합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은 신처럼,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께 베풀어 주신 은혜를 이용하여 자신을 세상의 높은 자리에 가지 않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이 일입니다.
[행 21:8-14]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은 결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큰 육신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 장애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하게 고침 받기를 간구했습니다.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의 가시를 성경의 해석자들은 여러 가지로 형태로 봅니다. 그것을 종합해 보면, 바울의 가시를 육체적인 장애와 영적인 면에서 사탄과 싸우는 영적 전쟁으로 육신의 죄에서 나오는 영적 방해에 의한 가시로도 해석합니다.
[롬 7:21-25]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아무리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능력자로도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육신은 육신의 통제 속에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랑한 이 자랑입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의 자랑은 영적인 삶을 위하여 육신의 삶에서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날마다 죽어야 했습니까?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능력의 은혜는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지기는 능력의 은혜입니다. 약한 것이 왜 능력입니까? 바로 이런 면에서 능력이 아닙니까?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약한 것들을 자랑함은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신에게 머물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자신의 육신의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 위함입니다. 이 삶은 바울의 삶뿐만 아니라 곧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삶은 내 육신의 능력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나를 인도하는 삶, 즉 영적인 삶입니다. 영적인 삶은 색다른 삶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 친숙한 삶이 되어야 할 영적인 삶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정확하게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요 3: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신의 삶이 영의 삶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믿음의 삶은 육신의 삶이 아닌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삶 어려운 것인가요? 아닙니다.
[요 3:14-16]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충만으로 세상의 것을 얻으려 힘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상과 영적 싸움을 통하여 세상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에게 있어서 세상에 당하는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당함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증언이 무엇입니까?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증언합니다. 어떻게 가장 힘들 때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에 믿음의 능력은 육신의 힘이나 정신력에서 나오는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에서 나오는 능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환란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능력으로 강하여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함은 곧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영으로 세상의 모든 고난을 헤쳐 나아 가는 능력의 삶이 바로 우리 믿음의 삶입니다.
[롬 8:12-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 믿음의 삶은 “내가 약할 때 가장 강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