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내던지지 마소서,다 늙어버린 이때에.
저의 기운 다한 지금 저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71,9).
(서소문 성지 06/23)
시인은 자신이‘노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이 시편은 시인이 노인으로 묘사되는 유일한 시편이다.시편 37,5에서는 노인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다(시편
6,8참조).구약성경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고령의 지표는 약60세에서 시작된다(호스펠트).‘늙고’와‘기운이 다하다’가 평행을 이루는데,이는 늙음으로써 나타나는 체력의 저하를 말한다.육체적인 힘의 약화는 전형적인 노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그런데‘노년’은 본질적으로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사실 고령자는 공동체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하는 소중한 사람이다.“저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간청하는 시인은 노년이 되어 하느님께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한다.그렇지만 하느님은 유년 시절의 하느님일 뿐 아니라 늙은 시절의 하느님이시다.“야곱 집안아,이스라엘 집안의 남은 자들아,모태에서부터 업혀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겨 다닌 자들아.너희가 늙어가도 나는 한결같다.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낸다”(이서46,3-4).
시편71편의 전체적 의미:시편71편의 시인은 기력이 쇠하고 백발이 되어(9,18절)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어려움을 수용하고 전적으로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노인이다.그의 원수들은 시인의‘목숨을 노리는 자들’(10절)이며 그의‘불행을 꾀하는 자들’(24절)로서 그를 적대한다(13절).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희망을 이끌어 내고 있다.그는 자신의 복잡하고 괴로운 인생 경험을 말함으로써 단순히 노인문제만 다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배 속에서 생겨 세상에 나고 자라고 노인이 되기까지의 전 생애를 일목요련하게 다룬다(5.17.18절).이제 그의 문제는 건강을 잃어 늙고 버림받는 것이다.그래서 시인은 노년에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이 시편에서 묘사하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기억과 하느님의 길을 배운 기억(6.17절),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희망(5절)은 신실한 노인들을 위한 더 활기찬 생명의 요소가 될 수 있다(테이트).노인은 외롭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하느님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하느님이 함께해 주시는 노년기는 아름다운 선물이다.이 선물에 감사드리며 노년에 혼자 있는 법을 배우고 고독을 견디기 위해서는 이 시인처럼 하느님을 의지하며 하느님이 동반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2 시편 42-89편/바오로딸)
110. 기술의 전문화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지식의 세분화는 구체적인 적용에는 도움이 되지만,흔히 전체에 대한 감각,사물들의 관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들어, 그 감각이 결국 소용없게 되어 버립니다.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세계의 가장 복잡한 문제들,특히 환경과 가난한 이들에 관한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이러한 문제들은 단일한 관점이나 이해관계로만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중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과학은 철학과 사회 윤리를 포함한 다른 학문 문야의 지식을 반드시 참고해야 합니다.그러나 오늘날 이를 실천하는 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참고할 만한 참다운 윤리적 지평도 깨달을 수조차 없습니다.삶은 점차 기술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 종속됩니다.기술 자체가 존재의 의미를 해석하는 핵심으로 여겨집니다.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 상황에는 환경 훼손,불안,삶의 의미와 공동생활의 의미 상실과 같은 잘못을 보여 주는 많은 증상들이 있습니다우리는“실재가 생각보다 저 중요하다.”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111. 생태 문화는 황경 훼손,천연자원의 고갈,오염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일련의 신속한 부분적 해답들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기술 지배 패러다임의 공세에 대항하는 다른 시각,사고방식,정책,교육 계획,생활 양식,영성이 필요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심지어 최선의 환경 보호 운동도 동일한 세계화의 논리에 빠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개별적으로 나타나는 환경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 방안만을 찾는 것은,실제로 서로 이어져 있는 것들을 분리하고,세계체제가 안고 있는 심각한 진짜 문제들을 숨기는 것입니다.
( 일본 오타루 06/14)
112.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시야를 넓힐 수 있습니다.인간의 자유는 기술을 제한하고 그 방향을 바꾸어 기술이 다른 형태의 발전,곧 좀 더 건전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통합적인 발전에 이바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강력한 기술 지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실제로 가끔 일어납니다.예를 들어,군소 생산자들이 오염을 줄이는 생산 방식을 채택하여 소비 지상주의를 지양하는 삶과 여유와 공동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또는 기술이 다른 사람들의 구체적 문제 해결을 우선 목표로 삼아,그들이 더 존엄하게 덜 고통받으며 살아가도록 돕는 경우도 있습니다.또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이를 바라보려는 의지가 모든 대상을 객관화하려는 힘을 극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이는 아름다움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게는 일종의 구원이 됩니다.새로운 종합을 요청하는 참된 인류애는 마치 닫힌 문 아래 틈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안개처럼 알게 모르게 기술 문명 한가운데 자리 잡는 듯합니다.참된 인류애의 굳건한 저항으로 싹트는 그 기대는 모든 어려움에도 영원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113.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더 이상 행복한 미래를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더 이상 현재의 세계 정세와 기술력을 근거로 하는 더 나은 미래를 맹목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과학과 기술 발전이 인류와 역사의 발전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은 근본적으로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마련해 주는 기회들을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그렇지만 인류는 커다란 변화를 거쳤고,계속 나타나는 새로운 것들은 우리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이끄는 찰나적인 것을 신성하게 여기게 합니다.잠시 멈추어 삶의 깊이를 되찾는 일이 힘들어졌습니다.건축물이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면,초대형 건축물과 획일적으로 지어진 주택 단지는 세계화된 기술 정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여기에서는 끊임없이 넘쳐나는 새로운 상품과 엄청난 단조로움이 공존합니다.이에 굴복하지 말고 모든 것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맙시다.그러지 않으면,우리는 단지 현재 상황을 합리화하여 우리의 공허함을 달래 줄 대체재가 점차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114.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가 대담한 문화적 혁명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알려 줍니다.과학과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아서 한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의도와 가능성들이 개입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석기 시대로 돌아가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그러나 속도를 줄여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받아들이는 것과 더불어,지나친 과대방상으로 잃어버린 가치와 중요한 목표들을 되찾아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홍제 폭포 07/3)
“인간의 언어가 사물을 온전히 쥐지 못하고 엉거주춤할 때 꽃은 저 자신의 운명을 활짝 드러내면서 망설임 없이 핀다.장미나 모란처럼 화려한 꽃이나 민들레,달맞이꽃처럼 수더분한 꽃이나,피어나는 꽃들은 모두 그 생명의 절정에서 거침없다.꽃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의 운명을 펼쳐 보이려고 핀다.꽃들의 운명은 언제나 완성되어 있고,이것이 꽃들이 누리는 자유의 발현이다.인기척 없는 빈산에서도 꽃은 피고,산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피어 있다.”
(허송세월/김훈, 83-84쪽)
(맨발 걷기/인왕산)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엾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개여울/김소월)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