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즈음부터 지나치며 관심있게 보고 있었던 튼튼한 국화분 여러 개가 꽃도 피우기 전에 향기를 내 보내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목 모퉁이를 돌기 전에 큰 건물에서 내 놓은 줄 알았던 그 화분들이 예상을 뒤엎고 앞집에 조그만 상점을 하는 아주머니께서 내 놓은 것을 알았을 때 마음속으로만 계속 내 놓고 있으시라 했지 차마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문을 열고 나오신 일이 있어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온갖 화분이며 정원의 초목도 무성해 보이는 것이 애착도 보통이 아니시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뿔사 꽃망울이 터지겠구나 하고 서둘러 돌아 오던 날 화분들은 길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어이쿠 허망해라. 고운 꽃 나도 보고 우리 아이들도 보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얄밉게도 그 문안으로 들어가서는 제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머니의 악취미가 아닌가 하고 원망도 해 보지만, 갑자기 날이 추워지면서 걱정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문득 생각하니 공짜로 구경하는 주제를 돌아보며 이참에 국화분을 하나 집에 들여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문을 열고 들어 오니 어라? 이게 웬일인가?
현관부터 방안이며 주방이며 할 것 없이 상긋한 국화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안주인에게 물으니 내가 국화타령을 많이 했단다.
내 기억에는 별로 없는데 언제 그랬냐고 하니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핀잔만 들었다.
추석 이후 아이들에게 국화 이야기도 하고, 또 아이들 손 잡고 나가고 들어 오면서 그 앞에 국화분 이야기 한 것을 예민한 우리 안방마님이 귀담아 들었던 모양이시다.
하기사 아이들이 내 손만 잡으려 하니 바깥에 나가면 아이들이 모두 내 차지인지라, 마님은 호젓하게 걸어오고 나는 두 친구의 손에 끌려 휘청거려 소리가 들리기 힘들었으리라. 그리고 화분 앞에 셋이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 하는 모습에서 국화라는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
아무튼 좋다.
덕분에 모니터 옆에는 딸아이가 골라준 한송이 국화가 화면에 생기를 주고, 글 쓰는 서안에는 작은 분청에 작은 키 국화가 야무진 마님처럼 날 보고 앉아 있다.
이만하면 오랜만에 분위기가 되었기에
아이들이 차려보자 했던 꽃차들을 불러 모았다.
늦가을 향취가 서재 안에 가득하다.
2001/11/24
COLLECT99.
**************************
금년에는 국화향을 즐길 여유가 있을까?
이사에, 다른 일에, 날마다 낯선 전화로 일이 생기니
심심치는 않지만, 여느 해 가을보다 신경쓸 일이 많다.
따로 황차를 익혀 잔에 따라 놓으니,
오늘 아침 이 글을 올리면서도
열린 창, 차운 바람에도 따스하고 훈훈함이 새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