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역술인 신해철 선생 이야기를 적었다."<https://cafe.daum.net/Wahrheit/LZpd/83 >
그가 받은 저주의 시작은 공금 횡령이었다. 동아대 1기에 1935년 을해생 돼지띠다. 살아있음 89세다. 60 중반에 죽었다. 2번째 부인에게서 자식 4을 낳았는데 모두 좋은 직장 가지고 시집을 잘 갔다. 자세한 이야기는 위 링크를 참고하라. 부산시청 건축과 공무원으로 있으며 불법 인허가로 엄청난 축재를 했으며 건물을 살 정도 였었다. 경찰조사가 들어오자 사표를 내고 고향 경북 영천에 가서 횡령한 돈으로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였다. 1970년 당시 트럭 10대를 운영할 정도로 부자였다. 영천 지역 최고부자 중 하나였다고 한다. 1950년대에서 1990년대 건축과를 비롯한 인허가 담당 공무원은 떼돈을 버는 구조였다. 모두 뇌물을 받아 먹었다. 그리고 사표를 쓰면 고발이나 수사를 안하는 게 이른바 관례였다. 해서 공무원이 최고라고 입소문이 났던거다. 지금은 법이 완비되어 제일 싫어하는 직업으로 바뀌는 중이다. 뒷 돈 생길 구녕이 안 보여서다. 그래서 인허가 담당이나 건축과는 공무원 사회에서도 최고의 꿀 보직이었다. 국가 공무원 중 가장 많은 뇌물을 받는 직업은 판사였고 그 다음이 검사다. 실로 어마무시했다. 다음이 경찰인데 판검사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일반인이 상상 못할 돈이었다. 경찰 중에서는 도로 단속 경찰이었다.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불법 야적 차량과 속도 위반 단속을 했는데 1년이면 서울에서 집 한채 살 정도의 꿀보직 이었다. 1990년 중반에도 뇌물을 받았다. 속도위반이나 승객 정원초과 단속하며 받는 뇌물이 5만원이었고 하루 평균 50-100만원을 받았다. 2인 일조였는데, 한달이면 천오백에서 3천만원 이었다. 당시 필자 광안연립이 6천만원 이었다. 물론 3천을 둘이 다 나누는 것은 아니고 윗선 서장 이하 과장들에게 상납하는 구조다. 그래도 둘이서 1천은 챙기니 한 달 5백만원은 뇌물로 버는 돈이었다. 지 월급의 4-5배를 뇌물로 벌고 사는 직업이다. 도로에 cctv 달고 없애버린 이유다. 그 다음이 형사과 경찰들 조서 받을 때 뇌물을 받는다. 이른바 촌지다. 이게 1990년 후반까지 존속 되었었다. 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역시 법정비로 사라졌다.(이런거 노무현 정권때 한거다) 요즘은 변호사들이 뒷 돈 거래한다. 돈 많은 상대에게 뇌물 받고 상대에게 유리하게 서류를 조작해 준다. 아님 최근 모 여자 변호사 처럼 재판에 불참하여 지게 만드는 수작을 부린다. 민사소송은 건국 초창기부터 변호사들 장난질에 돈 벌이 수단이어서 정말 좋은 변호사 만나지 않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구조다. 그나마 법이 보안 되었으나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면 여전하다. 소송 당사자가 법에 대해 훤하고 변호사의 불법을 입증하고 녹취할 수준이 안되면 100% 농간에 당한다.
<로스쿨 폐혜에 당한 외환은행 본부장 https://cafe.daum.net/Wahrheit/LZpd/69 >
필자 지인은 경성대 출신 70년생 여자인데 이불 판매점을 하면서 남편 바람에 이혼 요구를 당해 분노의 재혼을 했는데 남자에게 사기 결혼을 당했다. 일용직 노동자에 양아치며 학벌도 중졸이다. 그럴싸한 외모만 보고 연하남과 보여주기식 결혼을 하고 1년만에 이혼 소송을 했는데, 상대 변호사를 매수하여 승소하였다. 상대 변호사에게 2017년 기준 300만원 주고 자기 변호사에게 소송비 300 이외에 200을 사례비로 선지급하였다. 무식한 남편은 뭔지도 모르고 변호사비 300 날리고 패소하였다. 소송은 6개월만에 끝났고 소송 2번째 달에 두 변호사를 한우집에 초대 현금으로 돈을 주었다고 한다. 2번째 남편은 쇼크를 받아 뇌졸증으로 쓰러져 40대에 반신불수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고 한다. 해서 항소를 못했다고 한다. 유전무죄를 잘 활용한 못된 케이스다. 재혼남은 만난지 3개월만에 재혼 하였었다. 주변 친구 동생들은 "네가 첫남편 못잊어 복수의 결혼을 시도하니 남자 구분도 못한다. 두번째 남자 누가봐도 양아치던데 좋다고 결혼 했잖아... 너는 남자 만나지 마라....차라리 첫남편 다시 재결합해라...."라고 했단다.
남편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니 중재를 하던 남편 친구가 말한다. " 그노마 제수씨하고 합치거나 딸들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마 그냥 포기하이소..."
이 여자가 남자를 질리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키가 167이고 예쁘고 날씬하다. 누가봐도 스타일 좋고 예쁘다. 대단한 미모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예쁘다. 그런데 남자 복도 남자 고르는 눈도 없다.
* 병호 아버지가 받은 저주
그는 살아있음 83-84세쯤 되는 택시운전사였다. 옛날 사람이지만 크가 크고 잘생긴 남자였다. 그리고 부인도 미인이었다. 당연히 큰아들 둘째 딸 모두 인물이 좋았다. 아들은 67년 딸은 69년이다. 30초반 단칸방 달세 살면서 운전 하다가 갑자기 집을 한 채 용호동에 장만하였다. 물론 집 값이 제일 싼 데 였지만 난데 없는 돈이다. 70-80년대에 라디오방송에서 자주 나오던 공익 방송이 택시에 돈을 두고 내렸는데 찾아달라는 것이다. 집값과 등록금이다. 70-80년대는 100% 현찰거래였으니 소매치기 때문에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도 합승이 되니 택시에서도 소매치기가 있었다. 손님이 두고 내린 집 값을 쓸적하여 자기 집을 산 병호아버지다.
젊은 나이에 집 장만하니 이 놈은 매날 화투판이다. 화투도 쪼잔함의 극치다. 돈 잃을 상황이면 손털고 집에가고 판쓸이를 하면 개평은 기본만 내놓는 인간이었다. 술은 안하는데 노름을 좋아한다. 필자는 오래전 글에 노름판에 구신들이 살고 주식판에도 노름이니 귀신이 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은 남의 돈 빼앗아 편히 사는 삶이었다. 그리고 한 가정을 파괴한 저주는 서서히 나타났다.
큰 아들 병호는 중학교때부터 양아치가 되더니 고 1때 퇴학 당하여 가출 후 서면 깡패가 되었다. 예쁘게 생긴 딸도 중 3때 바람나서 남자들과 떡을 치고 다니더니 고2때 자퇴하고 룸싸롱 창녀가 되었다. 그리고 병호아버지는 나이 50살에 암에 걸려 고통을 받다보니 "도데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사는가?" 라는 회한에 빠져 자기 인생에서 싸운 사람들을 죽기전에 모두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다. 필자 집에도 찾아와 모친에게 "누님 그때 싸워서 미안합니다...."한다. 모친은 좋아서 므흣한 미소를 띈다. 필자가 볼 때 모친이나 병호 아버지나 50보 백보다. 둘다 똑같았는데 그래도 한참 손위 연장자니 10여년이 지나 사과를 하러 왔다. 그리고 몇년후 그는 죽었다. 50 중반도 못 넘겼다.
그가 훔친 돈, 그의 입장에서는 눈먼 돈이지만, 한 가정이 파괴 되었다. 당시 사람들 꿈이 내 집 가지기다. 찌그러진 판자집이라도 내 집 가지는 게 서민들 꿈이었다. 일가족이 피눈물을 흘렸을거다. 어리석은 그는 참회를 하려면 그 돈을 잃은 사람을 찾아서 해야지 왜 자신과 싸운 사람하고 하는가?
병호 아버지 :
누님 제가 그래도 죄짓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자식 농사 다망치고 나도 몸이 이꼴이 되었네요....(한숨을 쉰다)
병호엄마 : 언니!. 우리 남편 참 열심히 살았는데...전생에 죄가 많은가 봐요....
필자 모친 (대우 받아 신나서) : 그래게 이게 무슨 일이고 두 사람 인물 좋고 복있게 생겼는데....
어리석은 것도 죄다.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한 병호아버지.....돈을 잃어버린 년놈이 잘못이지 주운 놈이 뭔 잘못이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정말 속죄할 것은 안하고 안해도 되는 것만 한다. 이 시대 인간들은 돈에 미쳐서 돈 관리 못한 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며 살았다. 경찰들도 고문을 하면서 "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를 하는데 썩을 놈아..." 했고, 뇌물을 주면 관행으로 받았다. 신해철 선생도 남들 다하는 횡령 같이 했고 관례인데 왜 내가 고통과 벌을 받아야 하냐고 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박정희가 구테타 잘 일으켰다. 공무원 새끼들 다들 횡령 뇌물로 먹고 살았다....그러고 보니 우리 사위도 도둑놈이네....세무 공무원이다. 진짜 도둑놈들이다. 이것들은 지금도 뇌물로 먹고 산다..... 그래도 박정희 이후 많이 좋아졌다..." (그는 경북 사람이다.)
뭔 개소리인지??? 1990년 후반까지 공무원 경찰 판검사 사회는 뇌물상납 성상납이 일반화되던 시기였다. 이 당시는 법인카드로 탈세를 했다. 해서 룸싸롱 창녀들과 마담들 떼돈을 벌었고 신분세탁하여 건물주 되고 검사랑 결혼하고, 공무원과 결혼을 하였다. 노무현이 법인카드 사용을 막았다. 1980~1990년대는 창녀의 시대다. 창녀들이 몸팔아 사모님이 되던 시기다. 80년대는 일본간 고급창녀, 1990년대는 한국에서 돈 번 창녀들....텐프로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시기다. 상위 10%로 창녀라는 말이다. 이거 뭐 새로운 계급 사회인가? 창녀도 등급이 있다. 누가 아랫도리에 등급을 매겼나? 창남은 없나? 있다.... 남자 연예인이다. 남자 텐프로10%다. 텐프로 텐뿌라....오뎅이 텐뿌라다.
2000년대 이후는 중국에 간 창녀들 시대다. 중국의 룸싸롱 노래방은 모두 한국놈들이 가서 만든 거다. 노무현 이후로 법인카드 못쓰니 창녀들이 죄다 중국으로 가서 중국물 다 버려놓았다. 중국 노래방 도우미 매춘도 한국 창녀출신 마담들이 만들었다. 중국 매춘 문화는 한국놈들이 만든 것이다. 에라이....
모든 것이 권불십년이다. 운이 좋을 때는 종횡천하(縱橫天下)한다. 허나 운이 끝나면 떨어지는 낙엽이다.
2023년 4월 28일 紫霞仙人 遊於世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