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의심 않고 순종하면 하나님 뜻을 알 수 있습니다.(행10:17-23)
2021, 8/15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0:17-23절 말씀으로 “의심 않고 순종하면 하나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이제 더위도 조금 꺾인 것 같습니다. 새벽에 추워서 이불을 끌어다 덮었는데, 말복이 지나기전부터 이렇게 빨리 열대야가 사라져 좋긴 하지만 농사가 괜찮을지 걱정은 됩니다. 여름막바지 건강 잘 챙기시고 다가오는 가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17절)
둘째로, 의심과 순종은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20절)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일을 하거나 특히 사업 등을 새로 시작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데,그때 하나님이 속 시원하게 이래라 저래라 알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응답이 없거나,잠잠하면 정말 답답하고 불안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체해 그럴 수도 있겠고,이미 응답해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어느 날 성경을 읽거나, 다른 말씀을 듣다가 그 뜻이 문득 깨달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어떤 일이 터지면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하거나, 기도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 그게 응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릎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주께서 보여주신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가끔씩 사모에게만 이야기해주었는데, 15년이 지나서 신학교등록을 앞두고 망설이는 저에게 그때주신 환상이 소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 뜻을 깨닫게 해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이 과정에서 하나님말씀에 벗어났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확인한 결과 그것이 만약 하나님 뜻이 맞다면 절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말씀이 맞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주변상황에 흔들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순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언제 알 수 있는지, 의심하면 어떻게 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17절)
본문 17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아멘.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정말 생각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율법에는 분명 부정한 짐승을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오늘 환상 속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그것을 먹으라고 그것도 세 번이나 말씀하시니 의심도 되고, 얼마나 헷갈리고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의아해했다. 의심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의심’의 원어적의미는‘나아갈 길이 없다.’는 뜻으로 베드로가 지금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환상을 해석해줄 사람들을 보내주셨는데, 그들이 바로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환상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종들을 따라 가이사랴에 있던 고넬료에게 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종하려는 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뜻을 보여주시되 너무나 명확하고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던 집에 도착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선교의 기폭제로 고넬료를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시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가이사랴에 있던 고넬료가 환상을 본 시각은 오후3시였고, 욥바에 있던 베드로가 환상을 본 시각은 이튿날 정오였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시간적으로 21시간의 차이가 있는데,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는 약50km로 하룻길에 해당합니다. 하인들이 오후 3시에 출발해서 저녁 늦게까지 걸은 후 잠을 자고, 또 동틀 무렵에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면 낮12시쯤이면 욥바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의심하고 있을 때 거의 같은 시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피장 시몬의 집에 당도하는데, 그때 성령의 음성으로 환상의 내용을 깨닫게 된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영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하시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조직되고 구성되어 움직이는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순종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됩니다. 이걸 볼 때 정말 순종하고 싶은데 하나님 뜻을 몰라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몰라도 순종할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이든 동원하여 알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다만 알면서도 내 생각과 자존심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편의 멋진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출연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충실하게 연기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드로와 고넬료, 그의 하인들은 자기들이 맡은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 뜻에 즉각 순종하여 베드로를 초청했고, 베드로는 성령의 지시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낯선 이방인들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고, 고넬료의 하인들은 주인의 뜻을 그대로 베드로에게 전달하여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이 기필코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저들은 차질 없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볼 때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말 영적으로 둔감하여 하나님 뜻을 모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 뜻이나 이익에 맞지 않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해서 순종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순종할 뜻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에 어떤 감동이 오는데도 이게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겠다면, 여러 계산을 하지 말고 일단 무조건 순종해보십시오. 그러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여러분!!! 요7:17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우스개소리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실물크기의 예수님동상이 서있는데, 이 동상 앞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답니다. 그 교회 사찰집사가 자기도 동상이 되어 그 자리에 서보는 것이 소원이라 기도를 하는데 어느날 예수님이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상이 되는 것을 허락합니다.
첫 번째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는 부자였고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날도 도박하러 가는데 많이 따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돈다발이 든 가방을 놓고 갔지만, 사찰집사는 예수님과의 약속 때문에 침묵합니다.
두 번째는 아주 가난한 농부가 와서 자기 아내가 중병이 들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간다고 돈을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옆에 있는 돈 가방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라며 그걸 들고 나갑니다. 사찰집사는 그 돈 가방의 주인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예수님께 순종하느라 참아냅니다.
세 번째는 청년이 배를 타고 번 바다로 돈 벌러 나가는데 안전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기도를 마칠 무렵 돈 가방주인이 들이닥쳐서 청년의 멱살을 잡고 돈 내놓으라며 소리치며 경찰서에 끌고 가려하는데, 청년은 지금 나가야 배를 탈 수 있다며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찰집사는 지금까지 사실을 말해주어 부자는 돈 가방을 찾고, 청년은 무사히 배를 타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이 화가 나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자 사찰집사는 예수님이 그리 화내실 정도로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내가 나서서 꼬인 상황을 바로잡아 문제를 해결해주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내 말에 순종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잘못이다. 네가 개입해서 해결하는 것보다 순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부자는 어짜피 그 돈을 도박장에서 다 잃었고, 농부는 그 돈으로 아내를 살릴 수 있었으며, 청년이 경찰서로 끌려가 배를 타지 않았다면 풍랑으로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셔야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순종하여 복된 삶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의심과 순종은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20절)
본문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아멘.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의심하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베드로에게 도착했고, 이때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의심하지 말고’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왜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 것을 특별히 강조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 하나님께 절대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의심은 갈등을 일으키고 헌신과 순종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아니 순종을 삼켜버리는 순종의 무덤입니다. 마음속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하면 마치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것처럼 주님의 명령에 전혀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삼국지를 보면 강한 상대를 이길 수 없을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 서로 의심하게 만들어 내부를 분열시키는 방법인데, 특히 조조가 이 전법을 잘 썼습니다.
서천의 마초가 워낙 전투와 전략에 능해서 조조가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꾀를 써서 마초와 같은 편인 한수와 이간질시켜 마초를 무찌르게 됩니다.
이처럼 의심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사람을 황폐화시키는 괴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은 신앙을 파탄내고, 형제에 대한 의심은 관계를 파탄 냅니다.
그래서 의심이 들면 바로 떨어내야합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수년, 수십년을 함께해온 담임목사의 말보다는 모르는 사람의 말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에게 아무리 오랜세월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아도 결정적일 때는 목사를 의심하고 다른 이를 더 신뢰하이 신앙을 잃고 이단에 빠지지요.
오늘 베드로도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마음에 의심이 드니 순종으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이렇게 의심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사람들, 형제간의 관계도 뿌리 채 흔들어버리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접근한 사단도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로 하나님말씀에 의심을 품게 만들어 결국 인류를 타락의 길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하나님과 관계도 무너뜨리고, 교회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키거나,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심이란 무기를 자주 사용하여 분열하고 반목하고 싸우게 만들어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의심하면 안 된다는 좋은 예를 보여주었는데, 폭풍우가 몰아치는 갈릴리바다에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가 자기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해 허락을 받고 물위를 성큼성큼 걷다가 갑자기 발밑의 큰 파도를 보고 겁이 나고 의심이 드는 순간 물속으로 사정없이 빠져버립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걸을 때는 당당하게 걸었지만, 큰 파도를 보고 의심하는 순간, 더 이상 주님 명령에 순종하여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물속에 빠져드는 베드로를 향하여 손을 내미시며 하신 말씀이“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였습니다.(마14:31)
여러분!!!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경험을 수없이 많이 합니다. 처음에는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며 생각하고 시작했다가도 막상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이 따르면‘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열심도 식고, 결국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는데, 이러면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육신으로 끝내는 꼴이 되고, 또 마귀 밥이 되어 놀아난 셈이 되며, 결국 하나님 뜻에 불순종하는 결과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을 하면서 의심을 품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눅12:28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심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왜냐면 의심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지며, 믿음이 떠나버리고, 불신과 다툼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의심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옵니까? 이게 옳은 판단일까? 이게 하나님의 뜻일까? 왜 기도응답이 없는 것일까?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수없는 갈등과 의심이 찾아올 때 그걸 이기지 못하고 계속 생각 속에 담아두어 행동으로 드러내면 절대 안 됩니다. 바로 떨쳐버리고 마음을 다 잡아 더욱 더 하나님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셔야합니다.
가데스바네야에서 정탐꾼들의 운명이 바로 말씀을 의심하느냐, 믿고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신다는 약속을 의심 없이 믿고, 나가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했고, 나머지 10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결국 광야에서 죽어야하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이라고 해서 고난이나 시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일지라도 고난과 시련은 언제든지 다가옵니다. 아니 하나님 뜻대로 행할수록 더 많은 고난과 시련이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 마음의 각오를 하시고,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할수록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더욱 큰 믿음으로 주님을 굳게 붙드셔야합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믿음이 바람에 날려 흔들리는 물결 같다면 우리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 그냥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야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순종하여 날마다 주님과 함께 행복한 삶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