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째주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 6.1-6)
초록색 사과가 있다고?
허영민 신부. 의정부교구 신암리성당 주임
어린 시절 부른 노래가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 사과는 맛있어....
그런데 노래를 부르며 사과는 빨개야 하고.
세상에서 백두산이 제일 높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했다.
초록색 사과를 만났을 때.
세상에는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속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선입견이 합리화되고 고정되면 편견이 되고
객관적 사실이 왜곡되어도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당신 고향에서 복음 선포에 실패하셨다고 전한다.
고향 사람들은 그들의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의 새로움을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병자에게 행하는 기적을 보면서도
그분에 대해 먼저 알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출신성분을 기본으로 하는 앎일 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선입견에 머무르지 말고 이웃 안에 새로움을 보면서 살라고 가르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 형제를 용서하라는 말씀은
그 사람이 잘못을 범할 때 나에게 비쳤던 그 미웠던 모습의 선입견을 지우고
지금 그 사람이 발산하는 새로움을 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따금 자비로운 행위라고 믿었던 것이 실제로는
탐욕과 위선이었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사랑``자비`라는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은 사랑이고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가르침은
새로움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의 삶을 사셨고
우리는 그 삶을 보면서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모시려면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과 고정관념.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앞에 있는 상대와 세상에 대한 정확한 앎과 지식이 필요하다.
자신이 만든 폐쇄적이고 옹졸한 틀의 세상에 머물지 말고
그 틀을 넓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 만나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발견하면 다른 세상.
다른 이들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이해하는 힘을 키워나갈 수 있다.
나와는 다른 너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성령께 도움을 청한다.
편향된 반쪽 눈이 아니라 평평한 시야로 사람을.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편견이 많아지는 세상을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