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10억 만들기’가 열풍이다. 온갖 재테크 전략이 창궐하고 있고 너도 나도 최상의 인생 목표로 선택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대부분 소박한 꿈의 경계에 머물던 백만장자의 열망은 이제 체계적인 전략과 일상의 실천 전술로 보통사람들의 삶을 파고들고 있다. 사회적인 병적 징후로 백만장자 신드롬을 평가한다면 그 배후에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한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동산 투기로 하루 아침에 몇 억원 혹은 수십억원을 거머쥐는 졸부들이 속출하고 있고 설령 투기라 해도 앞서가는 전략(?)이 경이의 대상으로 대접받는 사회이다. 우리는 어느샌가 사회적인 현상의 열풍에 동참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으로 느끼는 세태 속에 와 있다. 고달픈 불황기의 서민들도 너도나도 10억원 만들기의 출발선에서 머리띠를 동여매고 허리띠를 졸라맨다. 우선 시드머니(seed money)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종잣돈으로 표현되는 시드머니는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 인수기업을 위해 신규대출을 해주는 것을 의미하지만 요새는 재테크를 위한 초기 자금 정도로 일반화됐다. 10억원 만들기를 위해선 ‘역시 부동산이 최고다’라든가, ‘주식이 더 좋다’는 식의 나름대로 지론이 있겠지만 아무리 좋은전략이라도 시드머니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던가. 한때 은행들이 시드머니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금융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종잣돈 1억원 통장’, ‘적립형 3억원 만들기 펀드’ 이런 식이다. 기존과 내용이 비슷한 상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상술’이라는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사실 서민들이 금융상품을 통해 억대의 시드머니를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 달에 100만원씩을 꼬박 6-7년은 모아야 1억원 남짓 손에 쥘 수 있다. 매달 100만원을 저축할 수 있는 월급쟁이는 많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초저금리 시대에 가계소득은 내리 하향곡선을 긋는 불경기이다. 그래도 백만장자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서민들의 백만장자를 위한 도전은 쉽게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치열한 자기 투쟁의 과정이지만 스스로 물화(物化)되어가고 있음을 깨닫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잘 살기 위한 소박한 꿈을 넘어서서 돈놀이와 이자놀이, 투기 등을 최고선(最高善)으로 치켜세우는데 인색하지 않다. 시드머니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핫머니(hot money)란 말이 있다. 국제금융시장을 떠도는 투기성 단기자본을 말한다. 혹자는 핫머니의 개념을 빌려서 핫머니 사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투기성 단기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글자 그대로 ‘뜨거운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400조원의 부동자금이 갈 곳을 몰라 떠돌면서 아파트와 땅, 각종 펀드 등을 가리지 않고 드나들고 있다. 막대한 자금들이 투기를 통해 비경제적인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고 각종 사회적인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우리 경제에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올 부동자금의 투기자본화는 점점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고개를 돌려보면 산업현장과 서민경제에는 돈이 돌지 않는 심각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빈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당장 경기 부양을 위해선 건전한 투자가 선행돼야 하지만 장사꾼이든, 기업이든 새로운 성장을 창출할 시드머니가 없다. 경제 혼돈의 시대다. 어찌보면 서민들의 시드머니 만들기나 백만장자 신드롬은 핫머니 사회의 또 다른 증후군이다. 이자가 많은 곳을 좇아 돈을 불리고 종잣돈이 생기면 어느샌가 투기 자본으로 변해 투기의 현장으로 달려가곤 한다. 불과 몇년 전, 외환위기 때의 절박한 고통과 간절한 희망을 우리는 벌써 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