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여행] 제주 민속주택 산촌편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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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여행] 제주 민속주택 산촌편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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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파도와 싸우며 살아야 했던 외딴섬, 제주도! 표선면에 자리 잡은 濟州民俗村博物館(제주민속촌박물관)은 오
늘에 살아 숨 쉬는 제주도 생활 풍속의 옛 현장이며 5만여 평의 광활한 대지위에 한 시대가 펼쳐져 있다. 조상들
의 생활풍속과 양식을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온 우리의 전통을 만나고, 그 전통에서 내일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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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의 섬 제주! 三多(삼다/돌, 바람, 여자), 三無(삼무/도둑, 거지, 대문), 三寶(삼보/자연과 민속, 언어, 식물)로 대
변된다, 19세기의 제주도의 생활풍속을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전통취락단지인 산촌, 중산간촌, 어촌 무속신
앙촌을 비롯하여 조선왕조 시대의 목사청, 작청, 향청 등의 지방 관아와 귀향 온 유배 죄인들의 配所(배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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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민속놀이 공연장과 민요, 전설, 방언등 대표적인 무형문화재를 보존, 전승하는 무형문화의 집들이 곳곳에
옛 멋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의 전통 가옥은, 실제로 제주도민이 생활하던 집을 돌 하나 기둥 하
나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옮겨와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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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민속촌, 표선민속마을, 또는 표선리 민속촌이라고도 불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제주민속촌’이라는 명칭이 올
바르다. 그중 유랑자가 민속촌에서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제주도의 산촌이라는 촌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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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마을에 들어서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가 19세기의 "민속"을 말해 준다. 초가는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있
었다. 마당 한편에는 절구와 연자방아 등이 적적함을 달래 주는 듯했다. 산촌마을은 해발 300미터 이상의 준평원
지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반농반목의 생활 형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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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제주도의 자연 취락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주로 해안에 밀
집되어 있고 한라산 쪽으로 오를수록 적어진다. 제주도 초가는 크기에 따라 두 칸, 세 칸, 네 칸 집으로 구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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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울담 안에 배치된 집의 수에 따라 ‘외커리집(一자형)’, ‘두커리집(二자형)’, ‘세커리집(ㄷ자형)’, ‘네커리집(ㅁ
자형)’으로 부른다. ‘외커리집’은 ‘안거리’ 한 채와 부속채로 이루어진 집, ‘두커리집’은 ‘안, 밖거리’를 갖춘 두 채 집
을 말한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마당중심의 이(二)자형으로 마주보거나, 기역자(ㄱ)형태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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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산촌마을에는 ‘막살이집’, ‘북부목축인의집’, ‘남부목축인의집’, ‘사냥꾼의집’, ‘외기둥집’, ‘목공예의집’, ‘연자
매’등이 자리하고 그들을 관람하는 순서로 따라가면서 보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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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옥수수가 초가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알이 통통하게 여문 옥수수의 농부의 마음인양 빈틈이 없다.
아마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위해 남겨 놓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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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돌다보면 주인이 없는 산촌마을은 안방문과 부엌 외양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네 집과 내 집의 구
분도 없었으며, 네 것과 내 것의 구분도 없어 보인다. 다만 연결된 것은 초가와 초가의 지붕뿐이었다. 그리고 뫼비
우스의 "띠"처럼 엮어진 지붕의 고리가 서로서로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계선으로 담을 쌓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비교가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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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살이집이란 제주 방언으로 작은집 즉 오두막집을 가리킨다, 막살이 집은 뒷마루도 없이 마당에서 곧장 방문을
열게 되어 있는 집으로서 대개 방 한 칸에 부엌 하나, 그리고 울타리가 없는 집으로 사람이 겨우 살 정도로 허술하
고 초라한 작은 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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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민초들은 가난에 찌들어 헐벗고 굶주리며 살았고 집한칸 마련하기가 힘들어 처절하게 피눈물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요즘 현대판 아파트에 사는 젊은이들이 보면 그냥 보기만 해도 진짜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은 오두
막집! 그래도 그 당시엔 이런 오두막집에서 문틈 사이로 파고드는 따사로운 햇살과 또한 아늑한 분위기가 있었으
며 나름 큰 꿈을 꾸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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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우리나라가 오늘날처럼 배불리 먹고 살며 기름진 음식에 삼페인을 터트린 것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
고 불과 3~40여 년 전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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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목축인의집은 말 그대로 제주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실 인류는 농사보
다 목축을 먼저 시작했다. 본시 농업 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
채집인들 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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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육된 동물은 양·염소·돼지·소 등의 有蹄類(유제류)의 동물이었다. 이러한 동물의 고기·젖은 식용으로, 피
혁·털은 의복으로, 똥 찌꺼기는 비료로서 유용했다. 더욱이 이러한 동물은 양순하여 사람을 따르기 쉬운 성질을
가졌고, 풀이나 곡물, 인간이 먹고 남은 것을 먹이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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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허벅: 부엌입구에 있는 물 허벅이 당시의 생활상을 말해 준다. 물 허벅은 과거 제주에는 수도가 설치되기 이전
에 멀리서 때로는 이웃마을에서 물을 운반하기 위해 마련된 중요한 생활 용기의 하나이다. 물 허벅은 운반할 때
물이 넘치지 않도록 부리는 좁게 만들고 허리는 불룩한 형태로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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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천 따지 검을 현…. 산간마을에 글 읽는 소리가 메아리 쳐 온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기울여 본다. 열
린 문 사이로 보이는 곳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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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목축은 야생 동물을 길들인 것에서부터의 시작이었다. 농경과 목축은 거의 동시에 기원전 6500년경 개시
되었다. 그렇다면 왜?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이야기 일까? 이 이야기는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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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3년 삼별초의 난이 진압된 이후 제주는 몽고의 영향 하에 들어가게 된다. 제주의 자연환경은 말을 키우기에
최적이었고, 이에 몽고는 관리를 파견하여 본격적으로 말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당시 몽고의 (말 사육) 첨단기술
과 탐라의 초원이 어우러져 제주는 몽고제국의 중요한 목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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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제주는 중요한 말 사육 목장이었다. 탄소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전 말은 중요한 이동수단이었고 특
히,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조선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서 1 소장부터 10 소장까지 나누
어 제주의 목장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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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제주에서는 해마다 방애불(산불)을 놓았다. 묵은 풀을 태워 진드기를 제거하고 소들이 먹기 좋은 부드러운
새 풀이 잘 자라게 하는 연례행사였다. 그 방애불의 덕분일까 제주의 오름 들은 나무들이 별로 없이 풀로 뒤덮인
거대한 초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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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들불축제를 위해 해마다 불을 놓는 새별 오름은 옛 제주 오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치 윈도우 바탕화
면이 떠오르는 모습…….요즘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오름인 이 새별 오름은 한때 피와 살로 뒤덮
였던 전쟁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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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에 상륙한 최영 장군은 이곳에서 목호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당시
제주 인구의 절반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으니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그러나 지금의 새별 오름은 과거를 잊
은 채 그냥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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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집
농부보다 먼저 등장한 인류 최초의 직업이 사냥꾼이다. 농사법이 발견되기 전까지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을 구하
는 최초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사냥할 야생동물에 비해 신체가 약해 도구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인간의 특성상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동물을 제압 및 제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과 끈기, 사냥감에 대한 충
분한 정보, 극한의 순발력이 요구되는 극도의 지식과 숙련이 요구되는 전문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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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전문적이라 하더라도 사냥을 실패하면 식량이 바로 모자라는 상황에 도달하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고 이 와중에 개를 가축으로 들임으로써 추적 성공률을 높인다거나 집단 사냥을
통해서 집단 운용 기술을 얻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진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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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법의 전래 이후 비중이 낮아졌다곤 하지만 원래부터 산이나 숲지기 등을 맡아 왔기에 매일 험한 지형을 타고
다닌 사람들인 데다가 활과 함정을 다루고, 추적에도 능숙하기에 전시에는 진짜 인간 사냥꾼이 되어 정찰과 전투
양면에서 매우 우수한 전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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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총이 사냥꾼들에게 일반화된 뒤로는 더 심해진다.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총을 백날 들고 다니면서 사
냥하는 덕에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사격할 수 있는 뛰어난 전력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사냥
을 하면서 해당 지역의 곳곳을 돌아다녀서 지형지물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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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에 피어 오른 하얀 박꽃이 촘촘히 엮어진 초가의 띠를 붙잡고 덩굴을 키워 간다. 아마 하얀 박꽃은 보름달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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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 포수는 전시에 징집되며 우수한 병사로 평가되었고, 조선시대엔 이러한 병사들을
모아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조총으로 병장기를 바꾸는 와중에 모은 조총부대가 유명했으며 나선정벌 당시 형편
없는 명중률이 상식이었던 당시 총기를 사용해 상식을 뛰어넘는 명중률로 높은 전과를 세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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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이 유용했는지 개화기 때도 흥선 대원군이 포수를 모아서 정예 부대를 만든 기록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나라에서는 사냥꾼의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사냥꾼이 너무 많아지면 잡을 동물이 다 죽어버리
는데, 이는 생태계도 생태계지만 유흥거리로 사냥을 하는 높으신 분들이 즐길 거리가 없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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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냥꾼들은 소수만 존재했고 그 외 나머지들은 본격적인 사냥보다는 토끼나 쥐, 족제비 같이 작은 해로운
짐승들을 덫 등으로 사냥했다. 이런 동물들은 개체수도 많고 농가에 폐를 끼쳐서 따로 금지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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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기둥집 ; 외기둥 집이란 제주도에서 쓰이던 말로서, 재해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지었거나 집을 새로 지어 이사
갈 때 시기가 맞지 않아 짓는 임시건물을 뜻한다. 외기둥을 세워 지었기에 외기둥집이라고도 한다. 말코지 집은
제주도 신화에서 구송되는 청기와 집으로 실제로 1950년대까지 존재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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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방 중앙에 외기둥을 세운 것인데, 제주도에서는 이것을 ‘생기기둥’ 또는 기둥 밑동을
땅에 파묻었다고 하여 ‘백이기둥’이라고도 한다. 방은 통간으로 칸막이 없이 쓰이며 맨땅에서 기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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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새(억새풀)의 종류로 이었는데 예전에는 잎이 달린 나뭇가지나 풀로 덮고 그 푸른 빛깔이 노랗게 되면 다
시 새 나뭇가지를 덮었기 때문에 항상 푸르다는 뜻에서 ‘청기와집’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평면구성은 기둥을 중심
으로 오른쪽이 부엌 공간이 되고 왼쪽은 다시 앞뒤로 나뉘어 앞은 잠자는 공간으로, 뒤는 수장 공간(고방)으로 이
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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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돌담길, 골목길은 이어지고 또한 민속촌 여정도 이어진다. 특히 막살이 집과 목축업의 집. 사냥꾼의 집, 외기
둥 집들을 방문하면서 참으로 고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텃밭에서 여무는 옥수수처럼, 빈 공간에는
누군가가 가꾸어 놓은 채소들이 초가을 바람에 여물 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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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적적한 것은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고 말한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 생각났다.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 뒤로 다정다감하게 쌓여진 돌담이 제주민속촌 박물관에서 가장 여유롭게 보이는 풍경들이다. 그리고 그
돌담 밑에 피어 있는 맨드라미 해바라기 봉숭아꽃등이 초가을의 시작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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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종가 집은 전통 혼례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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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방아:연자방아는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한 가지이다. 연자매라고도 한다. 발동기가 없던 옛날에 말이
나 소의 힘을 이용하여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사용하였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서,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서 돌리도록 되어 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연자방아를 갖
추어 놓고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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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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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은 홈페이지: https://www.visitjeju.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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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홈페이지 :https://jejufolk.com/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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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민속해안로 631-34
*(지번)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40-1
10월 ~ 02월 :매일 입장시간 08:30 ~ 18:00
03월:매일 입장시간 08:30 ~ 18:30
04월 01일 ~ 07월 15일:매일 입장시간 08:30 ~ 19:00
07월 16일 ~ 08월 31일:매일 입장시간 08:30 ~ 19:30
09월 01일 ~ 09월 30일:매일 입장시간 08:30 ~ 19:00
*휴무일:연중무휴
*대표번호:064-787-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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