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아천원
 
 
 

지난주 BEST회원

 

지난주 BEST회원

 

지난주 BEST회원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솔청
    2. 푸른초원
    3. 추상
    4. 작은 정원
    5. 행복한사람
    1. 클로바b
    2. 벌크헤드
    3. 진궁
    4. 연곡
    5. 산야인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분재 스터디 스크랩 녹청자유(綠靑瓷釉=이라보유; 伊羅保釉)와 천광(天光)
차칸토끼 추천 0 조회 189 12.06.27 08: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필자에게 가능한 범위에서 동양 도자유약의 발생과 계통에 따라 천광의 유약 작업과 성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실물의 확인이 필요한 까닭에 입수한 화분이 대상이어서, 천광의 각 유약이나 기법에 대해 몇 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천광의 대표적 작품이나 사례를 들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천광의 작품을 관찰하다 보면 천광은 이미 철필 낙관 시대에 일가(一家)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블랑베진사, 녹반진사 외에도 이 시기에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다수 볼 수 있다. 의욕적 탐구와 실험으로 이른 50대 초반의 연령이니 당연히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근래에 들어 마무리가 거친 모습이 이따금 보이는 것은 병고(病苦)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한다.

 

잘못은 많은 분들의 참여에 의해 바로잡아질 것이고 미흡한 부분 또한 보완될 것임을 믿고 부족한 대로 서술해 본다. 특히 도예에 관련된 분들이 이 기회에 자신의 앎과 깨달음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기를 희망한다.

애초에는 세부의 윤곽이 드러나는 대로 홍지화 선생님을 찾아 뵙고 내용을 바로 잡고 보완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그 과정을 함께 하기는 어려워졌다.)

 

 

 

 

녹청자유(綠靑瓷釉=이라보유; 伊羅保釉)와 천광(天光)

 

 

1. 녹청자유(綠靑瓷釉=이라보유;伊羅保釉)에 대한 이해

녹청자유(綠靑瓷釉)란 석회석이 많은 알루미나질 무광유에 산화제이철(Fe2O3)4% 정도 첨가하여 1230도 정도로 산화소성하는 철유(鐵釉)이다. 철분의 함량에 따라 황색, 갈색, 녹색으로 발색한다.

철유(鐵釉) 중에서 가장 소박하면서 부드럽고 온화한 유조이다. 바탕흙(태토, 소지)의 질감과 색감을 살리면서 바탕흙(소지;素地)에 스며든 듯한 색조와 속에서 배어나오는 듯한 줄무늬(대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누비주름무늬)와 점무늬(일본도예계에서는 땀방울이 맺힌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한다)를 가진다. 철분 이외에 동, 코발트, 망간 등의 착색재를 첨가하면 녹청자유(이라보유)풍의 색유(色釉)가 된다.

 

장석-나뭇재-짚재(혹은 규석)로 만드는 재유가 기본유인데, 과거에는 짚재나 규석 대신에 철분을 포함한 황토를 쓰기도 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재와 황토, 논흙을 섞어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화학적으로 배합한 무광유(無光釉)에 산화제이철을 첨가하여 녹청자유를 만든다. 이 방식으로 만들면 보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철을 포함한 황토로 만든 녹청자유의 유조(釉調)에 견주어 자연스러움과 깊이가 떨어진다. 과거의 재유에는 인산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인산은 유약의 유조를 부드럽게 하고 또 유약의 유탁 작용이나 실투 작용을 일으켜 온화하고 안정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색조의 강약은 산화철의 함량으로 조절한다.

(※ 조청유, 흑천목유, 메밀유(=교맥유;蕎麥釉)도 재유에 철을 첨가한 것이라는 점에서 녹청자유(=이라보유)와 동일한 계열의 철유(鐵釉)이다. 철분의 함량에 따라 유조가 달라지는데, 녹청자유(=이라보유)는 철유 중에서도 철분의 함량이 적은 것이다. 철분이 많으면 조청유나 ()천목유가 된다.

또 녹청자유(=이리보유)는 재유 속의 산화칼슘이나 인산의 양을 더 늘려서 만든 무광유에 철분을 첨가한 것이고, 조청유와 흑천목유는 투명유에 철분을 첨가한 것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메밀유는 조청유나 흑천목유보다 철을 함유한 토석의 양은 많으면서 산화칼슘의 양은 녹청자유보다 많게 조성된 것이다.) (오니시 마사타로 저, 박원숙 역 ; <도예의 유약> 참조)

 

 

 

 

2. 녹청자유(綠靑磁釉)의 유래와 역사-일본 이라보유 (伊羅保釉)의 기원

 

녹청자유(綠靑磁釉)는 통일 신라 말과 고려 때부터 사용된 우리 고유의 유약이나, 일본 도자계에 의해 재조명되어 복원됨으로써 오늘날 한국에 역수입된 유약이다. 흔히 일본의 유약 책에서는 조선의 민요에서 만든 사발의 유조와 질감을 복원하여 만든 것이라 설명하는데 그 조선 민요 사발의 기원이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있었던 것이다.

이라보유(伊羅保釉)라는 말의 유래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유약책에서는 유약의 유조(釉調)와 질감이 이라이라(いらいら안절부절못하다)한 느낌을 준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설명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다음의 설명이 더 사실에 가까우리라 생각된다.

<첫째 이라보(伊羅保)란 이름은 일본 만엽집(萬葉集. 일본의 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시가집)에 유래한다. 이라(伊羅)는 쐐기풀을 의미하고, ()는 이삭이 나오는 것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거칠거칠한 이삭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둘째, 일본의 차서(茶書)로서 가장 오래된 만보전서(万寶全書)에 나오는 “기다리는 것이 오지 않아 안달이 난다”는 말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그 당시 일본 차인들이 조선의 양산약토사발을 간절해 원했던 마음이 기록된 것이다. 셋째 이라보 다완을 잡을 때 표면의 까칠한 느낌에서 이라보라는 호칭이 유래되었다. ( 출처 ; 신정희 ; 일본인은 왜 그토록 양산 사발을 원했을까) >

(<만엽집> <만보전서>에까지 되짚어 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어원이 현대 일본인들에게는 확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본도자계가 이를 재조명하고 복원한 것은 바탕흙의 자연스러운 맛을 중시하는 일본의 취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간 조질청자(粗質靑磁)라 하여 귀족들의 고급청자 대신 서민들의 용도를 위해 사용된 조잡한 청자로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녹청자 고유의 미감을 독자적 성격으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고려 시대의 녹청자를 복원하고 재창조하여 한국 현대도예의 새로운 영역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녹청자의 유래와 역사>

녹청자는 신라말 고려초(9~10세기)부터 만들어져 조선조 후기까지 만들어진, 주로 서민들이 실생활에 사용하였던, 도자기로 나무의 재로 만든 잿물 유약을 씌워 구운 그릇이다. 중국이나 한국의 청자유의 기원은 도기를 만들어 굽는 과정에서 땔감으로 쓴 나무의 재가 날아가 그릇에 달라붙어 저절로 형성된 자연유(自然釉)인데, 이에 착안하여 나무재로 만든 잿물 유약(灰釉)이 녹청자유이다.

일반 청자와는 달리 환원번조법이 아닌 산화번조법으로 굽는 것이 일반적 특징이나, 불의 상태에 따라 환원소성이 된 부분은 녹색을, 산화소성이 된 부분은 황색을 띠게 된다. 청자()는 녹청자()보다 철분을 포함한 유약과 태토를 잘 정제하고 수비하여 만든 것이다.

 

1. 신라 토우장식목항아리 5-6세기 <자연유 현상의 사례>

 

녹청자는 정제되지 않은 도기질(陶器質), 반자기질(半瓷器質) 바탕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표면이 거칠고 고르지 않으며, 유약이 덜 묻어 바탕흙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 많이 묻어 줄줄 흘러내리기도 해서 고려청자와는 대조적으로 다소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다른 도자기에서 느낄 수 없는 유약색(녹청색이나 녹갈색)을 통해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의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연구 초기에는 도기(陶器)에서 청자(靑磁)로 가는 과도기의 초기 청자로 간주되었었으나, 고려 초기부터 중·후기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제작되었다.

 인천 경서동, 해남 진산리 등 주로 해안가에서 10~11세기 사이 제작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요지가 발견되며 양질의 청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층의 수요를 위하여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전까지는 이와 같은 구조 양식의 도요지가 일본에서만 두 곳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것을 일본의 독자적인 것으로 자부해 오고 있었는데, 1966년 인천 서구 경서동(:검암동 384-21)에서 일본보다 훨씬 앞선 녹청자 도요지가 발견되어 인천이 녹청자 도요지의 선구지임이 밝혀졌다. 1970년 사적 211호로 지정 되었고, 인천에는 새로운 녹청자 박물관이 작년말 문을 열었다. 1983년에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일대에서도 녹청자도요지가 발견되었다.

 

 

 

 

 

2-1,2. 현대 일본 후지와라 유의 비젠야끼. (자연유에 의한  소성)

 

위 작품은 일본 도예작가 후지와라유가 신라 말의 자연재유를 복원하여 시유 소성한 것이다.

 

 

 

3. 천광 녹청자유(=이라보유)의 감상

오늘날 녹청자유(=이라보유)는 일본 도자계의 유약 조성표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도자 작가와 화분 작가들 그리고 화분 생산자들이 구사하는 유약이다. 천광의 녹청자유(=이라보유), 동양 도자사의 본류(本流)에 해당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약을 시도 실험해 온 천광 홍지화 선생이 녹청자유 또한 예외 없이 시도 실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 흥미 있는 점은 천광의 녹청자유 중에는 고려시대 녹청자의 맥락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천광의 녹청자유분, 일본명으로는 이라보유(伊羅保釉) 분이다. 묵은 화분들을 가지고 있는 오래 된 분재원에서 주의 깊게 살피면 지금도 이따금 만나볼 수 있는 화분이어서, 분재 취미가 활발했던 시기에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 터이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분이다.

 

 

 

3-1 천광 녹청자유 무각장사각띠줄분 정면 (12.5X9.5X4)

 

3-2 천광 녹청자유 무각 장사각띠줄분 우측면 (12.5X9.5X4)

 

 

녹청자유의 전형적 특징인 ‘태토에 스며 가라?은 듯한 느낌과 안에서 밖으로 배어나온 듯한 줄무늬와 점무늬(점무늬를 일본도자예에서는 땀을 흘리는 듯한 모양이라고 말한다)’를 보여준다. 분의 형태와 유조(釉調)가 어우러져 고동기(古銅器)의 묵은 맛과 진중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타원 낙관이니 최소 10 여년 이전의 분이지만 생산 시점에서도 그 자체로도 상당한 고분감(古盆感)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 녹청자유의 줄무늬는 아래로 흐르는 무늬(조흔;條痕)가 일반적이나 이 경우는 옆붓질로 유약을 발라 무늬가 좌우로 펼쳐졌을 것이다.

 

분재분은 지속적 효율적 생산을 위하여 대개 틀에 의한 제작을 하게 되는데, 그 가짓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이 틀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제작자는 신중한 검토와 선택을 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화분작가의 이 선택에서 우리는 화분작가가 분재와 분재분에 대해 어떤 생각과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다.

천광은 초화류를 위한 화분이나 감상을 위한 미니분도 많이 제작하고 있었던 까닭에 순수하게 분재분이라 할 수 있는 형태는 많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제작한 분재분의 형태를 통해 홍지화 선생이 예상했던 수요자층의 기호와 선생 자신의 취향과 미의식 그리고 성품을 더욱 잘 짐작해 볼 수 있다.

천광의 분재분의 형태는 크게 장사각형류와 모과분, 원분 두 가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에서는 견고하게 응축된 당당한 풍모를 보여주고, 후자에서는 부드러운 선의 흐름이나 투각을 통해 전통적 미감을 복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위 분재분은 ‘12.5cm X 9.5cm X 4cm’의 작은 규격이나, 단단하게 내적으로 응축된 견고한 풍격을 가지고 있다. 이 특질은 천광의 모든 장방형 분재분에서 나타난다. 홍지화 선생이 생각하는 분재수는 단단하게 내적으로 응축되어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굵기와 풍모를 가진 나무였을 것이다. 그래서 천광의 장사각형 분은 작아도 작지 않고 특히 녹반진사우절장방분은 소나무를 심어도 어울릴 정도로 무게감울 가진다.

낮은 굽높이, 안쪽을 향해 조금 숙어든 외연, 몸통을 두른 띠줄, 화분 밑에서 전에 이르기까지의 기울기가 이런 분위기를 빚어낸 물리적 요소일 것이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석고틀의 재개작을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식과 공력, 그리고 그 미의식이 그 내적 요소일 것이다.

 

 

 

4-1 천광 녹청자유 여섯꽃잎세발분 10.2cm x 4.5cm

 

 

4-2 천광 녹청자유 여섯꽃잎세발분 10.2cm x 4.5cm

(천광에서는 꽃잎 육각분으로 부르는데 각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듯해서 달리 일컬어 보았다.)

 

 

  여섯 꽃잎을 형상화한 콩분이다. 마침 위 사진의 각도에서는 녹청색점들이 문양을 이루고, 아래 사진의 각도에서는 누비주름무늬(조흔;條痕)가 자그마한 콩분의 분위기와 어울리고 있다. 녹청자유의 문양으로는 대개 누비주름무늬와 점무늬가 나타나지만 이러한 무늬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녹청자유(이라보유)라고 칭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녹청자유는 무늬 이전에 ‘철분을 포함한 무광재유의 성격을 가진 유’를 일컫는 것으로, 그 기원이 통일신라말 고려조의 녹청자에 있기 때문이다.

 

  녹청자유는 무광유가 기본인데 앞의 무각장사각띠줄분과 마찬가지로 분에 윤기가 감돈다. 위에서 바라보면 귀엽고 앙증맞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면 역시 고동기의 무게감을 갖고 있다. 태토는 위 무각장방띠줄분처럼 아주 찰진 붉은 색 계열의 점토를 써서 발()에서 엿보이는 바와 같이 분이 실제로 매우 단단하다.

 

 

다음은 천광의 녹청자유 타원분이다.

 

 

5-1 천광 녹청자유 동홍선문(銅紅線鐵綠線紋)첨가 타원분 정면 (길이 16.5, 12.5, 높이 5.5cm)

 

5-2 천광 녹청자유 동홍선문(銅紅線鐵綠線紋)첨가 타원분 우측면

 

 

녹청자유(이라보유)는 원래 유약의 재 성분이나 태토의 철분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유(鐵釉) 계통에 해당하는 것으로 철분의 함량에 따라 주로 황갈색이나 녹갈색으로 발색하게 되고, 철분 이외에 동, 코발트, 망간 등의 착색재를 첨가하면 녹청자유(이라보유)풍의 색유(色釉)가 되게 된다.

 

위 녹청자유(이라보유) 분의 경우가 바로 철분 이외의 착색재를 첨가하여 녹청자유(이라보유) 풍의 색유를 시도한 사례이다. 이 경우에는 구리 성분이 첨가되어 구리 성분에 의한 동홍유(銅紅釉=辰砂)의 붉은색이 나타나면서 그것 또한 녹청자유 특유의 아래로 내려 흐르는 누비주름무늬(조흔;條痕)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황갈색계 녹청자유는 산화소성, 녹청색계 녹청자유는 환원소성에 의한 것이니, 이 경우는 녹청색계 녹청자유를 일차적으로 시유하고 부분적으로 구리 성분을 첨가한 녹청자유를 이차 시유한 후 환원소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 이 분재분에 유약과 기법을 정확히 반영한 명칭을 부여한다면, <녹청자유동홍선문타원분(綠靑瓷釉銅紅線紋?圓盆)>이 적절할 것이다. 녹청색의 누비주름무늬는 녹청자유 특유의 것이니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고 이에 더하여 구리 성분에 의한 붉은색(동홍유)의 발색은 창의적 기법이 더해진 것이서 이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진사(辰砂)는 일본식 이름으로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것이어서 삼국 공용어로 쉬 통용될  수 있는 ‘동홍유(銅紅釉)’라는 말로 대신하였다.)

 

이러한 <색유풍의 녹청자유>의 시도는 일본 도자계나 분재분계의 정보나 작품 사진을 접한 데서 가능했을 수도 있고, 홍지화 선생이 일본도자계나 분재분계의 모든 정보를 상세하게 수탐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온전히 홍지화 선생의 창작욕과 실험정신의 산물일 수도 있다. 이는 뒤에서 언급할 고동기(古銅器)형의 녹청자유분 창작 의도와 더불어 본인의 진술에 대한 청취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위 분재분은 어려운 방식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의욕적으로 시도해 보는 홍지화 선생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녹청자유(이라보유)의 특질은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그 평범성과 소박성에 있다. 바탕 소지의 질감과 색감을 살리는, 소지에 스며든 듯한 색조가 녹청자유(이라보유)의 특질인데, 위 이라보유 타원분에서는 첨가된 진사유 또한 진사 특유의 진하고 강한 느낌 대신에 원래 녹청자유의 유조만큼 옅은 색조와 흐름을 보여준다.

 

이 경우 유조는 연하고 밝은 황색을 바탕으로 연두색조의 줄무늬가 흐르는데 이와 같은 유조를 받쳐주기 위하여 태토 또한 백토에 가까운 태토를 쓰고 있다. 같은 녹청자유라 할지라도 발색시키고자 하는 색조에 따라 태토를 가려 쓴 것으로 보인다. 화분의 두께도 천광에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위의 무각장사각분이나 여섯꽃잎분보다 얇다.

유조별 느낌의 차이, 혹은 유조별 심미감의 차이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 태토의 종류와 기벽의 두께까지 변경하고 조절한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 것인가. 보다 많은 사례를 살피거나 작가 자신의 말을 들어 보아야 할 것이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전자에 해당하리하라 생각한다.

 

유조는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고 고동기(古銅器)의 느낌도 상당히 줄었으나, 천광분 특유의 단단하고 여무진 느낌은 여전하다. 짧은 굽, 기벽(器壁)의 미묘한 곡률, 안으로 굽은 외연(外緣)이 그 외적 요인일 것이다. 천광분은 소품 이상의 크기 분에서는 일본의 분재분보다 그 깊이가 깊다. 천광의 유약과 더불어 분재분의 이 깊이는 넉넉한 여유와 풍격을 만들어내는 천광의 한 특질인데, 한국 분재의 한 유형상의 특질로 삼아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천광의 <녹청자유 옛거울형 화대>이다

 

6-1 천광 녹청자유음각 당초문 투각 삼엽 옛거울형(고경) 화대 15x3.5-정면

 

6-2 천광 녹청자유 음각 당초문 투각 삼엽 옛거울형(고경) 화대 15x3.5-윗면

 

6-3 천광 녹청자유 음각 당초문 투각 삼엽 옛거울형(고경) 화대 15x3.5 - 뒤집은 면

 

 

유약이 녹청자유인데 갈색으로 나왔으니 철분 함량이 앞의 경우보다 더 많고 소성은 산화소성을 하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화분의 윗면과 옆면에 당초문이 음각되고, 정면과 후면에 세 개의 작은 나뭇잎 모양의 구멍이 뚫린 옛거울형 화분이다. ‘옛거울형(고경)’은 천광이 지향하고 있는 창작의 방향성-전통의 복원과 재창조-을 보여준다.

화대 윗면은 큰 주름을 여덟 개 짓고 그 사이마다 작은 주름을 8개 지었으니 전체 16개의 주름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8각이 16각으로 변형된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인데 이와 같이 기물(器物)의 전 부분에서 큰 틀 속에 작은 변화로 다양성과 섬세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고려의 청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정면에서 보이는 화대 기벽(器壁)은 작은 주름이 있는데 귀에는 각각 나뭇잎의 형태를 셋 모아 투각을 했고 투각의 좌우로 당초문이 음각되어 있다. 그 중 한 투각 부분 위로 화대 윗면에 큰 당초문을 음각해서 화대의 정면을 표시해 놓는 배려까지 하고 있다.

(위 화대의 이름은 이러한 기법과 형태적 특징을 부각해 보고자 필자가 시험삼아 명명한 것이다)

뚜렷한 창작 의식과 목적의식에서가 아니라면 피하고 싶은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기벽이 비스듬히 펼쳐 내려진 각도가 알맞고 바닥면이 윗면보다 좁아 화대 위에 놓일 대상이 부각될 수 있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미려할 뿐만 아니라 천광 특유의 견고하고 찰진 느낌을 가지고 있어 훌륭한 화대가 될 수 있는 바탕을 갖추고 있다. 내부도 시유하여 화대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위 화대는 천광의 이대주 홍유정이 제작한 것으로 중간 색조의 고동색에 진한 군청색의 다양한 형태의 반점들이 녹청자유 특유의 방식으로 점점이 전개되어 있다.

 

 

 

 

4. 천광 녹청자유와 고려 녹청자유의 비교

오늘날 녹청자유(=이라보유;伊羅保釉) 분은 일본 도자계가 제공한 유약조성표로 상당히 널리 그리고 쉽게 만들어지고 있고, 또 일본 이라보유의 영향과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다기(茶器) 색조의 영향으로 주로 황색 계열의 이라보유로 제작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다기에서 태토의 질감과 색감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도자기(井戶茶碗)’ 등의 다기의 색조가 황색 계열이나 황색을 포함한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철분을 다소 포함한 백자토를 산화소성하면 노란색으로 발색한다-에 상당 부분 요인이 있을 것이다.

 

 

7. 녹청자유원분 지름 20cm 높이 6.5cm 한국 현대-이천으로 추정됨

 

낙관이 없고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녹청자유 화분이나 녹청자유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면서 현대 소비자들이 바라는 두루 쓰기 쉬운 색조를 선명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천이나 여주에서 생산 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오늘날 녹청자유가 어느 만큼 보편화된 유약과 기법인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천광 홍지화 선생은 여러 색조의 녹청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녹청자유를 만들었을까? 홍지화 선생이 통일신라말, 고려조 때의 녹청자유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음은 고려 녹청자유 기물(器物) 사진들이다.

 

8 녹청자완 높이 4.5cm 입지름 11.9cm 바닥지름cm 연세대 박물관 소장

 

 

9 고려 녹청자 사발

 

 

10 고려 녹청자 파편 인천 서구 경서동 도요지 출토

 

 

11 고려 녹청자 마상배 경희대 박물관 소장 높이8.5cm 입지름10.7cm 바닥지름 6cm

 

 

위 천광의 장사각분 여섯꽃잎분의 푸르스름한 색조는 고려 녹청자유의 푸르스름한 색조와 유사하고 천광 화대의 황갈색조는 고려 녹청자의 황갈색조와 유사하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인가, 우연인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홍지화 선생이 고려 녹청자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어, 그것을 복원하고자 했을 가능성. 녹청자가 다량 출토된 인천 서구 경서동 도요지는 1970년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니 홍지화 선생이 고려 녹청자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시간적 거리는 충분하다.

둘째, 일본 도자계가 그들의 도요지에서 발굴한 녹청자가 이와 같은 유조였고 이를 복원한 자료가 있어 이 자료 사진을 입수한 홍지화 선생이 이를 시도했을 가능성.

 

이 부분 또한 홍지화 선생 본인의 진술을 청취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우연이든, 의도한 것이든 위 천광 녹청자유분과 녹청자유 화대는 1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려의 녹청자유를 복원해 낸 모습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래된 분재원의 어느 한 켠에서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놓여 있던 이 화분들에, 박물관의 통일신라말~고려초 녹청자 옆에 ‘고려조 기물의 복원과 비교’라는 의미에서 놓일 만한,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홍지화 선생은 다른 유조의 녹청자유분도 제작하였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황색 바탕에 연두빛 반점들을 가진 미니분(감상용소분)이다.

 

 

12 천광 녹청자유 복주머니분 7.5cm x 4.5cm-1 (가람과 뫼 인터넷 화분 몰의 사진)

 

 

녹청자유 특유의 따스하고 온유한 질감과 유조를 느낄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상당한 수준의 천광 녹청자유 분기(盆器)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황색으로는 한중일에서 모두 장방분이나 타원분을 보기 어려우나 자사분에 필적하는 흙질감과 도자적 미감을 아울러 지닌 분재용 분을 이런 유조(釉調)로 만들면 매우 이채로운 동시에 아름다운 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색인데도 ()청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유색이 아닌 유약 성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같은 유약이라도 소성방식에 따라서 녹색으로도 황색으로도 흑색으로도 발색하나 유약을 기준으로 ()청자유라 부른다.

 

참고로 한국 현대 도예의 녹청자유 작품을 제시한다. 한국 현대 도예에서는 대체로 올리브그린색 색조를 살려내는 것이 많다.

 

13. 2008년 한국공예대전 녹청자 특별상 한정헌

 

14. 2008년 한국공예대전 장려상 호진

 

 

 

( 현재의 명칭은 유약의 특징을 전달하는 명칭으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라보거칠하다는 질감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인데 실제 그렇게 거칠한 것은 아니므로 용어로 적합하지 않다. 녹청자유는 유의 유래와 색감은 전달할 수 있는데 녹청자유의 특징적인 유조는 함축하지 못하고 황색이나 갈색 색조의 경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로 각각 <녹점줄무늬유>, <황점줄무늬유>, <갈점줄무늬유>라 이름하고 포괄적으로는 <점줄무늬유>라 부르는 것이 어떤가 한다. 철유 계열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 앞에 철유라는 말을 붙여 <철유녹점줄무늬유> 식으로 부르면 누구나에게 손쉽게 이해되고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2012. 6.22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