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알겠니
박 종 금
출산 휴가를 마친 며느리가 복직을 했다. 여섯 살 두 살 아이를 내가 맡게 되었다. 내 나이로 보면 아이 둘을 돌보는 일이 버겁지만, 지난날 내 자식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보상심리라고 할까. 마음을 다 해서 보살펴 주려고 한다.
은행이 우리 집 가까운 곳이라 아이들을 주로 며느리가 데리고 온다. 아침8시가 못되어서 데려오니 어린 것들이 잠이나 제대로 잤겠나 싶어 늘 안쓰럽다.
큰아이는 가끔 심통이 가득한 얼굴로 인사도 없이 들어와 소파에 털 석 앉고, 며느리는 선걸음에 인사를 나눈다.
“엄마 다녀올게, 할머님 말씀 잘 듣고 있어”
돌아서려고 하면 큰아이가 벌떡 일어나
“엄마 한번만 안아주고 가면 안 돼?”
두 팔을 벌린다. 시간에 쫓기는 엄마 목을 끌어안았다가 놓아 준다 작은 아이는 천천히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보이는 엄마를 보고, 엄마, 엄마 하다가 내게로 안긴다.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아는 걸까? 신통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차라리 칭얼대고 우는 것보다 더 마음이 짠해진다. 아이들은 말을 안 할뿐이지 눈치가 빠르다.
밥과 간식 챙기랴 은근히 할 일이 많아서 주방에 있으면 내 곁을 맴돌며 씽크대 냄비를 모두 끄집어내어서 뚜껑을 맞춰본다. 유난히 먹는 걸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늘 방글 방글 웃는다. 그래서 할미하고 있는 게 만족한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퇴근하면 달라진다. 내가 먹여주는 밥을 잘 받아먹다가도 슬며시 일어난다. 나를 한번 쳐다보며 씩 웃으며 밥그릇을 들고 엄마 곁으로 간다.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일까?
집에 갈 때에 신발을 신겨주려고 하면 앵, 하고 신발을 휙 빼앗아 엄마를 주곤 한다. 물론 큰아이도 그랬었다. 그 때마다 섭섭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나이 값도 못하는 속 좁은 늙은이가 되고 만다. 아이나 어른이나 본능인 것 같다.
저녁에 며느리가 오면 두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간다. 허리냐고 한 줌 되는 약한 몸에 두 녀석이 매달린다. 휘청하면서도 버텨내는 엄마의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마치 이산가족 상봉을 보는 것 같다. 애기는 안겨있으면서도 엄마를 부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옆에 있어도 그립고 보고 싶은 모양이다. 저 말과 웃음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가슴에 배였던 말이다. 아이 얼굴에서 빛이 난다. 엄마의 따스한 눈빛, 그 사이를 누가 방해하겠는가.
나는 저런 시절을 못 보냈다. 그래서 늘 자식에게 미안함을 품고 살고 있다. 큰 아들은 싹싹한 성격인데 둘째아이들인 아이 아빠는 내성적이며 논리적이어서 단순하게 사는 나와는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옳다고 내 주장으로 밀어붙이기 일 수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맞벌이로 일을 했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어서 아이들 돌보는 일은 물론이고, 교육이나 인격은 안중에도 없었다. 소규모로 제품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늘 힘들다는 이유로 사랑의 눈길 한번 주지 못했고 덥석 한번 안주지도 않았다. 어디 그 뿐인가, 중학교 때 전교에서 1등을 했고 회장이 되었다고 들어보라며 당선 소감을 연습하는 아들에게
“시끄러, 밥 좀 먹자‘ 며 밀어냈다. 그 시절 내게는 돈 버는 일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다.
며느리가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현관문을 닫자, 두 녀석은 베란다로 뛰어간다. 6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엄마 안녕~ 엄마 일찍 와~, 엄마 안녕~”
애타게 엄마의 모습을 잡으려는 아이의 마음이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며느리 마음은 아이들에게 머물고 있어도 발걸음은 은행으로 가고 있겠지. 이런 아이의 자연스러운 풍경에서 나의 기억창고가 열린다.
아이의 아빠가 사춘기였을 때다. 중 고등하교를 거쳐 대학교 다니면서까지 나와 사이가 몹시도 안 좋았다. 밥도 집에서 안 먹었다. 학교에 잘 다녀오라는 말에 대답대신 현관문을 ‘쾅’ 닫아버린다, 그때마다, 나도 베란다로 뛰어가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어깨에 큰 가방을 메고 가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나를 괴롭히려면 저는 더 괴로웠을 텐데, 얼른 마음을 풀기를 소원했었다. 이런 기억이 엊그제 같다. 손주들이 엄마를 내려다보는 감정과 에미가 자식을 보는 감정과의 온도는 같으리라.
나도 아들만 둘이고 며느리도 아들만 둘이라 더 애정이 간다. 며느리가 마음 편히 일하도록 아이들이 잘 놀고 있는 모습, 웃는 얼굴, 잘 먹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틈틈이 보내준다. 아이는 엄마의 따스한 미소와 아빠의 듬직한 품에서 세상을 믿게 될 것이다.
내 몸이 힘들면 힘들수록 아들에게 지난날의 못했던 빚을 갚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