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 포르투갈 여행기 [2023. 4. 8. ~ 4. 16.]
붉은 땅 ‧ 푸른 하늘
[여행기에 앞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적지 않은 경우가 그렇기는 하겠지만, 이번 여행을 마치고 여행기를 쓰려는 지금 여행의 추억보다도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옴을 어쩔 수 없다. 나의 아쉬움은 무엇보다도 아직 내게 익숙지 않은 단체관광- 내게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단체 관광이 이번이 처음이었다.-에서 피할 수 없다는, 시간의 촉박함에 더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줄 서서 따라다니는 것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겠지만, 그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지금 내 머릿속은 멍할 뿐이다. 며칠 지나지 않았음에도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온통 넓은 땅덩어리를 뒤덮고 있던 붉은 흙빛에서 느껴지는 애수와 내 어릴 적 고향의 아련함을 불러왔던 푸른 하늘빛의 느낌뿐이다. 어쩌면 그 붉은 흙빛과 푸른 하늘빛이 너무나도 강렬하였었기에 그들이 내 기억의 나머지 모든 것들을 감싸 덮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기억을 되살려서 쓰는 여행기가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쓰는 여행기가 된 셈이다.
방법이라고는 남겨온 사진들에 기대는 것과, 사후약방문과도 같은 꼴이 될지라도 인터넷 검색의 도움을 받아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알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혹시나 광장 한복판에서 춤추고 있던 ‘정열’이 새로이 눈에 띈다거나, 골목 안 카페 한구석에서 사색에 잠겨있는 ‘우수’를 뒤늦게나마 찾아내는 일이 생길는지도. 그러니 이제 그 기억을 덮고 있는 흙빛과 하늘빛을 조심스레 들춰봐야겠다. 미련은 아쉬움이고, 아쉬움은 곧 사랑이다.
[이베리아반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를 9일간에 걸쳐 다녀왔다. 올해는 내 나이가 칠순이 되는 해이면서, 얼마 전에는 40여 년을 이어온 내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도 한 덕분에 성사된 여행이었다. 사실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하여 해외여행이 어렵기도 하였다지만, 내겐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일에 별로 재주가 없는 탓이 가장 컸겠지만, 그것 말고도 내가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절제’와도 무관치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혹독하게 겪은 코로나19를 비롯하여 더 큰 위기를 잉태하고 현재진행형인 지구환경문제 등이 우리 인간들의 ‘지나침’이 초래한 결과물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길 역시 모든 면에서 지나침을 줄이는 절제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 절제에는 물질적인 낭비를 넘어서서 언어나 생활방식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인 만큼, 근래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정기적으로 치러야만 하는 필수 행사처럼 여기는 해외여행도 그 절제의 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처지는 그동안 때마다 여행을 미루는 조건으로 내걸어 왔던 ‘때가 되면’의 바로 그 ‘때’가 되었음을 나 자신에게도 부인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그러한 내로남불의 여행을 다녀왔다. 배 터지도록 먹고 나서 “너무 과식하면.....”이라 변명하는 긴말이 되고 말았다.
평소 이베리아반도는 내게 낯설고 관심 밖의 곳이었다. 반도라 부르기에는 너무 커서, 다 큰 송아지가 어미 젖 물고 있듯이 여럽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면적이 한반도의 3배에 가까우니 우리 남한의 6배 크기이고, 두 나라 모두 한때 최강의 제국으로서 세계를 누볐었다지만, 지금은 두 나라를 합쳐도 경제 규모는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고 인구는 우리를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지금은 별 볼 일 없이 쭈그러든 나라이며,- 별 볼 일이 없다니? 스페인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의 관광대국이라 하니, 별 볼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나라일 것이다.- 그저 근년에 들어 사람들 입에 자주 회자(膾炙)되고 있는 산티아고순례길이 지나는 곳이고, 그곳이 원조인지 남미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뒤꿈치로 바닥을 두드리는 플라멩코라는 춤을 추는 곳이며, 두 나라 모두 오랜 기간 독재정권이 통치했었던 나라라는 정도가 내가 아는 이베리아반도였다. 아! 그곳 어디엔가 알함브라라고 부르는 궁전이 있다는 것만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궁전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막연한 꿈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아주 막연함 꿈에 불과했다.
딸아이 덕에 얻어쓰는 항공권 등과 이런저런 연유로 급작스레 결정된 여행의 준비는 촉박했다. 온통 무지한 상태라도 면해보자고 급히 여행 일정을 따라 인터넷으로 미리 길을 나섰다. 우리가 갈 곳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입국하여서 몬세라트‧ 발렌시아‧ 그라나다‧ 론다‧ 세비야 그리고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파티마를 거쳐서 다시 스페인의 톨레도‧ 마드리드‧ 사라고사를 구경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이베리아반도를 시계 숫자판에 비유하자면 1시 반쯤의 카탈루냐에는 바르셀로나가 있고 그 바로 위에 몬세라트가 있다. 그리고 지중해를 따라 내려오며 3시에 발렌시아가 있고, 남쪽의 안달루시아지방에는 6시 그라나다와 6시 반에 론다가 있고 약간 내륙으로 들어온 7시 방향에 세비야가 있다. 그리고 8시 반 자리에 대서양을 접하고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9시에 파티마 그리고는 반도의 중심으로 들어가 시곗바늘 회전축 자리에 있는 곳이 톨레도와 마드리드이고 거기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중간 지점에 사라고사가 있다. 다시 말하면 1시 반에서 시작하여서 시곗바늘 끝을 따라서 돌아 3시‧ 6시‧ 6시 반‧ 7시‧ 8시 반‧ 9시를 찍고, 숫자판 가운데로 들어왔다가 다시 1시 반 자리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알타미라동굴- 이베리아반도를 뒤지다가 나를 흥분하게 만든 단어이다.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모르지만 알타미라동굴의 벽화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 알타미라동굴이 있는 곳이 바로 이베리아반도였다. 비록 내가 여행할 지역이 알타미라동굴이 있다는 북부 해안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라지만,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관문이 이베리아반도였던 셈이 아닐까? 크로마뇽인이 살다 갔으며, 수만 년 전 나의 조상이 거쳐왔을지도 모를 그 땅을 간다는 점이 묘한 흥분을 불러왔다. 혹시 알겠는가? 그곳에서 내 그리움의 뿌리를 만나볼 수도 있을지.
4월 8일. 토요일
[인천-바르셀로나]
여행의 들뜬 기분 덕분일까,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B787-9의 날씬하게 치켜 올라간 날개 끝의 곡선에서 한옥 기와집의 추녀가 연상되며 지금껏 보았던 어느 비행기의 날개보다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서 얻어낸 주날개 뒤 창가 자리가 흡족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중국‧ 카자흐스탄을 지나고 있다. 기내식으로 소고기 스튜에 곁들여 레드와인을 마셨다. 지난날 비행기 여행에서 항상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던 포도주를 이런저런 사연으로 가까이하지 못한 기간이 짧지 않았다. 하기야 그 세월 동안에는 나의 해외여행 자체가 뜸하기도 했다.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포도주를 한잔 더 청하여 마셨다. 몽골 근처에 다다르자 황사 탓인지 빛이 줄어들어 뿌옇게 변하며 아래가 희미해졌다.
옆자리의 아내가 영화가 볼만하다며 권했다. 제목이 ‘LIVING’인데 우리말로 ‘살아본다는 것’이라 되어있다. 런던의 어느 늙은 공무원이 급작스레 알게 된 질병으로 인한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며 열심히 일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었다. 내용이야 뭐 그리 특별하다고 할 것은 없었고, 그보다 나는 도리어 우리말 제목을 어째서 ‘살아본다는 것’이라고 정했을지가 궁금했다. ‘살아본다’니...... 멀지 않은 마지막을 앞두고도 그때까지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뜻이리라 생각은 되지만, 제목에서 말하려는 의도를 떠나서 말 그대로 (미리 한번) 살아본다면? 과연 도움이 될까? 한번 살아본 들 다음 생에서는 최선의 길을 찾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자신의 과오였건 선택의 문제였건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했던 지난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할 수가 있을까? 내 선조께서 항상 마음에 새겨 경계했던 단어가 바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불이과(不貳過)’*였다. 미리 살아보지는 못하더라도, 반복하는 실수만이라도 막을 지혜가 있다면..... 그저 지금의 삶에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른 길임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구름이 걷히고 다시 아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를 지나 발칸반도의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상공을 날아서, 신화의 바다 아드리아해를 건너서 이탈리아의 마리노‧ 피렌체를 지나 눈 쌓인 알프스 끝자락을 넘어서 프랑스에 접어든다. 십여 년 전 우리 부부가 갔었던 코트다쥐르 해안의 도시들이 마치 낯이라도 익은 듯이 정겹게 나타났다. 검은 자갈 해변을 거닐었고 언덕 꼭대기의 성당이 인상적이었던 망통으로 짐작되는 도시가 보인다. 쾌청한 하늘 아래 지중해는 잔잔하여서 청자의 표면처럼 푸르고 매끄러웠다. 비행기는 마르세유 위를 날아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드디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접어들었다. 연두색과 초록색으로 모자이크한 듯 잘 정돈된 농지와 푸른 산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주거지로 보이는 마을들은 크고 높은 대형 건물이 없고 모두가 하나같이 붉은색의 기와를 얹은 작은 건물들이 마치 장난감 블록을 사용해서 만들어 놓은 모형과도 같이 산뜻하고 깔끔하게 펼쳐져 있었다.
낮 12시경에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14시간을 비행해서 도착한 바르셀로나의 시각이 같은 날 저녁 7시이다. 우리가 지구 자전 방향과는 반대로 태양을 좇아 날아왔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썸머타임 기간으로 시각을 1시간을 앞당겨 적용 중이다. 이베리아반도는 연안지대 이외의 대부분이 고원지대이며 땅덩어리 전체가 서쪽으로 기울어있다고 한다. 그중 우리가 여행하려는 지중해 쪽은 강수량이 적고 기온 차가 극심하며, 사막과도 같은 메마르고 거친 땅이 대부분으로 연간 강수량이 400mm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400mm라면 제주도에 비 많이 오는 날 하루 강수량 정도가 1년에 걸쳐서 내리는 셈이다. 특히 우리가 도착한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북부 카탈루냐지방은 해발 3,000m에 이르는 피레네산맥에 접해있어서 민둥산과 거친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이번 여행지는 아니지만 대서양을 접해서 칸타브리아산맥이 동서로 뻗어있는 북부지역은 대체로 비가 많다고 한다. 바로 그 아래쪽으로 긴 회랑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고 있다.
세계 2위의 관광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입국 절차가 아주 간단했다.
* 불이과(不貳過):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란 말로 공자가 안회를 일컬은 말이다. 과(過)는 허물 또는 과오라는 뜻으로, ‘불이과’는 두 번 다시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