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자존감 -- 이주혁님 페북
정신병동에도 아침이....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메디칼 드라마는 늘 일반외과, 흉부외과 그리고 중증외상, 응급실쪽이었다. 그러나 사실 정신과야 말로 가장 많은 스토리가 나올 법한데..... 이제야 제대로 된 드라마가 하나 나온 듯하다.
정신과 환자들을 조명하려면 가장 큰 문제는 이게 거의가 실제 환자의 경험담이라 프라이버시 노출이란 점에서 어려웠을 것같다.
정신과 스토리들을 보면서 재미 있는 것은 항상, 나에 대해 분석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정신적인 균형과 불균형을 오가며 살아간다. 정신적 불균형에 떨어졌을 때 오래 머물지 않고 균형으로 넘어올 자발적 능력이 있다면 우리가 건강하다고 얘기한다. 불균형으로부터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를 병이라고 부른다. 정신심리학적인 병이다. 이때부턴 주변의 도움과 치료가 필요해진다. 때로는 이 차이가 종이 한 장처럼 얇게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엔 "낮은 자존감"에 대한 언급들이 나온다. 가스라이팅, 사회 불안 장애, 우울증 조울증 등과 다 연결돼 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분석하기로는 내가 갖고 있는 정신적 불균형의 요소는 바로 이 '낮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존심과 약간 다른데, 스스로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느냐를 표현한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어렸을 때 성장과정에서 가혹한 처벌이나 놀림 등을 받은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때 뭘 잃어버리길 잘해서 엄마한테 요즘 세상에선 생각도 못할 야단을 많이 맞았다. (뭐 그 시절엔 다반사이긴 했다...) 대표적인 건 "너같은 걸 어따가 쓰냐?" "넌 왜 이렇게 힘드니" "왜 너만 그래?" 이런 식의 언사들이다. 얻어 터지기도 많이 터졌다.
이렇게 성장기를 지내다 보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근데 이게 꼭 나쁘기만 한 걸까? 건강한 정신세계엔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부정적 인식이 사실은 모두 다 필요하다. 어떻게 생겨났든, 낮은 자존감에서 유래된 불안정함을 다른 기제를 이용해 벗어나려 하기 마련인데 내 경우는 그게 공부나 피아노 연주, 글쓰기 등이었던 것같다. 성적이 잘 나오면 그 불안정, 불균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다. 피아노나 글 쓰기 등도 마찬가지다.
뭔가 잘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야만 나에 대한 스스로의 부정적 공격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다면 나와 같이 근본적으로 자존감이 박약한 사람은 정신적 균형을 잡지 못하고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의 병적 상태로 갈 수 있다. 페이스북같은 데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한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발동한 결과일 것이다.
낮은 자존감은 아주 높은 지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에게서도 생각보다 많이 발견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구타를 많이 당하고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는 교수님들이고 학계에 명망이 자자한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이 자녀는 엄격하게 가르치기 마련이다. 학과도 원래 자기가 가고 싶었던 데말고 아버지가 가라는 곳으로 지원하게 됐다. 정작 사법고시를 패스해야 하는데 고시는 8번이나 떨어진 끝에 간신히 붙는다.
서울 법대 출신들은 여러 부류가 있다. 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아니면 졸업 직후즈음해서 덜컥 붙어서 연수원 성적도 우수하고 판사로 바로 임용돼서 완벽한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굉장히 높은 자존감을 갖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8번이나 사시에 낙방하고 고시촌을 전전하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거나 진짜 죽지 못해 고시촌을 떠나지 못한다. 그 경우 스스로에 대해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이 사람은 고시생이면서도 남의 경조사 등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한다. 지인 집의 초상이 났는데 거기 가서 3일을 앉아서 술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사람의 경우는 스스로에 대한 낮은 자존감을 술친구들과의 막역한 관계로서 균형을 잡으려 한 것이다. 친구가 술을 먹자 하고 당구를 치자 하면 거절을 못하는 것이다. 이후 이 사람이 9수 끝에 사시 패스하고 검찰에 들어갔을 때 이런 성향은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어오는 청탁을 거부하기 힘들어하는 식으로 귀결됐을 것이다.
물론 이 사람은 검찰에 들어가서도 상당기간을 한직에서 전전했다. 그러니 자기 후배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잘 나가는 꼴을 보면서 생길 낮은 자존감의 문제를 심리적으로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는 사람들'에 대해 끔찍히 챙겨주며 그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나름의 균형을 잡아 간 것이다. 이때부턴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태도가 천지 차이로 나기 시작한다.
이 분이 검찰 총장 청문회에 올라갔을 때의 태도는 상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무수한 카메라와 의원들 앞에서 위축되긴 커녕 턱을 거만하게 들고 "아무리 국회라 해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겁니까?"라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업무 능력도 떨어지고 법대 동기들보다 사회 진출도 훨씬 늦었던 그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열등감을 이 사람이 어떻게 해소하려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들 따윈 별 거 아냐" 이런 식으로 "쎈 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심리적 균형을 잡아나간다.
이 사람의 부인이 누군가와 통화한 내역이 녹취되어 공개된 적이 있다. 부인이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야"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밖에 나가서는 어떻게든 쎈 척을 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려 노력하지만 실제 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너무나 낮기 때문에, 집에서 부인에게 바보 소리까지 들으며 사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았다면, 그가 "아는 사람"의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었다면 아마도 끔찍히 챙겨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심리적 기제 자체를 비방하고 싶진 않다. 흔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편" "내가 아는 사람"에겐 무조건 챙겨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적대적인 이런 심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공직자로서 바람직할까. 이건 이 공동체 전체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이 사람은 아직도 대구나 경북지역만 방문한다. 자기에게 표를 적게 준 지역에 갈 용기가 없는 것이다. 너무나 심리가 취약하고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금 자리는 스스로에게도 고되고 벅찰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