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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 오늘의 역사
2019년 태풍 하기비스 일본 강타, 1일 강수량 1,000mm 사망 77명 42만 가구 정전
2019년 엘리우드 킵초게(케냐 35세)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파크에서 열린 INEOS 1:59 챌린지에서 1시간 59분 40초로 마라톤 2시간 벽 깸(비공인기록)
2019년 삼성전자, 인터브랜드 선정 2019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2년 연속 6위, 브랜드 가치 610억9천800만$, 2018년보다 2% 상승
2017년 설정 스님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당선
2015년 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2011년 6선 의원 출신 양정규 헌정회장 별세
6선(選) 의원인 양정규(梁正圭·78) 헌정회 회장이 12일 오전 갑자기 폐렴 증세가 악화돼 별세했다.
그는 1933년 제주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국무총리 수석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7·9·12· 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무소속의원회와 국민당 등 국회에서 두 차례 원내총무, 한나라당에서 부총재와 상임고문을 지냈다. 16대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의 자문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최측근으로 불렸다.
한국권투위원회장과 세계권투협의회 부의장을 맡아 스포츠 행정과 외교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국회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한·이란의원친선협회장, 한·모로코의원친선협회장도 지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정계를 떠났다가 2009년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 16대 회장으로 뽑혔고, 올해 재선출돼 17대 회장을 맡아 왔다. 충무무공훈장과 보국훈장을 받았다.
2009년 세계 최소 공룡 발자국 발견
길이 1.27㎝, 폭 1.06㎝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룡 발자국화석이 국내에서 발견됐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함안층 - 1억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2007년 10월 창선면에 거주하는 박근실씨에 의해 최초 발견됐고, 진주교대 서승조 교수와 김경수 교수에 의해 2008년 8월에 확인됐으며, 2009년 9월 영국에서 열린 69차 세계척추고생물학회에 보고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10월 12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에 의해 공식 발표됐다.
약 1억1200만~1억2500만년 전 지층에서 찾아낸 이 발자국 화석은 중국과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소형 수각류(獸脚類·두발로 걷는 육식공룡)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다. 학명으로는 미니사우리푸스(Minisaur ipus ichnosp·'소형 공룡발자국'이라는 뜻)라고 한다.
현재 세계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된 세계 최소 공룡 발자국은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에서 발견된 것으로, 길이 1.78㎝, 폭 1.16㎝. 역시 수각류 공룡이다. 이 발자국 화석을 확인한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는 "발자국 길이로 볼 때, 공룡의 키는 최대 10㎝를 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공룡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소형 수각류 공룡은 발자국 길이의 4.5배가 골반까지의 높이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번 발자국의 주인공은 골반까지 높이가 5.7㎝로 추정된다.
2009년 우리나라 두번째 해양과학기지 가거초준공
2009년 낙산사 복원불사 완료. 2005.4.5 강원도 일대 휩쓴 산불로 불탄지 4년 만에
2005년 북관대첩비 일본에서 대한민국으로 환수결정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에 북평사 정문부장군의 왜군격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숙종때 북평사 최창대가 세운 비석이다. 당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으라고 보낸 임해군, 순화군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여 주민의 밀고로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생포 당했다. 그 때 회령의 아전 국경인과 국세필등이 그에 협력했다.
이후 정문부장군은 의병을 모아 국세필등을 처형하고 왜병을 몰아냈다. 하지만 그 후 공을 가로채이고 인조반정후 박홍구 옥사사건등에 억울하게 연루되는 누명을 써 1624년 옥사를 한다. 그 후 40년 뒤 누명이 풀려 좌찬성에 추증되고 1709년 함경도민의 발의로 북관대첩비가 세워진다.
그 후 러일전쟁당시 이것을 일본군은 약탈하고 전리품 삼아 가져가 야스쿠니 신사로 보냈다. 이후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삼균주의로 유명한 조소앙이 대한흥학보에 쓴 글을 통해 관심을 촉구한다. 하지만 어수선한 시절 잊혀지고 세월이 흘러 1978년 재일 한국인 학자 최서면에 의해 기사가 읽혀지고 찾아냈다.
그 후 정상간, 또 실무진간 협의를 거쳐 북관대첩비는 한국을 지나 북한으로 다시 환송되었다.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섬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 외국인 등 180여명 사망
2002년 10월 12일 밤 11시30분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발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치는 나이트클럽 ‘사리’ 앞쪽에 주차돼 있던 미니밴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폭발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리 클럽과 인접한 패디 바가 통째로 날아가고 일대는 불바다로 변했다. 달빛과 파도소리, 음악에 흥겨워하던 관광객 187명이 죽었고 300여명이 다쳤다. 주변의 디스코텍과 레스토랑, 호텔의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내려앉았다. 한쪽 다리와 팔이 잘린 사람도 있었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소리만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또, 거의 비슷한 시각에 나이트클럽에서 수km 떨어진 미국 영사관 부근에서도 차량을 탄 괴한들이 사제폭탄으로 추정되는 폭발물을 던졌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발리섬 나이트클럽 폭탄테러는 10월 6일 예멘에서 발생한 프랑스 유조선 폭파 테러와 10월 8일 쿠웨이트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 1명이 알 카에다 조직원에 의해 피살된 데 뒤이어 발생했다. 테러 당시 클럽 안은 500명 정도의 관광객으로 붐볐으며, 희생자 대부분은 외국인이었고 특히 호주인들의 희생이 컸다.
1999년 파키스탄 무혈쿠데타 무샤라프 정권 잡음
1999 세계인구 60억 명 돌파
0시 1분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코세보 병원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60억명 째 인류가 됨, 60억명 째 아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날지 모르므로 유엔은 오래 전 오늘을 세계인구 60억 돌파의 날로, 돌파장소를 보스니아로 지정
1960년 30억 명에서 40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남, 1798년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암울한 예언을 했고 그 뒤 200년 동안 인구 7.5배 늘어남
0-1750년까지 세계인구 160% 증가, 1805-2011년 600% 증가. 1805년 10억, 1900년 16억5천만, 1927년 20억, 1959년 30억, 1974년 40억, 1987년 50억, 1999년 60억 2011.10.31 70억명째 인류(여자아이),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서 태어남
저개발국의 인구폭발로 지금도 한 해 8600만명 씩 늘어나 2050년께 100억 넘어설 전망
1998년 케냐의 오소로, 시카고마라톤대회에서 역대 세계3위 기록으로 우승
케냐의 오소로(30)가 98시카고마라톤대회에서 역대 세계 3위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마라톤 첫 출전인 오소로는 1998년 10월 12일 시카고 시내를 순환하는 42.195㎞ 풀코스에서 마지막 1.6㎞를 남기고 스퍼트, 2시간6분54를 기록, 1997년 우승자 칼리드 카누치(2시간7분18초.모로코)와 게르트 타이스(2시간7분57초.남아공)를 제치고 1위로 골인했다.
오로소의 이날 기록은 호나우도 다 코스타(브라질.2시간6분5초)와 딘사모(2시간6분50초)에 이어 역대 세계3위로 기록됐다.
1998년 동성애자 매슈 셰퍼드(21) 사망, 미국내 `혐오범죄` 근절여론 고조
‘성(性)’과 관련된 사례로 오늘날 대학 강의에서 흔히 인용되는 ‘매슈 사건’의 주인공 미국 동성애자 매슈 셰퍼드가 1998년 10월 12일 사망했다.
1998년 10월 7일 미국 국립공원 ‘옐로스톤’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와이오밍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 밤 캠퍼스 인근의 바(bar)에 있던 21세의 동성애자 매슈는 자신도 게이라며 그를 유인한 두 명의 청년에 의해 끌려 나갔다. 18시간 후, 그는 교회의 인적이 뜸한 농장의 통나무 울타리에 묶인 채, 온몸이 피범벅이 된 상태로 발견됐다. 피로 물든 매슈는 린치를 당하여, 두개골이 골절되고, 얼굴과 목이 10여 군데 찢어졌으며, 18시간 가까이 추위에 노출되어 저체온증으로 혼수상태였다. 그는 덴버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미국에서 터진 이 엄청난 사건은 동성애자들이 제법 존재하고 그들의 문화가 일부 수용되던 미국 사회로 하여금 성적소수자의 인권문제뿐 아니라 종교, 장애인, 인종 등 수많은 편견에 대해 뜨거운 논쟁과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1997년 존 덴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
미국의 컨트리송 가수 존 덴버가 1997년 10월 12일 저녁 자신의 단발 경비행기를 조종하던 중 캘리포니아주 북부 몬터레이만의 해안에 추락해 숨졌다. 53세였다.
존 덴버는 생전에 가장 자연에 가까운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는 찬사를 받던 컨트리 음악의 황제였다.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 `로키 마운틴 하이` `퍼햅스 러브` `선샤인 온 마이 숄더즈` 같은 서정적인 노래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본명은 헨리 존 도이췬도르프 주니어. 뉴멕시코에서 공군조종사 아들로 태어나 1964년 포크 트리오로 데뷔 1969년 솔로가수로 변신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세계적 슈퍼스타로 각광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대표곡 모음집 `존 덴버 히트곡` 앨범은 무려 1천만장 이상 팔릴 정도였다. 1985년에는 냉전 이후 미국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구(舊) 소련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1992년에는 서방 음악인으로는 첫 중국 본토 순회공연을 가졌다.
덴버는 지난 1988년과 1994년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음악활동뿐 아니라 기아추방운동, 동물보호운동, 환경운동도 활발히 전개했다. 그는 특히 1976년에 비영리단체인 `윈드 스타` 재단의 공동발기인으로 참여해 지구촌 환경보호를 위한 연구와 교육에 정열을 쏟아왔다.
1996년 라코스테 의류사 창립자 르네 라코스테 사망
1992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일원에 진도 5.8 강진 370명 사망 3,369명 부상
1992년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국산1호 잠수함 이천함(1200t급) 진수
우리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건조된 잠수함 이천함 진수식이 1992년 10월 12일 경남 장승포시 대우 옥포조선소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이천함은 T-209급 디젤추진 잠수함으로 어뢰와 기뢰 등을 장착하고 있으며 30명이 승선해 2개월간 단독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잠수함은 또 최대속도가 22노트(시속 약 40㎞)로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25척의 위스키급 및 로미오급 잠수함(12-14노트)보다 월등히 빠른 잠수함이다. 이천함은 대우조선이 독일 HDW사로부터 설계와 기술을 제공받아 1989년 11월착공해 이날 진수한 뒤 연근해 등지에서 해상 시운전을 해오다 1994년 4월 30일 해군에 인도돼 실전배치됐다.
이천함은 1256년 고려를 침공한 몽골장군을 충남 아산 근해에서 격파한 이천 장군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1991년 한국과학기술청년회 창립
1990년 서울-파리 우호협력협정 체결
1990년 엘 마구브 이집트 국회의장 피살
1987년 대통령중심 직선제 개헌안 여야합의로 국회 통과
1985년 한국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
국내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시험관 아기. 서울대병원 장윤석 박사팀 시술로 출생한 이란성 쌍둥이였다. 한국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다. 1985년 10월 12일 새벽 5시10분부터 5분 간격으로 제왕절개를 한 결과, 시험관 아기 남녀쌍둥이가 태어났다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장윤석 교수팀이 발표했다.
천근엽(31, 회사원), 서정숙(28)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는 여자로 몸무게 2.63kg이고 두번째 아기는 남자로 2.56kg의 정상적인 몸무게였다. 결혼 4년째 접어든 서 부인은 1983년 1월 자궁외임신으로 왼쪽 난소와 나팔관 절제 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나팔관 마저 막혀 불임 진찰을 받은 후 1985년 1월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작해 2월 25일 호르몬 검사로 임신 성공을 확인 후 3월 21일 초음파검사로 정상적인 쌍둥이를 임신한 것을 확인했다.
1984년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장인 호텔서 폭탄 폭발. 4명 사망 30명 부상
1982년 스즈키 일본 수상, 자민당 총재직 사퇴 선언
1982년 박관현 전 전남대학생회장 광주교도소에서 단식 끝에 세상 떠남
1981년 오디오 코스타리카 대통령 내한
1981년 한국-쿠웨이트, 항공협정 체결
1980년 하멜기념비 제막
1980년 충북 보은에서 삼년산성 발견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1차회담 개최(서울측 대표 이후락/북한측 대표 박성철)
1971년 통혁당 재건 간첩단 사건
1968년 제19회 멕시코 올림픽 개막
1968년 10월 12일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올림픽이 표고 2240m의 멕시코시티에서 개막됐다. 125개국에서 5,498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고지의 산소부족 때문에 육상 중장거리 경기에서는 저조한 기록이었지만 단거리와 도약경기에서는 경이적인 기록이 속출했다.
대회의 스타는 소련군의 침공을 받은 체코의 여자체조 개인종합우승자 베라 카스라브스카였다. 일본은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축구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육상남자 200m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한 미국선수는 시상식에서 `블랙 파워` 데모를 일으켜 선수촌으로부터 추방되기도 했다.
대회 우승은 금메달 45개의 미국이 차지했으며, 소련(금메달 29개), 일본(11개), 헝가리(10개), 동독(9개)이 그 뒤를 이었다.
1968년 한국-뉴질랜드 경제협력위원회 창설
1968년 적도기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965년 맹호부대 환송식 여의도공항에서 거행
1965년 스위스 화학자 뮐러 사망
1964년 소련, 사상최초 3인승우주선 보스호드호 발사 사상최초로 우주유영 성공
1962년 네루 인도 수상, 동북국경지대군에 중국군 축출을 명령
1962년 북한-중국 국경조약인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 체결
북한과 중국이 양국의 국경을 정하는 국경조약을 1962년 10월 12일 체결했다. 북한 김일성과 중국 주은래가 서명한 이 조약은 정식명칭이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이다. 총 5조로 짜인 이 조약은 백두산과 천지, 압록강-두만강, 그리고 서해 영해의 국경선을 명확히 적고 있다.
조약문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의 경계선은 ‘백두산 위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루 서남단 위에 있는 2520고지와 2664고지 사이의 안부(鞍部-안장처럼 들어간 부분)의 중심을 기점으로 동북방향 직선으로 천지를 가로질러 대안(對岸)의 산마루인 2628고지와 2680고지 사이의 안부 중심까지다. 그 서북부는 중국에 속하고 동남부는 조선에 속한다’고 되어있다. 이럴 경우 천지의 55%는 북한에, 45%는 중국에 속한다.
조약은 이밖에 백두산, 압록강-두만강의 섬과 사주(모래톱)의 귀속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고 있다. 이 조약의정서에는 압록강-두만강의 총451개 섬과 사주가운데 북한이 264개, 중국이 187개를 소유한다고 적혀있다. 이 조약은 1964년 3월20일 양국이 의정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효됐다.
조약은 대외에 알려지지도 않고 유엔에도 보고되지 않아 밀약으로 남아있다.
1960년 마다가스카르, 신정부 성립
1960년 효창국제축구경기장 준공식 및 개장식 거행
1960년 민주반역자처리법안 민의원 통과
1958년 평화선 수비, 해안경비대 창설
1955년 서독, 국방군 발족
1952년 주간 선데이 발간
1949년 외국인등록법 국회 통과
1949년 공군 창설(초대 참모총장에 김정열 대령)
1948년 5월15일 경기도 수색에서 통위부 직할부대의 항공사령부(초대 백인엽 소령) 부대가 창설 되었다가 되면서 7월27일 부대를 경기도 김포군으로 이전하면서 항공기지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최초 9월4일 L-4 연락기 10대를 인수하여 9월15일 10대가 서울상공을 비행하였다
이후 육군항공군사령부로 개칭이 되어 육군소속이던 것이 공군의 독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온 결과 1949년 6월28일 육군본부에 항공국을 설치하였다
이후 육군항공군사령부는 병력 1897명과 항공기 20대를 가지고 공군으로 독립 하였으며 초대 참모총장에 김정열 대령이 취임하였다
1948년 문교부, 신학제(新學制) 결정(6.3.3.4제)
1946년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창설
1935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태어남
1925년 독일-소련 통상조약 조인
1919년 독일-프랑스 평화조약 조인
1916년 미국 클로케트에 큰 산불 사망 400여명
1916년 한국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 사망
한국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이자 격동의 구한말 한국 근대화에 힘썼던 언더우드 1세(한국명:원두우)가 1916년 10월 12일 고국 미국에서 눈을 감았다.
4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원래 인도 선교를 지망하고 그를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미전도 개척지 한국의 소식을 접한 이후, 기도 중 “너 자신은 왜 못 가느냐?” 라는 응답을 받고 한국 선교를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언더우드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그는 1894년 한국 최초로 찬송가를 간행했고,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 한국어 문법과 한영사전을 편찬하며 성경번역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근대 한국 교육사업에도 큰 공을 세웠다. 한국에 온 다음해인 1886년 한국의 첫 고아원을 세우고 고아 학교를 창설했는데, 이것이 후에 서울 경신고등학교가 됐다. 또한 그는 지금의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대학을 세웠다.
그는 한국에서 31년간 종교, 교육, 문예, 자선 등 다방면에 걸친 봉사를 하다 발진티푸스병이 악화돼 1916년 4월 요양차 미국으로 떠났는데,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2004년 10월 원두우-원한경-원일한-원한광씨 4대에 걸친 119년간의 한국과의 인연을 뒤로 하고 언더우드가(家)가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2004년 현재 언더우드 1세부터 3세까지 모두 ‘제2의 고향’ 한국 외국인 묘지공원(서울 마포구 합정동 소재)에 잠들어 있다.
1901년 프랑스, 이탈리아와 조약체결로 모로코 획득
1897년 고종황제 즉위, 대한제국으로 국호 변경
조선의 고종은 1897년 10월12일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하고 자신이 황제에 즉위 하였다
그러나 재란이나 혁명에 의한 국가를 수립한것은 아니고 국호와 왕의 명칭만 바뀌였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침탈을 당하다가 1905년 을보늑약이 체결된 후에는 일본제국에 예속되다피 하였다가 1910년 8월29일 한일합병에 의해 합병되며 사라지고 만다
대한제국은 태극기와 대한제국 애국가를 사용하였으며 국장은 이화문이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시정 국명과 태극기를 사용하다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
1879년 영국, 아프가니스탄을 속령으로 함
1870년 미국 남북전쟁 남군사령관, 로버트 에드워드 리 사망
1870년 이탈리아, 통일 완성
1844년 노벨문학상 받은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 태어남
1790년 프랑스, 3색 국기 제정
1573년 이이, 기묘사화의 일을 들어 선조에게 정치 잘할 것을 상소
1492년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1492년 10월 12일 인도로 가는 서쪽 항로를 탐험하는 스페인 왕실 소유의 탐사대를 이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드디어 옷을 입지 않은 야만인들이 살고 있는 어떤 나라의 해변에 당도했다. 오랫동안 육지에 닿기를 기다려 온 그의 염원에 행운이 깃든 것으로 받아들인 콜럼버스는 이곳을 `구원의 성자`라는 뜻으로 `산살바도르`라고 불렀다.
콜럼버스는 1451년 제노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이다. 27세 되던 해인 1478년, 포르투갈로 간 콜럼버스는 항해술과 해도 제작술을 배운다. 당시의 새 학설 `지구 구체설(球體說)`을 굳게 믿고 있던 콜럼버스의 인생은 피렌체 출신의 지리학자 토스카넬리의 주장과 만나면서 일대 전기를 맞는다.
그는 `땅을 발견하게 되면 첫째, 포르투갈의 기사 작위를 내려줄 것 둘째, 발견하게 되는 땅의 총독을 맡겨줄 것 셋째, 영토의 확장으로 보게 되는 경제적인 이득의 10%를 지급할 것`이라는 제안을 가지고 포르투갈 왕을 찾아갔다. 그러나 포르투갈 왕은 이 야심만만한 원정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의 포르투갈은 이미 동인도 항로개발 계획에다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라를 찾아갔다. 여왕은 콜럼버스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렇게 해서 1492년 항해가 시작됐다. 콜럼버스는 그 뒤에도 세 차례 더 대서양을 항해했다.
BC539 바벨론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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