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중편소설
#비곗덩어리
오늘은 모파상이 1880년에 쓴 <비곗덩어리>라는 소설을 한편 소개하려고 한다.
모파상은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아실테고, 이 책의 주제와는 별개로 전쟁의 참상에 관해 서술해 놓은 이런 묘사부분들이 너무 좋다.
보불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북부 도시 ‘루앙’에서 여행 허가증을 얻어낸 사람들이 서둘러 피난을 가기위해 마련된 대형 마차 한 대가 이제 막 출발하려 하고 있다.
그 마차에는 명문 귀족 부부,방직공장을 여러개 가진 지방의회 의원 부부, 포도주 도매상 상인부부를 비롯해 두 명의 수녀,부모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정계 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공화주의자 한 명 까지 총 9명에, 의외의 인물 한 명이 타고 있었다. 비계 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뚱뚱한 매춘부, ’엘리자베스 루샤‘라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총 10명)
귀족과 부자, 성직자와 정치인, 이라는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계 덩어리’ 매춘부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차 안의 분위기는 9명의 기득권들의 단합된 특권의식에 의해 1명의 약자에 대한 경멸과 타부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추운 겨울 짙은 안개와 눈발 때문에 예정된 시간에 중간도착점에 이를 수 없게 되자 마차 안의 냉랭한 분위기는 점점 불안함과 초조감으로 변해간다.
아무런 준비 없이 길을 나선 이들이 갑작스러운 추위와 배고픔에 슬슬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비곗덩어리’가 미리 준비해 온 4일치 분량 식량 바구니를 열어 포도주와 고기를 꺼내 식사를 시작하자,
그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왕따시키던 비곗덩어리에게 상스럽기로 소문난 포도주상인이 먼저 아양을 떨기 시작하고,‘비계 덩어리’는 그들 모두에게 자신의 음식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마차 안의 승객들은 그제서야 비곗덩어리를 상대해 주면서 프로이센 군인을 응징한 그녀의 일화를 들고서는 그녀의 용기와 패기에 박수를 치며 치하하기도 한다. 이들 사이의 대화가 가능하게 한 것은 ‘비계 덩어리’가 제공한 음식덕분이었다.
마차는 무사히 중간지점에 이르렀고,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휴식을 취하지만 이튿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어도 마부는 실종되고 마차는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행 허가증이 있는데도 그 지역을 담당하는 프로이센 장교가 괜한 몽니를 부리며 이들의 출발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은밀히 요구한 것은 ‘비계 덩어리’와의 잠자리였고, 처음 그런 요구를 받았을 때 그녀가 분개하며 치를 떨었다는 것을 일행 모두 알게 되었다.
일행 9명 모두는 적군 장교의 파렴치한 요구를 거절하고 프랑스 시민의 자존심을 지켜낸 비곗덩어리의 단호한 처신을 칭찬하며 프로이센 장교에 함께 분노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이 붙잡혀 있는 곳에서 곧 대대적인 교전이 있으리란 소문에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그들의 논리는 점점 은밀하고 교묘하게 변질되고 있었다.
적군 장교의 요구를 야만적이라 비난하던 일행들은 매춘부를 설득하는데 있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뭐 있냐며 자신들의 논리를 합리화하고, 비곗덩어리를 희생시키고자 공모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무 남자하고나 그 짓을 하는 게 매춘부인데, 왜 사람을 가려가며 거절하는 거죠?“
멋진 몸매를 지닌 프로이센 장교가 적군인 게 유감이라는 귀부인의 천박한 발언을 시작으로 “혹시 그 자가 자기 나라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미인을 맛보았다며 자랑하고 다닐지도 모르잖소."라며 프랑스 미인을 홍보할 기회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들 모두 고전에서 읽은 인문학 교양지식을 바탕으로 여인들의 희생의 미덕으로 나라를 구한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완강하기만 하다. ‘비계 덩어리’에게 집쩍대다가 수모를 겪은 정치인의 침묵 속에서, 급기야 모두들 비열하고 알량한 논리로 그녀를 몰아간다. 매춘부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상대할 남자를 가리는 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비난을 퍼붓는다.
최종적으로 두건을 쓴 나이 많은 수녀의 한마디가 비곗덩어리를 굴복시켰다. “그 자체로는 비난 받을 만한 행위라 할지라도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행했는지에 대해 찬양받을 수도 있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하느님의 의중을 간파하고 있다는 듯, 어떤 판결을 내릴지 다 예측한다는 듯, 사실은 하느님과 그다지 관계없는 일들에까지 하느님을 끌어들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국 ‘비곗덩어리’는 프로이센 장교를 찾아가게 되고, 다음날 아침 마차는 마침내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수치심에 떨며 황급히 마차에 올라탄 비곗덩어리를 맞이한 것은 그들을 위험해서 벗어나도록 희생해 준 여인에 대한 감사도, 짐승 같은 프로이센 장교에 대한 분노도 아니었다.
불결한 존재를 대하듯 접촉을 피하려는 외면이었고, 적군의 장교와 몸을 섞은 여인에 대한 철저한 경멸이었다.
차가운 침묵에서 벗어나 음식을 꺼내 먹으면서도 누구 하나 비계 덩어리에게 말을 걸거나 음식을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그들의 목숨을 살기기 위해 몸을 던져 희생하느라 음식을 싸고 준비할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음식과 육체를 아낌없이 희생했던 ‘비계 덩어리’는 어린아이처럼 오열하고 싶은 것을 참았지만 저절로 눈물이 솟구쳐 가슴으로 뚝뚝 떨어졌다.
백작 부인은 남편에게 속삭였다.
“부끄러워서 우는 거예요.”
두 수녀는 남은 소시지를 종이에 말아 놓은 뒤,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
정치인은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프랑스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비곗덩어리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어둠 속에 울려퍼지는 노래 사이로 억제 할 수 없는 흐느낌이 이따금 새어나왔다. <끝>
높으신 귀족, 천박한 졸부, 보수정치인, 경건한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기득권들의 참을 수 없는 비열함에 대해서 생각한다.
약자에게 사랑과 연민을 베풀어야 하는 사회지도층, 도덕적 의무를 지닌 성직자들,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운 지식인들이 악마의 지식과 교양으로 무장하고 연합해서, 약한자를 어떻게 짓밟고 희생시키는지 낱낱히 까발리는 모파상의 위대함에 감탄하면서도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부끄러워진다.
엘리자베스 루샤는 비록 많이 배우지 못했고, 형편없는 일에 종사하고는 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자국에 대한 의리와 애국심, 이웃들에 대한 사랑, 베품과 연민, 등의 가치를 나름 지조있게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들만의 리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어떤 조직에서든 한번 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엘리자베스 루샤!
비곗덩어리 취급받는
이 세상의 모든 소외된 영웅들!
한량없는 베품, 숭고한 사랑에 감사하며,
눈물닦고 힘내기를!
미스터 선샤인의 명대사를 빌리자면,
‘울기’보다 ‘물기’를 택하기를!
첫댓글
여여하세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동트는아침님
멋진주말 되세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태양님
감사드립니다
편안한밤 되시고
또 한주멋지게 보내세요
추천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잘마실게요
ㅎㅎ
오 ~~
오랜만에 접하네요
잘 보고 가옵니다 📚
네네
엠비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