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33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겉넘는 것은 가장 나쁜 버릇입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거나 교회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몹시 답답한 것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것은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일입니다. 즉 겉 넘는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서 수박의 겉만 핥는 사람을 대하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차게 달리는 말 위에서 산을 대충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세상일에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충 건성으로 일을 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강의실에서 훌륭한 교수가 강의를 한다고 하여도 학생들이 대충 지나가는 태도로 공부를 하고 신부님께서 주일 강론을 멋지게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 알고 있는 말씀을 또 한다고 지루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른 생각에 몰두해서 주보를 보거나 딴 짓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선생님의 강의를 아예 들으려하지 않고, 뒤집어서 생각하고, 무조건 반대하고, 비방할 것만 찾으려는 점입니다. 바로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원로들은 주님의 말씀이나 행동에서 꼬투리를 잡을 것만 생각하고 주님의 참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오로지 예수님을 잡을 생각만 하고 있어서 다른 것은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면 성전을 정화하시는 주님의 태도는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이 하는 행동은 ‘무류성’(無謬性 :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것)이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빙자하여 헌금할 돈을 비싼 값으로 바꿔주는 환전상을 하고, 비싼 값에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이 성전을 가득히 메우고 있고, 그들에게서 자리 값을 받고 장사하게 하는 것을 그들의 권한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한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권한을 탓하고 자신들의 권한으로 잘못알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수석사제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빌미로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그 권한의 출처를 밝히라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대통령이 되거나 지방 자치단체의 장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모든 국민의 권한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한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에 의해서 그 권한이 행사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 권한을 자신들 만이 지켜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자신들 외에는 그 누구도 그런 위인이 될 수 없다고 입증하기에 온통 말잔치를 벌리고 난리입니다.
오늘 예수님깨서는 아주 명쾌하게 답변을 하십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안다면 백 번의 싸움이라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적의 일은 물론이고 아군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실력을 비교 검토한 다음 싸움에 임하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 틀림없다는 손자의 명언입니다. 손자는 싸움에 있어서 격투 끝에 적을 이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급한 계책이라고 합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 이것이 손자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전략입니다. 따라서 백전백승, 연전연승의 것을 상책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킨다고 하는 것은 최선의 전략이며 전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그들과 대항해서 따질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들에게 참된 권한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사람들이 참된 예언자로 알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입을 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대하시는 그 오묘한 전략을 생각하면서 나도 신묘한 전략을 강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의 말과 고집에 많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심어주려고 강제하고 있습니다. 잠시 되돌아보고 자신들이 한 말을 생각해보면 좋겠는데 무조건 뱉어버리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세상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자신만이 정당하다고 말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한과 그 행사는 그만한 책임이 있는 것이며, 예수님처럼 권한의 원천이신 분이 아니면 항상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유다서의 말씀입니다. 17.20ㄴ-25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20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24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25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축일6월 1일 성 유스티노 (Justin)
신분 : 교부, 순교자, 호교론자
활동 연도 : 100/110?-165년
같은 이름 :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누스, 저스틴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 유스티누스가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있는 로마(Roma)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Rome)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유스티노 (Justin)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아멘!
감사합니다. 야보고님.
감사합니다. 촌로 율리아노 형제님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엘리사벳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