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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칠레 광산 메몰 된 광부 33명 69일 만에 전원 구조
8월5일 칠레 코피아포에 위치한 산호세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33명이 매몰된지 69일만에 전원 구조 되었다.
이날 오전 12시04분에 가장 처음 구조된 광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는 두 아이의 아빠로, 매몰광부들 가운데 최상의 몸 컨디션을 보여 첫 번째 캡슐 탑승자로 선택됐다. 그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에는 약 16분이 걸렸다. 이날 마지막으로 구조된 루이스 우르수아(54)는 어두운 지하 광산에서 33명의 광부들을 이끌었던 리더로, 이날 오후 9시55분 구조됐다.
구조된 광부들 가운데 폐렴에 걸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강한 상태로 판명됐다. 폐렴에 감염된 광부는 현재 항생제 치료 중이다.
구조대원들과 매몰 광부들의 친지들은 광부들이 지상으로 올라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애타게 구조과정을 지켜봤던 광부들의 부인과 자녀, 부모들은 모두 산호세 광산 위에 모여 광부들의 생환을 맞이했다.
당초 광부 한 사람을 구조하는데 1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어깨 너비만한 크기의 특수제작 캡슐 '피닉스(불사조)'를 타고 약 625m의 바위를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는데는 단 15분 가량이 걸렸다. 구조 간격은 점차 짧아져 당초 이틀은 걸릴 것이란 예상을 크게 단축한 것이다.
2022년 울산공항서 경비행기 세스나 저고도 비행중 추락 비행사 1명 사망
2022년 파키스탄 신드주(州) 잠쇼로의 누리아바드근처에서 버스화재로 18명 사망
2019년 브리지드 코스게이(25세 케냐) 시카고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14분 4초로 여자마라톤 세계신기록
2019년 법원, 김정환 시인 이호웅 의원 등 46명에게 긴급조치 9호 피해 국가배상 판결
2017녀 법원,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연장 결정
2016년 박세리 은퇴
박세리는 메이저대회 5회 포함 LPGA 통산25승·톱10 123회·통산상금 1258만$·1998년 신인상·2007년 LPGA투어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회 등의 기록 세움
2016년 세계최장 70년 재위 푸미폰 아둔야뎃(89세) 태국 국왕 세상 떠남
2016년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90세 1997년 노벨문학상 수상) 세상 떠남
2014년 배상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프라이스닷컴 오픈 우승
2013년 한국-인도네시아·UAE 통화스와프 체결 합의
2010년 대한민국 국적 생존자 중 5000만 번째 주민등록자 탄생
행정안전부는 지난 9월 30일 오전 10시3분 43초에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신흥동 주민센터에서 우리나라 5000만번째 주민등록 등록자가 나타났다고 13일 밝혔다.
5000만번째 주민등록자는 유통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김성준씨(33)와 어머니 천지영씨(36) 사이에서 지난달 13일 태어난 ‘김성미’라는 여자아기다. 4999만9999번째 주민등록자는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이, 또 5000만1번째는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난 아기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국민이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68년이다. 남자 1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여자 1호는 육영수 여사였으며, 서울 청와대 주변부터 시작해 제주도까지 국민이 거주지 순서대로 번호를 받았다. 1968년에는 3000만여명이었던 주민등록 인구가 15년 후인 1983년에 4000만명, 42년이 지난 올해는 50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9월 30일 기준으로 우리나라 공식 인구는 5000만1273명이고, 서울은 1018만6556명이다. 경기도는 1163만9429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고, 제주도는 56만5699명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이날 5000만 번째로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김성미양의 집을 방문해 기념패를 전달하고, 행운의 열쇠와 유모차 등을 선물했다.
2010년 69일간 매몰됐던 칠레 광부 33인 구조
2010년 10월 13일 69일간 지하 700m에 매몰되어있던 칠레 광부 33인(칠레인 32명, 볼리비아인 1명)이 생환하였다. 33인의 광부는 8월 5일 칠레 북부 코피아포의 산호세 광산에서 터널 붕괴로 지하 700m에 매몰되어, 매몰 17일만인 22일 생존이 확인되었고, 69일 만인 10월 13일 구조되었다.
생존 확인 이후 지상과 연결된 지름 15㎝의 드릴 구멍을 통해 음식과 약품을 공급하고, 동영상 카메라도 내려보내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초 구조까지 3~4개월이 소요되어 2010년 크리스마스 쯤에야 구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구조용 터널을 뚫기위해 공기압을 사용한 최신기계를 사용하고 특수강철로 만든 구조용 캡슐을 통해 구조일자를 2개월 이상 단축하였다.
2010년 10월 12일 오후 11시 15분 구조가 시작되어, 피녜라 대통령의 구조 개시 선포 이후 1시간이 안된 매몰 69일 만인 13일 새벽 0시 11분,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 매몰 당시 부조장)의 첫 생환을 시작으로 오후 9시 56분(현지시각) 루이스 우르수아(매몰 당시 작업조장)이 구조되면서 0시 35분 구조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번 칠레 광부 33인의 매몰 및 구조 소식을 통해, 절망 속에서 광부들이 보여준 의지와 지혜, 리더십, 칠레 정부의 신속하고 단호하며 효율적인 대응 능력은 칠레가 그동안 축적해온 국가적 역량을 국제사회에 입증하여, 국가적 위기를 이미지 상승의 기회로 바꾸었다. 이번 구조가 남북으로 길게 걸쳐 있는 지리적 특성에서 생겨난 경제적 분열과 계급적 갈등 봉합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2009년 중국 최후의 '건국 장성' 뤼정차오 사망
2009년 10월 13일 오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세대 상장(上將)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던 뤼정차오(呂正操·106) 전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사망했다.
랴오닝(遼寧)성 하이청(海城) 출신인 그는 1917년 장쉐량(張學良)의 추천으로 군사학교인 동북강무당에 들어갔다. 1925년 졸업 후 장쉐량의 부관으로 1936년 시안에 주둔 중이던 장쉐량이 장제스(蔣介石)를 감금하고 국·공내전의 중지를 요구한 ‘시안사변’때까지 장쉐량을 그림자처럼 보필했다.
시안사변 직후 한때 국민당 군대에 입대한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당 군대에서 이탈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뒤 항일운동과 국공전쟁에서 잇따라 공을 세우며 팔로군 제3군단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1955년 당시 소련을 모방, 도입한 군 편제에 따라 임명된 최초의 상장(대장 아래 직급) 5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인민해방군은 당시 대장으로 임명된 10명과 함께 이들을 ’건국 장성’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우대했다.
상장에 임명된 그는 중국 철도부장 등을 역임하다 1983년부터 5년간 정협 부주석을 지냈다.
2007년 금강산 신계사 낙성식
1951년 6월 미군폭격으로 불타버린 신계사를 2004년 4월부터 3년 6개월 동안 70억원 들여 복원
2002년 전파연구소 `형식승인 처리방법`을 제정, 고시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2000년 10월 13일 오슬로 소재 노르웨이 노벨연구소에서 가진 수상자 발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으며, 1901년 처음으로 앙리 뒤낭과 프레데리크파시가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이래 81번째의 수상자이자 아시아인으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평화상을 타게 됐다.
김 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은 12월10일 오슬로에서 열렸으며, 김 대통령은 90만 스웨덴크로나(약 96만달러․약 10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번 노벨평화상 후보에는 개인과 단체를 합쳐 모두 150명이 올랐으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도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된 뒤, "오늘의 영광은 지난 40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해 준 국민들의 성원 덕분"이라면서, "이 영광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리고자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1999년 탤런트 서갑숙 자전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출간
탤런트 서갑숙씨의 자전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출간되자마자 사회적인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여자친구와 함께 남자 1명과 성관계를 맺은 이야기를 비롯, 동성애, 강간 등 자신의 성체험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책이 출간되자 교보문고는 처음에는 이 책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 책을 전량 출판사에 돌려보냈다가 이후 `19세미만 구독불가`라는 스티커와 함께 책에 랩을 씌워 판매했다. 한편 KBS는 서씨가 출연중인 `학교2`프로에서 그녀를 출연정지시켰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26일 청소년유해간행물로 결정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은 음란성내사결과 책내용에 문제없다며 27일 내사를 종결했다
1999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월트 체임벌린 사망
미 프로농구(NBA) 통산 최다 리바운드의 주인공 윌트 체임벌린(63)이 1999년 10월 13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LA 레이커스 팀 대변인과 경찰은 체임벌린이 이날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에 있는 자택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2m16cm의 장신 센터 체임벌린은 1959년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에 입단 후 1973년 LA레이커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14년 간 경기 당 평균 30.1득점에 22.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데뷔 첫해 신인왕과 동시에 MVP를 차지하는 등 통산 4회 MVP에 오른 그는 통산 최다 리바운드(2만3924개), 한 게임 최다 득점(100점)과 최다 리바운드(55개) 기록을 갖고 있다. 통산 최다득점 기록(3만1419점)도 갖고 있었으나 이는 1984년 카림 압둘 자바(통산 3만8387점)에 의해 깨졌다.
체임벌린은 59∼60시즌부터 65∼66시즌까지 7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고, 11시즌서 리바운드왕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는 13회 진출했으나 `천적` 보스턴 셀틱스에 번번이 패해 우승은 2회에 그쳤다.
1999년 유엔, 탈북자 `난민`으로 인정
1999년 로버트 먼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
1998년 유고 코소보탄압 종식 합의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 북아일랜드 분규발생후 76년 만에 회동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가 1997년 10월13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스토몬트성(城)에서 북아일랜드 유혈분쟁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역사적인 회동을 가졌다. 영국총리와 신페인당 지도자간 회담은 1921년 당시 로이드 조지 총리와 아일랜드 공화국(IRA) 창립자이자 신페인당 고위간부였던 마이클 콜린스와 회동한 이래 76년 만의 일이었다.
30년을 끌어온 북아일랜드 개신교와 가톨릭계간의 유혈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블레어 총리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국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를 방문, 애덤스와 전격 회동했다.
이날 만남은 사진촬영도 허용되지 않은 조촐한 만남이었으나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증오의 땅` 북아일랜드에 평화복원의 첫 물꼬를 트는 계기로 작용했다. 비록 20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으며 가시적인 성과물은 없었지만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1996년 독일 `슈테른`지 창설자 헨리 나넨 사망
1995년 영국의 반핵 운동가 롯블라트 199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1995년 10월 13일 영국의 핵물리학자이자 반핵운동가인 조셉 롯블라트(86) 런던대 명예교수와 그가 회장으로 있는 반핵단체 과학과 세계문제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가 1995년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롯블라트는 폴란드 태생의 영국인 핵물리학자이자 저명한 반핵운동가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이번에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퍼그워시 회의`의 창립멤버로서 1988년부터 의장을 맡아 왔다. 1930년대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을 졸업한 뒤 나치의 억압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 1939년부터 리버풀대 물리학 강사, 런던대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수상 당시는 런던대 명예교수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리버풀에서 히틀러의 핵개발 야심을 막기 위해 원자탄 개념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초대받아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독일의 핵무기 개발계획이 무산되고 나치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1944년 말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며 맨해튼 프로젝트를 떠났다.
이후 그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만을 추구하는 `핵과학자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반핵운동에 참여했으며, 의학과 생물학 등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지난 1992년 아인슈타인 재단이 수여하는 아인슈타인 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북아일앤드 신교도 무장조직들, 구교도와 아일랜드 공화군에 대한 휴전선언 성명 발표
1993년 미국 러셀 헐스-조제프 테일러, 세계 최초로 쌍성 펄사 발견 공로로 노벨물리학상 수상
1992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 노벨경제학상 수상
1992년 북한탈출 귀순자 안혁, 강철환, 북한 연변 등 12곳의 정치범수용소에 20여만명이 수용돼 있다고 밝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범죄와의 전쟁 선포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범죄 소탕을 위해 강력한 전면전에 들어 갈 것을 선언했다. 노 대통령은 6공 당시 가장 문제가 됐던 가정파괴범이 사회적인 분노를 일으키자 ‘범죄와의 전쟁’을 결심했고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 범위안에서 가장 강력한 대책을 수립했다.
전쟁 선포 1년 동안 전국 2백53개 폭력조직에서 8백39명의 폭력배를 검거해 그 중 7백62명을 구속했다. 여기에는 두목급 20명과 행동대장 83명이 포함돼 있어 대부분의 폭력조직이 사실상 와해됐다. 이에 따라 범죄 발생 건수가 1989년도에 비해 2.7% 감소하고, 범죄자 검거율은 7.4% 증가했다. 특히 마약사범 발생률은 1989년도에 비해 13.4%가 감소했다.
1986년 유성환 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중 국시(國是)발언
제131회 정기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 첫날인 1986년 10월 13일 유성환 의원이 "반공을 국시로 하면 올림픽에 동구공산권 국가가 참가하겠느냐"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국시논쟁이 시작됐다.
여당은 경호원을 발동해 야당의원을 따돌린채 최영철 국회부의장이 참의원 회의실에서 민정당의원 1백46명과 무소속의 이용택의원 등 1백47명의 의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유의원 체포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고, 유의원은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유성환 의원은 회기중 원내발언으로 구속된 첫 사례가 됐다.
1985년 문학평론가 백철 세상 떠남
1984년 보안사 재일동포 유학생 6개 간첩망 6명 구속 발표
1982년 원전 9-10호기 공사 기공(경북 울진)
1981년 문교부, 국민학교 영어교육 결정
1981년 보안사 학원가 침투한 재일동포 유학생 5명 국보법으로 구속 발표
1980년 국보위, 사회악사범 4만7천여명 검거. 군부대 순화교육(삼청교육)중이라고 발표
1979년 신민-통일당 의원 69명, 의원직 사퇴서 제출(11.15 반려)
1979년 10월 13일 당시 야당인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66명 전원과 통일당 의원 3명 등 69명이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같은 달 4일 집권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 159명이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YS) 의원을 제명시킨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의원 제명의 정치적 희생자는 지금까지도 YS가 유일하다.
신민당의 결의는 단호했다.
당 총재가 불법과 변칙으로 강제 추방된 국회에 남아 역사의 공범자가 되기보다는 의회를 떠나기로 했다
초강경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는 자살과 같다. 그 뒤의 걱정은 필요 없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의회를 떠날 자유, 스스로 정치적 목숨을 끊을 자유조차 없었다.
의원직 사퇴는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그 국회는 여당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퇴서가 전부 반려되거나 선별적으로만 수리될 경우 신민당은 의원들의 처신 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란 전망마저 제기됐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한 신민당 의원의 발언을 보면 변심한 애인을 두고 한강에 투신했을 때 얼음바닥이면 죽고 마는 것이지만 물이어서 허우적거릴 때 애인이 다시 나타나 잘못했다고 빌면 자살을 그만둘 수도 있다.
여당의 사과를 포함한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10여 일 뒤 발생한 10․26사태는 이런저런 정치적 고민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1978년 중국, 모스크바 겨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설치 발표
1977년 루프트한자 여객기 서독 적군파에 피랍
1977년 10월 13일 서독의 루프트한자 보잉 737 여객기가 서독 적군파 4명에 의해 남프랑스 상공에서 피랍됐다. 범인들은 서독에 수감되어 있는 적군파 11명의 석방과 거금을 요구했다.
서독 국경경비대대 GSG9특공대 28명은 10월 18일 아덴을 거쳐 아프리카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에 강제 착륙해 있는 피랍 여객기 기내에 침투, 범인 전원을 사살하고 승무원과 승객 86명 전원을 108시간 만에 구조해 냈다. 특공대들은 소형폭탄으로 기내의 4개 문을 폭파한 후 돌입, 권총으로 먼저 3명을 사살하고 화장실에 숨어있던 여성 게릴라는 중상을 입었다.
슈미트 수상은 처음에는 범인들과 끈질기게 교섭했지만, 범인들이 17일 아덴 공항에서 기장을 사살하고, 이 하이재킹이 9월 5일 발생한 한스 마르틴 슐라이어 독일경영자연맹 회장 유괴사건과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 인질들의 체력이 한계상황에 이르자 강경방침으로 선회했다.
한편 같은날 오전, 종신형을 선고받고, 서독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안드레아스 바더, 그의 정부이자 공동 의장인 구들룬 엔슬링, 그리고 양카일 라스페 3명이 자신을 석방시키려는 게릴라들의 납치기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자살했다. 이들은 납치범들이 석방을 요구한 독일 적군파 RAF 간부들이었다. 이튿날 유괴된 적군파들이 자행한 피의 보복으로 프랑스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1972년 소련의 일류신 62기 모스크바 북방에서 추락 사망 176명
1972년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한국의 피카소라 불린 빨치산 화가 양수아 세상 떠남
1970년 캐나다-중국, 국교 수립
1969년 인왕산 청운(淸雲)스카이웨이(現-인왕스카이웨이) 개통
1968년 제19회 멕시코올림픽 개막
1967년 NATO본부 파리 철수. 16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서 개소
1965년 맹호부대 인천항 출발
1964년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실각(후임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1964년 공화당 이만섭의원 판문점에 남북한면회소 설치 제의
1964년 뇌염환자 2957명. 사망 953명 발표
1962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초연
1962년 10월 13일,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누가...’는 뉴욕 타임즈로부터 “최근 10년간 상영된 연극 중 최고”라는 호평을 들으며 토니상과 뉴욕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이미 ‘동물원 이야기’ 등으로 미국 부조리 연극계에 일정한 지위를 구축한 올비는 이 작품으로 대중성까지 확보하게 됐다. 그는 퓰리처상을 3차례나 받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작가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브로드웨이로부터는 외면을 받았다. 출세작 ‘동물원 이야기’(1959년)도 미국 평론가와 연출가들의 냉대속에 멀리 독일에서 초연돼 성공을 거둔 후 브로드웨이로 상륙했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의 방탕한 생활과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진 올비 개인의 삶을 냉대의 이유로 설명했다.
‘누가...’는 1966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제작돼 5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2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창립
1960년 북한, 중국에 대한 4억 2000만루블 차관에 조인
1958년 미국, 핵실험 정지 17개국 결의안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 제출
1958년 말라가시, 공화국 선포
1957년 이집트군, 시리아 침입
1952년 미국-영국-프랑스, 대(對)유고 원조협정 조인
1948년 사범학교 제외한 중고교 남녀공학제 폐지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발족(단장 이범석)
조선 민족 청년단은 중국에서 조국 광복 운동을 벌이던 이범석이 귀국 후 조직한 한국의 청년단체이며 정부 수립 후 창단 2년만에 해산되어 대한청년단에 흡수되었다.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발족
1943년 총독부, 전시교육비상조치방책 발표
1943년 이탈리아, 독일에 선전포고
1925년 마거릿 대처 출생
1924년 ‘멍텅구리 헛물켜기’ 연재
흔히 한국 신문만화의 효시를 말할 때 1909년 6월 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한 컷 만화를 꼽는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만화라기보다 만평(漫評)에 가까운 것이지만 한국 신문만화사(史)의 첫 포문을 연 일임에는 틀림없다. 대한민보는 1910년 6월 5일부터 국내최초로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까지 실어 초기 한국신문의 비주얼화를 선도했다. 대한민보가 폐간된 후에는 조선일보ㆍ동아일보가 그 역할을 대신해, 조선일보는 연재만화를, 동아일보는 독자투고 만화를 시작했다.
한국신문사상 최초의 네 컷짜리 만화가 연재를 시작한 것은 1924년 10월 13일자 조선일보였다. 미국의 조지 맥마너스의 만화 ‘매기와 지그스’에서 착안한 ‘멍텅구리 헛물켜기’란 명랑만화였다. 주인공 최멍텅과 친구 윤바람, 그리고 미모의 기생 신옥매가 등장, 한량과 기생의 연애행각을 그린 이 만화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림은 노수현이 그렸고 줄거리는 조선일보 편집고문 이상협과 주필 안재홍이 꾸몄다.
‘멍텅구리...’는 이후 ‘멍텅구리 련애생활’ ‘멍텅구리 가뎡생활’ 등 시리즈로 연재되며 2년 5개월동안 총 501회나 연재되다 1927년 3월 11일에 막을 내렸다. 1926년 1월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만화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었다.
1919년 경성악우회, 종로 청년회관에서 제1회 음악연주회 개최
1909년 스위스의 법률가 겸 철학자 카를 힐티 사망
1909년 제1회 사법시험 실시
1908년 의병장 이강년 순국
1908년 월북 시인 임화 출생
1905년 헨리 어빙 사망
배우로서 최초로 ‘경(Sir)’라는 칭호를 받았던 영국의 대배우 헨리 어빙이 1905년 10월 13일, 화려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평범한 세일즈맨과 농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어빙은 6년간의 시골 생활 후 런던으로 상경한다. 이때부터 그의 마음은 런던 극장의 연극과 배우에게 쏠려 있었다. 대사없는 단역 남자배우 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한 그는 3년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 대부분을 포함해 모두 330편의 작품에서 400여 가지 배역을 맡았다. 10년 동안 이러한 견습배우 생활을 계속하다 미국인 흥행주 H.L.베이트먼의 라이세움 극장에서 공연한 ‘종(Bells)’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어빙은 당대 최고 배우로 떠올랐다.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미결수 살인범 매시어스 역은 그의 타고난 으스스하고 멜로드라마조의 분위기에 잘 어울렸으며, 이 작품은 죽을 때까지 그의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됐다.
1875년 베이트먼이 죽자 어빙은 1878년부터 라이세움 극장을 빌려서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인 일에도 일일이 신경을 썼으며 무대장치와 의상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영국에서 제일 가는 디자이너와 음악가를 고용했다. 이 모든 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1878년 그가 엘런 테리를 주연 여배우로 고용함으로써 이 둘은 영국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동반자 관계로 일세를 풍미했다. 어빙은 사색형의 내성적인 남자, 테리는 시원스럽고 충동적인 여자의 연기를 펼쳐 모든 사람을 매료시켰다.
이후 어빙은 독창적인 연극연출에 대한 공로로 영국왕실로부터 ‘경(Sir)’이라는 칭호를 받는 최초의 배우가 됐다. 그러나, 이렇듯 화려한 날들도 1897년 아들 로렌스의 연극 흥행 참패와 라이세움 극장의 화재, 그리고 잇따른 미국 순회공연에서의 참패 등으로 그 끝을 맞아야했다. 결국 1902년 극단은 해체되었고, 어빙은 1905년 68세에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났다.
1890년 아이젠하워 미대통령 태어남
1866년 병인양요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선교사 9명과 한국인 천주교도 800명을 학살. 이에 대항해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 무기․서적 등을 약탈하고 철수했다.
싸움의 결과는 천주교 박해․쇄국 양이 정책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1822년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 사망
1453(조선 단종 2) 계유정난(수양대군이 김종서 등 원로대신 죽이고 권력 잡음)
1149(고려 의종 3) 옥룡사에 도선국사비 세움
562(백제 성왕 30) 백제 왜국에 불교 전파, 경전과 불상을 갖고 일본에 간 백제승려 도장은 성실종의 시조
552년 백제, 일본에 불교 전수
백제 제26대 성왕이 보낸 사자가 일본에 도착, 가지고 갔던 금동 석가상과 불경을 일본 왕에게 전함으로써 일본에 불교가 전해지게 됐다.
이 뒤에도 백제는 계속하여 승려를 일본에 많이 보내 불교를 펴는 동시, 달력․천문․지리 등의 책도 보내 문명을 깨게 했다.
54년 제4대 로마제국 황제 클라디우스 사망
54년 제5대 로마제국 황제 네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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