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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에버그란데에서 새로운 축구인생을 시작하게 된 학손 마르티네스. 그의 몸값이면 K리그 한 팀 전체를 살 수도 있다. 출처:광저우에버그란데 홈페이지)
하미레스, 라베찌, 학손 마르티네스, 프레디 구아린, 제르비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훈련소를 나온 축구팬에게 이 선수들의 소속팀을 묻는다면 첼시, 파리생제르망, 아틀레티코마드리드, 인터밀란, AS로마 같은 유럽의 명문클럽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시즌부터 중국 슈퍼리그에서 활약한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중국 슈퍼리그로 이적한 선수들의 면면은 만만치 않다. 중국 리그가 지난 이적 시장에서 쓴 금액만 해도 약 3500억 원 규모라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보다 그 규모가 크다.
최근 중국 축구의 팽창은 개인의 힘에 의존하여 진행되고 있다. 부유한 구단주 혹은 투자자 덕분에 공격적인 영입이 가능하고, 여기엔 시진핑 주석이 외친 ‘축구굴기(蹴球崛起)’가 큰 영향을 미쳤다. 투자에 따른 장점도 분명하지만, 개인의 힘에 기댄 성장은 안정적일 수 없다. 우리 K리그에도 그러한 예는 찾아볼 수 있다. 성남일화 문선명 구단주 사후 통일그룹이 스포츠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일화는 성남시로 인수되어 성남FC로 재창단되었다. K리그 7회 우승팀답지 않은 마무리(?)였다. 성남일화가 적은 관중 수에도 불구하고 K리그를 호령하는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구단주 개인의 힘이 컸다.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팀이 얼마나 불안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중국 축구의 급격한 성장을 보면서 ‘버블 경제’가 떠올랐다. 해외의 유명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중국 내 선수들의 몸값이 크게 부풀었다. FC포르투에서 아틀레티코마드리드로 이적할 때의 이적료가 3500만 유로(약 464억 원)였던 학손 마르티네스가 지난 6개월 정도 뚜렷한 활약이 없었음에도 4200만 유로(약 557억 원)에 광저우에버그란데로 이적했다. 덩달아 중국 선수들 자체의 몸값도 크게 올랐다.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선수들의 경우 100억에 육박하는 몸값에 이적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적 가격보다 지나치게 고평가된 가격은 어느 순간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고, 그에 따른 침체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중국의 경제 호황과 더불어 과감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영원히 축구에 대한 투자가 이어질 순 없다. K리그에선 여전히 상상하기도 힘든 금액인 3, 40억 원이 이제 중국에선 평범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지만, 그것이 절대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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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을 줍고 있는 도르트문트 선수들. 출처:CNN)
한편 독일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와 보루시아도르트문트(이하 도르트문트)의 DFB포칼 8강전에서 팬들이 경기가 20분 정도 흐른 시점에 도르트문트 팬 수백명이 티켓 가격 인상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수백 개의 테니스 공을 경기장으로 던졌다. 이런 항의 움직임은 직접적으로 입장권 가격의 인상 자체에 반대를 넘어서서, 현재 진행 중인 50+1 완화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참고: ‘테니스공’에 담긴 BVB 팬들의 진짜 불만은? - 골닷컴 김현민 기자)
50+1 정책이란 비상업적 비영리 단체가 51%의 구단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1963년 분데스리가의 출범 이전에 기업의 출자로 만들어진 바이엘레버쿠젠과 VfL볼프스부르크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들은 시민구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런데 독일축구리그연맹이 50+1 규정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20년 이상 구단을 지원했을 경우 구단의 독점적 소유를 인정하겠다는 수정 규정을 승인했다. 새로운 규정을 적용받아 김진수의 소속팀 호펜하임에 ‘소유주’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최근엔 주식 합자회사의 형태로 전환하여 50+1의 범위 내에서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바이에른뮌헨과 함부르크SV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팀의 사유화/기업화에 대한 반대로 ‘테니스공 투척 사건’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도르트문트는 대표적으로 50+1 규칙 유지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구단이 사유화될 경우 생길 문제점들을 걱정하는 것이고, 구단에 팬들의 의견이 더 쉽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개인이 구단을 소유하게 되면 구단의 운영에 팬들이 관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위에 언급한 김현민 기자의 기사에 언급한 것처럼 리버풀의 팬들이 입장권 가격 인상에 항의해서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사실 그 항의는 구단주가 신경 쓰지 않으면 팬들의 항의도 의미 없는 일이다. 독일 팬들은 ‘나의 팀’을 원하기에 ‘누군가의 팀’이 되는 것을 막고자하는 것이다.
중국 축구가 투자와 함께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많은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분명 부러움도 섞여 있다. 우리 K리그 팀들은 많은 축구 선수들이 중동과 중국으로 ‘유출’되고만 있는데, 유명한 외국 선수들이 속속 중국으로 이적하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독일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자금을 유치하여 강한 팀을 만들 수 있음에도, 다른 가치를 위해 ‘테니스공’을 경기장에 던졌다. 구단이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소통하며 존재하길 바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신 너무 바빠서 나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 부모님보다, 매일 나와 함께 눈 맞추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부모님을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 '누군가의 구단'이 아닌 '나의 구단'을 원하는 보루시아도르트문트의 팬들. 출처:보루시아도르트문트 홈페이지)
사실 중국 축구의 폭발적 투자도, 독일 축구의 일종의 ‘축구 민주주의 지키기’도 우리나라에겐 아직 먼 나라 일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기업 구단들의 ‘자생’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 있고, 아직 시민구단은 ‘민주주의’를 외치기에 아직 저변이 튼튼하지 못하다. 하지만 중국과 독일은 분명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축구 그리고 K리그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축구팬들에게 ‘팀’과 함께 한다는 일체감은 무척 중요하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쁨을 전 국민이 온 몸으로 함께한 것처럼, 프로 축구팀에도 그런 애정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생활의 일부인 팀에게 축구팬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팀이 많은 투자를 받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중요할까? 혹은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팀이 더 좋을까? 물론 둘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면 다른 가치는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모두에게 같은 답을 요구할 순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팬과 함께 성장하는 팀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의 힘을 빌린다면 빠르고 쉬운 성장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힘 덕에 생긴 결과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권력이 ‘누군가’에게 향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팀을 망치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구단을 지지하고 있는 수많은 팬의 의견은 묵살될 수 있다. 구단의 자금을 댔다는 이유로 탄생부터 응원하며 지지해온 팬들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은 옳지 않다. 축구팬이라면 ‘나의 팀’을 만들가길 바랄 것이다.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며 좋은 팀을 만들어가는 와중에 팀과 밀착하며 애정을 쌓아갈 수 있다. 그렇게 팬들을 위한 구단도 탄생하게 된다. 분명 '누군가'의 능력에 기댄 폭발적 성장과 비교하면, 분명히 더딘 성장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것은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한 번에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순 없다. 독일의 팬들 역시 자신의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길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그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을 뿐이다.
사실 K리그의 시민구단은 2002년 월드컵의 영향으로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를 직접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엔 군부 독재의 유산인 노태우 정권이 등장했다. 그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정치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피로 쟁취한 것의 소중함마저 잊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은 인지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좋은 제도와 정신은 그것을 소중함을 알고 또 아낄 줄 아는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시민구단은 분명 열악한 재정 때문에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고 성적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성과 지상주의’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보자면, 풀뿌리에서부터 팬과 함께 성장하는 구단이 될 수 있다.
K리그의 시민구단들의 시작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급작스런 투자를 바랄 수도 없고 당장의 성적을 노리기도 쉽지 않다. 구단을 비록 지방자치단체가 가지고 있다고 하나 시민의 힘을 반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구단에게만 팬을 위한 축구를 하라고 등 떠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팀의 일부임을 알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시민’ 구단인 만큼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함께 성장하는 구단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풀뿌리에서 시작한 구단은 더디게 자랄지 몰라도 튼튼할 것이다. 용비어천가는 말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