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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중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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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이야기 스크랩 자전거 타고 떠나다-청송에서 영천으로 내리달리다
고리/포항 추천 0 조회 35 09.11.18 09: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12:30 노귀재 휴식소에 도착하였다. 청송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주유소와 청송 식당은 폐업했는지 문을 닫은 상태다. 그러나 또 한 곳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한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한국녹색회추방'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화장실 가는 길에서 왜 저 글씨를 붙여놓았는지 이해하였다. 사진 전시회를 겸해서 '한국녹색회'에 대한 자료를 전시해 놓고 있다. 청송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하려는 종교 공동체와 현지인 사이 갈등이 노출된 것이다. 종교를 바탕에 둔 공동체가 일정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사유지라고 해서 울타리를 치고 폐쇄적인 활동을 함으로 불신의 벽은 더욱 높아지고 감정의 골은 깊어진다.

  해발 502 미터, 노귀(奴歸) 재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지명이다. 영천에서 청송 방향으로 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마침 식당 입구에서 어묵을 팔고 있다. 대구에서 만든 부산어묵이다. 어제 죽장에서 먹었던 어묵보다는 비싸지만 맛이 괜찮다. 두 개를 먹으니 여유가 생긴다. 다른 어묵 집과 뭔가 다르다. 지팡이처럼 생긴 나무가 통에 담겨 있고, 가운데는 여러 가지 한약재들을 섞어서 놓은 그릇을 두고 있다. 공중파 방송에도 나왔는지 커다란 사진도 두 개나 붙어 있다.

지팡이가 아니라 헛개나무와 오가피를 담궈 끓이는 중이고, 가운데는 호박과 각종 한약재를 이용해 맛을 내고 있었다. 참 좋은 아이디어다. 청송과 영천은 공장이 적고 산이 깊어 각종 한약재가 많이 생산되기에 이런 특별한 음식이 나올 수 있다. 다만 더 맛있는 어묵을 만들려면 진짜 부산이나 기장 어묵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휴게소 앞에 칡, 참옻, 엄나무 등 한약재도 팔고 있다.

 

  어묵 두 개를 더 먹으니 더 이상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제 영천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리막에서는 브레이크를 수시로 잡아야 한다. 씽~ 내려가는데 또 거울이 떨어져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군다. 어제도 수시로 떨어져서 어두운 밤중엔 빼서 배낭에 집어 넣었다. 낮에는 그거 없이는 사고 위험성이 크다. 뒤따라 오는 차량 바퀴에 치면 박살이 날 게 뻔하다. 빨리 주어야지 하면서 브레이크를 잡고 자전거에서 내리는데, 급경사 내리막이라 앞바퀴는 그대로인데, 뒷바퀴가 그냥 물구나무를 서며 빙그레 돈다. 잽싸게 몸을 피한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때 여러 번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5km 정도는 계속 급경사 내리막이라 일박이일 코스 중에서 제일 신난다. 다만 항시 적정 빠르기를 조절하기 위해 제동을 잡아야 한다. 시마노 브레이크 성능은 좋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라 항상 조심해야 한다. 스쳐가는 경치가 황홀하다. 영천 화북면 곳곳에는 보현댐 반대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13:16 현서에서 21km 지점을 지나왔다. 내리막을 그렇게 내달려도 평균 시속은 10km 정도로 더디게 진행하고 있다. 물론 볼거리를 보고 쉴 때 쉬어서 그렇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포항까지 내내 자전거를 고집할 생각이 없다. 적당한 지점에서 버스나 기차를 탈 생각이다. 그렇게 맘을 먹으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게다가 노귀재를 넘어 영천 쪽으로 남하하면서 바람은 한결 순해졌고 훈훈하다. 어제 포항에서 청송까지 가면서 중간에 하루를 자고 가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가장 적당한 하루 코스는 40km다. 오전 한나절에 오십리를 달리고, 오후 한나절 나머지를 달리면 여유롭고 무릎에 무리도 없겠다. 이번엔 혼자서 타지만 다음에는 아들과 함께 달려야겠다. 물론 세오녀는 안전 요원으로 차를 몰고 따라오겠지.


  13:33 화북면 소재지인 자천리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자천초등학교 담을 이루는 가로수엔 갖가지 보현댐 반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수자원공사 앞잡이...',

  '주민 의견 무시하는 김00 시장은 물러가라',

  '외롭고 서러워라, 우리 지역 시의원은 도대체 어디 갔노!!'


등이다. 사실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는 외지인이 이런 구호를 볼 땐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글을 적으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2006년 보현댐 건설 계획이 주민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살리기 한다면서 다시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대응하고 있다. 그저께 백신애 문학제에서 김00 영천시장과 인사도 나누었는데, 당시 나는 보현댐에 관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주민 생존권 보장 없는 보현댐 결사 반대한다'라는 글귀를 보면 환경이나 생태 차원에서도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어제보다 우호적이다. 햇볕쪼이 하기 좋은 양지에서 호두를 까먹는다. 함지골을 떠날 때 선물로 받은 간식이다. 

  수십 년 전에 자천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당시 수배를 받아 숨어 지내던 친구를 찾아 이 골짜기까지 왔다. 그곳이 어디쯤인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려운 시절을 잘 보냈던 친구는 지금은 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 항심을 가지고 초지일관 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자전거에 올라 출발하여 자천중학교를 지나 금방 내리게 되었다. 오리장림이라는 멋진 숲을 만났다. 고현천을 따라 오리에 걸친 숲은 천연기념물 제 404호로 지정되었다.

나뭇잎이 대부분 떨어졌지만 운치가 넘치는 곳이다. 제발 이런 곳까지 개발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란다.

  

  14:00  오산교 다리를 건너니 화남면이다. 오산자연학교와 이원대 열사 생가와 묘소가 잠시 발길을 잡는다. 오산자연학교는 정홍규 신부님이 만든 대안학교다.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오늘 해지기 전에 포항에 도착하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나중에 들러보자. 저 멀리 보현산이 보인다.

  화남면에는 보현댐 관련 플래카드가 전혀 없다. 같은 '화' 돌림이면서 남과 북은 무관한 것인가. 화남은 머루 포도 주산지인 모양이다. 내려가는 길 곳곳에 청송에서 꿀사과를 팔듯이 영천 머루 포도를 팔고 있었다.  

  

  화남면 소재지는 내리지 않고 천천히 살피면서 지나간다. 마음에 드는 식당이 있으면 막걸리라도 한 모금 걸칠까 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는다.


  14:44 당나무 식당 휴게소에서 잠시 머문다. 단체 손님을 받는 기사 식당이라 별로 들어갈 맘이 생기지 않는다.

   포도밭 옆에 양파를 심어놓았다. 내가 심은 것보다 간격이 촘촘하고, 뿌리는 깊다. 농사 기술도 배울 게 많다.

밥을 사 먹는 대신 남은 초콜릿 두 알을 마저 먹었다. 산삼물로 목도 축이고.

  이제 목적지인 영천 6km 정도 남았다. 포항 가는 기차 시간이 어떻게 되더라? 일단 내달려보자, 안되면 버스를 타면 되겠지.

  영천 시내를 지나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차량 퍼레이드가 길게 벌어지고 있다.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서 우연찮게 만나는 혼례 행렬을 연상케 한다. 아침에 좀더 일찍 출발했더라면 백신애 답사팀과 만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중기 시인이 아마 눈을 휑하니 뜨고 반가와할 터다. 


  15:28 영천역 대합실로 들어갔다. 포항행 무궁화호 기차는 3시 33분에 떠난다. 바로 표를 끊고 플랫폼으로 나갔다. 역무원도 보이지 않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기차에 올랐다. 3호차 구석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자유석에 앉았다. 기차에 유럽처럼 자전거를 싣도록 하는 설비는 없지만 일단 싣기만 하면 따로 요금을 청구하지 않아서 좋다. 실내에 들어오니 정말 따뜻하고 포근하다. 커튼을 젖힌 창문으로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은 약 45km를 탔다. 포항역에서 흥해까지 타고 가는 것을 포함하면 어제부터 약 130km 남짓 자전거를 탄 셈이다. 자출사 카페에 보니까 하루에 250km를 내지른 청춘도 있는데, 그 반 정도 거리를 이틀에 걸쳐 포항-청송-영천으로 돌았다. 그래도 기분이 뿌듯하다. 늘 마음 속에만 가지고 있던 소망을 한번 실천에 옮기고 느끼는 가뿐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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