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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6.25전쟁이 일어난지 61년 쨰가 되는 해입니다. 약 30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명손실을 가져왔던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족상잔으로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에 의해 도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끝난 전쟁으로서 세계 제2차 대전 후 자유와 공산 양대 진영의 대립이 우리나라에서 전면전으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1.남침준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북한은 쏘련 군이 진주하여 북한 정권을 세우고 독제 정치를 실시하여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겉으로는 남북협상과 평화 통일을 주장하면서 속으로는 남침준비에 광분했습니다. 1948년 2월 인민군을 창설하고 비행기 탱크 헌납 운동을 대대적으로 하며, 1949년 3월 김일성은 쏘련과 비밀 군사 협정을 체결하여 남침 준비를 하였습니다.
1950년 6월 7일에는 해방 5주년 기념일에 남북통일 최고 입법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자 하고 남침 6일전 6월 19일 남한 국회가 동의하면 6월 21일 북한 최고 인민의회 대표를 서울에 보내든지 남한 국회 대표를 평양에서 맞아 남북 국회에 의한 통일 정부를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열성을 가장한 제의를 하였습니다.
한편 1950년 6월 10일 북한 공산군 총참모장 강건이 예하 각 사단장과 여단장을 비상소집하여 전투 배치를 위한 이동을 완료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1950년 6월 18일에는 공격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는 김일성 명의의 훈령을 하달한 것입니다. 이떄 동원된 적의 부대는 10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사단, 3개 경비여단이 남침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2.1950.6월 25일 남침전쟁시작
6월 25일 새벽 4시30분 북한 공산군은 일제히 38선을 넘어 옹진,개성,동두천,춘천,인악 등 육로와 동해안을 돌아 삼척 임원진을 거쳐 공격을 해왔습니다. 이떄 우리 국군은 후방 사단으로부터 5개 연대를 급파했으나 26일 의정부가 점령당하고 27일 저녁 서울 북방 미아리 국군 5사단 지역에 침투하여 육박전이 벌어지고 전차부대의 일부는 서울시내에 침투했습니다.
정부는 대전으로 후퇴하고 6월 28일 새벽 3시 한강 인도교가 예정보다 앞서 폭파되었습니다. 국군은 도화작전(강을 건넘)으로 한강을 건너 한강남원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6월 28일 서울이 적에게 함락되었습니다.
3.UN군 참전
6월 25일 공산군이 남침을 개시한 후 즉시로 이승만 대통령이 주미대사 장면에게 긴급훈령을 내려 미 국무성에 사태의 절박성을 알렸습니다. 미국은 이날 오후 2시 UN안전보장 이사회를 열어 한국문제에 대해 북한군의 즉각 철퇴촉구를 결의케 했습니다.
6월 27일 재개된 안전보장이사회는 공산군의 무력 침략을 배제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보낼것을 모든 UN가입국에 권고하자는 미국측의 안에 7:1 로 가결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트루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맥아더 전투 사령부를 한국에 설치하고 해군과 공군을 우선 한국 전선에 파견 하기로 했습니다. 6월 29일에 영국과 폴란드의 해군이 출동하고 6월 30일까지 총 32개국이 한국을 원조 하기로 의결했고 안전보장 이사회는 한국 출전 UN군의 총사령부 설치 및 UN기 사용을 7:0으로 가결하고 관할권을 미국에 위임하였습니다.
이떄까지쏘련은 UN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을 거부하면서 UN군 한국파견 문제를 비난해 왔으나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다수국의 발언 앞에 배제당하고 정의에 입각한 세계최초의 국제 연합군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7일 UN결의에 따라 미국은 일본 오끼나와에 UN군 총 사령부를 설치하고 맥아더 장군을 총 사령관에 임명하고 7월 14일 UN기가 맥아더장군에게 전달됨으로 이날을 기하여 한국군도 UN군에 편입되어 전투태세가 재정비 되었습니다.
그때 한국전쟁에 참가국들은 세계에서 16개국이 참전했는데 미국 영국 호주 폴란드 뉴질랜드 캐나다 프랑스 필리핀 터키 타이 남아연방 그리스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 등 16개 국이었습니다.
4.UN군과 한국군 연합작전
국군은 6월 30일자로 3국 총 참모장 패병덕 소장을 예비군 사령관으로 전입시키고 정일권 준장이 참모총장이 되어 한강이남 방어선을 재정비했으나 경부선 가도를 따라 적의 전차사단을 앞세우고 돌진하는 적의 주력부대에게 수원이 빼앗기고 육군본부가 다시 남하했습니다.
이 당시 동해안에서 적의 배가 밤 중에 약 50~60명의 군인들이 타고 부산 방면으로 가는 것을 우리 해군 백두산 함이 그들과 싸워 침몰시키고 우리 해군 2명이 전사했습니다.
7월 5일에는 UN결의에 따라 우선 급파된 미 제24사단 21연대 제 1대대가 1개 포병대와 함께 오산 남방에서 최초로 공산군과 싸웠으나 33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들어오는 적의 대부대에 완전 포위되어 많은 전사자들을 내고 포위망을 뚫고 후퇴했습니다.
이처럼 UN군이 최초로 무참한 실패로돌아오자 24사단 전 병력이 금강남안에 방어선을 구축했으나 7월 15일 밤 적은 금강을 건너 진격해 왔습니다. 7월 20일 아침에 적군이 대전 시내에 돌입했고 3개 사단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여기서 미 제24사단장 Dean(딘) 소장은 몸소 적 전차에 수류탄을 던지며 용전하다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대전을 점령한 적은 진로를 3분하여 일부는 서쪽으로 호남일대를 거쳐 마산으로 갔고 일부는 경부선을 따라 대구로 향했으며 일부는 동으로 포항에 육박했습니다.
8월 7일 마산지구에서 최초로 적을 격퇴시켰고,
8월 18일 일부적은 대구 북방 13마일까지 육박했니다. 이곳이 다부동 전투였는데,이날 정부는 대구에서 부산으로 후퇴하고 대구시민에게 소개령을 내렸습니다. 국군 1사단은 영국군과 미군 지원하게 대구 북방적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다부동 전투에서 적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대구시내에 적이 침투하게 될 뻔했습니다. 동부전선 국군 2군단이 9월 10일 적 최강부대 15사단과 1개 포병연대를 영천지구에서 포위 적 4800명을 사살, 완전 섬멸했습니다.
1)1950년 9월 28일 국군 서울 수북
이 당시 저는 가족들과 피난민들과 7월 중순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가 경북 청도군 금천면 운문산 기슭 강변에서 피난민들과 같이 피난을 하고 9월 26일 추석날 그곳에서 고향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떄 UN군과 국군이 반격을 하고 UN군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9월 30일 맥아더장군이 북한 공산군 총사령관 김일성에게 항복 권유문을 보냈으나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UN군 사령부는 휘하의 전 장병에게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할 것을 명령했고 계속 북진 3사단은 10월 28일 성진을 점령하고 길주를 거쳐 백두산을 향해 함수로 진격하고 11월 5일 수도 사단은 청진에 돌입했습니다. 이로서 국토 전역이 거의 수복되고 조국 통일의 목전에 다달았습니다.
2)1951년 1월 4일 후퇴
그러나 중공이 한국전에 병력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부전선 운산에서 최초로 잡은 포로의 진술에 의하면 지난 19일에 약 2만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에 투입되고 고원 지대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1월 24일 맥아더 장군 자신이 북진을 지휘하였으나 실패하자 후퇴하여 1951년 1월 4일 서울을 후퇴하여 오산-장호원-제천-영월까지 내려왔습니다.
3)1951년 3월 14일 서울탈환
국군이 재반격을 하여 3월 14일 다시 서울을 탈환하고 4월 5일 동부전선은 소양강을 넘어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떄 맥아더장군이 만주를 폭격하여 한국을 완전히 통일을 하자는 주장에 미국대통령이 4월 11일 맥아더장군을 퇴임하고 릿지웨이 장군을 대신 임명했습니다. 그후 계속 전쟁 중 쏘련이 1951년 7월에 불리한 것을 알고 UN대사 마리크를 통해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미국이 호응하여 휴전을 하려고 할 때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했습니다.
5.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전선에서는 더 국토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계속 치뤄지던 중 1953년 7월 27일 3년 1개월의 전쟁이 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6.25 전쟁을 모르는 일부의 사람들이 북침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너무나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말을 할까요? 공산당에 물든 사람들은 헤어나지 못하고 6.25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산당을 찬양하거나 그들의 사상을 교육 시키고 우리 정부를 비판하거나 시위 등을 선동하여 한때는 우리나라에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운동을 하며 미국과의 은혜를 원수로 여기게 하려는 그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만 보더라도 세게적으로 조사를 하여 북한소행이 확실함에도 우리의 잘못이라면 북침을 주장하는 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지 오늘날 젊은이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해서라도 적화를 노리는 것을 우리 정부나 국민들은 속지말아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이 평화적으로 경제 개발 등 우리정부가 지원하였지만 그들은 미사일과 핵개발에 광분하며 보안법을 철패하여 국민들을 선동하며 공산화하려는 그들의 속셈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6.실력있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전쟁과 박해의 역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신앙의 이스라엘 선조들의 위대한 모습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민족이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침략을 당해 비극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데에는 3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이요 둘째는 끊임없는 전쟁이요 셋쨰는 계속되는 천재지변 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패배한 원인은 종교와 신앙의 타락이요 인격의 타락 때문이었음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에는 약 9천만명의 크리스찬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부들의 수만 6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만 5천명 밖에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의 종교가 형식만 남아 신앙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했을 때 감리교의 교조 존 웨슬레가 신앙과 교회의 갱신운동을 통하여 영국을 구출해냈습니다. 영적인 힘을 길렀기 떄문에 무혈혁명으로 영국을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민족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세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첫째로는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야 하고 둘째로는 군사력에 부응하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는 통치자와 국민간의 신뢰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군사력도 확보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인데 문제는 신뢰감입니다. 역사의 분명한 증거를 보면서도 이북 사람들의 거짓 선전을 믿으려 하며 우리의 정치 지도자나 선배들의 말을 믿지 않으려는 일부 젊은 세대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을 분열시키려 하고 공산당들이 주장하는 국가질서를 혼란케 하고 국가 발전을 방해하는 이런 자들이 바른 국가관을 갖고 공산당의 무서운 계교에 더 빠지지 않고 공산당을 철저히 물리치고 바른 삶이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평양이 해방 전까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그 지역이 공산화되니 기독교를 말살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김일성,김정일을 추앙하니 그 결과 그들의 삶은 비참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국민들의한마음으로 힘을 모으고 국가발전을 위해 우리들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 그들은 돌 하나 던지지 아니하고 단결된 신앙의 힘으로 한마음이 되었을 때 그 성은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아이성을 공격할 때 이스라엘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 까닭은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 떄문이었습니다.
영광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정신적, 신앙적, 교육적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실력있는 백성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7. 신앙의 교훈을 잊어버리지 않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수많은 북한 형제들이 오직 자유만을 찾아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비록 굶어 죽을지언정 사람 대접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살기를 위해 월남한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교훈은 오늘날 도 살아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 신앙의 교훈을 분명히 볼 줄 아는 젊은이 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공산당을의 적화를 위한 계교에 속지 말아야 하며 무력침략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하고 일부 젊은 사람들의 잘못된 안보의식이 변하여 우리나를 위해 충성 봉사자들이 되기를 위해 기되를 많이 해야합니다. 그리하여 힘 있는 나라가 되며 우리들은 평온하고 단정하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