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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쪽은 지옥 아수라장이며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수이던 친일파를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우대해 준 것은 바둑을 예로 든다면 도무지 회복 불능인 크나큰 악수를
두었다는 얘기였다.
친일파들이 부자로 살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지금 시국이 이 모양이니 친일파 꼬락서니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북쪽은 지상낙원이지만
이승만 정부는 지옥이라고 어머니인 대물댁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맘속에는 물에 젖은 원피스에 대해선 물어보지를 않기를 원했다.
“정애랑 성애랑은 시집가 잘 살고 있능가요?”
“특별하게 잘 산다고 볼 수도 없지, 그래도 영애 니보담은 잘 살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냐?”
“걔들은 나처럼 안 허고 집에는 자주 오는가요?”
“걔들은 그래도 1년 만에도 오고, 3년 만에도 오고, 5년 만에도 오고 그런다. 걔들도 어미 말을
안 들어서 안 그렇냐? 아무 생각 안 하고 집이 처박혀 있다가 부모들이 때가 되어 짝을 맺어주면
아기도 낳고 정붙여 살면 좋은 건디, 정애 그년이 즈그 동생까지 꼬드겨서 그러케 되어 뿡 거이 아니냐?”
“정애가 어찌케 했관디요?”
“정애는 여기 있는 학교 공부를 마쳤는데 큰 섬에 중학교를 갈라고 허는디 심이 들어
못 보냈거든. 성애가 4학년 땐디, 육지에 나가서 돈을 벌면서 중학교도 가고 대학까지도
가고 그런다고 꼬셨는가 보더라, 물론 지가 맘이 땡겠기 땀세 그러케 됐겠지만, 육지
바람이 나 가꼬 따라가 뿌럿담 말이다.
너희 아부지가 친척도 없고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 디를 가믄 큰일 난다 허면서
못 가게 했는디, 기어코 즈그 맘대로 했담 말이다. 여그 가오리 잡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냐?
배만 쪼그만헝 거 하나만 있으면 가오리 잡아 가꼬 벌이가 얼매나 좋다고……. 육지 나가면
복이 하늘에서 뚝 허고 떨어징 것도 아닌디 둘 다, 기어나가 뿌럿담 말이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마음묵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내가 알기로는 외삼촌이 목포서 산다고 어렴풋이 들었는데 거기로 간 거 아니요?”
“맞당게, 근디 외삼촌 집도 잘 사는 것이 아닌 거다니까. 대물 도에서 나갈 때 돈 한 푼도
없이 나갔는데, 소도 언덕바지가 있어야 등허리 가려운 데를 긁는다고 하지 않더냐?
너한테 올려보내줄 한 달 치 돈을 훔쳐 가꼬 성애랑 나갔다가 돈이 떨어졌는가는 몰라도
너희 외삼촌 집에를 갔는가 보더라.”
“외삼촌이 무슨 일을 한대요?”
“여그 저그 장이 서는 디는 다 쫓아다니는가 보더라.
아그들이 첨에 가 가꼬 장사허는 디를 같이 다니면서 도와주고 밥을 얻어묵고
외삼촌 집에서 살았는가 보더라고. 근디 무슨 장사 한다고 들었다마는 잘 모른다니까.”
큰딸 영애가 광주에서 다니는 학교 뒷바라지로 인해 정애와 막내 성애를 흑산도에 있는
중학교까지 보내기에는 벅찼다.
일제강점기 때도 흑산도국민학교 영산분교가 있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안수창 부부는 세 딸을 국민학교를 졸업시켰으며 영애는 광주에 유학을 보냈으니
그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고 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나 메키로 안 허고 정애랑 성애는 집에 오고 가기는 했는가 보네요.”
“정애가 뜬금없이 만리장성 편지를 보냈더란 게, 갑자기 하늘에서 짝을 지어 준
사람이 있는디 그 사람 부모들이 결혼식을 올려주는데 목포로 나오라고 하더라니까?”
“어떤 사람이던가요? 그래서 목포로 나가 가꼬 결혼식에 참석했습니까?”
“가기는 어찌케 가냐? 근데 기가 막힌 것은 어디가 벵신이 됐다고 말은 안 하고 신랑이 장애를
가졌으니까 결혼식에 와서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한다고 그러케 썼더란게. 그렁게로 나도
썽이 났지만, 느그 아부지가 노발대발 허드람 말이다.”
“정애 신랑 될 사람이 몸에 어디가 장애를 갖고 있다 하던가요?”
“항일 학생운동을 했다던가? 경찰한테 곤봉으로 뚜드레 맞아 가꼬 그랬다던가.
하반신 마비가 와 뿌럿다고 하더라.”
“정애가 왜 그랬을 까이!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구먼요?”
“영애 너도 예쁘게 생겼지만, 정애랑 성애랑 얼굴 하나는 중국에 양귀비보다간 잘생기고
이쁜 년이 병신헌테 시집간다는 것이 말이나 되냔 말이다.”
“그래서 아부지 어무이가 노발대발했겠구먼요?”
“너희 아부지가 편지를 속달로 보내면서 당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믄 딸 하나 없는
요량 한다고 했는디 들어오지 않고 시방은 딸만 둘 낳고 살고 있다고 하더라니까?”
“밖에 나가 살면서 시집간다는데 쫓아내고 어쩌고 할 수가 있남요? 정애 신랑은 한번 봤나요?”
“너희 아부지도 차마 쫓아내지 못하고 말드라마는 사위 얼굴은 사진만 보고 보지 못했다니까.
어찌 되었든가 걔들은 즈그 아부지가 죽을 때도 섬에 들어와 자식 놀이를 했다니까.”
“그래도 정애 성애랑은 자식 놀이를 했구먼요.”
“너희 아부지 죽고 해방되든 이듬해에도 정애가 왔는데, 돈도 한 푼도 모으지 못하고
사는가 싶드라고, 얼굴이 삐삐 말라 가꼬 왔더란 말이다. 어미한테로 들어와 살라고 헝게,
섬에서 갑갑해 못 살겠다 하면서 말을 안 듣더라니까.”
대물댁이 벽장 안에서 조그만 상자를 내려왔다. 정애가 보낸 편지 봉투 속에서 반명함판
사진 한 장을 꺼내 온다.
“한번 바 바라, 생긴 거 바 가꼬는 멀쩡해, 어디가 어찌케 됐는가 나는 모른다. 말하는 소리가
걸어 다니지 못하는 앉은뱅이 같다니까? 그렁게로 장인 장모 보러 오지도 못한 것이 아니냐?”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영애가 보기에도 정애 남편은 정장 차림은 미남이었고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육지로 나가 살고 있지만, 잘 살지 못하고 있담 말이요? 어디서 살고 있당가요?”
“둘 다 목포서 산다고 하더라, 정애는 여객선 선착장 앞에서 배 타는 사람들한테
장사해 묵고사는가 보더라.”
“무슨 장사를 한단가요?
“배 타고 가고 오는 사람들헌테 수루미도 구워 팔고 알밤도 구워 팔고 허는가 보더라.”
“성애는요?”
“서방을 만나서 사는 것 같더구나, 쌈질하고 하다가 갈라서지 안 허까 싶어 걱정이다.
여자가 서방을 이기려고 허는디, 세상에 어느 남자가 마누라한테 지고 살라고 허는가?
정애도 그러코 성애에게도 야그를 들어보니 즈그 남편과 쌈을 자주 하는 거 메키로
들리더란게, 술장사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성애가 잘못한 것이라고 했다.
여자가 고분고분해야지 남편을 이기려 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니까.”
대물댁이 본인에게 자세하게 들은 얘기가 아니었다. 정애와 성애가 나누는 얘기를
들으면서 막연히 자신이 짐작 가는 대로 말했다.
막내 성애가 남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자주 벌어진다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아니었다.
“자기들이 쌈이 자주 벌어진 원인은 돈 때문에 안 그러냐? 아무 말도 안 하고
영산도로 들어와 가오리만 낚아 묵고살아도 떵떵거리면서 배 뚜들겨 가며 잘살 것인디
염병한다고 기어나가서 그런 꼬락서니로 사는지 모르지…….”
“성애 남편은 머 헌대요?”
“걔는 건들건들 험서 다니는 건달패 같더라고, 정애와는 자주 만나는가 보더라.”
정말이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릴 때 날마다 멱감고 놀던 친구도 그립고
동네 사람들도 궁금했다.
그러나 자신이 오랜 세월 행적을 감추고 살았으니 그리운 사람들을 안부를 묻고 동네
사람들을 만남 자체가 두려웠다.
“내가 사 온 정종은 아부지가 살아계실 거라고 믿고 사 왔거든요. 그런디 아부지가
돌아가신 걸 어지 저녁에 알았거든요, 아부지 산소에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짓밤에 셋이서 잡사 뿔더라고요.”
“그 이유를 말해주랴?”
어젯밤에 영애는 손발과 입을 움직이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릴 기력만 없었지 청각은
정상이었었다. “즈그 아부지를 죽게 한 년이다.”라는 말을 듣고는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지만,
맘속으론 울고 있었다.
내일 아침 날이 새면 아버지 산소에 들고 가 드려야겠다고 맘먹었는데 대목댁과 당산댁과
세 사람이 나눠 마셔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영애 니가 도망가뿔고 너희 아부지가 자포자기해 뿌럿담 말이다.
밥은 묵지 않고 맨날 술만 묵어대니 배 속이 무쇠라도 버티지 못할 거 아니냐?
술 좀 쪼끔썩 마시라고 소리를 질러대면 술이라도 취해 있어야 영애란 년을
잊을 수가 있다 험서 술을 마셨단다. 그럼서 허는 소리가 ‘사람이란 한 번 죽어 뿔믄
절대로 그만이니 당신이 살아 있을 때만 술을 묵을 테니까 죽어서는 내 무덤에
술을 따르지 마라.’라고 했담 말이다. ‘다른 묵을 거리도 올리지 마라’고 했담 말이다.”
“참말로 큰딸년인 내가 아부지한테 큰 죄를 지어 뿌럿네요.”
이번에는 반대로 어머니인 대물댁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제야 자신이 사 들고 왔던 술을 어머니와 친구들이 마셔버렸던 이유를 알았다.
“그런디 사람이 한 번 죽어 뿔믄 그만인디, 아부지 제삿날에 영애 니가 찾아온 것 보니까
참말로 희한한 일이다. 이런 걸 보니 사람의 혼이 없다고 어찌 보겠느냐?”
“참말로 그렇고마라. 희한하게 아부지 제삿날 맞춰 가꼬 왔고마라.”
“아부지 제삿날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제사는 지내지 않고 있다니까.”
“그렇지만 제사는 지내야 허는 거 아닌가요?”
“너희 아부지 소신은 죽어 뿔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라니까. 혹시나 영애가 살아 돌아오면
내 무덤에 술을 따르지 말게 허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했담 말이다. 그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했담 말이다.”
전적으로 영산댁 자신이 부모·형제에게 소식을 끊고 고아처럼 살았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두 번째 남자마저 반민특위에 끌려가 버리자
아라비아사막 가운데에 버림받은 것처럼 절망에 빠졌었다. 여우가 수구초심 하려는
심정으로 그리고 어려움에 부닥치고 나서야 고향을 향하는 여객선에 올랐으나 배 속에
있는 걸 다 토해내고 창자가 뒤틀려 오르는 고통은 참기 어려웠다.
부모를 배신하고 남편을 배신했던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속죄하는 맘으로 죽으려 했으나
이마저 맘대로 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왔더니 술로만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제삿날에 맞춰 왔으니
이 어찌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무이 아부지 산소에 가 볼랍니다.”
“빌어먹을 년, 죽어 뿐 뒤에 묏등에 가믄 머 헌다냐?”
아버지 산소가 어디냐고 묻는 영애가 묻자 대번에 죽어버린 사람 묘에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 어머니에게서 튀어나왔다.
현대 최고 교육기관에서 공부했던 지성인이라 꽃이라도 몇 송이 들고 성묘를 해야
도리인 줄 알지만, 맨손으로 산소를 찾게 된 것이 죄송스럽다.
위쪽의 할아버지 묘에는 봉분도 컸으며 제물을 올려드릴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으나
아버지 묘는 봉분도 작을뿐더러 제물을 올려 드릴 상석 자리도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추석과 설날이면 사과와 배, 어포와 술로 제물을 차리고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절하며 성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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