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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하루
조미경
k의 출판 기념회는, 명동역 부근 M 호텔에서 열렸다. 대학 동기들의 소식통에 의하면 k는 A 대학 총장을 퇴임하고, 정계에 입문하려 출판 기념회를 시작으로, 정치 후원금을 유치해, 서울의 어느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M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였다. 누군가 내게 알은체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었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성장을 한 젊은 남. 여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학교를 물었다. 아마도 K의 제자들인 듯했다. 그의 제자라면 아마 나에게는 후배가 될 것 같았지만, 그들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들려 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좌석을 잘 못 찾은 게 아닌가 했다.
“어……이게 누구야?…너 정말 오은서 맞아? 하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 또한 그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몇 년 동안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어색함을 숨기고 태연한 척 연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단번에 알아본 모양인지. 아니면 반대로 다들 나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반대로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겉으로는 웃고 있었다. "어머 애?……다른 곳에서 보면 몰라보겠다. 우리 그동안 코로나로 한동안 못 만난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동기들이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아직 우리 나이가 갱년기 올 나이도 아닌데……지난번 동창회에서 볼 때와 달라도 너무 달라졌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친정 오빠 사업 부도는 아버지를 힘들게 했다. 오빠는 부모님이 사는 집까지 은행에 저당 잡혀 사업을 이어갔지만,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지금은 조카들과 월세방을 전전하고 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세상을 등지고 엄마는 요양원에 누워 계신다. 직장 생활과 아이들 건사도 힘든데, 친정엄마 돌보는 일까지 짐을 지게 된 나는 동창들과 한가롭게 노닥거리고 커피를 마시며 인생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내가 나지 왜… 그런 얼굴로 쳐다보는 거야?" 속으로 울화통이 끓어 올랐지만, 영문도 모르면서 웃었다. 동창들의 표정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너, 정말 오은서 맞아? 예전에 우리가 캠퍼스를 누비고 다닐 때 한창때의 오은서는 어디로 간 거야? 그때는 내가 네게 목을 매었지 아마, 후후…… 지금은 전혀, 딴사람이 되었네. 다른 곳에서 만나면 몰라보겠다. 야! 오 은서? 관리 좀 해라.” 재수 없는 하인수가 말했다. 그와는 피차 얼굴 마주하면, 서로 껄끄러운 사이였는데, 오늘 이런 식으로 만나고 보니 너무나 비참한 마음이었다. 하인수와 나의 관계는 빛바랜 흑백 사진 속의 추억이 된 지 오래였는데, 그는 가끔 잊을만하면 나타나 나를 비참하게 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지금의 남편과 사귀었을 때, 집까지 찾아와 매달렸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하마터면 한마디를 톡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동안 영업하면서, 사람들과 입씨름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까짓 모욕쯤이야. 참아야지…이렇게 누군가 나의 코앞에서 비웃듯이 말을 할 때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세월의 이끼가 끼어 참신하지 못한, 내가 거울 앞에 서 있다. 그동안 하인수는 한 번도 동기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잔뜩 멋을 부리고 나타나 또 한 번 내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대학 시절 은사님이며, 지도 교수였던 k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할 때만 해도 나름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다. 졸업 후 정기적 만남을 갖지는 않았다. 동기들과 만나면, 의례 이어지는 아이들의 입시 문제와 사는 지역은 다르지만, 학원 정보와 일타 강사들에 관련한 정보 교환은 한국의 입시에 무심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를 제외한 대학 동기들은 오로지 sky를 향한 맹목적인 맹신 교도의 그것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통해 아이들을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한 열정을 가진 고등학생 엄마들이었다. 반면 나의 경우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있어, 동기들처럼 캥거루 맘이 되어 학교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관여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나의 목적은 오롯이 승진과 실적에 목을 매고 연봉이 오르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자라목 직장인이었다. 결과적으로 몇몇은 자녀들을 특목고와 외고에 입학시켰다.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총명 탕을 사기 위해, 남편 월급을 쪼개지도 않고, 재테크에 능한 그녀들은 아이들의 개성을 중시한다는 명분으로 명품 운동화를 사기 위해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동창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주말과 휴일이면 요양원에 누워 계시는 친정엄마 면회 다녀오고, 동료 경조사 다녀오면 일주일이 훌쩍 흘렀다. 1년에 한 번 송년회에서 만난 동창생 중 몇 명은 남편의 조기 퇴직과 사업 실패로, 고상한 그녀를 사모님이 아닌 삶에 찌든 초라한 억척스러운 생활인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서서히 동창회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또 다른 동창생은 아이들을 대치동에 있는 유명 학원에 보내기 위해, 낮 동안 아르바이트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경력은 없지만, 일찍부터 경제에 눈을 뜬 이들은, 주식으로 남편 월급의 두 배를 번다는, 그래서 모임 때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샤넬이니 에르메스를 들고 와서는,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반대로 나는 헬리콥터맘이 되지도 못하고, 모바일로 푼돈 몇 푼으로 주식을 하면서 가장 손쉬운 부업으로 부족한 아이들 학원비에 충당했다.
고교에서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택한 나는, 대학 원서를 낼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중국어과를 선택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있었고, 누구나 하는 영어 보다는 중국어를 배워 무역회사에 취업하면 다른 전공자들과 달리 대우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던 터라 쉽게 중국어를 전공으로 택했다. 약 1년을 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중국어의 벽은 두꺼웠고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심한 좌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즈음 타과로 전과를 생각하다 그동안 공부가 아까워 복수전공을 택하기로 했다. 시간은 흘렀고 여름 방학이 끝났지만, 낮에는 날씨가 아스팔트를 녹일 것처럼, 기온이 높았다. 교양과목 수업에 늦잠을 자다 지각했다. 그날부터 내 자리는 항상 맨 뒤였다. 팀별 조별 과제를 조직하다 팀을 꾸리지 못한 나와 하인수가 함께 자연스럽게 한 조를 이루었다. 우리는 4명이 한 팀이었고, 자료조사와 연구는 내가 맡았고, PPT 제작은 하인수가 맡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복학생으로 학교에는 동기생들이 없었고 그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조별 과제를 위해 자주 뭉치게 되었고 자연스레 학식과 도서관 등 학교 시설을 이용하게 되면서 친분이 쌓였다. 하인수는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었는데, 그는 교내 밴드부에서 기타를 치는 등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음 해 봄 교내 축제 때였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여학생이 있었고, 교내에서도 자주 여학생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와 사귀면서도 타과 후배 여학생과 깊은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새로운 CC가 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들의 관계는 서로 마주치면 으르렁거리는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내가 졸업을 앞둔 해에는 또 다른 여학생과 정분이 나는 바람에 하인수는 카사노바라는 별칭이 생겼다.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학을 극구 꺼렸다. 친구들과의 친분 등을 이유로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아침이면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직장과 회사로 위킹맘으로 바쁘게 살았다. 매일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화장하는, 여자로서의 삶은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가끔 아이들 학교에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내 또래의 학부모들은 모두 하나같이 날씬하고 세련되고 예뻤다.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다 침울해 집으로 돌아와 예전의 나를 찾기 위해 아침을 굶고 저녁은 일찍 먹으며 나름 다이어트를 했지만, 한번 부풀어 오른 몸은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편은 청순가련형의 불면 날아갈 듯한 몸보다는 지금 건강한 몸이 좋다며, 칭찬을 하는 바람에, 한해 한해 조금씩 늘어난 몸무게가 15킬로 이상 늘다 보니, 예전에 입었던 옷은 입을 수도 없었고, 어쩌다 한번 동창 모임에 나가려면 마땅히 입을 옷이 없었다. 그날 K의 출판 기념회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나의 머릿속은 동창들의 비꼬는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특히 하인수의 비웃는 모습이 눈앞에서 춤추는 것처럼 쟁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는 거울도 안 보고 다니냐?” 그날 저녁 중대 결심하고 거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런싱머신에 올랐다. 약 30분간 달리기했더니, 몸에서는 땀이 이마에서 시작해 가슴까지 쏟아졌다. 한참 땀을 빼고 나서 체중계에 올라갔다. 체중계의 숫자는 나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계기판의 숫자는 비열하게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며칠 동안 아침을 굶고, 점심은 칼로리가 낮은 냉면을 조금 먹고 포만감을 주기 위해 물을 많이 마셨다. 퇴근 후에는 맛있는 치맥을 포기했다. 저녁은 가족들이 좋아하는 고기 대신, 채소에 드레싱을 듬뿍 얹은 샐러드와 곤약을 양념해서 푸짐하게 먹었다.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뛰었다. 땀을 흘리고 났더니 아침에 보았던 눈금에서 눈금의 위치가 살짝 바뀌어 있었다. 순간 너무 좋아서 남편을 붙잡고 춤을 추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운동을 30분가량 했더니, 잠이 오지는 않고 자꾸 음식이 당기는 신호가 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다. 약 5분 후 이번에는 냉장고에서 칼로리가 가장 낮은 오이 반개를 천천히 기분 좋게 음미하며 먹었다. 오이의 상큼한 맛이 식욕을 자극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면 퉁퉁 불어 터진 라면의 면발처럼, 생기를 잃은 내 모습에 지친 나머지, 식욕 억제 효과에 좋다는 한방다이어트 약에 관한 인터넷 서핑했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서 있으면 낯선 여자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깜짝 놀라 방안을 두리번거리면 거울 속 여자도 나를 따라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은행 내 여행원들에게 다이어트에 어떤 음식이 좋은지 물었다. 첫째는 무조건 굶는 것을 추천하면서도, 한결같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집 근처 헬스장에 갔다. 헬스장에는 자신과 싸움하는 중년여성들이 러닝머신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퇴근 후 집안일 하고 헬스장을 찾기엔 시간 적으로 부담감이 컸다. 다음 날부터 다이어트에 좋다는 디톡스를 먹기 시작했다. 디톡스를 먹으니 거짓말처럼 식욕이 줄고 여기에 매일 저녁, 런닝머신과 2시간씩 사투를 벌인 끝에 약 3개월 만에 5킬로그램의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옆구리 살이 삐져나와, 둔하게 보여 오리처럼 뒤뚱거리던 걸음걸이도 제법 일자로 걷게 되자 삶이 핑크빛으로 보였다. 출근하면 고객들이 몰라보게 날씬해진 내 모습에 무슨 일 생긴 거냐 반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에 출근길이 즐거웠다.
회사 창립 기념일 40주년 행사에 맞추어 특별 승급이 있었다. 특별 승급은 회사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날은 정말 감격스러운 자리로 전 직원들 앞에서 축하 박수와 함께, 사령장 받는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내심 승급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내가 재직하는 은행은 서울에서도 변두리에 속해서 오피스빌딩 보다는, 작은 복합 상가 건물이 많아서. 주요 고객층은 자영업을 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여신 면에서는 다른 지점보다 낮았다. 지점장님은 아침 회의 때마다 매일 외치는 구호가, '고객들의 마음을 얻자'였다. 나의 직급은 차장으로 여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승급은 동기들 보다, 약간 빠른 편이다. 그것은 고객의 마음을 우리 은행에 붙잡아 둔 것도 있었지만, 나의 장기인 꾸준한 고객 관리한 덕분에 내가 속한 지점도 꾸준히 여신이 늘어나, 지점장님과 함께 본점에서도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승급은 누구나 꿈꾸고 있지만 절대 쉽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고,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여신을 높이기 위해 출근하자마자 가까운 지인과 친척들에게 새로운 금융 상품이 나오면 열심히 홍보하고, 지점을 찾아 주는 고객들에게 방카슈랑스와 적금 상품 안내에 안간힘을 쓴 결과였다.
승급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긴장감으로 저녁 식사 때,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출근한 나는 그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승리의 여신, 승급의 여신은 나보다 5년 늦게 입사한 같은 은행에서 잔뼈가 굳어진, 하영에게 돌아갔다. 나이로 따져도 한참 후배에게 승급의 기회를 넘기고 나니, 다음날부터 평상시처럼 얼굴을 들고 출근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고객들을 대했지만, 가슴에서는 헛헛함이 물결처럼 일어났다. 그동안 쌓아 올린 실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 같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뛰고, 목이 갈라질 정도로 고객에게 예금과 적금 등의 실적을 위해 노력한 결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결국 하루 병가를 내고 집안에 누워서 밥을 먹지도 못하고 종일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앉아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그만 눈물이 났다. 그동안 고객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점심을 굶어가면서 노력한 대가가 후배의 승급에 발판으로 사용되었다, 는 자괴감에 들자 가슴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승급에서 밀리고 보니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지고, 계획했던 일들이 먼지가 되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동안 부지점장으로 승급하기 위해 고객들을 만나고, 우리 은행에서 좋은 저축 상품이 나오면, 직접 찾아가 상담도 하고 금리가 오를 상황이 되면, 대출을 갈아타게 하는 등,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마음과 계획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말았다. 부지점장 승급이 물 건너가고 난 후, 5년 후배인 하영을 부지점장으로 모셔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자괴감에 빠졌다. 저녁에는 쉬이 잠들지 못했고, 매일 은행에서 마주하는 하영과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반대로 승급 후 하영은 자신감이 넘쳤고 퇴근 후에는 고객을 유치하느라 따로 약속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나의 경우는 승급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표를 던질 수도 없고,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할 수도 없어 나날이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달리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잠든 저녁 혼자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술 없이는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이면 숙취로 얼굴이 부스스하고, 속은 더부룩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부하 직원으로 편하게 대하다, 이제 상사가 된 하영은 부지점장으로 승급이 되자, 아침 출근 시간이 빨라지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다. 그녀는 본점에서 새로운 상품이 출시 되면 제일 먼저 공부하고, 고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등 매사에 빈틈이 없었다. 반면 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신경 써야 한다는 핑계로 정시에 퇴근을 서둘렀다.
아침에 일어나서 고3인 아들 우빈을 학교 정문에 내려 주고 출근하면, 언제나 커피 한잔 여유 있게 마실 시간도 부족해서, 종종걸음을 치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우빈의 통학을 남편에게 부탁할까 생각했지만, 남편은 그즈음에 예민한 성격이 더욱 뾰족해져 있었다. 남편은 건설사에서 재직하고 있는데, 회사 재무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은데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 금리는 오르고 건설업계는 수주가 없어 지방의 중견 건설사도 부도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가 이어지자 회사는 초긴장 상태로 몰아갔다. 회사는 수주율이 떨어져 일감이 없다 보니, 직원들은 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 회사에서 남편은,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지 늘 퇴근하면 인상을 잔뜩 구기고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의 직급은 부장으로 정기 승진 심사에서 탈락해서 이사 승진이 불발되었다. 남편의 꿈은 직장에서 임원진 타이틀을 달고 명예롭게 퇴직하기를 꿈꾸고 있었다.
-지금 괜찮으시면 통화해도 될까요- 라는 우빈 담임의 문자를 받았다. 순간 고3인 우빈의 얼굴이 며칠 동안 어두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시간인데다 눈앞에 손님이 예금 예탁을 위해 번호표를 들고 있는데도, 자꾸만 전화에 신경이 쓰였다.
“여보세요, 저 우빈 엄마입니다. 선생님” 나는 잔뜩 긴장되어 전화를 이어갔다. 담임은 “어머니 지금 바쁘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지금 통화 괜찮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사실 오늘 학교에서 우빈의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는데, 어머님도 아셔야 할 듯해서요." 우빈의 담임은 말할 듯 말 듯 말을 아꼈다. 나는 숨을 헉하고 참았다. 그리고 “선생님 무슨 문제라도……” 우빈 담임 선생님 전화는 늘 긴장하게 했다. 그날은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은행 문을 닫은 후 고객의 예금을 정산하는데, 계속해서 오류가 발생해서 퇴근 시간도 미루고, 다시 서류를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결국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퇴근했다.
얼마 전에도 학원에서 걸려 온 전화는 나를 답답하게 했었다. 학원 수업 시간에 지각은 다반사고 어느 땐 결석을 해서 우빈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이냐 물어도 묵묵부답이라는 설명에 할 말이 없었다. 근무 중 우빈에게 전화해 학원 가야 된다는 잔소리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전업주부라면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하교하면, 간식 챙기고 직접 운전해서 학원까지 픽업하고 신경을 쓸 텐데…… 긴 한숨을 쉬어도 가슴속의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벌써 이번이 한 달만 에 두 번째 걸려 온 전화에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긴 통화 끝에 우빈 담임은 요즘 우빈이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온종일 잠만 잔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집에서 고액 과외를 받느라 학교 수업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게 아닌지 아니면,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지 물었다.
“아니요, 별일은 없어요.”라고 답하고 나서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 얘기처럼 혹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지, 부모님의 관심과 팩트 체크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우빈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아이는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3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독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달래면서 성적이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은행에 반 차를 내고, 우빈 담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담임과 상담 결정 후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창 예민한 아이를 혼내면 반대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해서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머릿속에서 계속 선생 말이 떠올랐다. 가슴에서는 심장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크게 들렸다.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요즘 학교에서 왕따 때문에 수업에 집중 못하나 설마 아닐 거야. 담임도 모르는 무슨 고민이 생긴 것일까.’ 우빈의 담임은 지난 3월 모의고사 성적을 화면에 띄우며, 매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컴퓨터에 뜬 우빈의 성적표를 보고 나는 그만'헉'하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우빈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선생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다.
“이 성적으로는 수도권 대학은 꿈도 못 꿉니다. 그래도 4년제 대학에 보내실 생각이시면 지방대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도 집에서 아주 먼, 학교가 아니면 방법이 없어요.” 담임이 담담하게 말했다. 수능은 이제 5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리 몰아세운다 해도, 수능 등급이 올라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 나오는 게 한숨이었다. “그리고 어머님 보시기에 우빈이 성적 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담임은 마치 로봇처럼 말을 끝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앞이 갑자기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신호등의 색이 달리 보였다. 갑자기 눈앞에 신호등의 색이 변하지 않았다. 신호등의 색이 초록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뒤에서 자동차들이 계속해서 크낙숀을 울렸다. 나는 큰소리에 화들짝 놀라 페달을 밟았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가슴은 두근거림이 심해서 심호흡해도 가슴에 무엇인가 돌덩이가 얹힌 듯했다. 신호가 빨간불이 들어오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 받을뻔했다. 마음속으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고 다짐 하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 자신 너무 흥분해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했다. 그날 저녁은 잡다한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우빈의 학원으로 갔다. 우빈이 인상을 구기며 학원에서 나왔다. 미리 준비한 음료를 우빈에게 내밀었다. 우빈은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낮에 학교에 간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침묵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왔다. 간식을 챙겨서 우빈의 방문을 노크했다. 방에서는 분명 사람 말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재차 방문을 손으로 똑똑 두드리니 그제야 후다닥 하는 발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뭔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방문을 여는 우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무슨 일인데 문을 안 여니?” 수상한 짓을 하다 들킨 얼굴을 한 우빈을 바라보다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되자 우빈에게 자라고 한 다음 거실 불을 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우빈의 방에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잠이 들었다. 우빈을 일찍 재우기 위해 방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새벽에 간신히 일어나 부족한 잠을 청하고 직장에 출근하면 졸음이 쏟아졌다. 특히 점심 식사 후 몰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산책하기도 했지만,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포기했다. 점심시간 쪽잠을 자기 위해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눈을 감고 있으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수능이 점점 다가오니 긴장감이 조여오는 어느 날, 모의고사를 치른 우빈이 심각하게 내게 말했다. “엄마 나 이번에도 모의고사 망쳤는데, 대학, 안 가면 안 돼?” 우빈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뭐라고 대학을 안 가……”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아직 6월인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서울은 정말 힘들지만, 수도권은 될 거야.”라고 겨우 말을 했다. “그리고 너 대학 안 가면 뭘 하고 싶은데?”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빈을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다. 우빈 방을 나와 거실 소파에 푹 쓰러지듯이 주저앉으니 남편이 “당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짜증 나게…” 남편의 한가한 소리는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
“여보? 우빈이 대학을 포기 하고 싶대, 아……어떻게 어떡하냐고…… 내가 울부짖자 남편은 “뭘, 어떡해? 대학 안 가면 기술 배우라 그래.” 남편의 말에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대학에 안 가겠다는데 아빠로서 할 말이야, 어떡해서든 대학에 들여보내야지……”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남편은 “본인이 싫어서 공부하기 싫다는데 무슨 수로 억지로 공부시켜, 내가 신도 아니고…” 남편이 부루퉁해서는 방문을 탁, 소리 나게 닫는다. 남편은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 오늘도 회사에서 상사에게 안 좋은 말을 들은 것인지, 퇴근하면 저녁을 먹은 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배만 피운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다. 남편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겼느냐 물어도 ‘알 거 없어’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끝이 난다. 남편은 같은 회사에 재직 후 20년이 되었지만, 승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입사 동기들에 비해 늦은 승진이 남편을 옥죄는 것 같은데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었다.
우빈의 일로 가끔 두통이 몰려오면 타이레놀을 먹곤 했다. 편두통은 일상처럼 일어나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졸음이 쏟아졌다. 나중에는 편두통이 심해 점심시간 근처 병원에 갔더니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일을 줄여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일을 안 하면 뭐 먹고 살아요.’ 속으로 외치고 싶었다.
병원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마침 지나던 버스에 입시 학원으로 유명한 Y 학원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내신과 수능 점수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학원 광고 문구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우빈을 생각하니 심장이 마구 뛰면서 호흡이 가빠온다. 고교를 졸업해야 당장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 갈 텐데…
휴대전화를 열어 방금 보았던 입시 학원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그날 저녁 우빈을 앉혀 놓고 학원이 싫으면, 일대일 과외선생을 붙여 주겠다 했지만, 우빈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늦은 저녁 소주를 홀짝거리다 혼자 낮에 본 학원 홈피에 들어가서 살피다, 광고 문구대로 남은 기간 강의만 잘 따라가면 ‘우빈의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혼자 상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꿈으로 끝났다.
출근길에 능소화가 담장을 수놓은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업무를 시작하고 고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빈의 담임 문자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약 1시간 후였다. -어머님 우빈이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혹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처음에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아침에 학교 앞에 내려 주고 출근했는데, 우빈이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식 일로 직장에 반 차를 낸다는 자체도 우습다. 휴대전화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우빈에게 전화했다. 우빈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야 하나.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오히려 태평하게 반응했다.
누가 들을까, 다시 화장실에서 나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전화로 말했다.
“당신이 문제야, 그러게 맨날 용돈도 많이 주고, 혼내지도 않으니 자식이 버릇이 없지.” 남편은 쨍하게 한마디 던지고 만다. “당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 나 혼자 키운 것은 더더욱 아니고.”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남편은 “사내자식이 학교에 안 갈 수도 있지 안 그래.”
무심한 남편의 대꾸에 기가 막혔다. “당신 걱정도 안 돼, 나 어떡하냐고… ” 반 차 내고 집에 가 봐야 할까? 휴대전화도 꺼져 있는데, 그렇게 학교에 가는 것 싫어해도, 달래서 보내야지…”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여도 좀처럼 태평한 남편이었다.
“오락실 가는 것처럼 하니 문제지. 요즘 아이들이 예민해서 그래, 어디서 놀고 있겠지, 아니면 저녁에 배고프면 집에 오겠지, 당신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전화가 뚝 끊긴다. 업무 시작이다. 그런데 일에 집중되지 않았다. 갑자기 반 차 쓰겠다고 부지점장이 된 하영에게 말하려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점심시간에 잡담을 나누면서, 아이들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우빈이 학교를 결석했다고,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는데, 엄마가 달려가서 데리고 와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지. 하는 수 없이 속을 끓이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굶고 우빈의 학교로 달렸다. 자동차를 달리는 동안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했다. 우빈이 갈 곳을 우선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사거리에 있는 P.C 방으로 달렸다. P.C 방 간판을 확인하고 출입문을 열면서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어둑한 P.C 방에는 교복을 입은 우빈이 게임에 정신을 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상시와는 다른 웃고 있는 우빈을 향해 돌진하다, 그대로 멈췄다. 엄마로서 인내력과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전정이 되지 않았다. 우빈은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속으로 학교에 왜 가지 않았는지 따져 물을까 혼을 낼까, 몇 번을 망설이다 참았다. 우빈을 달래서 학교에 들여보내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다시 은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연속 실수를 저질렀다. 머릿속으로 우빈이 게임을 하며 웃음을 짓는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괴롭혔다. 저녁에 우빈을 붙잡고 하소연해야 하나, 아니면 눈물로 감정에 호소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우빈을 방에 앉히고 학교생활에 대해, 물었다. 당연한 반응이지만, 자신은 더 이상 학교생활에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우빈을 설득하고 달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선 고교를 졸업해야 하니 결석은 안된다는 말로 설득을 이어갔다. 우빈을 재우고 혼자 식탁에 앉아 소주를 홀짝거렸다. 혼자 소주 한 병을 마신 것 같다. 쓰디쓴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데 기분이 붕 뜬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이런 기분 좋은 적은 최근에 없었던 것 같다. ‘이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혼자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나니, 우빈 때문에 속을 썩였던 조금 전의 상황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한 잔 두 잔 마신 술 때문에, 얼굴은 퉁퉁 부어오르고, 아침이면 숙취에 시달렸다. 나중에 남편이 술을 못 마시게 말렸지만, 이미 술에 중독이 된 나는,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마신 술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남편은 일어났는지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우빈 방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간단한 식사 준비했다. 수험생인 우빈을 위해 토스트를 구웠다.
햄과 베이컨 치즈를 버터에 구워서 식빵에 올려놓으니, 냄새가 향긋하다. 입안에서는 군침이 도는지, 저절로 침이 고인다.
“여보 어서 앉아 오늘은 토스트야.” 입으로 말을 하면서 옷을 챙겨 입으려 안방으로 향했다. 남편은 식탁으로 앉더니 아이들을 부른다. 우빈은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고 올해 중 3인 애린이 교복을 입고 나왔다. “애린아? 어서 학교 갈 준비 해야지.” 말을 마치고 우빈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빈은 우거지상을 하고 식탁 앞으로 앉았다. 나는 남편 눈치를 보면서, 출근 준비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회의가 있는 날이라 마음이 급했다.
“오늘은 당신이 우빈 학교에 데려다줘.” 남편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상을 쓴다.
“나도 바쁜데 학교에 가려면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그날도 우빈을 학교 앞에 내려 주고 허겁지겁 은행으로 뛰었다. 내가 도착하자
하영은 이미 업무 준비를 모두 마치고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머 벌써 출근하셨네요,” 하영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훈계조로 말했다.
“앞으로 조금 일찍 출근해서 고객들을 만나고, 업무를 시작했으면 해요 오은서 차장님.”
하영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는 그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새까만 후배에게 승급 기회를 놓친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아침부터 훈계를 들으니 미칠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몰래 톡 수다를 떨다 이번에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와서 화장을 고치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안 하는 입사 6개 월차의 신입 행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저녁에 회식 참석하실 거지요?”
“당연하지……전체 회식이 아니라 우리 여행원들끼리 조촐하게 치맥 하자는데, 당연히 가야지요” 이렇게 대답한 사람은 하 대리였다. 나는 그 순간 문을 나설 수도 없고, 화장실 안쪽에 쭈그리고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분명 단톡방에서는 회식에 관한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오늘 여행원들끼리의 번개 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 혹시 그들이 나만 빼고…
그날 이후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하영이 부지점장으로 승급 후 여행원들만의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나는 초대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지만, 대 놓고 따지지도 못하고 냉가슴 앓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는 분노 조절 못하고, 버럭 치미는 화에 나도 모르게 밤잠을 설치고 괴로웠다. 새벽 3시까지도 잠들지 못한 나는 냉장고를 친구 삼아 보내다 보니, 몸무게는 점점 불어나게 되고, 점점 자신감이 결여가 되고 우울증 증세가 생겨, 하루에도 수십 번 사직서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우빈의 일까지 겹치자, 죽고 싶을 만큼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밤잠을 못 잔 나머지 얼굴은 누렇게 뜨고, 점심 식사 후에는 병든 닭처럼 졸고 있었다. 남편은 급기야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소문이 나면,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아직은 계속 직장에 남아야 한다. 우빈과 애린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뚜기처럼 일어서야 한다. 그런데… 정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조차 없었다. 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직장 동료들 얼굴 보는 게 괴롭다. 무엇보다도 수면 부족은 매사에 의욕 상실하게 했다.
몇 달 뒤 퇴근하는데 집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요양원에서 걸려 온 전화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요양원에 입원한 엄마의 치매 증상과 섬망이 점점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도 머릿속이 하얘서, 초록의 신호등이 켜져 있는데도, 도로 한가운데 멈춰서 다른 운전자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또 흡사 무엇에 홀린 듯, 이름 모르는 동네에 홀로 우뚝 서 있다. 나는 112에 신고 전화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고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기억에 없어서… 신고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119에 전화 하는 게 좋겠다는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나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정말 저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전화를 붙들고 하소연했다. 도로 한가운데서, 심장은 마치 풍선이 부풀어 올라서 터질 것만 같은데, 목적지가 생각나지 않아 도로 한가운데 서 있다. 어디 방향으로 향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입에서는 마치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 뒤에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크낙숀을 울리는데, 핸들에 얹은 손은 부들부들 떨리는데, 갑자기 얼음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느 친절한 운전자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자살하려 하냐고. 묻는 남자의 커다란 덩치를 보고, 너무 무서워서 창문도 열지 못했다. 도로 한가운데 비상등을 켜고 앉아 있었다.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면서 나를 위협했다. 사방이 암흑천지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신호등의 색이 무슨 색인지 기억에 없었다. 오직 혼자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우빈은 학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느라 집에 늦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대뜸 “당신 미쳤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거 아냐?”고 따지는 남편에게 마치 죄인처럼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며칠을 고민한 후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직장에서 한참 떨어진 정신과병원에서 상담했다. 의사는 공황장애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말도 했다. 약을 적게 먹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약을 줄이려면, 새로운 취미 생활해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했다. 우빈의 수능도 2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엄마인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늘 제자리걸음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은행에는 병가를 내면 그만큼 실적에서 뒤진다. 병가를 내고 마음 편하게 쉬는 자유도 없다. 어느 땐 훌쩍 가족들에게서 멀리 떠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그리고 한 달 후 고객과 상담 중인데 책상에 있는 인터폰이 울렸다. “오 은서입니다.” 하영이었다. 그동안 부지점장인 하영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오늘도 하영이 나를 찾는다. “네 부지점장님.” 아직도 하영에게 부 지점장님이라는 존칭이 어색해서 속으로 웃었다. “오은서 씨, 고객이 기다립니다. 바쁘지 않으면 잠깐 지점장실로 오세요.” 지점장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언제쯤 가벼워질지
“알겠습니다.” 인터폰을 끊고 지점장실로 들어갔다. 지점장실에는 이번에 우리 지점으로 승급되어 오신 새로운 지점장님과 부지점장인 하영이, 오늘따라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소파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 두 사람 옆에 앉은 감청색 고급 양복을 입은 신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신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신사의 얼굴을 확인하곤 나도 모르게, 가느다란 신음이 흘렀다. 얼마 전 만났을 때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일이 떠올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인수는 웃고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함께 캠퍼스를 누비던, 법학과 선배이자 잠시 CC였던 하인수였다.
“선배가, 여기…… 어떻게 왔어요?” 내가 당황해서 말을 얼버무리자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처럼 말한다.” 하인수는 껄껄 웃으며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뭘 그렇게 놀라? 아니 지난번 k 출판 기념회에서 명함 받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왔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명함을 주지 말고 혼자 조용하게 밖으로 나올 것을…
“오은서, 네가 이곳에서 근무한다 해서,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왔지.”
이때 하영이 우리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두 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시는 사이였네요.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영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인수는 우리 지점에 통장을 개설하면서, 거액의 예탁금과 자신 회사 퇴직 연금 등, 예치를 약속했다고 했다. 지점장과 하영은 하인수의 거래로, 실적 면에서 큰 손 고객을 유치한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저녁 거들먹거리는 하 인수의 얼굴이 떠올라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하인수가 준 명함에는 00컨설팅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문제는 며칠 후 점심시간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혼자 있고 싶어 찾은 허름한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하인수를 또 만났다. 그는 우연히 내가 근무하는 동네를 지나다 들어왔다 했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아 몹시 당황스러웠다.
계속된 극도의 신경 쇠약과 불면증은 수면 방해와 함께 일상생활 리듬을 깨고 극도의 신경증을 수반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다 겨우 잠이 들면 알람은 시끄럽게 울어 대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어나야 했다. 약을 먹으면 졸음 때문에,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처럼,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예전의 평상시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은데, 매일 괴로웠다. 얼굴은 퉁퉁 붓고 눈은 충혈되어, 피로감이 쌓인 나는 점심 후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싶어 사람들의 시선을 덜 받는 곳에서, 눈을 붙이려 했는데, 하필이면 하인수의 눈에 띈 것이었다. 짧은 1시간의 점심시간을 반갑지 않은 불청객과 마주하려니,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옛 추억을 들먹이며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는데 피로감이 쌓였다. 하인수와 헤어져 지점으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조금 전 하인수와 있었던 일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다, 고객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니 힘들다.
금요일 퇴근 후, 백화점 쇼핑에 나섰다. 계절이 바뀌어 기분 전환 겸, 한 달 고생한 월급으로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무엇인가 색다른 분위기가 필요한데 달리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단 며칠을 기분 좋기 위해 옷을 사고 싶었다. 이제 여름이 지나 마네킹에는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우빈과 승급 문제로 신경과민에, 나 자신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가을이라 큰맘 먹고 옷 한 벌 장만하기 위해, 천천히 옷을 골랐다. 출근할 때 가볍게 입을 원피스를 골랐다. 단정하면서 단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입어 보기 위해 직원에게 사이즈를 물었다. 직원은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고객님은 88은 입으셔야 하는데 그 디자인은 88이 없어요.” 점원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에…88이요?” 내가 놀라자 백화점 여성 의료 코너 직원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내가 그렇게 뚱뚱해 보여요?’ 다음 말을 삼킨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무엇 때문에, 자신을 학대하며 살았는지.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직원의 말을 듣고 전신 거울에 내 몸을 비추어 보았다. 그동안 관리하지 않아 옆구리 살은 비어져 나오고 아랫배는 불룩 튀어나온 게, 꼭 끼는 원피스는 내 몸에 맞지 않았다. “다른 디자인의 박시한 옷을 고르세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의 나이는 얼핏 보아도 나와 비슷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그녀의 일상적인 미소 속에 경멸의 미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자신에게 이토록 무심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백화점을 나와 자동차에 몸을 싣고 달렸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동차 천장에서는 연신 빗소리가 투박하게 들리는데, 조금 전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오늘은 유난히 우울했다. 시장기가 몹시 느껴졌을 때 깨달았다. 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을 벗어나 달리고 있다는 것을. 비가 내리는 저녁이면, 유난히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하는 탓에 집에 도착하면, 어깨가 아팠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집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정표는 집과는 정반대 방향인 김포에 와 있었다. 저녁을 굶은 탓에 배도 고프고 목이 말랐다.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식당을 찾았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불이 켜진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차창 밖은 비가 주르륵 내리는데, 어두컴컴한 속에도 벼가 자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논을 지나 달리다 보니 밝지는 않지만 희미한 ‘식당’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공터에 주차하고 돌진하듯이 식당 문을 드르륵 열었다. 늦은 시간이라 식당 안은 손님이 한 명도 없이 한산했다. 그때 주방에서 앞치마를 걸친 중년 여인이 나왔다. 아마 식당 주인인 듯 보였다. 그러곤 “죄송하지만 지금 식사 안 되는데요 손님.” 주인 여자의 말에 그만 힘없이 의자에 기대려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점심과 저녁을 굶고 장시간 빗속을 운전했더니, 멀미하는지 속이 울렁거리며 매스껍기까지 했다.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인 여자는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지요?” 표정을 보니 몹시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될까요. 사실 지금 너무 배도 고프고 지치네요.” 나는 비굴하게 애원했다. 자존심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당장 일어설 기운이 없어 애원 조로 말을 했다.
“정 그러시다면, 지금 반찬이 별로 없는데, 우리가 먹는 반찬이라도 드실 수 있으면 드세요.”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출입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모자를 푹 뒤집어쓴 남자가 들어왔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주방 바로 앞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엄마 밥.”하고 주방에 소리쳤다. 한눈에 보아도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남자였다.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바라본 남자는 나이를 아무리 적게 보아도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키가 작고 얼굴이 기괴해 보였다. 잠시 후 주인 여자가 들고 있는 쟁반에는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나물 반찬과 김치가 담겨 있었다. 순간 뱃속에서는 허기가 꿈틀거리며 입안에서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 핸드백에서는 휴대전화 소리가 요란한데도 받을 생각도 없이, 음식에 눈길이 쏠렸다. 나는 주인 여자와 남자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데, 주인 여자가 나를 남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모르는 남자랑 함께 합석해서 앉는데, 부담이 느껴졌다. 계속 주인 여자가 테이블로 오라고 손짓하는 바람에 나는 쭈뼛거리며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만 수저를 떨어뜨릴 뻔했다. 주인 여자는 불편해 보이는 남자의 앞에 밥과 반찬을 놓아주고 말했다. “제 아들인데 장애가 있답니다. 식당에 손님들이 모두 끊기면 밥을 먹으러 나와요. 그전에는 배가 고파도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지요.” 여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남자가 주인 여자의 말에 수저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무슨 상황이 생긴 것인지. 옆에서 식사를 권하자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밥을 게걸스럽게 우물거리느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손님은 이곳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이곳까지 어쩐 일이세요?” 주인 여자의 물음에 나 자신 그동안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솔직한 말을 하게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밥을 우걱거리며 먹고 있는 남자를 보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빈의 일은 깡그리 잊고, 나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말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다음날 출근할 일이 없어 무작정 운전하다 보니, 이곳에 왔노라고 이야기하니 주인 여자와 그 아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은 것 같다. 식사를 마치니 커피와 과일을 가지고 나온다.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주인 여자 앞에 마주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유리문 너머로 가을비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우산도 없이 아이처럼 빗속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세상의 고통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처럼 맨발로 땅바닥을 걷고 싶었다. 먼지가 묻은 머리를 맑게 씻어 내리는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는데, 나는 비를 피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 (200 X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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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즐겁게 보았습니다
아직 밤이 남았군요
술한잔 마시니
일찍 기상했군요
좀 밝아지면
한바퀴 돌고
쉬어야 겠어요
늘 건강하세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