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는 여인
1885년 8월, 캔버스에 유채
테오에게...
최근 작업을 마친 캔버스 네 점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걸 계속 가지고 있으면, 다시 손질해야 할 것 같다. 황야에서 그린 그림은 네가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너에게 수취인 부담으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네가 돈이 모자란다고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나도 우송료를 부담할 능력은 안 되고.
나는 지금 남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될 처지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돈 부탁을 해야 할 입장이다. 당분간 그림이 팔릴 것 같지도 않기 때문에 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럴 때 가만히 앉아서 사색이나 하고 있느니, 작업에 몰두하는 게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더 낫겠지.
테오야, 나는 미래를 예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한다는 법칙은 알고 있다. 10년 전을 생각해보자. 그때는 모든 것이 달랐지. 환경, 사람들의 분위기....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작품은 남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내 그림을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시골집을 그린 캔버스 네 개와 작은 습작을 보인다면, 그는 내가 시골집만 그렸다고 생각하겠지. 마찬가지로 인물화 시리즈를 본 사람은 내가 인물화만 그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농촌생활에는 다른 것도 많이 있다. 밀레는 "여러 명의 노예가 일하듯이 그린다"고 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작품을 완성하려면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인 것 같다.
누군가는 "천사를 그리다니! 도대체 누가 천사를 보기나 했단 말인가" 라는 쿠르베의 말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빗대어 "'하렘의 재판관들'이라니, 도대체 누가 하렘의 재판관들을 봤지"라고 말하고 싶다. 무어인 그림과 스페인풍 그림, 추기경의 초상화, 그리고 그 모든 역사적 회화들이 보지도 못한 것을 멋대로 늘이고 줄이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그런 그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도대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 대부분은 몇 년 도 안 되어 흥미를 잃고 따분하게 보일 텐데. 어쩌면 지금까지 그런 그림을 잘도 그렸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될지 모르지.
미술전문가가 벤자민 콘스탕의 작품 과 흡사한 그림이나, 스페인 추기경이 개최하는 피로연을 그린 그림 앞에 서면 아주 의미심장한 분위기로 '능숙한 기술'에 대해 말하는 건 거의 관례적이다. 같은 미술전문가가 농촌 생활을 다룬 그림이나 리파엘리 같은 사람의 데생을 볼 때면, 여전히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그 기술을 비판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이지 그 모든 이국적인 그림을 작업실 안에서 그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직접 그려야지! 온갖 사건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번에 작업한 캔버스에 네 점도 먼지나 모래는 말할 것도 없고, 족히 100마리는 될 파리떼를 쫓아내면서 완성했다. 그림을 몇 시간씩 황야나 나무울타리 너머로 가지고 다니다 보면, 꼭 한 군데는 나뭇가지에 긁히게 된다.
이런 날씨에 몇 시간씩 걸어 황야까지 가면, 도착했을 때는 피로에 지쳐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모델이 직업모델처럼 꼼짝 않고 서 있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싶었던 인상은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너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농촌에서 작업하면 할수록 이곳 생활에 더 깊이 빠져든다. 그래서 카바넬의 그림은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게 되지. 흔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헛되고 건조한 기술을 구상하는 화가들, 즉 자케, 요즘 화가로는 벤자민 콘스탕,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화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중판화 제작가'라는 자크의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내가 너무 편파적인지도 모르지. 농부가 아니라 다른 대상을 그린 라파엘리에 감동하고, 농부와 전혀 상관없는 것을 표현하는 엘프리드 스티븐스, 제임스 티솟에 감동하니까. 그러나 아름다운 초상화에는 감당할 수밖에 없다.
농부나 넝마주이를 그리는 것보다 더 단순한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회화에서는 일상적인 인물만큼 그리기 힘든 소재도 없다. 땅을 파는 농부, 바느질하는 여자, 화덕 위에 냄비를 올려놓는 여자, 여자 재봉사 등을 스케치하고 유화로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미술학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반면에 어떤 도시에서든 다양한 모델 중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그릴 수 있는 미술학교가 하는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그곳에서는 역사적 인물이든 아라비아 사람이든 루이 15세든 모든 종류의 인물을 그리는 게 가능하다. 단지 그들이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밭에서 그린 연작 중 밭갈이 하는 농부나 잡초 뽑고 이삭 줍는 여인을 그린 습작 몇 점을 너와 세레가 받아 보면, 여러 가지 결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충고나 지적은 진심으로 고맙게 받겠다.
그러나 그 전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아카데미의 인물화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더 이상 고칠 곳도 없고, 실수 하나 없이 매끄럽게 그려졌지. 그러니 '그 이상 더 잘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
(2) 에서 계속
첫댓글
나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실패하더라도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한 고흐. 새삼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