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53 章 인생유전(人生流轉).
2.
"똑바로 말해라, 이놈!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소인은 정말...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요, 나리. 윗분들
이 엄명을 내려 입을 봉하라 하셨고..."
"누가 이 일을 알고 있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윗분들이..."
"그놈들중 누가 한어를 할줄알지?"
"모릅니다요 나리. 시집가신 둘째 군주님께서..."
"그녀는 어디 있느냐? "
"둘째 군주께선 상구(商邱)지방으로 출가를 하셨습니다요. 큰군
주님 아기씨도 둘째군주님이 대려가셨습니다요, 나리."
"그녀에 대해 자세히 말해봐. 빨리 빨리."
하인은 주섬주섬 밍밍의 동생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말을
듣고난 도일봉은 그의 명치를 후려쳐 죽여버리고 말았다. 살려두었
다가는 자신을 추격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일봉은 장군을 몰아 단숨에 상구로 달렸다.
밍밍의 동생은 쿠쿠라는 이상한 이름을 지녔다. 이미 시집을 가
서 이곳 상구에 살고 있었다. 누구의 며느리요 누구의 처라고 하인
이 말하긴 했지만, 도일봉은 그 이름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제법
이름꽤나 있는집 자손들이고, 이곳 상구에서도 세력을 떨치고 있는
자라는 것 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쿠쿠는 밍밍보다 두살이나 아래
였지만 밍밍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있었다.
도일봉은 쿠쿠가 사는곳을 염탐했다. 밍밍을 닮은 여인이 두명
의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도일봉은 그녀 주위에 사람이 없는것을
확인하고 집안으로 잠입했다. 한낮이었다.
그녀는 막 갓난 아기에게 젖을 먹인 후 몸을 단장하고 있었다.
창문이 열리며 낮선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 소리를 지르
려 했다. 그러다가 도일봉의 무표정하고 가련한 모습에 입을 다물
고 살폈다.
"당신... 이군요. 도일봉?"
도일봉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인이 말했다.
"당신이... 찾아올줄 알았어요.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도일봉은 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인은 누군가를 불러 한
아이를 맏기고 물러가라 일렀다. 여인은 갓난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와 뒷채 정자로 향했다. 도일봉은 말없이 따라갔다. 정자에 이른
여인은 찬찬히 도일봉을 살폈다.
"언니는 이미... 죽었어요."
"...."
도일봉은 멍 하니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하인의 말을 믿지 않
았는데... 여인이 아기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당신 아기예요. 집에 있게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데려
왔어요."
도일봉은 말없이 아기를 받아들었다. 아주 작은 사내아이였다.
얼굴색이 다소 검었고, 밍밍을 닮아있었다. 그 작은 손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여인이 말을 이었다.
"언니는 견디기 힘들어 했지만... 후회하진 않았어요. 자신의
운명이 불행하다고만 했어요. 언니는..."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차근차근 밍밍
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장군부에서 외로움을 느낀 밍밍은 출산일이 다가오자 여주로 돌
아와 버렸다. 식구들은 밍밍이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지만,
밍밍의 부른 배를 보고 분노하고 말았다. 한인의 자식을 가졌으니
집안의 수치라고 닥달했다. 더우기 국사범의 자식이 아니던가? 당
장 애를 없애고 싶어했지만 밍밍이 위험해 차마 그러진 못했다.
밍밍의 오래비가 낙양의 우르나르와 합세해 당장 도일봉의 소굴
을 대라고 닥달했다. 밍밍은 차마 그말을 들어줄 수 없어 완강히
버티었다. 우르나르와 오래비는 말이 통하지 않자 뱃속의 아이를
가지고 위협했다. 아기를 낳기만하면 당장 죽여 없애겠다는 것이
다. 밍밍은 아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달을 버티다가
끝내 장군부의 위치와 낙양의 손삼여에 대해 말하고 말았다. 손삼
여가 손도 못써보고 당했던 것은 바로 밍밍이 알려주었기 때문이
다. 우르나르와 밍밍의 오래비는 곧 손삼여을 잡아 심문하게 되었
고, 손삼여는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장군부에 대해 밝히고 말았다.
우르나르등은 곧 장군부를 덮쳤고, 밍밍은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
다.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밍밍은 도일봉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
기때문에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다. 곧 장군
부가 괴멸되었고, 도일봉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밍밍은 식
음을 전폐하고 울부짖다가 끝내 스스로 목을 매 죽고말았다.
전후 사정을 듣고 난 도일봉은 정자기둥에 머리를 쿵쿵! 박았
다.
"내가 그녀를 죽게 했구나... 내가 죽였어... 모두 다 죽게 했
다. 모두 다 죽었어..."
이마가 깨져 피가 흘렀다. 여인이 놀라 도일봉을 말렸다.
"이봐요... 이봐요 그러지 말아요. 무서워요..."
여인이 도일봉을 흔들었다. 도일봉은 멀둥멀둥 여인을 바라보았
다.
"난... 나는 어떻게 하지... 어떻하지?"
실성한 사람같았다. 여인은 덜컥 겁이났다.
"이봐요 이봐요. 정신 차리세요. 그대까지 이러면 아기는 어떻
해요?"
"아기?"
도일봉은 아기를 내려다 보았다. 몸이 흔들리자 잠에서 깨어 울
먹이고 있었다. 도일봉은 가만히 아기를 내려다 보았다.
"이 아기의 이름은 정(頂)이라오. 벌써부터 지어놓고 있었소.
내 친구가 지어준 이름이오. 그 친구도 죽었다오. 난... 밍밍에게
잘해주고 싶었는데... 그녀에게 항상 미안해서... 미안해서 잘 해
주고 싶었는데..."
"언니는 그대가 늘 잘 대해 주었다고 했어요."
"난 잘해준게 없다오. 걱정만 시키고 돌아다니는 것만 좋아했어
요."
"언니는 그대를 만나 행복하다고 했어요."
"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소..."
"아기는..."
여인이 말을 하려다 말고 깜짝 놀랐다. 밖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이 소리쳤다.
"어서 도망쳐요! 그대를 잡으러 왔어요!"
도일봉은 도망칠 생각도 않고 아기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인
이 다급해서 소리쳤다.
"이봐요. 언니는 아기를 잘 키워달라며 죽었어요! 그대가 잡히
면 아기도 죽게되요! 어서 가세요!"
"아기가 죽는다고?"
"아기를 잡으러 왔어요!"
도일봉이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오고 있었다. 도일봉은 재빨리 일어서 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기가 몸이 흔들리자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뒤에서 여인이 소
리쳤다.
"언니는 여주에 잠들어 있어요!"
도일봉은 담장을 넘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장군이 달려왔다. 장
군에 올라탄 도일봉은 바람처럼 그곳을 떠났다.
단숨에 상구를 빠저나온 도일봉은 계속해서 울어대는 아기를 어
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다. 여러모로 달래고 흔들어 보았지만 울움
을 그치지 않았다.
"아기가 이처럼 울어댈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삼랑이 향아를 돌볼때를 생각해 보았다. 아기가 울면 젖을 줘야
한다.
"그런데 어디가서 젖을 찾지? 애 엄마는 벌써 죽었는데..."
도일봉은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급히 객점을 찾아들었다. 금으
로된 유성표를 은자로 바꾸고 객점 주인에게 급히 유모를 찾아달라
고 소리쳤다. 행하전을 듬뿍 받은 객점 주인은 급히 사람을 보내
유모될 여인을 찾아보았다. 그것도 쉬운일이 아니어서 한참 후에야
한 여인이 왔다. 못생긴 30대 부인이었다. 여인은 아기를 달래며
젖을 주었다.
"이처럼 어린아기를 대리고 어딜 가시는 중이예요? 아기가 낮설
고 배가 고파 울었던 것이예요."
도일봉은 못생긴 주제에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가
얌전해 졌으니 더 말하지는 않았다. 이미 행적이 노출 되었으니 그
지겨운 의혈단 인물들이 다시 좇아올지도 모른다. 어서 멀리멀리
달아나야 한다. 도일봉은 객점주인을 다시 불렀다.
"돈은 충분히 줄것이니 얼마동안 여행할 수 있는 유모를 구해
주시구려. 난 아기를 데리고 강남까지 가야겠소."
강남엔 이미 의혈단이 완전 소탕 되었으니 그곳으로 피하면 안
전할 것이다. 객점주인은 쉬운일이 아니라며 찾아는 보겠다고 말했
다.
삼일이 지나서야 여행할 수 있는 유모를 구해왔다. 얼마전 아기
를 낳았다는 여인인데 아기가 죽고 혼자라 했다. 도일봉은 앞뒤 가
리지 않고 서둘러 마차를 구해 그곳을 떠났다. 적들을 피하느라 사
람이 잘 다니지 않는곳을 택해 길을 잡았다. 다행히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일봉은 도중에서 배로 바꿔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잠깐
홍택호에 내릴까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것 같
았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기만하면 의혈단은 가만히 있질 않을
것이다. 도일봉에게 지금 의혈단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전혀 안
중에도 없었다. 모든것이 지겹고 짜증스러웠다. 아무곳에도 신경쓰
고 싶지 않았다. 아기만 무사했으면 싶었다.
강남에 이르러 항주에서 머물까 했으나 아기가 덜컥 병이 나고
말았다. 갓난아기에게 긴 여행은 역시 무리였던 모양이다. 의원을
불러 진찰해 보니 찬바람을 많이 쐬어 병이 난 것이란다.
"어떻게 하지?"
유모가 잘 돌봐주고는 있지만 안심이 되질 않았다. 도일봉은 이
것저것 생각해 보다가 다시 배를 빌려 타고 남창으로 향했다. 청운
장으로 가는 것이다.
도일봉이 갓난아기를 안고 나타나자 청운장 식구들은 깜짝 놀라
면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이미 도일봉의 장군부가 군사들
과 의혈단에 의해 괴멸되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더우기 장군
부의 전 대원들은 물론 부인 삼랑과 밍밍까지 죽었다는 사실도 알
고 있었다. 이제 도일봉이 엄마잃은 갓난아기를 안고 오자 크게 걱
정을 하며 위로해 주었다.
"소식은 전해 들었소이다. 정말 뭐라고 해야할지..."
"...."
문국환의 걱정에 도일봉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서글프고
답답하기만 했다.
"얼마간 이곳에서 쉬도록 하세요. 아기는 제가 보살펴 드릴테
니."
문부인의 말에 도일봉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웬일인지 눈물
이 나왔다. 도일봉은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 문부인 앞에서 그만 통
곡을 하고 말았다. 그간 산란하고 슬픈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며 참
아왔는데 이제 문부인의 자상한 한마디에 그만 마음이 풀어져 슬픔
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한번 울움을 터뜨리자 참으려해도 참아
지질 않았다. 죽어간 친구들에게 죄스럽고, 삼랑과 밍밍에겐 더욱
미안했다. 도대체 그녀들이 무엇을 잘못했더란 말인가? 해준 것이
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애만 태우고 외롭게만 했을 뿐이다. 문부인
은 울움을 그치지 않는 도일봉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도일봉은 아기와 함께 전에 묵은적이 있는 뒷채에서 묵었다. 문
부인이 세심하게 신경을써 주었다. 하지만 도일봉은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하루종일 뒷채에서 나오지
않았다. 장군과 아기만 바라본 체 하루를 보내곤 했다. 문부부는
그런 도일봉을 바라보기만 할 뿐 더이상 위로는 해주지 않았다. 슬
픔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니 얼마간 혼자 괴로워하다 보면 가
라앉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날때까지 도일봉은 청운장의 뒷채에서
보냈다. 아기는 도일봉의 체질을 닮아서인지 감기를 한번 앓은것을
빼고는 아주 건강한 편이었다. 문부인이 좋은 유모를 구해주고 잘
보살펴 주기도 했다.
화창한 어느봄날.
문부인은 도일봉과 아기를 보러 뒷채엘 가보았다. 그런데 아무
도 없었다. 도일봉과 아기는 물론 장군도 보이지 않았다. 급히 유
모를 불렀다. 하지만 유모 또한 도일봉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문
부인은 목총관을 불렀다.
"도공자가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목관영은 이미 부친을 대신하여 청운장의 총관직을 맡고 있었
다. 목관영은 사람들을 불러 도일봉의 행방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도일봉이 나가는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인근에까지
나가 찾아 보았지만 도일봉은 발견할 수 없었다. 문국환도 달려왔
다. 문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가버린 모양이예요."
문국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보오. 도형이 아무래도 크게 상심한 모양이구려."
문부인은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탁
자위에 비단보자기에 싸인 길다란 물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이었다. 문부인이 그것을 풀어 보았다. 문국환이 도일봉에게 선물
한 황룡궁이었다.
"여보? "
문부인은 이와같은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문국환을
바라보았다. 문국환은 황룡궁을 들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휴우. 내 짐작이 틀렸으면 좋겠구려."
"그럼 정말로 도형제가 세상을 등질 생각일까요?"
"이것은 내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겠소? 그는 이것을 받고
아주 기뻐했었지요. 그후로 이것을 한시도 떨어뜨려 놓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제 이것을 내게 돌려준 것으로 보면 아마 그럴 생각인
가 보오."
문부인도 한숨을 쉬었다.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도형제가 이리 된데는 우리 책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를 이같은 일에 끌어들인 사람이 저희니까요."
도일봉이 처음 출세를 하겠다고 집을 나왔을 때 문부인은 도일
봉의 사람됨과 무공을 아껴 부군의 일에 끼게 했다. 물론 그것이
도일봉의 불행을 부른 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지만 역시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도일봉의 소원대로 몽고의
장군이 되었다면 이와같은 큰 불행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처럼 생각할 것은 없소.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 아니
겠소? 도일봉이 비록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그 불행은 역시 그의
몫이오."
"차라리 세상을 등지고 마음편이 사는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예
요. 아기에게도 나쁘진 않을 것이예요."
문국환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도 생각처럼 쉬운일이 아닐 것이오. 더우기
도일봉처럼 돌아다니길 좋아하고,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욱 힘든 일일 것이오."
"맞아요. 가사나 도복을 입은 도일봉을 생각해 보세요. 어울리
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을까요? 도향제는 확실히 출가인(出家人)으
로는 어울리지 않아요."
"출가를 했더라도 언제가 한번은 꼭 찾아와 줄거요. 마음속의
선녀가 이곳에 있는데 그가 가면 어디로 가겠소?"
문국환이 껄껄 웃었고, 문부인이 눈을 흘겼다.
"도형제가 비록 저를 선녀로 알아주곤 했지만 그대처럼 짖굳진
않았어요."
"그런가? 하하하."
"그에겐 또 한명의 선녀가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언젠가 도일봉은 그 일로 자신과 의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비
춘적이 있었다. 그동안 서로 너무 바빳고 멀리 떨어져 있어 그냥
지나쳤는데 그일은 어떻게 ㄷ는지 궁굼하기도 했다. 상황으로 미루
어 보아 서로 잘된것 같지는 않다.
문부부는 도일봉을 걱정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한번 찾아와 줄것
을 믿으며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강남무림은 이미 문국환의
처운장을 중심으로 뭉쳐있었다. 요사이에는 강북의 의혈단을 어떻
게 대처해야 할지 사람들과 의논중이다.
세월 유수라 했던가?
남창의 청운장을 떠난 도일봉은 그들 부부 생각대로 세상을 버
리고 출가할 결심을 했었다. 아기가 있는것이 다소 걱정거리였지만
모든것을 잃고난 도일봉은 도통 세상일에 흥미가 일지 않았다. 아
기를 안은체 절간으로 찾아들어 출가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도
교사원에도 찾아가 도사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기안은 사람은 어디서든 받아주지 않았다. 애 아버지가 아기와
함께 출가를 부탁한 적이 없거니와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었다. 아기를 잘 키우는 것이 애 아버지가 할 일이 아니겠느냐며
정중히 물리곤 했다.
출가를 할 수 없자 도일봉은 커다란 마차에 마부와 유모를 구해
아기와 함께 유람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쪽으로는 바다건너 해남도
에까지 다녀왔고, 동쪽으로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도(三神島)를 찾
아보기도 했다. 서쪽으로는 청해(淸海)지방과 운남(雲南)쪽도 유람
했다. 북으로는 저 멀리 천산(天山)과 곤륜산(崑崙山)을 거쳐서 몽
고의 대초원도 다녀왔다.
이렇게 오년여를 여행한 도일봉은 다시 중원으로 돌아와 낙양을
지나고 있었다. 세월이 가도 변하는 것은 사람뿐. 오년만에 돌아와
봐도 낙양거리는 여전하기만 했다. 성문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
리고, 구걸하는 거지들까지 여전하다. 힐끗 성벽에 붙여진 수배범
들의 화상을 보니 그것은 많이 변해 있었다. 아는 얼굴이라곤 하나
도 없었다.
낙양을 한바뀌 돌아본 도일봉은 마차를 다시 북쪽으로 몰게 했
다. 망산 입구까지 온 도일봉은 마차를 두고 말에 올랐다. 장군이
었다. 달라진 것이라곤 이미 삼십을 넘어 제법 점잔은 모습의 도일
봉과 앞에 다섯살난 아이가 있다는 것 뿐이다.
망산으로 접어든 도일봉은 산아래 인가에 들러 객점을 찾았다.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은 도일봉은 점원을 불렀다.
"이곳에 정심사(靜心寺)라는 절이 있다는데 어디로 가야 하느
냐?"
"정심사요? "
점원녀석은 도일봉 부자를 아래위로 살펴보며 입을열었다.
"정심사는 여승들만 있는 곳인데 손님께서는 그곳에서 법사(法
事)를 올리시렵니까?"
"이녀석아. 어른이 물으면 대답이나 할 일이지 묻기는 뭘 묻느
냐!"
"하긴 그렇습지요. 예서 한 이십리 산으로 오르다보면 정심사가
있긴 합니다요. 하지만 그곳은 역시 여승들만 있는 곳이라 남자 향
객들은 받질 않는답니다."
여승만 있는곳을 찾으니 이상한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여준 도
일봉은 점심을 마친 후 곧 장군에 올라 길을 떠났다.
"아빠. 또 어디로 가는 것이예요?"
생김생김이 도일봉을 닮지 않고 밍밍을 닮아서인지 제법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여행을 시작한 셈이라 이제
여행하는 것에는 이골이 난 상태였다. 도일봉은 아들의 머리를 쓰
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오래전에 사귄 친구를 찾아가는 것이란다."
"여자예요?"
"네가 여자인지 어찌 아느냐?"
"아까 점원이 정심사에는 여승들만 산다고 했잖아요?"
"오냐. 여자란다."
"예뻐요?"
"아주 예쁘지."
"엄마보다? "
"음..."
도일봉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말을 재촉했다. 점원의 말대로 이
십리 남짓 걸으니 자그맣미한 규모의 절이 나왔다. 오래되어 많이
낡아있었고, 스님들도 많지 않았다.
정심사에 도착한 도일봉은 선듯 들어서질 못하고 멀리서 절안을
살폈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안들어가요?"
"응."
도일봉은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는 절안 채마밭에서 채소를 가꾸
는 한 여승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회색 승려복을 입고, 깍은 머
리엔 회색 모자를 썼다. 삼십이 되었음직한 나이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승이었다. 아이가 그 여승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아빠. 저 여자스님은 정말 예쁘게 생겼어요. 그렇지요?"
"응."
"저 여자스님을 찾아왔나요?"
"응."
도일봉의 머리속에는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첫눈에 이 여인은 내 마누라가 될 여인이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사
랑을 키우던 일들이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이 슬프게도 이제 이곳
에서 회색 가사를 걸치고 세상을 등진체 채소를 가꾸고 있다.
"아빠. 왜 안가요? 내가 부를까요?"
"아니다. 좀 더 보자꾸나."
도일봉은 오래도록 여승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운명이 어째서
이렇게 얽혀 있는지 슬프기만 했다.
채소를 가꾸던 여승도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는지
호미를 든 손을 멈추고 이쪽을 올려다 보았다. 처음엔 지나가는 여
행객인가 싶어 일을 계속하려던 여승은 문득 다시 고개를 돌려 바
라보았다.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도일봉은 말에서 내려 아이와 함께 천천히 여승에게 가까이 갔
다. 여승이 더욱 놀라 들고있던 호미를 떨어뜨렸다. 도일봉은 여승
앞에 이르러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도일봉이요. 오래간만이요. 교영."
그녀는 바로 교영이었다.
세상을 등지고 이곳저곳 여행만 하던 도일봉은 교영에 대해서만
은 끝내 잊지를 못했다.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교영의 행방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때.
장군부가 망한 그해 가을. 바얀은 드디어 교영을 아내로 맞았
다. 그 다음해까지 대도에 살던 바얀은 자신의 정적(政敵)들이 실
권을 쥐자 어쩔 수 없이 정계에서 물러나 고향인 몽고초원으로 돌
아갔다. 바얀의 생각대로 황제는 다음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렸
고, 황위는 아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전황제 무종의 아들쪽을 밀
고 있던 바얀으로서는 크나큰 좌절이 아닐 수 없었다. 바얀은 정적
들에게 밀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교영도 함께
였다.
몽고초원을 여행하면서 도일봉은 바얀의 집도 찾아가 보았다.
물론 바얀 모르게였다. 하지만 바얀도 교영도 그곳엔 없었다. 바얀
은 다시 대도로 갔다는 것이다. 황위를 이은 황제는 일년도 못가
죽어버리고 새로이 황제가 등극했다는 것이다. 이일로 다시 힘을
얻은 바얀은 곧장 대도로 갔던 것이다.
문제는 교영이었다. 교영은 바얀을 따라가지 않았다. 아니. 따
라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바얀이 대도로 가기전에 교영은 이미
바얀을 떠났다. 사람들의 말로는 교영이 크게 질투를 하고 바얀을
떠났다는 것인데,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었다.
교영이 바얀을 떠났다는 말에 도일봉은 크게 걱정이 되어서 여
기저기 수소문을 하게 되었고, 끝내 교영이 이곳에서 출가를 했다
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도일봉!"
교영도 도일봉의 출현이 뜻밖인 듯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평정을 찾고 도일봉을 바라보았다.
"오래간만이로군요."
도일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가를 했다는 말을듣고 믿지 않았다오. 난 얼마전에야 알았
다오."
"출가를 한 일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소문낼 일은 아니지요. 아
들...인가요?"
"밍밍의 아이라오."
"그녀에 대해서는 들었어요."
"난... 교영이 어째서..."
"빈승은 청련(靑連)입니다. 교영이란 세명(世名)은 쓰지 않아
요."
도일봉은 쓴웃움을 지었다.
"교영이 어째서 출가를 해야했는지 알지 못한다오."
"인연따라 정해지는 것이 운명이라는데, 빈승도 알 수 없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교영은 끝내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의 운명 또한 슬픔 뿐이었다. 어찌 생각
해보면 이 도일봉이란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끼어들고부터 그 슬픈
운명이 시작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사람만 자신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이 사람도 자신의
운명을 모를진데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난..."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가슴아픈 기억 뿐이예요. 돌아가세
요."
도일봉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는 늘 나더러 돌아가라고만 하는구려. 하지만 난 이제 갈
곳도 없다오."
교영은 낮게 불호를 외웠다. 이사람도 더이상 갈곳이 없는 사람
이다. 모든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자신의 신세와 다를바 없는 사
람이다.
교영은 문득 바얀을 떠올렸다. 도일봉이 있을땐 늘 바얀이 함께
였다. 바얀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바얀을 늘 완벽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합치기만
하면 모든것이 다 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바얀과 합치고 몽고로
가보니 그곳엔 이미 바얀의 부인들이 있었다. 교영은 바얀에게 자
신외에 여자가 없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30이 된 남자에게 여자
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몽
고에 있는 두명의 여인은 이미 바얀의 부인이었고, 아이들까지 있
었다. 교영은 바얀에게 왜 이와같은 사실을 숨겼느냐고 따졌지만,
바얀은 숨긴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이다. 교영이 더 따지고 묻자 여자가 있다한들 무슨 상관이냐는 것
이었다. 그렇다고 교영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교영은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남자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데
라는 후회가 몰려왔다.
그리고 얼마후 바얀은 다시 대도로 가버렸다. 홀로 남게된 교영
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끝내는 바얀을 떠나고 말았다. 미련도 없
었다.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낙양으로 돌아와 보았지만 식구들은 돌아온 교영을 좋게 봐주질
않았다. 오래비는 그놈의 도일봉 때문에 동생 인생이 이지경이 되
었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교영은 집에서도 더 견디지 못하고 끝내
출가를 하고 말았다. 그것이 삼년전이었다.
도일봉은 교영의 안색을 살피며 아이를 돌아보고 말했다.
"정아. 인사드려라. 엄마 친구분이시란다."
도정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교영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밍밍을 많이 닮아있었다. 밍밍과의
추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밍밍이 보고싶었다. 하지만 한 사람
은 저승에, 한 사람은 출가한체 갈라져 있다. 교영은 아이의 머리
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교영이 합장을 했다.
"빈승은 돌아가 예불을 올려야 합니다. 시주께선 늦기전에 돌아
가시지요. 곧 어두워집니다. 아미타불."
"교영..."
"아미타불."
교영은 돌아보지도 않고 법당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일봉은
멀둥이 교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아이가 도일봉을 끌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도일봉은 석
상처럼 움직일줄 몰랐다.
"난 돌아가지 않겠소. 그대는 날더러 언제나 돌아가라고 하지만
난 더이상 갈곳도 없소. 어디로 간단 말이오?"
< 大 尾 >
끝까지 애독해 주시고 댓글로서 격려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즐독했습니다,그동안감사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동안 감사 합니다 코로나 조심 하시고 건강 하세요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구장이는 귀여워요. 감사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올려주셔서 매일의 삶을 채워주신 검은 눈동자님의 독자 사랑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쥴리강님
따뜻한 댓글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끝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끝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끝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끝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끝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읍니다
감사히 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게 잘읽었습니다
잘 봣습니다 잼났어요~~~
그동안 즐독 했습니다
또 다른 좋은글을 기대합니다
이랗게 끝나는군요..........................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즐거웠읍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젠 뭐하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해 주신 검은 눈동자 님께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