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실 때는 대부분 음악을 틀어놓기에 가끔 질문을 받게 된다. “누구의 음악을 좋아 하나요?” “바흐!” 유명한 작곡가들 많잖아요. 왜 하필?” “학창시절에는 기암괴석 절경의 금강산 같은 모차르트 음악이 좋았었지. 또 출가하기 직전에는 웅혼한 백두산같은 베토벤 음악이 좋아지더군. 그런데 출가생활을 하면서는 만주벌판같은 바흐 음악이 좋더구먼.” 물론 이것은 음악에 대해서 개뿔도 모르는 순수한 아마추어인 내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만주벌판을 걸어보라. 뭐 꼭 만주벌판 아니라도 끝없는 사막이나 평원에서 하루쯤 걸어보라. 도무지 끝 간 데를 모르는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벌판에서 대체 무슨 재미를 느낄 수 있으랴. 고등학교 시절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 느낌이 꼭 그랬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나이 들수록 그게 좋아지더라는 말이지. 그런데 음악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그런가보다. 점차 원숙한 경지가 되면 하나같이 바흐 음악을 연주한다고 야단이다. 그뿐인가, 나름 음악에 미쳤다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또 바흐란다.
음악마니아들에게 물었다. 무인도에 가면서 딱 한 장의 음반을 가져간다면 어떤 음반인가? 그랬더니 1위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주제를 계속 바꿔 연주하는 곡인데, 청소년들이 들으면 하품 깨나 할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곡은 엄청난 버전으로 연주된다. 피아노나 하프시코드솔로로 연주하게 만들어졌지만 현악기로 연주하기도 한다.
수행에 특별한 맛을 바라지 말 것
늘 변함없는 듯 ‘천변만화’하나니
뿐만 아니라 실내악 버전도 많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재즈버전이 가장 많은 곡이기도 하다. 약 280년 전쯤에 만들어진 곡이 오늘 재즈뮤지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될 수 있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이 곡을 만나면 연주가들도 자유를 느끼나 보다. 그 연주속도가 아주 빠른 것도 있고 아주 느린 것도 있어서 제각각이다.
수많은 버전 중에서 내 취향을 고르라면, 피아노로 다소 느리게 연주하는 스타일이다. 그게 아무래도 바흐답다고 생각되기에.
불교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뭔가 신나는 체험을 하고 싶어 한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노라면 예상치 못했던 기이한 현상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떠벌릴 것은 아니다. 초보자라는 것이 너무 티나니까.
불교 공부하는 것을 남에게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는 그저 좌선이 최고다. 우선 폼 나지 않는가. 그래서 남들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아 본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 있어야지. 그래서 좀 용을 써보다가 옆길로 새고 만다.
요즘에 참 별별 명상이 많다. 깨달음은 고사하고 본래의 선정과도 영 거리가 먼 이상한 현상들을 체험케 하면서 또 거기다가 나름대로 별별 자격까지 다 매겨두었다. 아! 제대로 수행하는 단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도록.
벗이여! 이상야릇한 것은 불교와 거리가 먼 것이라네. 그러니 맛이 없는 옛날의 그 길로 계속 가게나. 허허벌판에서 문득 오묘한 삼매가 나타나리니 부디 옆길로 새지 말게. 바흐의 음악이 300년이 지난 지금 빛나듯이, 부처님의 일행삼매는 2500년 동안 쉼없이 고수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지 아니한가.
나는 오늘도 너무 오래되어 줄이 다 끊어진 피아노 앞에 앉아, 저 혼자 울리는 밋밋하나 바다같이 깊은 바흐의 음악을 듣는다. 뭐 돈 드는 일 아니니 그대도 한번 해 보시구려! 그러다 보면 음악은 사라지고 허공처럼 텅 빈 세계가 나타나리니. 누군가 참 멋진 표현을 했더군. “텅 빈 충만(진공묘유眞空妙有)!”
송강스님 / 서울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612호/ 4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