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3학년 올라가는 아들놈 손잡고
개포동에서 출발한지 한시간 반이 지나서야
영등포입구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40년만에 만나는 초딩동창들을 만나려고
약속시간에 맞춰 일찍 출발했는데도 늦게 된 것이다.
양평역을 통과하면서
충주회장께 문자를 보낸다.
고맙게도 곧장 답장이 왔다.
"오느라 수고많네~~ 송정역 3번출구 나와서 오른쪽 아래"
사실 '만남고지'의 내용중 송정역 3번출구까지만 기억되어서
다시 전화로 물어보려고 했는데.....
친절한 회장님 ㅎㅎ
덕유산을 출발해서 서울로 가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해야했다.
갑자기 폭설이 내리는 것이다.
닭 모이가 없어서 농협에 가서 사료 한 포를 사다
닭장에 놓아두고
(물과 모이를 잔뜩 주어야 며칠 동안 집을 비워도 닭이 굶지 않으니~~~)
집단속을 하고 떠나려는데 이번에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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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0일 내린 눈에 뒤덮인 우리집 모습들 ***
그러나 이번에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면
언제 또 다시 만날 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질곡같은 내 삶 때문에 미루어왔는데.....
집이야 폭설로 무너질 것도 아니고
무작정 출발했다.
다행이 내 차가 사륜구동이고 강원도에서 눈길에 경험이 많으니
까지껏 가다가 못가면 다시 돌아오는 거구!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는 눈발에 시야가 자꾸 가리지만
연신 와이퍼를 작동하고 물을 뿜어대며 간신히 집 앞 고개길을 무사히 넘으니
덕유산맥을 넘는 신풍령고개는 무주리조트 때문에 제설차가 말끔하게 치워놓았다.
무주를 지날 쯤부터는 눈발이 약해지더니 대전에서는 눈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눈이 온다고 친구들께 못간다고 했으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뻔 했군!
천안을 통과할 때부터는 황사때문에 하늘이 온통 누렇게 뒤덮였다.
자연재앙!
이런 환경을 만든게 바로 내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니 참으로 그 죄가 크다는 것을 거듭 느끼며.....
앞으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살아가야 한다니 한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집에 도착한 나는 현우에게
아빠가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가는게 함께 가자고 했다.
물론 싫다고 한다.
나는 "네가 좋아하는 소흔이나 매일 장난치는 정진우 조영찬 등을 40년 후에 만난다고 생각해봐라"
그러더니 얼굴에 웃음을 띄더니
"그럼 한 번 가볼까? 아빠!"
이제 초딩2학년을 마친 녀석은 엄마하고 거의 떨어져 있어보질 못했다.
나도 모처럼 만나는 현우와 함께 더 보내려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김포공항까지 토요일에 차를 몰고 가려면 더 늦을 것만 같아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에서는 어떤 친절한 등산객 아주머니가 어린 현우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어서
선릉역까지 편하게 갔는데.....
지하철 2호선 내부순환선을 타고 나니 거의 만원이었다.
현우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 있어야 하니 짜증이 나나 보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너도 이제 단련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그리 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단다.
너도 이제 커가면서 체력도 길러야 하고 그래서 홀로 설 줄 알아야 한다'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이 없자 녀석은 바닥에 쪼그려 앉는다.
나는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현실세계이니.....
그 때부터 심술이 나기 시작한 것이 영등포시장입구역에 내리자
더욱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자동판매기에서 빼빼로를 사달라고 조른다.
친구들을 만나면 저녁을 먹을텐데 평소
밥양이 적은 현우가 친구들 앞에서 전혀 먹지 않으면.....
그러다가 배고프다고 자꾸 집에 가자고 보채면.....
나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녀석은 잔뜩 토라져서 멀리 도망간다.
순간 내가 초딩 3학년 때 아버지와 서울구경하다가
무엇을 사달라고 하다가 멀리 도망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것도 유전이 되는가?
아니면 아이들의 심성이 본래 저런 것인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데 야단을 쳐서 눈물을 짜게하면 안될 것 같아서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현우는 빼빼로 10개 중에 두 개만 남기고 다 먹어치운다.
나는 그것을 빼앗아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랬더니 나중에 횟집에서 그것마저 꺼내 먹었더군! ㅎㅎ
송정역까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앉아서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음이 한결 풀어진 상태에서
약속시간 15분 정도 지난 오후 5시 15분에 초딩동창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살아있으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을!!
그동안 무엇 때문에 망설였던 것일까?
그냥 반가웠다.
함께 초등학교 6년을 다녔던 친구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게 어색할 정도로 편안했다.
지난 4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손을 잡고 서로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게 좋았다.
충주,문현,일수,현숙,문남이 먼저와서 기다리다 우리 부자를 반겨주었고
조금있다가 강화에서 선환과 경선이가
그리고 명선이가
마지막에 용란이가 잠실에서 강의를 듣고 7시 30분쯤 도착했다.
어쩌면 그리도 어릴 때 모습을 그대로들 간직하고 있는지
참으로 놀라웠다.
현숙과 문남은
내가 어렸을 때 너무 쌀쌀맞았다고 증언해 준다.
그랬었나? 그랬거나 말거나 지금은 안 쌀쌀 맞으니 된거 아닌가?ㅎㅎ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랬을 거 같다.
우리 형수가 시집와서 내가 그렇다는 말을 해준 기억도 있으니.....맞는가 보다!
어린 시절의 내모습을 다시 그려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
문현은 상래와 함께 놀이터에서 나를 놀렸는데.....
내가 우리 할아버지께 고자질했고 그래서 혼이 났다고 추억을 이야기 해준다.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게 들린다.
그래서 초딩동창들이 좋은가 보다.
현우 옆에서 경선이가 마치 엄마처럼 살뜰하게 먹을 것을 챙겨준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으면 딱 어울렸을 텐데.....
옆에서 현우가 제법 잘 버텨준다.
7시가 되자 현우는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함께 나가니
"아빠 앞으로 30분만 더 있으면 가자"고 엄포(?)를 놓는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하지도 못했는데.....
용란이는 자기가 올 때까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저녁식사로 회를 잘 먹고 나서
매운탕에 밥을 한그릇 잘 먹은 현우는 잠시 칭얼댄다.
다행히 경선이가 옆에서 잘 다독거려서 모임의 목적에 대해서
충주가 꺼내기 시작했다.
대월초등학교총동문회의 사업이야기가 등장했다.
나는 처음 나왔으니 그냥 듣기만 할 수 밖에.....
일수가 부회장이라는데 몇가지를 질문하면서 따져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선이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아!"
일순간 웃음 바다가 되었다.
문현은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하는 일수에게
"얜, 왜 이렇게 생뚱맞냐!"고 농을 던지고 ㅎㅎ
아무튼 회의 분위기는 진지함을 넘어서
초등학교 학급회의하는 것 같은 화기애매(?)함이 넘처 흘렀다.
동문회 등산문제와
봄나들이를 덕유산 우리집으로 오겠다는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현우는 다시 집에 가야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일어서는데
경선이 현우에게 용돈을 준다.
순간 녀석은 심술은 사라지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투가 부드러워진다.
이어서 누군지 또 용돈을 거듭 주니 녀석은
집에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아! 어느새 자본주의가 어린아이에게도 이토록 깊이 파고 들은 것인가?
씁쓸했지만 다행히 난 좀 여유있게
마무리를 하고 8시 30분쯤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현우의 손을 꼭잡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 속에 만났던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았다.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가꾸어가며 살아간 흔적들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초딩동창들!
다음 만남에선 이번에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약하며.....
첫댓글 그 옛날 연하장에나 나올법한 하얀 눈 소복히 쌓인 한옥집 모습과 깨끗한 산야가 아름답다. 먼길 마다않고 십수년만에![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1.gif)
려온 친구 마중은 못 나갈 망정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친구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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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었던 친구와 귀한 아들 만난것이 너무 뿌듯하고 고마웠다. 얼굴가득 잔잔한 주름살 접어가면서 가끔은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건 만남 만들어 보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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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생각만해도 알 수 있는 ...우리 동창들과의 만남![!](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 그 장면들을 이렇게 글로 차분하게 읽어가노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눈보라를 뚫고 친구님들을 만나기 위해 움직인 인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 좋았어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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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난토요일 만남의시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네..하나하나 말과 표정 어느것 하나빼놓지않고.... 새로운 느낌으로 읽고있다네..항상 그모습 변치말고 건강한 나날되길...
어쩜 이리도 미세하게 감정 표현을 잘 하시는지....글쓰는 재주가 작가 이상이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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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마술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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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하고 굳건히 그자리에서 자리매김 해주세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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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월 8회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동창들이 있어서 좋은 날들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글이 써지는 것 같군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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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이제야 나는 사춘기를 맞이한 듯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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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생각만 하면 괜시리 마음이 설레이 말입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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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보았네. 그먼길을 마다않고 온 줄도 모르고 끊나자마자 휑하니 떠나온 것이 후회되네그려 처음이 어려운거야 길을 터 놓았으니 댐 부턴 쉬울거야. 현우녀석은 참 속이 깊은 녀석이구먼.. 아빠 입장 생각하는 면도 그렇고... 좀더 많은 친구들이 나왔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도 어렵어렵다 하니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 들어서 그런듯 하네....그나저나 난 그날 자네가 부러웠었다네 세상을 돌아볼수있는 시간과 공간을 소유한듯해서......한편으로는 시골쥐 서울쥐도 생각났고....(누가 ...ㄱ 누가 ...)길을 터 놨으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서로 왕래가 있어야할 듯 하네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반갑다 친구야
정말 고맙네~~ 무심했던 나를 이렇게 환영해주고 반가워해 주어서....앞으로 자주자주 만날 것을 약속하겠네!! ㅎㅎ 그런데 난 시골쥐가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