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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방 스크랩 불교건축물 이해
지일(智日) 추천 0 조회 80 11.11.27 09:2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소수림왕 2년(372)에 중국의 승려 '순도'에 의해서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졌으며 375년 국내성에 이불란사와 초무사가 창건된 것을 시작으로 6세기에 들어서 한반도 전역에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일본에까지 전해져 동양 전역에 불교가 정착되게 되었다.

 이러한 불교는 신앙의 대상을 모시며 제반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가람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차츰 건축물과 내외부 공간의 구성에 일정한 법식이 생겨 하나의 전형을 이루게 되었다. 가람이란 인도어의 'Sangalama'로 한문으로는 승가람마로 표현되며 승가란 중, 람마란 동안의 뜻으로 이는 중원, 즉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으로서 이것을 절, 즉 가람이라 부른다.

□ 부석사
[ 자료출처 : 한국 미술문화의 이해 ]
부석사 배치도(한국 미술문화의 이해)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의상조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한 사찰로 창건 후에는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만세루, 범종각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후일 중창하여 조성하고, 그위에 건물을 배치한 산지 사찰로서, 범종각, 안양루 등을 지나 본전인 무량수전에 이르게 된다. 특히 범종루는 본전을 향하는 방향으로 맞배지붕의 형태이고 진입되는 방향으로는 팔작지붕을 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의상조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한 사찰로 창건 후에는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만세루, 범종각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후일 중창하여 조성하고, 그위에 건물을 배치한 산지 사찰로서, 범종각, 안양루 등을 지나 본전인 무량수전에 이르게 된다. 특히 범종루는 본전을 향하는 방향으로 맞배지붕의 형태이고 진입되는 방향으로는 팔작지붕을 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자료출처 : 한국 전통목조건축도집 ]
한국전통목조 건축조립

부석사 무량수전 측면도
부석사 무량수전 종단면도

 

□ 사찰의 문    [ 자료출처 : 한국 문화재 총설 ]

일주문

* .일주문은 절의 입구 좌우에 두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을 덮은 대문을 말한다

 

사천왕문

*사천왕문은 절에서 좌우간에 좌우간에 사천왕상을 안치한 대문으로 사천왕은불교, 누이산의 중턱에 있는 주신을 말한다

 

누각

* 누각은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말한다

 

 


 

불교건축의 이해

    1. 들어가며

    불교의 종교 행위가 이루어지는 모든 구조물을 불교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건축은 불교 용어로 불사(佛事)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사원(寺院) 그 자체를 나타낼 만큼 종합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건축이라는 것은 꼭 건물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축대, 담, 다리, 도로 등 외형적인 구조물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구조물간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등 비가시적인 것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한국 불교 건축은 가시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비가시적인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나라에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영주 부석사가 그 대표적인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건축은 종교건축인 만큼 독특한 형식의 건축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탑(塔)과 석굴 사원(石窟寺院)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탑이 석탑(石塔)이며 이 석탑은 내부공간이 없기 때문에 건축이 아닐 것 같지만 탑은 염연히 불교건축이며 불교가 생산해낸 독특한 미술문화인 것이다. 그리고 석굴사원 또한 불교문화가 이루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이러한 석굴사원은 건축일 뿐만 아니라 조각이면서 동시에 벽화도 그려져 있어 종합미술의 면모를 보여주는 불교의 유산인 것이다. 우리 나라와 대표적인 석굴 사원이 바로 석굴암이다. 이 석굴암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자연암반에 조성된 석굴이 아니라 돌을 쌓아올려 만든 '세계 유일무이한 인공석

    굴사원'이라는데 있다. 불사 중에 현재 남아있는 건축은 대부분 목조건축이며 이 건축물의 각각은 대부분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웅전, 극락전, 칠성각, 독성각, 만세루, 신검당 등등 이름을 가진 건물들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2. 불교 건축의 성립

    종교건축 전반에는 그 종교가 갖고 있는 유토피아적 세계관 또는 신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공통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신전과 피라미드, 그리고 중세유럽의 대표적인 교회건축 등은 당대의 모든 지식과 기술이 집약됨으로써 가능하였지만, 그 이상으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외경과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들이 배경이 되어 있다.

    그러한 목적을 건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로 보다 크게, 보다 아름답게, 보다 초현상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불교건축에서도 이런 경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찰에 관한 한 종교건축의 일반론이 반드시 적용된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른 종교건축과는 달리 사찰의 기원은 신도의 집거와 예배를 위한 장소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설이나 의례보다는 수행을 기본으로 하였던 초기불교는 사문(沙門)의 근본 생활양식인 '4의지(依止 : 乞食, 糞掃衣, 樹下座, 腐爛藥)'에 근거한 철저한 고행이 전제되었다. 그러나 4의지에 근거를 둔 수행의 기본 취지와는 달리 인도의 자연환경은 혹독하였으며, 특히 3개월간이나 계속되는 인도의 우기는 병충해가 수행자들의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우기인 3개월 동안, 탁발과 중생교화를 위한 여행(遊行)을 중단할 것을 계율로 정하고, 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안거(安居)의 제도를 채택하였다. 우안거의 제도가 정립되면서 유력한 신도인 왕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불교교단에 안거를 위한 원림(園林)을 기증하여 승려들을 머무르게 하였고, 다시 이 원림에는 정사(精舍)가 지어져서 사찰의 시원이 되었다. 최초의 원림은 죽림원(竹林園), 그리고 죽림원에 지어진 최초의 정사를 죽림정사라고 한다.

    철저한 무소유와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초기불교에서는 당연히 사찰이나 건축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 다만 비와 병충해를 피하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장소, 또는 어떤 형태이든 불교적 내용이 담긴 장소라면 그 곳이 곧 사찰이었다. 그러나 원림정사 등의 초기 불교건축과는 달리 불교가 대중화 조직화함에 따라 점차로 예배, 의례, 포교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게 되고, 정형화된 사찰이 조영되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 등지로 전파되었으며, 각 지역에는 무수히 많은 사찰이 지어졌다.

    그렇지만 불교건축의 시작이 그렇듯이 사찰의 원형에 대한 개념이 없이 경영된 사찰은 그 지역의 특성과 불교적 공간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따라 건축의 형태가 다르게 되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탑파(스투파)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투파, 즉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탑파의 초기 형태는 봉분이 있는 묘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스투파의 형태는 전탑과 목탑으로 변형되었고 중국에서는 점차로 전탑이 대표적인 것으로 정착되었으며, 다시 중국의 불교가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는 목탑이 그 원형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일 양국에서 불교가 번성해 가는 과정에서 일본은 목탑으로 정착되었고, 한국에서는 석탑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특히 한국의 석탑은 목탑을 원형으로 하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석탑으로 번안해 낸 것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부분이기도 하다.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초기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이와 같이 탑파는 사찰의 구성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게 되면 그 상황에 따라서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탑의 원형이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동양 각국의 사찰건축에서 볼 수 있는 불교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불교 건축의 상징 체계와 공간구조

    불교건축을 조영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세상에 불국정토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사찰의 구성형식은 불교적 우주관 또는 세계관이 물질적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의 불교적 우주관은, 번뇌와 악업의 경중에 따라서 지옥, 인간계, 하늘나라의 3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을 수용하여 불교적 관점에서 체계화한 것으로, 수미산설로 요약된다.

    수미산설은 가상의 산인 수미산의 위쪽으로 28개의 하늘을 두고, 수미산 기슭을 인간과 축생의 세계, 땅 밑에는 지옥이 있다고 보고, 28개의 하늘나라 위를 부처님의 경지로 삼았던 것이다.

    현재도 주불전의 불단을 수미단으로 부르며, 불상 위의 닫집은 수미산 위의 도솔천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불교건축의 특징은 배치와 공간구성, 그리고 상징적인 요소로 나타나는데, 기본 구성원리는 교리체계에 두고 있다.

    한국의 전통사찰에는 승려나 참배객의 신앙행위를 위한 예불용 전각, 참선과 염불 설법 등의 수행생활을 위한 수행용 건물, 승려의 일상생활을 위한 거주용 시설 등의 많은 건물이 경영되어 있는데, 각각의 전각과 건물은 신앙행위와 용도에 따라 그 위계가 정해진다.

    특히 신앙의 대상이 되는 전각은 上壇, 中壇, 下壇의 이른바 삼단구성(三壇構成)에 입각한 배치를 기본으로 하는 데, 삼단구성은 대승불교의 세계관과 연관되어 있다. 즉 대승불교에서는 이 세계가 차원이 다른 10종의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존재의 세계는 엄격한 위계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고 본다.

    위계에 따른 각 존재의 세계는 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人間, 天, 聖聞, 緣覺, 菩薩, 佛의 十界로 구분되며, 이 중 지옥부터 天까지를 六道라 하여 깨닫지 못한 존재들의 세계이며, 聖聞부터 佛까지의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 존재를 四聖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四聖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며, 사찰의 공간 구성은 四聖界가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불교적 세계관이 현실세계에 표상된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산지가람이다. 산지가람의 전체적인 배치는 물론 일주문을 거쳐 중심 공간에 이르기까지의 진입과정은, 수미산설 또는 삼단구성의 정점으로 간주되는 부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과정과 교학체계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특히 루문을 통하여 펼쳐지는 중심공간은 불법승의 3보를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서 석탑, 석등, 단청 등의 상징요소를 구사함으로써 신성성과 중심성을 표현해 내고 있다.

     

    4. 한국 불교 건축의 역사와 불교 건축물

    1) 고구려의 불교사원

    우리 나라 가람의 배치 형식은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에 전래되면서 중국에서 형성된 불교사원의 배치형식을 수용하면서 발전되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공식적인 기록은 소수림왕 2년(372, 壬申)에 전진(前秦) 왕 부견(符堅)이 승려 순도(順道)와 함께 경전과 불상을 보내면서부터다. 이는 고구려에 전래된 불교는 중국 북조계(北朝系)의 불교였음을 의미한다.

    고구려는 왕실과 귀족세력에 의하여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후 374년에는 승려 아도(阿道)가 들어왔는데, 고구려는 이들을 위해 서울인 환도성에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었다. 그 후 광개토왕 2년(393)에는 평양에 아홉 개의 사찰(九寺)을 창건하였고, 문자왕 7년에는 금강사를 창건하였으며, 영류왕 때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찰을 건립하게 된다.

    불교의 도입과 함께 건립된 불교사원으로 고구려의 건축은 중국의 건축술을 수용하여 재래의 토속건축에서 한단계 진전한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건축의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고구려 때의 가람으로 지금 남아있는 것은 없고, 발굴한 사지(寺址)를 통하여 그 배치형식을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다. 이들 터는 공통적으로 중앙에 팔각형 평면을 한 목탑 자리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동서 북쪽에 각각 금당지(金堂址)가 형성된 이른바 일탑삼금당(一塔三金堂)식 배치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로서, 1938년에서 1939년에 걸쳐 발굴된 평양 청암리의 금강사지는 중앙에 목탑지로 추정되는 팔각형 건물지가 있고, 그 동 서 북쪽에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나왔으며, 팔각전지 남쪽으로는 문지(門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나왔다. 황해도 봉산군 토성리 절터도 마찬가지로 가운데 팔각 목탑터를 중심으로 한 동서 북쪽에 금당지가 나왔다. 그 외에도 상오리 절터·정릉사터에서도 중심 되는 전각의 구성은 마찬가지 배치형식이다.

    2) 백제의 불교사원

    문헌상으로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384) 중국 동진에서 온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서다. 호승이란 서역 또는 인도의 승려를 뜻한다.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한 그 이듬해인 385년에 한산주에 불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한산주 시대 백제의 가람 유적은 현재 아무 것도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그후 백제는 475년에는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538년에는 사비(부여)로 천도하게 되는데, 이 때 불교가 융성하게 된다. 특히 성왕은 541년(19년) 양나라에 경전과 함께 공장(工匠)·화사(畵師)를 청하는데, 이 때 백제의 가람은 중국 양나라의 영향을 받아 조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가람은 군수리사지·동남리사지·정림사지·금강사지·서복사지·미륵사지 등이 발굴되면서 그 배치형식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기본적으로 백제가람은 남북방향 일직선상의 중심축에 남쪽에서 차례로 중문·탑·금당·강당을 배치하고 중문과 강당 좌우에 동서방향으로 각각 회랑을 배치하여 그것이 남북방향으로 꺾여 긴 장방형을 이루며 서로 연결되어 탑과 금당을 둘러싸도록 조영된 이른바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식 가람배치 형식을 하였다.

    다만, 예외적으로 동남리 사지에서는 탑지가 발굴되지 않았고, 군수리사지에서는 강당 좌우에 같은 크기의 두 동의 건물이 배치되었으며, 서복사지에는 강당이 없었다. 이중에서도 미륵사는 백제를 대표하는 거대 가람이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미륵사지는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미륵사는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왕권이 강화되던 무왕(재위기간 600-641) 때 건립되었는데, 최근에 이루어진 발굴조사로 그 규모와 배치형식이 밝혀졌다. 발굴조사 결과 미륵사는 중문·탑·금당을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하였고, 회랑으로 중문에서 금당 뒤를 둘러싼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이들 가람 셋을 동서로 병렬 배치한 삼원식(三院式)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가운데 중원부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동원과 서원이 나란하게 놓였고, 동원과 서원을 감싸는 회랑이 전체 가람 후방으로 이어져 중앙 북쪽 뒤에 있는 규모가 큰 강당과 함께 또 하나의 원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배치형식은 삼국시대 다른 사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삼원식 배치는 미륵사지 창건 설화에 나오는 미륵삼존을 각각 모시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륵사가 미륵신앙에 근거해서 창건된 사찰이라는 것은 금당지에서도 확인된다. 금당 바닥에는 각기 높이가 1m가 되는 장초석을 설치하여 지하공간 시설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용을 상징하는 미륵이 모신 곳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현재 절터에는 서쪽 금당지 앞에 일부가 훼손되어 6층만 남은 석탑이 있고, 중원지와 서원지에도 각각 목탑지와 동탑지가 있었는데, 동탑은 최근에 9층으로 복원되었다.

    3) 신라의 불교사원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눌지왕(417-458) 때이다. 고구려로부터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 모례(毛禮)의 집에 와서 전도를 했다고 한다.

    이 시기 고구려는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는데 그것은 427년의 일이다. 그 후 소지왕(479-500) 때에 고구려로부터 아도(阿道)가 세명의 승려와 함께 다시 일선군 모례의 집에 찾아와 머물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라에 전래된 당시의 불교는 북조 계열의 불교일 가능성이 크며, 또 개인적 또는 지역적 성격의 불교가 신라에 먼저 전래되었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가 처음 받아드린 불교는 공적이며 중앙적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불교가 개인적, 지방적 차원에서 신라에 전래되었을 때는 신앙의 차원에서 불교가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아직 격식을 갖춘 가람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 신라에 들어온 불교는 중앙의 귀족 세력에 의하여 쉽게 받아드려지지 않다가 법흥왕에 의하여 527년(법흥왕 14)에 불교가 공인되면서 신라의 불교도 중앙적이며 공적인 성격을 띠며 기술과 재원을 바탕으로 한 가람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법흥왕은 흥륜사와 영흥사를 경주에 세웠으며, 이어서 삼국통일 전에는 황룡사·기원사·실제사·삼랑사·분황사 등이 건립되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에 궁궐로 창건되어 그것을 절로 고쳐 566년에 1차 완공되었고, 진흥왕 35년(574)에 절을 완전히 새로 조성하여 장육존불을 주조하고 진평왕 6년(584)에는 새로이 금당이 완공되었다. 그후 선덕왕 14년(645)에 9층 목탑이 완공되어 2차 가람이 완성되었다.

    그후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 병란으로 소실되어 그 터만 지금에 이르고 있다. 황룡사지는 최근에 발굴 조사되어 가람 규모와 배치의 변화가 세 번 있었음을 밝혀지게 되었다.

    창건 당시의 1차 가람은 동서 약 181m, 남북 약 144m 규모에 중문과 남회랑. 동·서 회랑이 확인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일탑일금당 형식을 따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건된 2차 가람은 645년 9층 목탑을 건립하면서 완공된 것으로서, 내부를 구획하던 회랑이 없어지고 중문을 창건 가람의 남쪽에 새로 설치하고 그 북쪽에 목탑·중금당·강당을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중금당의 동·서쪽에 동·서금당을 남향으로 배치한 일탑삼금당의 배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차 가람의 가장 중심은 9층 목탑이다. 이 목탑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자장이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면 주변 아홉 국가가 복속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세웠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노반 아래까지의 높이가 183척, 상륜부가 42척으로 전체 높이가 225척(약 80m)이나 되는 거대한 목탑이다. 그후 통일신라시대에 종루와 경루를 정방형으로 개조하고 동·서회랑을 개조하여 황룡사 가람 형식을 완성하게 되었다.

    4) 통일신라의 불교사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불교문화는 더욱 발전하여 사천왕사·망덕사·감은사·고선사·불국사·원원사·감산사 등이 건립되었다. 이 시기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절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었고 탑들은 기러기 떼 날듯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삼국사기 권 3, 흥법 제3)

    감은사는 문무왕 때 건립하기 시작하여 신문왕 2년(682)에 완공되었는데, 중심 일직선상 축에 중문·금당·강당이 배치되었고, 강당 전면 좌·우에 삼층석탑이 각각 배치된 쌍탑일금당식 배치를 하고 있다. 감은사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금당의 바닥구조이다.

    익산 미륵사지 금당과 같이 감은사 금당 역시 바닥아래에 장초석을 세우고 지하공간을 만들어 물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 용과 관련된 창건설화가 반영되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당지와 함께 감은사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형물은 석탑이다. 이 석탑은 신라의 가람이 통일 후 쌍탑으로 된 가람을 형성하는 초창기의 탑으로서, 백제계열의 석탑과 다른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이 감은사탑의 조형미가 가장 세련되게 완성된 형식으로 발전하여 신라계열의 전형적인 석탑을 이루게 되는 것이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불국사 석가탑이다.

    감은사 외에 쌍탑일금당식 가람배치는 망덕사지·천군리사지·사천왕사지·불국사 등에도 나타난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건립되기 시작한 사찰들은 거의 모두가 경치가 아름다운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이 아름다운 산 속에 자리잡은 연유는 법화경(法華經) 신앙이 영지신앙(靈地信仰)과 결합하여 민간신앙으로 널리 행해진 것과 연관이 크다.

    즉 영지신앙은 우리 나라의 가람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예로서, 자장(慈藏)을 개산조(開山祖)로 하는 대표적인 사찰인 통도사와 월정사는 영지신앙과도 관계가 크다. 즉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설법장소의 하나인 영취산의 이름을 따라 양산 영취산 아래에 개창된 것이고, 월정사는 자장이 중국에서 수행한 오대산의 영지신앙과 문수신앙을 그대로 이식하여 개창한 사찰이다.

    이와 같이 재래의 영산 또는 명산에 가람을 조영하여 청정도량으로 삼은 것이 한국 사원입지의 큰 특징이다. 가람을 청정도량화 하기 위하여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 등이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는 입당 유학승들에 의하여 새로운 불교 교리를 다양하게 수용하였다. 정토사상이나 미륵신앙, 그리고 약사신앙과 관음신앙에 더하여 의상에 의해 정착된 화엄사상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이러한 불교교리의 다변화는 불교사원의 조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선사와 불국사는 이러한 변화를 보이는 초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고선사는 금당과 탑이 각각 독립된 원(院)에 회랑으로 둘러싸인 배치를 하고 있고, 불국사는 이러함 독립된 몇개의 원이 조합하여 이루어진 실례를 보이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불국사는 법화사상과 정토사상, 그리고 화엄사상과 관음사상이 결합하여 이러한 교리를 반영하는 원(院)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축대를 쌓은 후 한 쪽에는 법화사상을 표현하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과 다보탑, 석가탑이 있는 영역을 구성하고, 그 서쪽에는 정토사상을 반영하는 극락전 영역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웅전 일곽 뒤 석축 위에는 화엄사상과 관음사상을 반영하는 비로전과 관음전이 각각 독립된 영역에 조성되어 있다. 화엄사상의 성행은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종래의 도시에 집중적으로 있던 사찰을 산간으로 확산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동시에 산지의 지형조건에 맞는 가람배치를 구성하여 종전의 회랑 중심의 고대사찰의 규범에서 탈피하는 가람구성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화엄계열의 대표적인 사찰이 영주 부석사·합천 해인사·구례 화엄사 등이다. 특히 이와 시기를 같이 하여 당나라에 성행하던 선(禪) 사상을 익히고 돌아온 승려들은 신라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불교사원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8세기까지 주로 왕실이나 귀족의 지원아래 이루어지던 사찰은 왕실이나 귀족층에 연연하지 않은 선승들에 의하여 도회지에 멀리 떨어진 산간에 지방 호족들의 뒷받침을 받으며 실질적인 종교의식에 필요한 사찰을 조영해 나갔다. 이 시기에 건립된 사찰은 회랑으로 둘러싸인 좌우대칭의 엄격한 구성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는 자유스러운 가람 구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세워진 사찰로는 원주 거돈사·양양 진전사·강릉 굴산사·강릉 무진사·여주 고달사 등이 있다.

    5) 삼국시대의 불탑

    삼국시대의 불교사원은 이와 같이 왕실이 국가의 안녕을 위해 건립한 호국사찰의 성격이 강했다. 특히 사찰을 건립하기 위해 왕실은 국외의 기술자들을 받아들여 선진 건축술을 빠르게 수용하였다. 이러한 불교사원의 건립과 함께 한국 고유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새로운 경지의 건축술이 정착하는데, 이는 특히 탑의 건립에서 볼 수 있다.

    불탑은 그것을 조영하는 재료에 따라 목탑(木塔)·석탑(石塔)·전탑(?塔)으로 구분되며, 층수의 규모에 따라 3층탑·5층탑·7층탑·9층탑·13층탑 등으로 구분되고, 또 평면 형식에 따라 사각형·육각형·팔각형·원형탑 등으로 구분된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당시의 가람의 배치형식과 탑의 형식은 어떠하였는지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 당시의 탑은 목탑이 주류를 이루었고, 고구려 목탑은 팔각형의 평면, 백제와 신라의 목탑은 사각형 평면을 주로 하였음을 유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불탑이 석탑으로 바뀌는 초기의 실례로는 익산 미륵사 석탑이 남아있다. 이 탑은 당시의 목탑을 모델로 하여 나무를 대신하여 돌로 세운 탑이다. 1층은 목조 구조물과 같이 각면이 3칸으로 구성되었고, 각면 중앙에는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내었으며, 내부 중심에는 방형의 큰 돌을 쌓아서 찰주(刹柱)를 만들었다.

    또 각층의 탑신은 기둥과 벽면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기법은 구조형식을 충실하게 목탑을 모방하여 석재로 번안하였음을 보여준다. 미륵사 석탑의 뒤를 이은 석탑이 부여 정림사지의 5층 석탑이다. 이 탑에 이르러서는 목탑을 그대로 석탑으로 번안한 단계를 벗어나 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려 조형적으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백제계열의 석탑양식을 구축하고 있다.

    정림사탑은 2중으로 조성된 기단 위에 탑신과 옥개석이 간결하게 처리되었고, 처마 양끝은 곡선이 약간 가미되어 위로 쳐들었으며, 옥개석 아래는 목구조를 추상화시킨 형상으로 처리하여 돌이 지닌 특성을 잘 살린 석탑의 조형미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정립사탑을 모형으로 하는 이 계통의 탑은 후대에도 옛 백제지역에 건립되어 그 조형미의 전통이 이어진다. 신라에서 석탑이 나타나는 것은 백제보다 시기가 조금 떨어지고, 또 석탑의 원형이 목탑이 아니라 전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경주 분황사의 탑·의성 탑리의 5층석탑은 모두 전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 형태로 만들어 건립한 탑이다. 이러한 모전석탑(模?石塔)을 조형으로 하여 신라의 석탑은 삼국통일시기를 전후하여 정형화한다.

    이렇게 형성된 신라계열의 석탑은 옥개석 받침이 층단을 이루는데, 이는 백제계열의 석탑이 옥개석을 목탑과 같은 방식에 의하여 낙수면을 경사지게 하고, 또 옥개석 받침도 목조를 번안한 것과 같은 처리를 한 것과 대조가 된다. 그 중에서 통일 초창기에 세워진 감은사의 3층석탑은 대표적이다.

    이 탑은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쌍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통일신라 이후에 정착하는 쌍탑식 가람배치의 초기탑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특히, 감은사탑은 기단부가 2층으로 정비되어 높아지고, 또 탑신도 규모가 커졌다. 감은사탑이 완전한 조형미로 완성되어 나타나는 탑이 불국사 석가탑이다.

    6) 고려의 불교사원

    고려시대에 들어 불교사원은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새롭게 많이 건립되었고, 동시에 지방에도 전국적으로 건립된 사찰이 많다. 특히 지방에 건립된 사찰들은 그 지방의 사회·경제·문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하나의 도시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사찰은 고대 사찰들과 달리 다양한 독립된 생활 공간을 가진 여러 개의 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사찰에서는 종교의식과 승려들의 수행 도량의 기능 외에도 각종 물품의 생산과 소비활동이 이루어졌고, 또 신자들의 거주공간이 필요하였다.

    전주 금산사·원주 법천사 등은 이러한 거대한 사원 공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찰들이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어 고려사회는 무신들에 의하여 귀족사회는 해체되고 무신이 집권하게 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무신집권에 의하여 불교계가 동요하자, 일부 교종계열의 사찰들은 무신세력에 반발하기도 하였고, 또 지방 산간에서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났다.

    세속화된 불교계를 혁신하고자 결사운동을 벌인 보조 지눌(知訥, 1158-1210)이 수선사(지금의 송광사)를 중심으로 일으킨 정혜결사(定慧結社), 요세(了世, 1163-1245)가 강진 백련사를 중심으로 일으킨 백련결사 등은 대표적인 이 시기의 새로운 종교운동이었다. 이러한 사찰은 불교 행사와는 다른 분위기의 가람의 공간을 구성하여 사찰건축의 공간 구성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케 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사찰들은 불규칙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필요한 곳에 다리를 놓고 계곡물을 사찰의 한 부분이 되게 하여 자연을 주인으로 삼아 거기에 순응하는 공간구성을 하여갔다. 고려 말기에 접어들면서 고려말기의 불교계는 원(元)의 간섭기를 거치면서 침체하였고, 이 시기에 창건된 중요한 사찰은 거의 모두가 중앙 정치세력과 연관이 큰 곳이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연탄 심원사·안변 석왕사·양주 회암사 등이 있다. 특히, 원나라의 간섭기에는 원의 영향을 받은 건축형식이 사원건축의 탑에도 나타났다. 개성 부근에 있던 경천사탑은 원나라 기술자가 직접 고려에 와서 새로운 형식으로 조영한 10층탑이고, 오대산 월정사탑과 마곡사 5층탑도 이때까지 보이지 않던 외래적인 조형 요소가 가미되어 조영되었다.

    특히 고려말기에 이르러 우리 나라 목조건축은 하나의 고유한 구조형식을 완성하는데, 이러한 실례를 봉정사 극락전·부석사 무량수전·수덕사 대웅전 등 현존하는 사찰내의 목조건물에서 볼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지금까지 알려진 건물로는 우리 나라에서 연대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서 통일신라시대의 목조 기법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건축 법식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세부적인 처리에서 봉정사 극락전과 구조 개념에서 수덕사 대웅전의 과도적인 기법을 보여주는 주심포 계열의 건물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창건 연대(1308년)가 분명한 건물로서 육중한 양감, 평활한 입면비례, 공예품에 가까운 세부 구조의 섬세함에서 조형미가 빼어난 주심포계열의 건물이다. 이들 건물에는 이 시기 건축의 특징인 기둥의 배흘림 기법, 귀솟음기법, 안쏠림기법 등이 잘 나타나 있다.

    7) 조선의 불교사원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사찰은 조선사회가 유교를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채택함에 따라 정책적으로 크게 제약을 받았다. 불교 종파는 통합을 당하였고, 승려의 사회적 신분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사찰의 재정적 기반은 크게 위축되었다.

    더구나 승려들은 도성 출입이 제한되었고, 많은 승려들은 각종 노역을 담당하여야 했다. 따라서 이전까지 도시의 주요 경관을 이루던 불교사원은 그 수가 크게 줄어들어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갔다. 반면, 산간에 위치한 사찰들은 제한된 여건 아래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일반 서민층의 불교에 대한 신앙이 더 확산되고, 또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에 힘입어 불교사원은 17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7세기 후반을 거쳐 18세기 전반기에 들어서면서 불교사원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전각을 복구하면서 새로운 가람구성을 하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불국사·통도사·해인사·화엄사·금산사·은해사 등 이전의 유명 사찰들이 다시 그 면모를 회복하기 시작하고, 또 깊은 산간에 있던 소규모 사찰들이 활발하게 재건되기 시작하며, 큰 강이나 해안에 인접한 사찰들이 신앙의 중심지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즉, 이 시기가 되면 종파에 의한 사원의 특징은 약화되는 반면, 가람을 형성하는 공간의 공통적인 특징을 형성하는데, 특히 대웅전 등 본전 건물의 앞마당이 가람의 중심공간을 형성하며 그 앞으로 누각이 조영되어 사찰의 출입과 경관구성을 위한 주요 전각이 되고, 또 마당 좌우에는 요사와 선방이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이러한 공간이 몇개의 마당에 의하여 중첩되어 공간이 형성된다. 그리고 사찰을 형성하는 단위 건물은 내부공간이 예불과 집회를 위하여 확장되고 또 장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대표적인 건물로는 여천 흥국사 대웅전·김천 직지사 대웅전·논산 쌍계사 대웅전 등이 있다.

     

    5. 사원내 구성 요소

    1)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첫번째 문이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네 개의 기둥을 사방에 세워 지붕을 얹는 것이 원칙이나 일주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에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위에 지붕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을 건립한 것은 신성한 세계로 들어서기 전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한다는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일심을 잃어버린 자인 중생은 일주문 앞에 섰을 때, 마땅히 인과의 도리를 믿겠다는, 마땅히 십선(十善)을 닦겠다는 기필코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겠다는 발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일주문의 경지는 아직 무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이며, 다만 분명한 결심과 실천의지를 보인 단계일 뿐이다

    2) 천왕문(天王門, 또는 四天王門, 金剛門)

    일주문을 지나면 그 다음에 서 있는 문이 천왕문이다. 사찰에 따라서는 천왕문 대신 사천왕문 또는 금강문이 있기도 하고, 어떤 사찰에는 천왕문 앞에 별도로 금강문이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일주문에는 출입문이 없는 반면에 천왕문에는 출입문 두 짝이 설치되어 있고, 이 대문에는 불법을 호지하고 도량을 수호하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려져 있다. 왼쪽의 수문신장(守門神將)은 밀적금강(密蹟金剛), 오른쪽은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라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들고 입을 다물고 방어할 자세를 취하고 있고, 나라연금강은 힘이 센 천상계(天上界)의 역사로서 입을 크게 열고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 두 역사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천왕문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시고 있다.

    외호신이란 불국정토의 동·서·남·북 네 외각을 맡아 지키는 신으로서, 동쪽을 지키는 사천왕은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은 증장천왕(增長天王), 서쪽은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은 다문천왕(多聞天王) 또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 한다.

    지국천왕은 몸은 약간 푸른 기운을 띠고 있고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증장천왕은 붉은 기운이 도는 몸에 노란눈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용을 움켜잡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광목천왕은 몸은 백색이고 오른손에는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고 있다.

    다문천왕은 몸은 흑색이고 왼손에는 비파를 잡고 오른손가락으로 비파줄을 튕기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악귀를 내쫓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상을 천왕문에 모시는 것은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만들어 신성한 장소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것은 바로 수행자가 발심하게 하는 수미산 중턱에 있는 문임을 상징한다.

    3) 불이문(不二門, 또는 解脫門)

    수미산 중턱의 천왕문을 지나 수미산 정상에 오르면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해탈을 이룬 세계로 나가는 도리천(道利天)이 나온다. 바로 이 도리천 입구에 불이(不二, Advaya)의 경지를 상징하는 문이 불이문이다. 불이는 둘이 아닌 경지를 뜻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생사가 둘이 아니며, 세간과 출세간, 색(色)과 공(空)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말한다. 이상 언급한 일주문, 금강문, 불이문을 흔히 삼문(三門), 또는 산문(山門)이라고 한다. 사원의 외문(外門)에 "삼(三)"자를 쓴 연유에 대해서는 『사탑기』, 『역대명화기』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석씨요람(釋氏要覽)』에는 "무릇 사원에는 삼문이 있다. 문이 하나인 것도 삼문이라 부른 것은 왜 그러한가? 『불지론(佛知論)』에 근거하면, 대궁전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이 입구가 된다. 대궁전은 법공열반(法空涅槃)을 말하는 것으로 삼해탈문은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을 말한다. 오늘날 사원은 수도하여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삼문으로 들어간다고 한다"고 하였다. 즉 사원 문에 들어서면 삼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종교적인 이해로부터 보면 세 채의 문이 아니라 한 채의 문만 있어도 사원의 문은 모두 "삼문"이라 한다.

    4) 범종각(梵鐘閣)

    불이문을 지나면 사찰을 형성하는 전각들이 배설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찻번째 나타나는 중요한 전각이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범천(梵天)의 종소리가 흘러나오는 곳, 불국정토로 들어오는 구도자를 환영하는 주악을 연주하는 범종이 있는 건물이다.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사찰 경내로 들어가면서 왼쪽, 법당쪽에서 바깥을 내다보면서 오른쪽에 위치한다.

    그 이유는 불교의 체용설(體用說)에 의하면 왼쪽은 체(體), 오른쪽은 용(用)에 해당하는데, 소리는 곧 용(用)에 속하기 때문이다. 범종각에는 또한 불음(佛音)을 전하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등 사물(四物)이 함께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다. 불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의 마음을 울려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온갖 걸어다니는 축생(畜生)을 제도한다고 한다. 목어는 나무로 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배 부분을 파내고 그 안쪽의 양벽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고 하며, 지금은 목어의 소리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써 만든 구름무늬 모양의 넓은 판으로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薦度)한다.


    5) 석등(石燈)

    석등은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를 불로 밝혀 전하는 돌로 만든 등이다. 우리나라 석등의 기본형은 땅위에 방형(方形)이나 팔각형의 지대석(地臺石)을 깔고 그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下臺石), 간주석(竿柱石, 또는 中臺石), 상대석(上臺石)을 차례로 얹어 기대(基臺)로 삼고, 다시 그 위에 등불을 넣는 화사석(火舍石)과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곳에 보주(寶珠)로 장식하여 끝을 맺는다.

    석등이 팔각형을 기본으로 한 것은 불교의 기본 교리인 팔정도(八正道: 正見, 正思,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를 상징한다. 석등은 이 기본형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변형들이 있다.

    6) 대웅전(大雄殿, 또는 大雄寶殿)

    석등 뒤로는 신앙행위의 중심을 이루는 건물인 본전(本殿)의 기능을 갖는 건물이 위치한다. 이 본전 건물을 흔히 법당이라고 한다. 법당이란 불상이나 불보살 등을 모신 전각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법당의 본래의 의미는 진리, 즉 법(法, Dharma)으로써 가득 채워져 있는 집을 말한다. 따라서 가람이 성립되던 초기에는 법당이라 하지 않고 금당(金堂)이라고 하였다.

    가람에 불상이 등장하면서, 본존불을 모신 중심 전각을 고려시대 초까지는 금당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후부터 모신 본존불에 따라 대웅전·극락전·대적광전 등 구체화시켜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 법문을 설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법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모신 전각으로서, 석가모니의 법회 모임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을 나타낸다. 석가모니불 좌우의 협시불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 또는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모시며, 대웅보전일 경우에는 협시불로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을 모신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대웅세존(大雄世尊)이라고 부른데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법화종(法華宗), 천태종 계통의 사찰에는 대웅전을 본전으로 하며, 한국 불교사원에서 가장 많은 불전이다.

    7) 극락전(極樂殿, 또는 彌陀殿, 阿彌陀殿, 無量壽殿)

    극락정토(즐거움이 있는 곳)의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불전이다. 극락전이란 명칭은 아미타여래나 무량수불의 정토(淨土)를 극락(極樂)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협시불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한다.

    극락전은 아미타여래의 미타회상(彌陀會相)을 상징하는데, 아미타여래는 한없는 광명의 뜻으로 무량광불(無量光佛), 한없는 목숨의 뜻으로 무량수불(無量壽佛)로 표현된다. 정토종 계열 사찰의 본전으로 사용된다.

    8)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華嚴殿, 毘盧殿, 大光明殿)

    대적광전은 화엄경에 의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영원한 진리의 빛 그 자체)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화엄경의 세계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으로 장엄된 세계)의 교주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이다.

    비로자나불의 빛의 세계는 화려한 빛이 아니라 크나큰 고요가 깃든 빛의 세계, 즉 대정적(大靜寂)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는 이름을 취하였다.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은 협시불로 좌우에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여래(또는 盧舍那佛)와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을 각각 봉안하는데, 화신불과 보신불은 각각 그 좌우에 문수·보현·관음·대세지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등 화엄종 계통 사찰의 본전으로 사용된다.

    9) 미륵전(彌勒殿, 또는 龍華殿, 慈氏殿)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Maitreya)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미륵불의 회상 즉 그 세계가 용화세계(龍華世界)이므로 용화전이라고도 하고, 미륵의 한문 의역인 자씨(慈氏)를 취하여 자씨전이라고도 한다.

    협시로 월광보살·일광보살을 모시고, 법상종 계통의 사찰 본전에 사용된다.

    10) 약사전(藥師殿, 또는 琉璃殿)

    병든 중생을 해탈시켜 준다는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협시로 월광보살·일광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약사전은 주로 부불전(副佛殿)으로 경영되었다.

    11) 영산전(靈山殿)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一代記)를 표출시킨 팔상탱화(八相撑畵)를 모신 전각이다. 영산(靈山)이란 석가모니의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의 준말인데,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 협시로 상리보살(翔罹菩薩)과 미륵보살을 모신다.

    12) 나한전(羅漢殿, 또는 應眞殿)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면서, 그 좌우에 석가의 제자들인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신앙심을 함께 묘사한 전각으로 수도승에 대한 신앙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13) 천불전(千佛殿)

    불교의 시간관에서 볼 때 현재에 속하는 현겁(賢劫)의 모든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다.

    14) 관음전(觀音殿, 또는 圓通殿, 寶陀殿, 大悲殿)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중생의 고통을 제도하는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협시는 남순동자(南巡童子)·해상용왕(海上龍王)을 후불 탱화로 모시는데, 관세음보살을 모신 건물이 중심 법당일 때 원통보전이라고 한다.

    15) 명부전(冥府殿, 또는 地藏殿, 十王殿)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인데,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무독귀왕(無毒鬼王)을 배열하고 그 좌우에 명부계(冥府界)의 시왕상(十王像)을 배열한다.

    16) 대장전(大藏殿, 또는 法寶殿, 藏經閣)

    대장경판을 모신 전각이다.

    17) 조사당(祖師堂, 또는 祖師殿)

    선종계열 사찰에서 조사(祖師)에 대한 신앙을 갖춘 전각이다.

    이외에도 사찰에는 누각(樓閣)·강당(講堂)·행각(行閣, 또는 回廊)·요사채 등이 있고, 또 용왕을 모신 용왕각(龍王閣), 청정한 물을 위하여 세우는 수각(水閣) 등이 있으며, 특히 한국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알려 주는 다음과 같은 특유의 전각이 있다.

    18) 칠성각(七星閣), 산신각(山神閣)

    칠성각은 수명을 관장하는 수명신(壽命神)인 칠성(七星)을 탈바꿈시켜 칠여래(七如來)의 상을 모신 곳이다.

    산신각은 산신(山神)을 호랑이와 노인으로 표현하여 모신 건물이다.

    20) 독성각(獨聖閣)

    말세 중생에게 큰 복을 내린다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셨다.

    나반존자는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獨) 선정을 닦고 있는 성자(聖)이기 때문에 나반존자를 모신 전자를 독성각이라 한다.

    21) 삼성각(三聖閣)

    산신·칠성·독성을 한 전각에 모신 전각이다.

    재래 신앙인 수(壽)·복(福)·재(財)의 삼신(三神) 신앙과도 습합했다.

    이상 불교사원을 구성하는 전각들은 불교세계관적으로 볼 때 욕계(欲界)·색계(色界, 공간·형상을 점유)·무색계(無色界,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 등 삼계(三界), 또는 지하계·지상계·천상계 등을 상징하는데, 이는 전각 배치를 통하여 수미산 중심의 가람배치를 이루게 하여 무색계(上壇, 大雄殿 중심)·색계(中壇)·욕계(下壇, 四天王門·不二門) 등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불교건축양식

    지붕양식

    지붕양식우리나라 지붕의 재료는 짚, 나무껍질, 기와등을 사용하였고 특히, 상징적인 여러 무늬를 기와에 사용하였다. 또한 지붕위에는 취두, 용두, 잡상등을 두었고 귀면등을 장식하여 큰 건물의 지붕을 더욱 장중하게 하는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등을 사용하였다.




    맞배지붕

    맞배지붕가장 간단한 형식으로 주심포 양식에 많이 쓰이며 처마 양끝이 조금씩 올라가고 측면은 대부분 노출되는 구조미를 이루어 수덕사 대웅전, 무위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개심사 대웅전, 선운사 대웅전등이 있다.

    우진각지붕

    우진각지붕지붕면이 전후좌우로 물매를 갖게 된 지붕양식
    으로 지붕면 높이가 팔작지붕 보다 높게 되어 있
    해인사 장경판고 등이 있다.

    팔작지붕

        팔작지붕


      가장 아름다운 구성미를 지닌 지붕으로 곡면이 특이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통도사 불이문등이
      있다.


    사모지붕

        사모지붕


      현존하는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조로
      불국사 관음전, 창덕궁 연경당의 농수전 등이 있
      다.


    육모지붕

    육모지붕평면이 육각으로 된 지붕으로 경복궁 향원정이 있다.



    팔모지붕

    팔모지붕평면이 팔각으로 된 지붕



    J자형 지붕

    J자형지붕통도사 대웅전



    십자형 지붕

    십자형지붕전주 송광사범종루,비원부응정

     

    공포양식

    지붕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는 부재료로서 기둥으로부터 처마까지의 시선의
    흐름을 원활히 해주며 시대구분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주심포 양식, 다포 양식,
    익공 양식과 일부 남아 있는 하앙 양식도 포함한다.

    주심포식 양식

    주심포 양식은 고려초기에 신라와 송의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주두
    위에만 짜는 양식이다.


    -특징 :

    기둥위에 바로 주두를 놓았고 치목이 아름답게 되어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을 하였다. 전통 목조 건축의
    가구 형식중 가장 오래된 형식으로 소박한 느낌을 준
    다.
    배흘림 기둥에 간단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축물:

      -고려 중기 :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 후기
      : 수덕사 대웅전(1308), 부석사 조사당
      -조선 초기 : 은혜사 거조암 영상전, 무의사 극락전 (1746),

          도갑사 해탈문(1473),정수사 법당,
          송광사국사전 및 하사당,고산사 대웅전

      -조선 중기 : 봉정사 화업강당 및 고금당


      주심포아이콘

      구성도

        주심포이미지

      다포식 양식

      다포식 양식은 고려후기에 기둥위에만 짜여지지 않고 기둥사이 공간에도
      창방위에 두꺼운 평방을 더 올려 놓은 양식이다.

      -특징 :


      교두형 첨자를 사용하며 배흘림이 심하지 않고 부재가
      규격화 투박화 되는 것을 내부 반자를 두어 은폐하였다.
      건물을 장중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포작도 여러층 겹쳐
      짜고
      팔작지붕으로 하고 있다.

      -건축물:


      -고려 후기: 심원사 보광전(1374), 석왕사 응도전(1386)
      -조선 초기: 서울 남대문(1448), 봉정사 대웅전, 율곡사 대웅전
      -조선 중기: 전등사 대웅전(1621) , 법주사 팔상전(1624), 내소사 대웅전
      -조선 후기: 불국사 극락전(1751) 대웅전(1765), 해인사 대적광전(1796),

      다포식아이콘

      구성도

        다포식이미지

      익공 양식

      조선초기에 주심포 양식을 간략화 한것으로 기둥위에 새 날개처럼 첨차식
      장식을 장식효과와 주심도리를 높이는 양식이다.

      -특징:


      장식 부재가 하나인 초익공 또는 익공과 부재를 두개
      장식한 이익공이 있어 관아, 항묘, 서원, 지방의 상류 주택
      에 많이 사용되었다.


      -건축물:


      -조선 초기: 옥산서원 독락동(1532,초익공), 강릉 오죽헌(이 익공)
      -조선 중기: 서울 동묘(초익공), 서울 문묘 명륜당(1606, 이익공)
      -조선 후기: 경복궁 향원정, 수원 화서문 (1796)

      익공식아이콘

      구성도

        익공식이미지

      하앙 양식

      하앙 양식은 처마를 들어 올리고 처마를 깊게 돌출시키기 위해서 발단된
      양식이다.


      -특징: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지붕서까래와 도리 밑에서
      건물 안으로부터 밖을 길게 뻗어 나와 처마 를 받쳐주는
      데사용되었다.


      -건축물:


      완주 화암사 극락전, 금산사 미륵전

      하앙식아이콘

      구성도

        하앙양식

         

        기둥양식

        기둥을 단면형태로 구분하여 보면 원기둥과 각기둥이 있고 위치에 따라 구분하면 건물의 외곽에는 외진주가, 내부에는 내진주가 있다.

        단면형태(기둥깎는 기법)에 따른 분류

        *원(圓)기둥

            -원통기붕 : 기둥위부터 아래까지 일정한 굵기.

              건축물 : 송광사 국사전, 내소사 대웅보전


            -민흘림기둥 : 안정감과 착각교정을 하기 위해 기둥위보다 아래가 작은 기둥.


            -배흘림기둥 : 육중한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기둥

                높이의 1/3정도에서 가장 굵어졌다가 다시 차츰 가늘어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기둥.

              건축물 :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해인사 대장경 판고,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원기둥



          *각(角)기둥

          -4각주(四角柱) : 일반주택이나 장식이 덜한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정림사지탑, 익산 미륵사지 탑, 경희루 향원정


          -6각주(六角柱) : 건축물 평면이 6각인 정자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경복궁 향원정


          -8각주(八角柱) : 장식이 많은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쌍용총 8각석주, 석굴암 8각석주



          위치에 따른 분류

          *외진주(外陳柱)(바깥기둥: 평주(평기둥)와 우주(귀기둥) ): 소규모의 구조물에 사용

          *내진주(內陳柱)(안기둥: 고주,단주,실심주):고주는 대부부의 구조물에 사용되며

              중층건축물에 사용되는 단주와 다층건축물과 목조탑파형식에 사용되는 실심주가 있음


          *동자주(童子柱)(활주) : 추녀부분의 처짐을 방지

         

        기단양식

        기단은 건물, 탑 기타 이와 유사한 축조물의 지면을 일반지면보다 높게 흙을 쌓아서 축조하거나 주위지면을 깎아내서 낮게 한 것을 말하며 지단(地壇) 또는 지대(地臺)라고도 한다. 기단에서도 조금 높은 기단이나 마루에 오르내리기 좋도록 한두단 높이로 꾸민 돌계단을 디딤돌(步石)이라 하고 긴돌로 만든 것을 장보석(長步石)이라 한다. 또한 기단에 오르내리는 것은 섬돌(섬돌)이다. 기단의 크기는 보통 건물크기나 격식 또는 주위 환경에 조절된다.

        기단의 종류

        1. 쌓는 재료에 따른 분류

            토 단 : 조선시대 서민주택의 기단, 흥륜사지
            토축기단 : 판전으로 백제시대 건축, 익산 왕궁탑
            전축기단 : 방전이나 기와를 세우거나 눕혀 마무리하는 형식,

              부여 군수리 사지, 화성성곽 포루

            석축기단 : 판전 또는 막돌 허튼층 쌓기로 마무리한 형식,

              한국 기단의 주류


        2. 단형식의 수에 따른 분류

        단층기단 : 높이에 관계없이 하나의 층
        다층묘단 : 층수가 2이상이 되는 것


        3. 마감석재의 형태와 층에 따른 분류

        막돌 허튼층 쌓기 : 봉정사 대웅전, 부석사 석축, 해인사 대장경 판고
        막돌 바른층 쌓기 : 금산사 미륵전 측면기단
        다듬돌 허튼층 쌓기 : 도동서원 강당.
        다듬돌 바른층 쌓기 : 도산서원 전교당

        막돌막쌓기

        납작돌수평줄눈쌓기

        개울돌막쌓기

        사고석쌓기

        막돌막쌓기

        납작돌수평줄눈쌓기

        개울돌막쌓기

        사고석쌓기

        이고석쌓기

        상하장대식막돌면석

        빗쌓기

        판석세우기

        이고석쌓기

        상하장대식막돌면석

        견치돌빗쌓기

        빗쌓기

        4. 쌓는 방법에 따른 분류

        적초식기단은 단순하게 돌들을 차곡 쌓는 방법
        가구식기단은 지면위에 긴돌로 된 지래석을 눕혀 깔고 그 위에 넓고 평평한 면석을 세우고 그 사이를 기둥모양의 멍주석을 세우고 그 위에 갑석을 덮어 마감하는 방법


        초석양식

        천연석을 돌 생김새의 굴곡면에 기중을 깎아 맞춰 얹어 놓음으로서 초
        석과 기둥의 일치감을 주어 견고한 안정감과 자연스런 조화를 주는 막
        돌 초석과 다듬돌 초석이 있다.

        막돌초석막돌초석(덤벙柱礎)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된 것으로 자연에서 채취한 적당한 크기의 돌을 그대로 사용 된 것이다.

            -건축물 : 내소사 대웅전, 하동 쌍계사 후문

        다듬돌초석(加工柱礎)

            원형초석 : 막돌을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원형기둥이 서는 부분을

                볼록하게 만든 초석.

        원형초석원형초석원형초석원형초석





            방형초석 : 사각기둥을 받도록 만든 초석.

        방형초석방형초석방형초석방형초석





            8각형초석 : 8각형 기둥을 받도록 8각형으로 된 초석.

                8각형초석

                  -건축물 :

                    고구려의 쌍영총,
                    석굴암 8각석축,
                    나주향교 대성전



            원주형초석: 조선시대의 루건축(樓建築)에 많이 사용되었던 초석

                으로 초석자체를 민흘림 기둥으로 하고 밑등을 넓적
                하게 처리하여 안전하게 한 것이다.

                원주형초석

                  -건축물 :

                    범어사 일주문,
                    정읍 피향정





            방주형초석: 단주형(短柱形)과 장주형(長柱形)이 있다.

                방주형초석

                  -건축물 :

                    단주형- 궁궐, 일반상류주택,

                      경복궁 자경전 ,

                    장주형- 루(樓), 정자의 초석,

                      경복궁 경희루 .


         

        건축시공

        터파기(18KB)
        1. 터 파 기

        적심놓기(22KB)
        2. 적심놓기

        지경다지기(달구질)(20KB)
        3. 지경다지기(달구질)

        기단 적심놓기(22KB)
        4. 기단 적심놓기

        초석 적심쌓기(23KB)
        5. 초석 적심쌓기

        적심 기초다지기(17KB)
        6. 적심 기초다지기

        기초 적심쌓기-1(16KB)
        7. 기초 적심쌓기-1

        기초 적심쌓기-2(15KB)
        8. 기초 적심쌓기-2

        초석설치(18KB)
        9. 초석 설치

        덧집(가설집)(15KB)
        10. 덧집(가설집)

        입주-1(15KB)
        11. 입주(立柱)-1

        입주-2(13KB)
        12. 입주(立柱)-2

        입주 수직보기(16KB)
        13. 입주 수직보기

        토량조립(20KB)
        14. 퇴량조립

        창방설치(19KB)
        15. 창방설치

        주두놓기(16KB)
        16. 주두놓기

        공포짜기(21KB)
        17. 공포짜기

        보 걸기(16KB)
        18. 보 걸기

        장혀맞춤-1(18KB)
        19. 장혀 맞춤-1

        장혀맞춤-2(20KB)
        20. 장혀 맞춤-2

        운공짜기(20KB)
        21. 운공 짜기

        도리짜기(16KB)
        22. 도리 짜기

        왕지맞춤(17KB)
        23. 왕지 맞춤

        주심도리 설치(18KB)
        24. 주심도리 설치

        치목(기둥)(19KB)
        25. 치목(기둥)

        치목(대들보)-1(19KB)
        26. 치목(대들보)-1

        치목(대들보)-2(19KB)
        27. 치목(대들보)-2

        치목(대들보) 완료(16KB)
        28. 치목(대들보) 완료

        치목(대들보) 운반(18KB)
        29. 치목(대들보) 운반

        대들보 걸기-1(19KB)
        30. 대들보 걸기-1

        대들보 걸기-2(18KB)
        31. 대들보 걸기-2

        대들보 걸기-3(20KB)
        32. 대들보 걸기-3

        중도리 걸기(14KB)
        33. 중도리 걸기

        도리이음(나비장 이음)(15KB)
        34. 도리이음(나비장이음)

        대공 놓기-1(16KB)
        35. 대공 놓기-1

        대공 놓기-3(17KB)
        36. 대공 놓기-2

        종보걸기(14KB)
        37. 종보 걸기

        대공놓기-1(17KB)
        38. 대공 놓기-1

        대공놓기-2(19KB)
        39. 대공 놓기-2

        화반 놓기(14KB)
        40. 화반 놓기

        추녀설치-1(17KB)
        41. 추녀 설치-1

        추녀설치-2(19KB)
        42. 추녀 설치-2

        추녀설치완료(19KB)
        43. 추녀 설치 완료

        선자연걸기-1(17KB)
        44. 선자연 걸기-1

        선자연걸기-2(20KB)
        45. 선자연 걸기-2

        서까래 걸기(장연)(20KB)
        46. 서까래 걸기(장연)

        연목개탄 설치(18KB)
        47. 연목개탄 설치

        갈모산방 설치(17KB)
        48. 갈모산방 설치

        평교대 설치(21KB)
        49. 평교대 설치

        선자연설치-1(25KB)
        50. 선자연 설치-1

        선자연 설치-2(27KB)
        51. 선자연 설치-2

        단연 설치(21KB)
        52. 단연 설치

        서까래 설치 완료(22KB)
        53. 서까래 설치 완료

        부연 걸기-1(25KB)
        54. 부연 걸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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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 11.12.17 11:48

        첫댓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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