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법(法)을 만난다는 것은,하늘에서 떨어뜨린 겨자씨가 땅에 꽂아 놓은 바늘에 꽂히는 격이라 하였던가? 나 역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금전을 허비하며 법을 찾아 해매였던가? 책을 통하여 고승대덕님들의 법문을 읽어보기도 하고, 테이프를 들어 보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리산으로, 전라도로, 충청도로,인천으로, 대구로, 거창으로, 영주로, 영천으로, 예산으로 ,부산으로, 경주로, 양산으로,
제주도로 찾아가 보기를 수십 번. 그 뿐인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재가수행자들 중에도 혹시 법을 통한 분이 있을까 하여 40년 동안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셨다는 분, 13일 동안 한숨 자지 않고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드셨다는 분, 40년을 화두선(話頭禪)으로 참선하신 분, 18년을 밥과 한 가지 반찬만으로 하루 1식만 고집하며 염불선(念佛禪)과 화두선(話頭禪)으로 수행하셨다는 분,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근원통(耳根圓通)을 통한 즉각 깨닫는 관음법문을 말해
준다는 베트남에서 온 칭하이 무상사라는 분도 만나 보았다.
4년 여를 멸치국물도 들어가지 않은 채식을 병행하며 수행도 해보았고, 심지어 답답할 때는 점집이나 철학관이라는 데까지 들락거려 보았다.
누구든 어디든 인연 있다 생각되면 곡절을 불문하고 찾았다.
그러나 그분들과 인연이 없어서였을까? 그 어느 분의 수행방법도 와 닿지 않았음은!
대승경전의 실체 없는 방편법문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설화 같은 이야기라 가슴에 와 닿지 않았고,
조사(祖師)님들의 법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투성이라 나와는 상관없는 그분들만의 말잔치로 들렸다.
우리불교는 보살도(菩薩道)를 추구한다 하면서도 보살도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수행과는 거리가 먼 기복(祈福)신앙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게 아니야, 생사(生死)를 걸고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이 이것이란 말인가?’무던히도 법을 찾아 헤매었지만 부처님의 말씀과 수행에 대한 핵심을 발견하지 못한 채 무언가 빠져버린 듯 허전함만이 가슴을 에워싸는 세월이었다.
그러던 내가 작년 11월 미국에서 오신 인공지능의 선구자인 김사철 박사님과
연방죽 선원의 법주스님을 만난 것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기쁨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몇 해 전, 근본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싸나에 대하여 책으로 접한 적은 있었으나 수행과의 인연이 닿지 않아 있던 차에, 이 분들을 통해 비로소 부처님 법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풍문이나 전설이나 소문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경전의 내용에도 이끌리지 마라.
믿음으로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너희들 스스로가 깨닫고, 보고, 파악한 후에 확신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이 금의 순도를 측정하기 위해 그것을 태우고 잘라 보고 문질러보듯이. 너희들도 나에 대한 존경 때문이 아니라,
내 말을 면밀히 검토해보고 난 뒤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사철 박사님은 인간 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던 중 부처님을 만났다고
하셨는데, 그 분은 내가 만났던 그 어느 선지식보다도 붓다의 깨달음의 실체를 우리에게 함축적이고 명징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법주스님은 우리에게 그 진리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도록 정통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해주셨다.
얼마나 기다리며 애태우다 만난 인연인가? 하지만 이 어찌 단순한 인연일까? ‘그래도 지난 생의 선근공덕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라는 위안이 들어 많이도 울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생사를 걸고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 이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해 2600여년의 시간동안 수행으로 증명하여 주신 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또 많이 울었다.
처자식이 딸리고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 사실 수행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제 오십이 다 되어 살 날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속세의 인연은 몸을 수행만 하게 놓아둘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초초함에 나는 지난 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수행을 시작하였다. 수행처인 열악한 선원의 환경도 그러하거니와 또 수행자의 입장에서 호사스럽다는 생각을 접으려고 영하10도를 넘어선 혹한에도 난방 생각은 추호도 아니하고, 혼자 있을 땐 형광등까지도 꺼버렸다.
포대기 한 장 두르고 잠이 오면 오는 대로 우선 자리잡기부터 하려고 하루에 2시간씩 매일매일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한다고는 했으나 직장 생활하는 생활인인데다 연말까지 겹쳐 도합 15일을 빠졌다. 그래도 반이 넘는 16일을 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포기하지 않은 데 우선은 만족했다.
그리고 다시 새해 들어 1월은 11일, 2월은 5일, 3월은 4일, 4월은 1일... 이렇게 점점 명상수행을 빼먹는 날은 현저히 줄어 들어갔고, 급기야 5월부터 지금까지는 단 하루도 빼 먹은 날이 없게 되었다. 어떻게 만난 보물 같은 소중한 인연인데, 게으름을 피우고 딴짓하려는 업의 속성-억겁의 세월 동안 해온 이 몸뚱아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 드러나면 빨리 알아차리고 하루에 평균 2~3시간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금년 5월15일 한국에 오신 미얀마의 큰 스님, 우 조티카 사야도께서 ‘매일매일 30분내지 1시간씩 수행을 하면, 세상에 빨려들지, 즉 휘말려들지 않게 된다’ 법문을 하여 주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이후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40분 명상하는 일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아침밥을 거르면 걸렀지 명상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온 나라 안이 월드컵경기로 난리가 났을 때도, 특히 우리나라가 16강,
8강, 4강에 올라 경기를 할 때에도 그 경기 시청하는 것 마다하고
그 시간 스님과 도반과 명상을 하면서, 업을 많이도 소멸시키고 있구나 하며 스스로 자족했다. 꽃피고 새 지저귀는 봄날에도, 피서 간다고 야단법석인 여름날에도, 단풍드는 가을날에도 세상일에 빠져들어 가지 않고 묵묵히 명상을 해준 이 몸이 대견스럽다.
그렇다고 수행시마다 늘 선정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망상으로 때로는 잠으로 수행시간을 보내는 날이 적지 않았지만, 애초 ‘나‘라고 일컫는 이 몸이 억겁의 세월을 거치면서 쌓아온 습관이라는 업의 굴레가 하루아침에 없어져 환한 광명이라도 볼 것이라고는 당초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근거에 의한 출입식념(아나파나사티), 사념처(사티파타나)의 수행은 망상이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귀신을 보는 것도 아니며, 미래를 예측하는 초능력을 키우는 것도 아니며, 일반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오도송을 읊어 깨달음의 표시라도 내는 일은 더더욱 아니니, 무엇이라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다만,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통찰함으로써 무상(無常)을 보고 무아(無我, 非我)를 보며, 모든 것이 고(苦)라는 사실을 앎으로써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고귀한 여덟 겹의 길(八正道)을 가는 것이 불교수행의 본질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재가자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보니 무리할 수도 없고, 티 낼 일도 없고, 게으름피우지 말고 틈이 나는 대로 하자는 생각이 수행에 대한 욕심의 부담을 오히려 덜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법주스님께서 해주시는 명확한 근거에 의한
법문, 추천해주시는 책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또 그 법문과 책 내용의 이해가 수행과 일치되어 가는 것이 확인되어갈 때
부처님께서 하신 것이 이것이로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망상이 머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임에는
변함이 없으나 깨어 있는(Sati) 시간이 1년 전에 비하면 많이 길어졌으며, 필요 없는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니까 머리는 훨씬 맑아졌다.
또한 오랫동안 익혀온 습관의 관성 때문에 아직도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기는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일들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 시간이면 빨리 알아차리고 바른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고 지난 1년의 세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소중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집은 부산이고 직장은 서울이라 주말이면 내려가고 올라오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기차 안에서 고속버스 안에서 깨어 있으려고 출입식념(아나빠나사티)을 한다. 이러한 깨어있음이 불필요한 생각을 정리해주니 피로도 훨씬 덜한 것 같다. 전에 같으면 고속버스 8시간 타고 숙소에 도착하면 피로에 지칠 터인데 별반 그러한 것을 모르고 지내는 것을 보면, 수행의 덕이 크다고 해도 될성 싶다.
출입식념(아나파나사티),사념처(사티파타나)의 수행이 금방 어떤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2~3개월 정도하고 하차해 버리거나, 또 한번 잠깐 해보고는 마치 다해본 것인 냥 하는 사람이 많은데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말 무서운 인연의 고리가 영겁의 세월을 두고 몸 바꿔가면서 윤회하지 않았을까? 인연 중에 깨달음을 얻는 인연보다 더한 인연이 없다 하지 않았는가?
“지금 쉬는 숨이 늘 마지막임을 깨닫고 있으라”는 법주스님의 말씀이, 살아 숨쉬는 지금이 수행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매, 오늘도 깨어서(사티) 명상하는 채찍으로 삼는다.
‘벗들이여 오라’! 윤회의 삼계에서는 행복 찾을 생각을 말라는데...... 삼계를 벗어날 방법의 문은 열려 있고, 반갑게 맞이하려는데도 인연 맺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어찌할 수 없다!
예전 어느스님께서는 해가 지기만 하면 산중턱에 퍼질려 앉아 통곡하셨다고합니다,"오늘도 해는 지는데 난 깨치지못했구나"하시면서,,,한때욕심만 많았던 저는 기본도 수행도 안돼있으면서 지는해에 가슴아파했던적이 있었읍니다^^, ,지금은 님과같은 이쁨들의 향기덕으로 지금 이순간 행복합니다.고맙습니다! ~합장삼배~
첫댓글 아! 사두! 사두!!
예전 어느스님께서는 해가 지기만 하면 산중턱에 퍼질려 앉아 통곡하셨다고합니다,"오늘도 해는 지는데 난 깨치지못했구나"하시면서,,,한때욕심만 많았던 저는 기본도 수행도 안돼있으면서 지는해에 가슴아파했던적이 있었읍니다^^, ,지금은 님과같은 이쁨들의 향기덕으로 지금 이순간 행복합니다.고맙습니다! ~합장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