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역에서 차로 5분 정도 달리면, 코앞에 주먹을 불쑥 내밀듯이 천여 세대가 모여 있는APT단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그가 경비로 근무하게 될 곳 이다.
그는 전철역에서 이정도 떨어진 곳이라면, APT가 아카시아 나무보다 더 억세게 뻗어 나갔을 것 이며, 사람들은 실 개미 떼들보다 더 득실거릴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근무 하게 될 아파트는 사방이 논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북한산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가 있고, 근무처에 가면 벼가 익어 가는 들판에서 불어오는 향긋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닌가?
이와 같은 주위 환경 덕분에 그는 직장에 근무하러 나온다기보다, 휴양 차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오늘 날 우리 인간들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데,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잠자리 떼가 바둑판을 그리면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화단의 민들레가 미소를 짓는가 하면, 청솔모가 재주를 넘으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인사를 하는 이곳이 지상의 낙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에다 근무마저 편하니,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니 관리소장이 달 달 볶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새로 부임한 관리소장이 업무파악을 하느라 고삐를 느슨하게 했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고삐를 단단히 조여 왔던 것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쯤이었는데, 경비를 동원하여 리어카로 흙을 퍼 나르라는 것 이었다.
자그마한 산 하나를 이룬 흙을 다 퍼 나르자, 이번엔 조적에 쓰이는 몰탈에 물을 부어서 삽으로 비비라는 것이었다.
산을 깎아 계단을 만드는데, 이 같은 일을 한 달간이나 계속했다.
돌계단을 다 만들고 나니, 이번엔 아파트 주위를 휀스(울타리)로 두르란다.
이러다 보니 여름 한철을 노가다 (토공일)를 하느라 경비들은 땀으로 목욕을 해야 했다.
이런 일은 사람을 사서 해야 마땅할 것이다.
허나 관리소장은 입대위 회장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보안에 주력해야 할 경비들을 내 세워 건축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60세 이상 70세의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젊은이들도 헉헉거리는 건축 일을 시킨단 말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경비반장은 한수 더 떠서 관리실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매일 만들어서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가을철로 접어드니 이번엔 낙엽님께서 어서 날 치워주세요 하고 매달리지 않는가?
천여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의 일은 이같이 끝이 없었다.
큰 나무 밑에 떨어진 낙엽은 갈퀴로 긁을 수 있으니 수월했다.
허나 키가 작고 가지가 잔 나무 사이에 낀 낙엽은 손으로 후벼 파야했다.
그러다 보니 팔뚝은 긁혀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큰 나무 밑에 쌓인 낙엽은 바람에 날르기도 하고 화재의 위험성도 있어, 당연히 긁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키가 작고 가지가 잔 나무 밑의 낙엽은 다시 한 번 생각 해봐야 할 것이다. 키 작은 나무 사이가 뻑뻑해서 바람에 날릴 일이 없으니 낙엽은 그대로 놔두면 될 것이다. 겨울에 담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보온 역할을 할 것 이니까? 그리고 그 낙엽은 썩어서 나무의 영양분이 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을 하면서도 경비들은 불만이 쌓이지 않을 수 없다. 가을 내내 모아 놓은 낙엽들을 실어다 관리실 옆에 쌓아 놓으니, 웬만한 산 하나가 되었다. 낙엽을 치우자 겨울이 돌아와 이번엔 눈과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이때, 어떤 주민이 한 마디 했다.
“아파트 단지가 온통 얼음 투성이군! 이 걸 깨트려서 안방처럼 깨끗하게 해 놓을 생각은 안 하고 경비들은 초소에 앉아서 뭐 하는 거야? ”
이렇게 말 하는 사람은 딴 아파트에서 경비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민원이 들어 왔다면 관리소장은
“얼음을 깨다니요? 봄이 오면, 녹지 말라고 붙들어도 저절로 녹을텐데요? ”
하고 설득을 시켜야 했었다.
그런데 자연의 순리를 역행해서 그 걸 깨트려서 치우려 하다니?
그것도 장비가 하는 것도 아니요 인간의 손으로 하나하나 께트려서 제거해야 한다니?
누군가 나서서 이 모순 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할 텐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나섰다가는 목이 짤 릴 가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해서 나서기는커녕, 남보다 잘 보이려고 더 열성적으로 일했다. 이같이 다들 잘 보이려고 기를 쓰지만, 정작 힘든 일에서는 뒤로 쳐진다. 이러한 모습을 본 한 경비 대원이 삽을 내동댕이치고
“장한수씨! 리어카를 끌으세요. ” 하고 명령 했다.
이렇게 말 한 사람은 온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아직 대기 중인 처지다. 그런데도 반장 행세를 하려든다.
해서 얼굴이 벌겋게 되어 가지고 그가 한마디 내뱉었다.
“전, 허리가 아파서 리어카를 못 끌겠습니다.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거든요. ”
그가 이같이 맞받아치자 아직 대기 중인 임시경비 반장은, 한 바탕 붙으려는지 안경을 벗어 들고 다가왔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향해서 덤벼들 듯이 눈에 쌍불을 켜고서.
“장한수씨! 들어가세요. 아픈 사람이 어떻게 일을 해요? ”
초소에 가서 쉬라고 위해주는 척 하면서 짜르려 하는 것이었다.
그가 계속 버팅기고 있자, 반장은 다시 다가와서 앞서의 말을 되풀이 했다.
이같이 그를 한 입에 삼킬 듯이 설쳐대는 경비 반장은 새로 들어 온 사람이었다.
전임자를 밀어 내고 그 자리를 꿰어 찬 걸로 미루어 보아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예요. ” 그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반장이 휘어놓으려는 대나무를, 그는 반듯하게 세워놓으려 기 싸움이 벌어졌다.
그는 반장이 염려하듯, 환자라서 리어카를 못 끌겠다고 버팅긴 건 아니었다.
불합리한 점은 누군가가 나서서 지적해 줘야 한다는 일념에서 나섰던 것이다.
그가 총대를 매 면 동료들도 호응 하리라 여겼는데,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편을 들면, 짤 린 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거야! >
점심시간이 되어 초소로 돌아 왔다.
“장한수씨! 과장이 그러는데, 오후에는 나오지 말래요. ”
그와 같이 후문에서 근무하고 있는 어느 대원이 말했다.
<과장을 파네! 그게 정말이라면, 과장이 내게 직접 말 할 것이지! >
그는 오후에도 버젓이 나갔다. 나가선 리어카를 끌었다.
아무도 그에게서 리어카를 뺏고는 초소로 돌아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사회에서 일당으로 뛸 땐 대단했었다. 그가 허리에 찬 샥구 (연장을 매단 띠) 에는, 유사시엔 흉기로 변 할 수 있는 각가지 연장들이 꽂혀 있었다.
해서 이런 흉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전공들을 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날고 기는 반장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삽이나 곡괭이는 유사시엔 인명을 살상 할 수 있는 무기로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에 잘못 된 점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구나!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그러한 사람을 꼬투리를 잡아서 잘라 낼 궁리나 하고........ >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경비반장과 한수 사이는 마치 오월동주 사이마냥 껄끄러웠다.
그가 미꾸라지라면, 반장은 미꾸라지를 잡으려는 사냥군이라고 나 할 가?
왜냐하면 반년 후에는 계약기간이 완료가 되어 미꾸라지는 뜰채로 사정없이 걷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경비반장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 있고, 미꾸라지는 내 신세가 곧 추어탕이 되는구나! 하고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이었다.
그가 이같이 안 잡히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보다 한발 앞서 동료가 먼저 떠나갔다.
1년을 채워 퇴직금을 탈 수 있는 조건이 되자, 그날로 사표를 낸 것이다.
떠나는 사람은 금년 70세인 그보다 4, 5년은 젊었다. 그런 젊은이도 못 견디고 결국은 떠나가는 데, 그는 말해서 무엇 하랴? 그와 함께 1년여를 같이 근무하던 젊은이가 그만 두자 그 후임으로 오정화씨가 들어 왔다. 나이는 그 보다 1년 아래였고 외양은 한마디로 말해서 대머리에다 양파처럼 떼굴떼굴했다,키는 중키였다 .얼굴이 삼각형이어서 살무사 같았다.
그는 가까운 아파트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떤 주민이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 학교 교장보다 더 무서워요. ” 하고 말하자 그 주민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 일로 쫓겨나서 이 아파트로 온 것이다.
**원사로 제대했으니 알만하지 않은가? 오정화씨가 오자 후문 초소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새로 온 사람이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아니면 쥐약을 털어 먹었는지, 돼지 멱따는 소리를 꽥 꽥 질러대기 때문이다. 오정화씨가 오고 나서 반장이 휴가를 가게 되었다.
반장은 휴가를 가면서 오정화씨에게 반장으로 근무를 하라면서 뒷일을 부탁했다.
그러 던 어느 날, 택배에서 재고가 하나 남게 되었다. 배달 사고라면 재고가 부족 할 경우다. 말하자면 택배가 장부상으로만 기재 되어 있고, 물품이 없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택배에서 배송을 하면서 잘 못 기재했다든가? 아니면 경비실에서 잘못 관리해서 물건을 잃어버렸던가? 중의 하나이다. 이런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규명부터 해야지 고함부터 지른다.
“이래가지고 내가 어떻게 장한수씨를 믿고 일을 맡기겠어요? ”
라고 독사 대가리마냥 눈이 툭 불거져서 고함을 질러 댄다.
이런 모습을 정문에서 지원 차 나왔던 어떤 근무자가 바라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그가 거듭 머리를 조아려가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그가 머리를 깊이 숙이면 숙일수록 오정화씨는
“죄송이고 뭐고 같이 일 못하겠어요. 이걸 누가 책임집니까? 결국 내가 책임져야 되잖아요? ” 하고 억지를 부린다.
옆에서 지원 나 온 정문 근무자가 그를 불쌍한 눈으로 계속 지켜본다.
오정화씨는 그보다 나이가 1살 아래고 입사도 5, 6개월 늦은데, 오히려 상전 노릇을 하려 든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실제가 그랬다. 오정화씨가 그가 근무하는 후문으로 오던 날부터, 청소며, 침상 펴는 일이며, 침상 개는 일을 그가 다 했다. 교대 교대로 해야 하는데도 그가 도맡아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위로 상전이 두 사람이 있어서, 된 시어머니를 둘이나 모시고 사는 셈이었다. 오정화씨는 원래는 정문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후문에 결원이 생기자 반장이 후문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그의 요리솜씨가 좋아 반장의 식사당번으로 삼기 위해서. 정문의 오정화 자리에는 문석훈씨를 데려다 앉혀 놓고.
그 문석훈씨는 얼마 전에 후문 초소에서 같이 근무하는 전 경비반장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정문으로 전임했다. 반장이 보낸 것도 아닌데, 문석훈씨 스스로 옮겨 간 것이다. 딴 사람 같았으면, 반장 직권으로 짤렸을 것이다. 문석훈씨는 정문에서 몇 개월 근무하다가 그만 두었다. 누구와 싸운 건 아니지만, 트러블을 일으키고 그만 둔 것이다.
그런 문석훈씨를 실업자가 된 문석훈씨를 전임반장을 밀어내고 새로 온 E반장이 끌어 드린 것이다. 이같이 E반장은 모택동이 전법을 구사해서, 자기 심복을 요소요소에 심어 놓아 서 대원들을 꼼짝 딸싹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일으켰을 당시_ 공산당을 갈아엎겠다는 결심이 섰지만, 어떤 사람을 살리고, 어떤 사람을 제거해야 하나 고민이 컸던 것 같다.중국의 어느 여성 작가가 쓴 기록소설을 보면, 거기에 홍위병들의 문화혁명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홍위병들은 자기들을 가르친 스승을 숙청 대상의 명단에 올려야 했는데, 어떤 선생님을 명단에 넣을 것인가 ? 고민 끝에 제일 실력이 뛰어 나고, 또 인격이 훌륭한 선생님을 지목하게 되었고, 어떤 홍위병들은 자기를 미워했던 선생을 지목했다.
E반장은 지금 데리고 있는 대원들 중에서 한 사람은 자동으로 떨어져 나갔고, 또 한사람은 추어탕 끓일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날 막상 닥쳐 봐야 알 일이지만, 이미 각본은 짜여 져 있는 것이다. E 반장 조 에서는 자기의 심복으로 오정화가 있으니 그 화살은 어디로 날아 올 것인가? 그건 손바닥의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 가?그에게 날아오리라는 걸.........
“내일 아침 식사하는 거 알지요? ”
하고 오정화씨가 말했다.
반장의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대원들이 부조를 해서 그 답례로 아침 한 끼를 사겠다는 거다. 반장이 답례 차 아침을 사지 않는다 해도, 문석훈씨 송별회를 해 주기 위해서는 해장국집에 가야 했다. 해서 반장이 산 아침 식사가 문석훈씨의 송별회를 겸하게 되었다.
이날, 해장국집에 모인 사람은 모두가 여섯명이었다. 정문에서 세 사람 후문에서 세 사람 이렇게 해서 여섯이었던 것이다. 그 여섯명 중에서 그가 술을 먹지 않아, 회식 자리에선 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술을 먹는 낙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한대원이 입만 벌어지면
“장형! 한잔 사! ” 하고 보챘던 것이다.
오늘 역시 그가 술 안주마냥, 모든 사람의 입 안에서 씹혔다.
그 중에서 가장 연세가 높으신 마동근 (75세)씨가, 빨래판 마냥 골이 깊게 패인 얼굴을 들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그가 깜빡 잊고 모자를 안 쓰고 나왔던 것이다.
“장한수씨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는 오늘 처음이네! ”
그도 그럴 것이 1년여를 같이 보냈지만 그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대머리가 벗어진 돌 덩어리같은 두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말끝에 술을 홀짝거리는 데 팔려 있던 도토리같이 깜찍하고 귀여운 두상을 한 70세의 한 대원이
“장한수씨는 미남형이야! ”
하고 칭찬인지, 빈정댐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댔다.
“미남형? 아니야! 미남이야! ” 반장이 다시 정정해서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부연해서 말했다.
“젊어서는 대단 했겠어? ”
<대단하긴? 마누라 속만 썩여 주었지! 그 벌을 받아서 고생하고 있지만....... >
그는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는 소리를 억누르느라 해장국만 부지런히 먹어 대고 있었다.
대원들은 뼈다구 해장국을 먹는 동안 실컨 그를 놀려 먹고는
“한판 벌려 보면 어떨 가? ” 하고 제의했다.
“그거 좋지! ”
일행은 해장국집 주인 아주마에게 화투 있느냐고 물었다.
“사다가 놀으세요. ”
텅 빈 홀을 풀죽은 얼굴로 돌아보며 주인 아주마가 대답했다. 홀에 손님이 꽉 찼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식사가 끝났으면 그만 일어나세요. ”
라고 말 할 줄 알았는데, 화투를 사다가 놀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는가?
반장은 싱글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생각했다.
<형님의 상을 치른 사람치고는 명랑한 얼굴이야! 몇 달 전, 의사인 막내아들을 잃은 한 대원도 싱글 거리기는 마찬가지고.!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술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하늘나라로 간 형님이나 막내아들은 그 동안 식물인간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는 것. 그래서 하늘나라로 간 일이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지! 아니야 내가 잘못 보았는지도 몰라 저, 두 사람은 겉으론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론 울고 있을 거야! >
“반장님! 저는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
대머리가 벌떡 일어나서 반장을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옆에서 같이 놀다가 가! ” 반장은 만류했다.
“집에서 걱정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 말끝에 반장은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노는데 팔려 재미가 있겠지만, 화투를 칠지 모르는 나 같은 샛님은 고역이라 걸 모를 거야. >
밖으로 나오니 비가 억수 같이 퍼붓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오정화씨는 초소를 지키고 그는 순찰을 나갔다.
순찰을 마치고 나면 22시 반이 되는데, 그 때부터 그는 휴게시간- 즉 수면 시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02시에 일어나, 오정화씨와 근무 교대를 한다.
오늘도 여늬 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초번 순찰을 마치고 나서, 침상을 펴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그 이부자리를 덮고 누워 있으려는데, 민원이 들어왔다.
오정화씨는 그 민원을 받고 현장으로 출동을 했다. 오정화씨는 나가면서, 그에게 복장을 갖추고 근무를 하라고 이르고는 나갔다.
그가 근무복을 집어 들고 팔을 꿰고 있을 때, E반장이 들어 왔다.
그는 상의에 팔을 꿰다말고 엉거주춤해 했다. 일어나야 할 가? 도로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야 할 가? 망서렸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E반장이 일어나지 말고 누워서 자라고 했다.
그가 눕자마자 오정화씨로부터 E반장에게, 사고 현장으로 와 달라는 인터폰이 결려 왔다.
인터폰을 받고 E반장은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그는 다시 근무복장을 갖추면서
“오늘도 편안히 잠자기는 틀린 거 같군! ” 하고 투덜거렸다.
이렇게 군시렁대고 있는데,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져 들어오는 걸 보고 사태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통보 받은 바가 없어 주민들의 민원을 받고
“누군가 담배꽁초를 버려서 재떨이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나는 걸 겁니다. ”
라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인터폰의 수화구에선
“아저씨가 몰라도 대단히 모르시네요? ” 하고 쏘아부치고 탁 끊었다.
그가 한 말은 꾸며서 한 말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그런 민원이 들어와 출동을 하고 보면, 담배꽁초를 잘못 버려 재떨이에서 불이 붙어 연기가 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이런 때, 출동을 나갔던 사람이 상황을 인터폰으로 라도 이야기 해 줬으면 그도 여기에 대처를 했을 것이다. 허나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어찌 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했다.
이튿날, 후문 경비실 앞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모여든 엄마들이, 화재 사건에 대해서 한마디씩 했다.
“부부싸움을 했다는군! ”
이렇게 말하는 부인은,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어서 신빙성은 없지만, 경찰도 아직 밝히지 못한 사실을 언급한다는 자부심으로 들떠있었다.
“어디로 여행을 가기로 한 모양인데, 문제는 8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가느냐? 떼놓고 가느냐 였다 며?”
“그럼, 부부싸움 끝에 불을 질렀다는 얘기야? ”
화재가 일어난 날, 경찰들이 후문 경비실에 와서 CCTV 검색을 했다. 그 결과, 집주인으로 보이는 40대 남성이 반팔차림으로 나오고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나올 땐 빈손이었는데, 들어 갈 땐 신나통이 들려 있었다.
화재가 일어난 이튿날, 오정화씨는 E경찰서에 출두해서 사건 전말을 진술했다. 그 진술이란 후문 경비실에서 했던 말, 그 말을 녹음기처럼 되풀이 했단 것이다. 그 녹음기를 재생시켜 본다면,
“신고는 어떻게 했어요? 듣기로는 어떤 아이가 인터폰으로 후문경비실에 신고 했다는데? ”
“맞습니다. 그 아이의 신고를 받고 사건 현장으로 뛰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화재가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 당황했습니다. 그 때, 어떤 아이가 5, 6라인에서 연기가 난다고 알려 주더군요. 그 때가 밤 11시였는데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불길이 치솟는 모습도 보이지 않아 단지 연기가 나는 걸로 미루어서 추측 할 뿐이었지요. ”
“119에 신고는 누가 했지요? ”
“주민께서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상황이 심각하다 생각되어 반장에게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반장이 와서 그 때 신고를 했습니다. 신고를 하자마자 소방차가 바로 왔는데, 그때 주민께서 이미 신고를 했던 것입니다. ”
여기에서 오정화씨는 5분만 먼저 신고를 했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 한 귀퉁이가 칼로 찌르는 듯 아팠다.
“저는 불길이 안 보여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문 위가 끄을 린 걸 로 보아 여기구나! 하고 발로 냅다 걷어찼습니다. 문이 힘겹게 열리며 문에 기대어 있던 둔중한 물체가 퍽 쓰러졌습니다.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지금도 살이 떨리는 것 같아요.“
“문이 열렸을 때, 문에 기대어 있던 사람이 주인 남자가 확실해요? ”
“예! 어두워서 뚜렷이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낌으로 봐서 주인 남자 같았어요. ”
“8살된 아이가 있었다는데? ”
“예! 구급차가 왔을 때, 맨 먼저 실어갔어요. ”
“정황으로 보아 주인 남자 즉 애 아빠가 먼저 발견 되었는데, 왜 두 번째로 발견 된 아이를 구급차에 먼저 싣고 갔을 가요? ”
“그건 소방관의 판단으로 아이의 생명을 건질 수 있지 않을 가? 해서가 아닐 가요?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오정화씨는 아차! 내가 말을 잘 못 했구나! 후회했다. 세 사람이나 죽었으니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인데?
“그 때, 상황은 우리는 연기 때문에 들어 갈 수가 없어서 안에서의 일은 알 수가 없었지요. 소방관이 조명을 비춰가며 거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쏘파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 하고 외치는 소릴 듣고 아마 부인인 모양이구나 생각했지요. 그때, 제가 본 건 불에 타버린 시신이 되어 확실치는 않지만, 소방관께서 얼굴을 흰 까운으로 덮고 들것에 싣고 나가는 걸로 미루어 보아 그렇게 생각한 거지요. ”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파견업체인 용역회사에서 T이사가 순찰을 나왔다. 화재 사건의 보고를 받고 확인 차 나 온 줄 알았으나,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당선자를 축하하기 위해서 화환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 T이사가 오정화씨에게 화재사건에 대해서 물었다.
“화재가 났다는 신고는 누가 했어요? ” 오정화씨는 다시 녹음기를 재생해야 했다.
“제가 했어요. ”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만약에 불이 났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면, 책임론 까지 나올 것이다.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은 오정화씨의 이야기를 듣고, T이사는 안도의 숨을 내 뿜었다.
“화재가 외부로 번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군! 1층에서 화재가 났으니까 불길이 번졌더라면, 1동에 사는 500여명은 떼죽음을 당 할 뻔 했군! 다행히 밀폐된 공간이어서 불길이 딴 곳으로 번지지 않았던 거야! ”
상황이 이런 줄 도 모르고 그는 후문 경비초소에서 근무를 하며, 인터폰으로 묻는 주민들에게
“화재가 진압이 되었으니,, 집안에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 하고 안심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안내방송을 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자, 마침 후문 경비실에 들린 관리과장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그의 요청에 과장은
“방송이 문젭니까? 지금 화재현장을 수습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데? ”
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부쳤다.
<화재는 소방관이 진압할 테고, 구조는 119응급대원들이 할 텐데? 모두 현장에만 매달려 있으면 어떻게 해? 전 경비 대원들과 전 관리인들이 매달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날 리도 없을 텐데? 보다 중요 한 것은 살아 있는 주민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 에 신경을 써 야지! > 그의 생각은 이랬다. 그는 관리과장의 말을 듣고 황당했다. 그러나 이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주민여러분! 화재는 진압이 되었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러나 유독 까쓰가 올라와 옥상으로 대피하셔야겠습니다. ” 이때, 안내 방송이 안 나왔으면 문제가 커질 뻔 했다.
이런 방송과는 달리, 그는 인터폰으로 문의하는 주민들에게
“집안에 가만히 계십시오. ” 라고 답변했던 것이다.
그의 황당한 답변을 듣고 주민들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 지 난감했다.
막상 대피를 하기 위해 비상계단으로 나왔으나, 유독 까쓰가 올라와 도로 집안으로 들어 왔다. 그리곤 인터폰으로 경비실만 호출해서 어찌해야 되느냐고 호통을 쳤다.
이날, 그의 엉터리 안내 맨트가 없었더라면, 1동의 5,6라인에 사는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해서 쓰러질 뻔 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화재가 일어 난 집의 창문이 닫혀 있어서 500여명이 무사 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큰 공신이 있다면, 신속한 대처를 한 오정화씨 일 것이다. 오정화씨가 평소에 그에게 고함을 지르고 까탈을 부렸지만, 그러한 완벽주의 덕에 500여명의 목숨을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오정화씨가 안이한 자세로 아이의 화재신고를 묵살했거나, 늦장 대처를 했더라면 사태는 엄청나게 크게 번질 번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평소에 대장행세를 잘 해 왔는데, 이런 때는 쓸 만하군! 남보다 앞서 가려고 고함 고함을 지르는 평소의 근면함이 이런 때 보상을 받게 해 주는 군! 오정화씨! 그런 고함이라면 계속 질러 주시라. 얼마든지 감내 할 수가 있으니까. >
택배기사들 중에서 키가 후리후리하고 미남으로 생긴 사람이 있었다. 그 택배기사가 후문 경비실에 들어서면서 한마디 했다.
“화재가 일어난 집, 말이예요.”
택배기사의 말끝에 그가 귀가 솔깃해서 황소보다 더 큰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기사님이 어떻게 화재 사실을 알지요? 화재가 일어난 시각에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
“뉴스를 보고 알았지요. “
“아, 그랬군요. 그 뉴스에 사람이 죽었다는 말도 나 오던가요? ”
“아녜요. 그런 말은 없었어요. 이 아파트에 와서 주민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알았어요. ”
잘생긴 택배기사는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평소에 어깨에 앵무새를 앉힌 채 다니던 아주마였는데....... ” 하고 목이 메어 말했다.
그 앵무새라면, 그도 기억이 난다. 앵무새를 보는 순간, 날카로운 부리로 눈이라도 파 먹지 않을 가? 겁이 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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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어 올린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