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깃대봉(365m)
◈ 위 치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면 홍도리
◈ 일 시 : 2011. 05. 21. 17시 토요일, 날씨: 흐림, 바람: 강함, 기온: 25℃
◈ 참 석 자 : 동문산악회원 40명과 동행
◈ 등반코스 : 흑산초교 홍도분교 ► 전망대 ► 347봉 ► 깃대봉 정상
► 전망대 ► 홍도분교
◈ 총 3.4km, 소요시간 1시간 30분
☞ 짙은 해무를 뚫고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함을 더했다. 발아래 날리는 동백 꽃잎에 서린 사연을 헤이며 돌 섞인 등산로를 달리는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우리나라 최서해남단 홍도의 정상인 깃대봉을 오른다는 생각에 가슴은 떨리도록 시렸다. 떨어진 동백꽃이 말해 주 듯 동백나무 군락지를 머리로 이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정상을 향했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피해 가며 깃대봉 정상에 오른 시간은 오후 5시 50분으로 정확하게 45분이 소요되었다. 안개비가 심하게 내리고 바람까지 강하게 볼을 스치는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다. 혹시 하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역시나 보이는 것은 동료의 얼굴뿐이었다. 바다가 보이고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연발하며 그래도 비가 오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자위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10여 평도 안 되는 정상에는 가운데 돌탑이 정성스럽게 쌓여 있고 그 위에 3자 정도의 자연석에 ‘깃대봉 365m’ 표시가 음각되어 있다. 주변에는 5개의 의자가 놓여 있어 쉼터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그 바람에 단체사진을 찍기가 만만치 않았다. 겨우 10명 정도만이 모여 안개 사이로 인증 샷을 해야만 했다.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고 어둠이 밀려와 바로 하산을 독려하였다.
우리가 홍도산행을 위해 원주를 출발한 시간은 어제 자정이었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출발을 앞두고 조금씩 내리기에 우산을 쓰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버스는 이미 와 대기하고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시간이 되어 인원수를 확인하니 모두 참석하였다. 여행 인솔자인 김연구(30회) 사장의 간단한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출발하였다. 빗속을 뚫고 버스는 잘도 달렸다. 회장으로 인사를 했다. 어렵게 시간을 내준 동문회원들과 함께 해준 산사모(회장 차재천) 회원들께 감사를 표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소주와 맥주를 실었고 안주도 나누어 주며 먹을 사람들은 먹도록 조치를 취했다. 목포까지의 긴 여정을 생각하여 여주휴게소에 잠시 들렸고 이내 소등을 하여 잠을 자도록 했다.
정읍에서 국도를 따라 가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눈에서 잠이 떨어지는 가운데 목포시내로 진입하였으며 6시경 여객터미날 부근의 ‘서귀포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된장찌개가 입맛을 돋우고 갈치조림이 밥을 넘어가게 했다. 여객선 탑승시간이 8시 10분이므로 한 시간 이상을 터미널 안에서 대기하며 보냈다. 우리처럼 홍도로 들어 갈 많은 사람들로 터미널 안은 만원이었다.
피곤에 지친 탓인지 몇몇은 눕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졸기도 하면서 부두에 정박한 배들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세면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안내도에 있는 지도를 훔쳐보면서 흑산도와 홍도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했다. 일부는 멀미에 대비하여 약국에서 멀미약을 사 먹기도 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승선권을 나누어 주고 차례로 승선토록 했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유람선은 여러 척이고 우리는 ‘유토피아’호에 승선했다. 287톤으로 333명이 정원이었다. 트윈 스크류를 장착했으며 전형적인 쾌속선이다. 흑산도까지 운임은 25,400원이고 2층으로 올라가 지정 자리에 앉으니 마침 긴 탁자가 있는 곳이라 한 잔 하기에 ‘딱’이라며 모두 좋아들 했다. 부두를 떠나자 벌써 소주잔이 날아다녔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으나 해무가 잔뜩 끼어 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또한 바다 날씨도 잔잔한 편이라 멀미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며 놀려 주기도 했다. 매번 이런 상황이 오면 나는 지난 시절 처음 ‘수성호’에 승선하여 배 멀미하던 아픈 사연이 생각나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2가지를 떠올리는데 하나는 ‘내가 왜 배를 탔던가’ 하고 후회를 하고, 다른 하나는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는 것이다. 모두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비금도를 벗어나 대양으로 나와도 해면 상태는 양호했다. 피곤하기도 한 탓으로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기적소리에 눈이 번쩍하고 깼다. 벌써 흑산도 입항을 알려왔고 우리는 각자의 배낭을 들쳐 메고 하산을 했다. 10시 4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엷은 안개비가 오락가락했다. 짙은 전라도 사투리의 아낙네들이 전복, 해삼, 멍게 등의 해산물을 끌어안고 시식을 청했다. 부두에는 제법 커다란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우리를 반겼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가까운 해산물센터에 짐을 맡기고 각자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재범과 함께 부둣가를 따라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전망대 팔각정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왔다.
12시 점심식사를 마치고 1시 흑산도 일주 버스투어에 올랐다. 자신을 백기사로 불러달라는 키 작고 눈도 작은 버스기사는 웃지도 않으며 잘도 떠들어 댔다. 10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며 흑산도 풍경에 대해 넉살 좋은 입담을 풀어냈다. 아직도 해무가 앞을 가려 바닷가 풍경은 멀리 달아났고 비가 오지 않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1시 45분 우리는 삼라봉(230m) 정상에 올라섰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볼을 스치고 지나갔으며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귓전에 맴돌았다.
오후 4시 다시 홍도행 여객선 ‘동양골드’호에 올랐다. 1층 앞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바다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지난 기억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파도가 눈가에 맴돌았다. 30분을 달려 홍도에 도착을 했다. 작은 섬 홍도는 해상국립공원이라 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으며 우리의 목적지인 깃대봉 산행도 시간의 제한(3시 이후 산행불가)이 있는 곳이라 여행사의 사전 통고로 입산 허락을 받았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하선을 하여 ‘광성장모텔’ 213호의 방을 배정받고는 바로 산행준비를 하여 입구로 나왔다.
공원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앞장서 인도를 해 주었다. 홍도분교를 오른 편으로 꺾어 돌아 계단을 오르자 이내 전망대까지 목재로 된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가파른 오르막이라 사방에서 달려드는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하산하여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아 교행에 어려움이 컸다. 산행을 하며 자생하는 홍도원추리가 보였고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분재용의 소사목이 길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보기에 좋았다. 홀 겹으로 색상이 좋다는 동백꽃의 사연을 귀에 담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올랐다. 선두에서서 무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힘든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올라갔다.
전망대에 다다르자 ‘입산금지’ 현수막이 보였고 직원은 이곳까지만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여기서부터 깃대봉까지는 1.6km로 40여분 거리였다. 안개비가 내려 축축하게 젖어 있는 산행 길은 조심해야 했다. 거의 시들어 떨어져 버린 붉은 색의 동백꽃이 발에 채이고 가끔 진달래나무가 눈에 들었다.
정상에서의 달콤함을 던져 버리고 서둘러 하산을 하였다. 내려오면서 김복순, 안주성 모녀와 함께 마지막으로 오다보니 모녀가 모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지라 두 사람을 사진 속에 담아 주느라 나만 바빴다. 또한 조경준, 손은미 부부가 카메라를 메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방 배정이 늦어 그렇다며 정상까지 갔다가 오겠다며 발에 힘을 주었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홍도의 전경은 일품이었다. 건너편의 양산봉(232m)이 들어오고 몽돌해수욕장이 파도를 안고 있다. 역시 바람은 강하게 불어왔다.
6시 30분 하산을 마치고 모텔 내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계를 넣고 끓인 국 맛은 아쉬운 대로 먹을 만했다. 재범과 한 그릇 반의 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방에 7명씩 배정을 받았으나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우리는 최고령의 박삼성 선배와 곽호석, 최진철 12회 선배 그리고 이창하 전 회장과 재범과 나 이렇게 6명이 투숙을 하게 되었다. 커피를 타서 마시며 오늘의 산행에 대한 묘미를 잠깐 이야기 하고 부둣가로 나가 회를 안주삼아 한 잔씩 하기로 했다. 무엇인가 서운함이 우리를 바닷가로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일만 원 씩 각출을 하여 이창하 선배 내외와 서울식품의 김연금 사장을 대동하고 선배님들의 뒤를 따라 불을 밝히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부둣가로 나갔다.
이재범 친구가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선경이네’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만났다는 여인네들 사이에서 웃음을 뒤집어쓰고 있는 재범을 발견하고 그 옆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멍게와 해삼 그리고 성게까지 모듬 회를 4만원에 주문하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잎새주’로 입맛을 살렸다. 술술 잘 넘어간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싱싱한 회를 안주삼아 여러 잔을 마셨다. 그때 김순희 여성부장이 전화를 하였다. 시계는 9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겠다는 선배님들의 권유로 미련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돌아오니 나머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 발 빠른 재범이 가까운 곳에 있는 ‘로얄노래방’에 예약을 해 놓았다며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사람은 많고 노래방은 적고 그러니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미 박제일과 이형준 그리고 조경준, 김연구 등은 술이 거나하여 기분이 최고라며 횡설수설이었다. 겨우 방을 잡고 모두 들어가니 18명이나 되었다.
산사모 팀들은 강수만이 책임지고 있어 나로서는 달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고 술이 들어오면서 상태가 심각해졌다. 박제일 국장이 근심스러운 눈치로 말을 꺼냈다. 이 자리의 술값에 대한 걱정이다. 애초에 재범이 노래방비만 냈다며 조금씩 각출하여야 한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몇 명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하여간 주어진 시간만큼 재미있고 열심히 흔들어 가면서 각자의 노래자랑을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노래를 함께하며 어깨동무까지 하니 그럴싸했다. 그 순간만큼은 찡해 오는 감정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밤은 이렇게 무르익어 갔다. 11시경 자리에 들어 눈을 감았다.
새벽부터 설친 탓으로 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안개가 사라지고 사방이 잘 보였다. 날씨는 흐릿했으나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는 데 안심하며 아침 식사를 위해 어제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로 아우성이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콩나물국에 조기를 반찬으로 한 그릇을 해 치웠다. 7시 유람선이라 배낭을 챙겨 들고 부둣가로 나갔다. 이미 사람들로 줄을 메우고 서서 비켜 나갈 틈이 없었다. 현지 가이드가 한곳을 지정해 주며 짐을 맡기라고 했다. 선착장 가까운 곳에 짐을 던지고 홀가분한 몸으로 유람선에 올랐다. 그때 저쪽에서 걸어오는 조경준의 모습이 영 시답지 않았다. 부인과 형준이 어깨에 걸쳐서 질질 끌고 오고 있으니 어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의문이 갔다. 새벽 3시까지 술과 친구를 했다며 아직도 비몽사몽간이라고 은미씨가 입을 삐죽거렸다. 역시 젊음이 좋다고 호언을 했으나 마음은 영 시답지 않았다.
150명이 승선하는 유람선은 22,000원으로 1층과 아래층이 있고 헤드셋을 쓴 해설가의 구수한 전라도 억양이 귀에 솔솔 익었다. 홍도에 산다며 다이빙과 낚시의 천재라는 녀석의 넉살좋은 덕담을 들으며 8월이면 섬전체가 오렌지 빛이라고 자랑이다. 어제 본 원추리 꽃이 만발하여 그런 장관을 이룬다며 꼭 다시 들려 달라고 애원이다. 거북바위를 지나 촉대바위, 한반도 지형의 구멍을 가진 바위 등등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경을 눈에 꼭꼭 숨겨두며 홍도를 한 바퀴 돌았다. 홍도 등대를 보니 수년전 중국 천진항에서 출항하여 일본으로 항해 하던 중 이곳을 지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철분이 많은 바위로 인해 붉은 색상을 띠게 되어 홍도라는 이름이 생겼다며 바위를 자세히 보니 그럴 듯했다. 파도가 조금 세게 일어 롤링과 피칭이 심했고 사진을 찍기에 어려움이 컸다. 해설가의 도움으로 포토라인을 잡아 그런대로 여러 장을 박을 수 있었다. 풍란이 많이 자생하고 특히 바위위에 우뚝 서있는 키 작은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갖가지 특이한 형상의 소나무는 오랜 풍상을 겪은 탓에 그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고 우직스러움이 배어 나오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조경준 대원은 눈을 감고 평상에 누워 추위와 떨고 있었다.
2시간 정도가 지나자 유람선 가까이로 작은 어선들이 모여들었다. 즉석에서 회를 떠서 판다며 신선함이 그지없다며 한 접시 사먹으라고 협박을 하는 통에 은근히 손이 당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주문이 쇄도했다. 아래층에 자리를 마련했다며 김연구 사장이 우리를 불러 들였다. 여러 명의 선배님과 후배들 덕분에 위하여만 여러 번 외쳐댔다. 술기운이 돌자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김순희씨와 박선미씨가 구성지게 부르고 ‘홍도야 울지마라’를 한성구씨가 이어 받았다. 모두 합창을 하느라 술맛이 살아났다. 즉석에서 떠먹는 회는 역시 맛이 좋다며 모두 입가를 쓸어 담았다.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10시 30분 홍도발 목포행 ‘뉴-골드스타’호에 승선했다. 308톤으로 377명이 정원이었고 운임은 29,500원이다. 역시 2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쾌속선으로 바다 날씨가 좋지 않아 몹시 흔들리고 있다. 1층에 자리를 잡고 보니 언제 살아났는지 경준이 배낭을 등에 메고 씩씩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출항하여 조금 지나자 배는 아래위로 그리고 옆으로 흔들어 대고 그 바람에 모두 정신이 없다며 배 멀미를 시작했다. 김연구가 부지런히 비닐봉투를 날라다주었다. 여기저기서 토하는 모습이 보였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나 역시 오랜만의 승선이라 머리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잠을 청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우리의 이상에 따라 파도에 몸을 맡기도 조금씩 잠들어 갔다.
흑산도를 지나며 파도는 더욱 거셌고 그럴 때마다 배는 열심히 흔들렸다. 망망대해라는 표현을 실감하며 자꾸만 추억에 빠져드는 바람에 꿈속에서 헤매기도 했다. 비금도를 지나면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진미를 보라며 방송이 있었다. 또한 이곳은 섬과 섬 사이라 파도가 많이 잦아들었다. 멀리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상을 훑어보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목포항이다. 시계는 오후 1시다. 햇살이 살아나 파도에 내려앉았다. 어제의 ‘서귀포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갈치조림과 청어구이가 입맛을 당겼다.
산사모 회원의 요청에 따라 유달산을 찾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여 입구에 도착했다. 노적봉 큰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았다. 계단을 오르며 ‘목포의 눈물’ 노래 말 비를 찾았고 들려주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시간이 허락지 않아 정상을 포기하고 ‘유심각’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유달산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목포시내의 모습이 정겹다. 멀리 삼학도가 보이고 내항과 외항을 잇는 다리공사가 한창이었다. 훈련 중인지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구보를 했다. 가슴에 ‘운송학부’라 쓰여 있기에 물으니 과거 항해학과를 고쳐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며 여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차기의 항해사 후배라며 엄지를 들어 추켜세웠다. 지나는 길에 ‘목포해양대학’건물이 보였다.
3시 원주로 출발했다. 어느새 준비를 했는지 순희씨가 안주를 꺼내 술자리를 마련했다. 여행의 대미는 유흥이라며 시간을 내준 산사모 회원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술 한 잔씩 건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시작한 술잔이 서너 잔씩이니 기분이 흔쾌해 질 만도 했다. 노래방 기기를 살리라고 아우성이자 임민식 기사가 슬쩍 눈감아 준다. 노래도 한곡 주고받고 흥에 겨워 엉덩이도 흔들어 댔다. 산사모의 여성들이 아주 뜨겁게 놀아 주는 탓에 버스안의 분위기는 벌겋게 무르익었다.
우산을 쓰고 출발한 홍도산행이 비는 오지 않았고 해무로 보지 못한 홍도는 다음날 유람선관광으로 훌륭하게 기억에 담았으니 이것도 천운이라고 해야 할만 했다. 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자리를 함께 해준 동문과 산사모 회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산행의 추억을 서해 파도에 남겨 두었다.
첫댓글 2년동안 고생 많으셨읍니다 계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동문산악회의 번창을 위해 힘을 쏟아주시고 매번의 여행기 매우 감사드립니다
역시 멋집니다!!!! 흑산도와 홍도의 여정이 눈에 잡힐 듯......
그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더욱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담바우 이창원)
매번 읽어 주고 관심을 가져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욱 정진토록 하겠습니다. (원준호)